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온 집이였다. 스스로도 아.. 내가 늦잠을 자고 있는거구나. 하면서 막 흐믓해 하고 있을 쯔음.
-그러니까 그만 하시라고요. 쫌!!!!!
엄마의 목소리가 높다. 워낙 두분 사이가 좋은지라 서로 언성 높이시는 일이 거의 없는데 왠일인가 싶어서 잠을 물리치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 한쪽 벽면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넓은 창문 넘어로 아빠는 열심히 땅을 파고 계셨고, 엄마는 창문 안쪽에서 아빠에게 그만하시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중이셨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아빠가 집에서 쉬시는 날은 별로 없다(그래서 쉬시는 날마다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엄마는 아침에 두분이서 손을 잡고 산책이라도 나가실 요량이셨단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빠가 벌써 땅을 파서 무언가를 심고 계셨다고. 그래서 엄마는 그거 하지 말고 산책 나가시자고.. 다시 말하면 엄마랑 놀아달라고 땡깡 부리시고 계셨;;;;;; 엄마의 목소리가 제법 높아진 상태였고 심지어 엄마가 나에게 아빠 좀 보라며. 오랫만에 쉬시면서 엄마 얼굴도 안봐주고 저러고 계신다며. 고자질 까지 하고 계셔서 별 수 없이 아빠께 슬쩍 말을 건냈다.
-아빠. 뭐하시는데.. 급한거 아니면 산책 다녀오셔.
-얼추 다 했어. 이렇게 두면 뿌리 말라.
-뭐 심으시는데?
-꽃나무 몇그루
한 삼십분쯤 지나고 나서야 아빠는 손을 툭툭 털고 집안으로 들어오셨지만 엄마는 이미 삐칠대로 삐친상태.. 꽃나무 심지 말고 엄마랑 산택 좀 다녀오시지.. 라는 내 말에 아빠의 대답은 이랬다.
-엄마도 여잔데.. 여자는 봄 타잖아. 그럴때 옆에서 계속 있어주면 좋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대신 창 밖으로 꽃이라고 보이라고 좀 심었지. 봄을 맴돌면서 봄타지 말고 봄 한가운데 있으라고. 이 넓은 창 밖으로 휑하것들만 보이면 마음이 얼마나 그렇겠냐.
혼자 빈집에 앉아 혹시라도 마음 휑할 엄마를 위해서 아빠는 새벽부터 꽃나무를 심으셨단다. 그런 남자였다. 자신의 여자를 위해 봄을 앞마당으로 옮겨주는.. 아빠는 그런 남자였다. 아.. 진짜. 이남자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멋져진다. 결국 아침식사를 마치시고 두분은 공산성으로 산책을 나가셨다.
이렇게 봄이 옴은 파랑주의보를 받는 일 같습니다. 잔물결이 곧 일겠다. 라고 생명들이 막 세상을 쓰다듬을 것이라는 전보를 전해 받는 일. 푸른 넌출들이 출렁출렁할 것이라는. 나아가서 내가 당신을 등 뒤에서 감싸듯이 작은 둘레가 될 것이라는. 그렇게 쓰다듬겠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봄에는 이렇게 쓰다듬는 것이 열애 입니다. (104p)
서로의 손을 곱다랗게 쓰다듬으며 집을 나서시는 두분은 아직도, 게다가 이 봄에.. 열애 중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