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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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오래오래 곁에두고 싶다고 생각이 처음든건 첫 챕터를 읽고나서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던건, 한국서도 잘 알려지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꽤 많은 영화감독이라는 저자의 친숙한 정체성 대신, 일본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과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정치적 스탠스 라는, 한국의 팬들에겐 조금 덜 알려진 저자의 면모를 책의 첫챕터에 배치했다 라는게 신선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저자가 이렇게 정치인과 미디어를 경계하고, 그가 느낀 사회적 모순과 분노를 그의 영화 속 세부적 장치로 표출한다고 생각을 못했다. 대부분 가족의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주가된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었기에. 하지만 그렇게 한발자욱 뒤에서 평가와 해석을 관객에게 맡기며 자신의 방식으로 ˝슬픔대신 분노로˝, ˝대답대신 질문으로˝ 더 여운을 남기를 영화를 만듬으로서, 그가 할수 있는 한 사회문제에 대한 나름의 책임을 지려는게 진짜 어른답다 느꼈다.

이후 챕터에는 자신이 티비 다큐멘터리 스태프로서, 영화감독으로서 함께 우정맺어온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진심담긴 애도, 영화현장에서 느낀 것들, 정성일 평론가님과의 영화관 대담 등 여러 방면으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인으로서, 그리고 이 시대를 반백년 이상 살아온 어른으로서의 다양한 면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감독이 20여년 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글들을 모아 새로운 포맷으로 책을 묶고, 챕터링을 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이 책이 여느 명사 에세이보다 청의적이고 저자의 생각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양태를 갖추었다고 본다. 그건 이 책의 번역자이자 사실상 공동편집자 이지수님, 그리고 바다출판사의 저력이기도 한것 같다. <명랑한 은둔자> 에서 저자 캐럴라인 냅의 산문을 모아 한 개인의 역사에서 사회의 흐름을 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게 한 힘이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하나 소소히 아쉬웠던 점 하나. 담화 파트에서 인터뷰어셨던 정성일 님께서 독자에게 최대한 많이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관과 세계관에 대해 알게 하시려고 질문을 정말 다각도로 많이 준비하셨다. 그런데 그 모든걸 물어보고 답을 얻으시려고 하다보니 고레에다 감독이 (키키 키린님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주 보여주었던) 특유의 큰 질문의 대한 답을 하며 넣은 소소한 에피소드, 혹은 유머에 대한 리엑션을 많이 해주시진 못한 것 같다. 전반적인 대담회 분위기는 화기애애 해보였으나 약간 질문 --> 답 --> 새질문--> 답
이런 구조로 진행되어 조금은 옆길로 새어나가도 재밌지 않았고 감독님도 편해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은 손톱만큼 있었다.

(여담이지만 감독님, 제발 말년에 사고치시거나 망언하시면 안되요 ㅠㅠ 저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제발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는 지성인이 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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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세상의 기쁜 말 -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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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PD님의 책은 이번이 세번째다. 첫 책은 <아무튼 메모>, 두번째는 <앞으로 올 사랑>, 그리고 이 책. 솔직히 <아무튼 메모> 때는 마냥 저자의 화법이 낯설고 책 속에 소개된 다양한 생각과 사건들이 내게는 조금 버거웠다. (많은 동네서점과 독서인들이 2020년도 올해의 책으로 꼽아서 당황했던.) 하지만 <다시 올 사랑> 부터는 방대한 세상의 사건들과 책, 사람에 대한 저자의 앎을 진부하지 않은 스토링텔링으로 엮어 들려주는 저자의 화법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비록 그 이야기들 속엔 현재 판데믹을 초래한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각종 불편한 진실이 많아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알아야 불편해지고, 불편해야 변화를 일으킬 행동을 할수있다˝ 는말에 동의하며 그 책을 읽은 뒤 판데믹을 보는 시각과 내가 그 안에서 해야할 일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뀐 적이 있다.

그렇게 각성을 하게해준 책에 이은 후속작 제목이 <슬픈 세상의 기쁜말> 인게 의외였다. <앞으로 올 사랑> 에선 미래는 디스토피아 스러웠고 인류애가 사라질 팩트가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궁금했다. 그렇게 사실을 직시하며 괴로운 한 사람이 긷어올린 ˝기쁜말˝ 은 뭔지. 그 말은 누구의 말인지.

이미 서론이 길었으니 본론을 말해보자면 이 책은 아무리 절망적이고 슬픈일이 많아도 그 사이에서 기어코 기쁘게, 자유롭게, 타인과 연다하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고유의 화법으로 자신이 세계 각지에서 만난, 큰 슬픔을 이기고 행복을 개척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각 대화 속 화자를 제일 대표할만한 단어 하나씩을 찾아낸다. 그 단어들이 바로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이다.

저자가 찾아가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 중엔 유명인이 하나도 없었다. 사회에서 규정한 ‘성공‘ 을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상실이나 재난 같은, 큰 아픔을 겪었지만 거기에 가라앉지 않고 매일의 마음 속 싸움을 이겨내 ˝내 삶의 전문가˝ 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찾아가 나도 당신같이 아팠다고, 지금도 애쓰는 중이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 기꺼이 ‘우리‘ 가 되려 했다는 점이다.

읽는 내내 눈물이 팍 터져온 순간이 너무 많았지만 한참을 넘기지 못하고 뚝뚝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부분은 프랑스의 재난 생존자 공동체가 내린 연대의 정의를 읽었을 때다.

📖🔖 99쪽
연대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일로 알게 된 모든 것을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온 힘을다해 당신을 도울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요.

이 책은 정말 극한의 재난이나 절망 속에서도 존재하는 인류애를 유려한 문장으로 실어내었다. 소위 요즘 말로 ˝인류애가 사라진˝ 분들께 추천한다.
두고두고 기억하며 삶의 실전에서 날 일으켜 세울때 사용할 사랑의 말이 가득했던 이 책을 초판이 나온 달에 만나고 완독할 수 있어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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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수집가
엄주 지음 / 아침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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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사람들의 악몽을 기록하고 마법의 도구들로 그들의 악몽을 좋은 꿈으로 만들어주는 한 수집가 할머니와, 그녀와 함께 다니며 악몽의 사진을 찍는 소년 환희의 꿈같기도 현실같기도한 밤 산책이 주 플롯.

길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는 명문장도 많고, 악몽이라는 매개를 통해 타인의 힘듬과 고됨, 트라우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책이다.

사실 어떨땐 그림책이나 그래픽 노블은 비싼것 같다. 몇백쪽씩 써내려간 대장편소설이나 지식의 총집합같은 교양서와 맞먹는 가격이기엔 그냥 예쁜책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악몽수집가> 같은 책을 만나며 그 편견이 깨지길 바란다. 훌륭하고 깊은 삽화들이 단순 페이지 채우기 그림 이상이란걸 느낄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특히 고전적 책이 부담스럽지만 <해리포터>, <반지의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의 판타지는 n차 관람 혹은 독서가 가능한 매니아 파들이라면 특히 더 그래픽 노블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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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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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번째 하현 작가님 책, 하지만 내가 읽은 첫 단독 에세이 책이다.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 에서 ˝그래도 글을 쓰겠지. 글을 써야지˝ 라고 다짐하며 매일 자정 10줄의 글을 쓰던 작가의 꾸준함은 매 꼭지가 10쪽에 달하면서 산만하지 않은, 한 주제에 대해 일관적으로 연결된 그녀의 다양한 시간 속 사건이 예쁘게 꿰메어진 퀼트같은 글이 모인 책이 되었다. 특히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지목한 ˝실내형 인간˝ 의 이모저모를 다룬 1장은 미끄러지듯이 읽었다. 그리고 수많은 순간 내적 끄덕임을 보냈다. ‘그렇지! 사람을 만나는건 좋지만 가끔 취소되면 나쁘지 않지!‘ ‘역시 집순이가 나만은 아니었어! 집최고! 이불밖이 최고야‘ ‘그치 집순이 최고의 여행은 호캉스와 세계여행 프로지!!!‘ 같은

특히 또 좋았던 꼭지는 sns 마케팅에서 남용해서 본의미가 축소된 소확행에 대한 솔직한 심경(?) 토로였다. 소확행도 좋지만 사실 크고 불학실한 행복도 청년인 우리에게 남아있는 세상이었음 좋겠다는 사뭇 심각한 말을 ˝솜 포함 35000원짜리 차렵이불말고 그 이불을 편안히 덮고잘수 있는 집˝ 이라는 구체적 살과 함께 넌지시 건네는 목소리라니.

먹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저자가 마트 판촉알바를 하면서 같리 일하는 동료언니들에게 정월대보름 오곡밥을 얻어으며 그날의 진상손님 스트레스를 이기는 꼭지와 키즈카페에서 만난 8살 손님에게 믹스커피를 건네던 꼭지도 그 상황을 혼자 상상하며 즐겁게 읽었다.

이 단락은 쓸까말까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에세이 장르가 더 상향평준화 하길 바라는 바람에 조심스럽게 써본다. 바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구름조각만한 아쉬움이다. 장 (part) 제목에 대한건데, 2장과 3장도 1장처럼 저자의 고유성이 더 잘 드러나는 구체적인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쉬움은 책방에서 이 책을 넘기다 파트 제목들을 보고 그저그런 에세이로 오해할까 하는 마음에서다.
이 책은 위로를 팔고 무조건 너대로 살라는 말을 늘려서 하는 에세이 이상의 고백과 목소리가 담긴 글이다. 한두번 퍼마시면 없어지는 얕은 웅덩이가 아닌, 저자의 어린시절부터 지금과 희망하는 미래까지 이어진 이야기가 공존하고 공명하는 우물같은 책이다.

많은 이가 이 책을 만나고 나처럼 내적 공감, 내적 자극을 받으며 저자와 대화할 수 있길. 그리고 같이 씩씩하게 살아갈수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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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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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흡입력 최고.
사실 이 책 광고를 창비 출판사 인스타에서 보고 저 책은 꼭 읽어야겠구나 싶었다.
˝오늘도 지구는 둥글고, 일은 끝이 없고, 그래도 최애는 고귀해˝ 라지 않나. 저 작가, 덕후생활에 대해 뭘 좀 아는데? 라는걸 저 짧은 문장으로 안다. 동족이라면.

알다시피 난 돌판 (트위터 등의 sns 에서 아이돌 덕질이 주인 그룹, 판을 일컫는 줄임어) 이 전공이 아니다. 내 주요 활동무대는 롤판 (돌판에서 파생된,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팬덤을 말함) 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 고등학생 아카리가 최애를 ‘파는‘ 방식에 있어서 나와는 다른게 많았다. 페이커와 티원 선수들은 음악 CD 를 내거나, 인기투표를 하거나 연기를 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저자가 정말 집요하고 깊숙히, 세밀히 묘사하는 아카리의 ‘척추‘ 인 최애를 향한 애정의 정체, 팬심의 핵심은 너무나도 나의 그것과도 같았다.

일단 최애와 실제로 친해지거나 어떤 관계 같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행복한 모습을 내가 계속 라이브 방송이나 sns 게시물, 게임 경기와 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받고싶다는 점 등.

하나 살짝 우려되는 점은 이 책이 99년생 작가가 쓰고 기성세대 평단이 이 소재 자체를 신선하게 여겨 상을 받았다는데서 온다. 그게 왜 걱정인가 싶겠지만, 혹여나 이 책 속 아카리의 덕질이 스테리오타입으로 굳어서 새로운 ‘덕질하는 요즘애들‘ 의 고정관념로 굳을까 싶어서다.

솔직히 아카리의 누적되는 현실도피성에는 과한게 적지 않다는 얘길 꼭 하고싶다. 책에서도 팬의 종류가 다양하다고는 나오지만 아카리 같이 감정의 동요와 헌신도가 하늘을 치는 팬이 모든 열성팬의 생활양식은 아니라는 거다.

아카리는 미성년자 기도 하고, 가족이나 학교 내에서 그를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환경이 잘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꼭 설명에 덧붙하고 싶다. 열정적 덕후들 중엔 소위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 를 매우 능수능란하게 하며 학업이나 업무등을 유능하게 하는사람도 많다는 얘길 특히 이 책을 읽은분이 3040이상의 기성세대라면 꼭 덧붙이고 싶다.

후하후하. 너무 동족얘기라 완독일기에 감정이 실렸다. 그만큼 내 마음을 엑스레이로 찍어 여기 실었나 싶은 부분이 많은 책이라 좀 아쉬운 부분에 대해 덕지덕지 설명도 하고싶었나 보다.

돌판, 롤판, 연뮤 (연극 뮤지컬 줄임말), 혹은 어떤 분야든. 삶에서 시간, 에너지, 돈을 다해 한 분야 연예인을 맹렬히 아끼고 사랑했던 모두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꼭 북토크가 해보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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