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눈으로 바라봐주면 산문과 결
송하영 지음 / 출판사 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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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곧 인터뷰


세상에 관심이 많아 주저하지 않고 질문 던지기를 좋아한다는 작가 송하영의 첫 산문집이다. “삶이 곧 인터뷰”라는 말을 그저 흘려보내기에는 뭔가가 아쉬움이 든다. 삶은 물음일까, 내 삶이든 다른 사람의 그것이든, 똑같은 삶은 없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런 눈으로 바라봐주면”이라는 시점, 관점, 태도 이 모두 살아있는 것을 바라봐주면, 그렇게 바라보게 된다는 말인듯싶다. 작가는 나를 살게 한 눈도 있고 나를 좌절에 빠뜨린 눈도 있다고, 바로 시선이고, 관점이고, 태도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신뢰하고, 인정해주는 것들이 바라봐주면 과 바라보면 의 합일이고 일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152꼭지, 이를 4부로 나누었는데, 1부 보살피듯 살피기에는 다듬는 말에서 꽃의 효능 10가지까지 사회와 사람, 감정, 동물, 식물들, 2부 반복되는 계절처럼 에서는 제주에서 휴일, 3부 끈끈하고도 끈적한, 4부 진심 어린 진실로 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웃을 일을 만들자


이 제목이 좋다. 이 글은 1부에 실려있다. 사람과의 거리두기, 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지냈다. 돌봄과 멀어졌다. 고립인가, 군중 속에 고독인가, 내 삶의 처지가 그러하더라도 웃음만은 잃지 말자. 웃음은 홀로도 할 수 있으니, 웃으니까 복이 왔다. 북이 굴러들어오며 감사를 데리고 왔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러하다. 닫힌 생활 속에서도 웃음은 들어올 여지는 충분하다. 굳게 닫힌 문 사이로도.


부조리와 끼리끼리 틀 깨기,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끼리끼리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부조리를 당연히 양념, 감칠맛 나는 조미료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것만 집단적이다. 웃을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웃자. 안 웃으면 어쩔 건데, 화를 내면 나만 손해가 아니라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된다. 


소문난 여자


씩씩한, 대담한, 용감한, 대단한, 발칙한, 끔찍한, 호탕한, 괴상한, 무지한, 산만한, 긴장한, 똑똑한, 이상한 이 단어들 뒤에 “여자”가 따라붙는다. 씩씩한 여자, 호탕한 여자, 산만한 여자, 똑똑한 여자, 이상한 여자처럼 말이다. 소문난 이유는 13개 장면에 맞는 페르소나를 썼기에 그런 것인가,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적어도 이렇게 13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도 솔선수범하는 씩씩한 여자로서의 얼굴, 힘과 끈기로 상상되는 어떤 일을 해낸 “대단한 여자”, 아무런 감정 없이 순식간에 처리하는 “용감하면서도 대담하기까지, 거기에 끔찍함을 함께 갖춘 여자”. 이런 장면은 아이에서 연로한 부모, 주변의 도움 없이는 홀로 생활하기 힘든 형제나 이웃을 돌보는 일, 이런 여자도 있다. 물론 남자로, 아이로, 소년으로 바꿔 넣어도 괜찮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아마도 이런 얼굴들이지 않을까, 그래서 소문난 여자일지도,


그런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그런 눈은 뭘까?


선과 악이 희망과 절망이 행복과 불행이 젠더가 돌봄이, 여전히 그런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사회, 모두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연대와 평화, 희망의 사회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어디선가 엇갈려있다. 그런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이란 게 부담스럽게, 내가 할 일은 아닌 듯하다고, 또 그런 눈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각자도생, 내 할 일 하기도 바쁜 세상에 누군가를 바라보며, 또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기도, 모두 착각이다. 인간은 무리 동물이다. 유전자에 그렇게 기억된 건 어쩔 수 없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한 발짝 천천히, 그런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애정, 응원, 사랑, 공감, 평등, 인정, 양보, 배려, 평화의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바라봐준다면. 진심어린 진실로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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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거니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천수를 다한다
와다 히데키 지음, 오시연 옮김 / 지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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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거니까


책 제목이 비장하다. 지은이 와다 히데키는 35년 동안 노인전문병원에서 정신건강을 돌봐왔다. 올해로 64세, 이 책을 쓸 때가 62세, 그는 58세 때 건강진단 결과 암 중에서도 가장 고약하고 예후가 안 좋다는 췌장암 의심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 어차피 죽을 거니까, 암 치료를 한다고 수술받고, 방사능 치료받는다고 체력 떨어지고,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활동도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더라, 후일 췌장암이 아니라고 밝혀졌기에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 “하고 싶은 일하면서 천수를 다한다.”, 죽음을 공포로 여기지 말고, 운명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맘껏 하자는 말이다. 


이 책은 평생 노인 정신건강 진료와 상담 등 돌봄을 해오면서 의사로서 느낀 점과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밀려오는 감정들이 바탕이 돼, 초고령 일본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물론 한국에도 유효하지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겁먹지 말고 당신은 어떻게 살래요라는 물음에 관한 답을 준비해두자고 한다. 사람은 보통 죽음을 받아들일 때, 부인과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미국 정신과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이 단계는 잘 들여다봐야 한다. 


1장에서는 자시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깨달은 것들에서는 의사들은 몸 전체를 보기보다는 장기의 기능을 중심으로 본다. 미국처럼 말이다. 순환기, 간만 좋으면 나머지는 나빠도 괜찮다는 말인가, 언제부터인지 분야, 부문 전문의가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게 됐는지, 토론 주제를 던진다. 2장에서는 최고의 죽음을 향한 첫걸음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사생관)이 있으면 허둥대지 않는다. 오래 살기만 하면 되는 걸까, 삶의 질과 시간 어느 것이 소중하냐는 문제 제기, 그리고 ”존엄사“에 관하여, 3장은 내 삶의 방식을 왜 의사가 정하나, 내가 정해야 한다는 건강 주체론을 편다. 4장에서는 최상의 삶의 방식은 죽는 곳에서 결정된다고, 집에서 죽기보다는 시설을 추천하는 이유, 간병, 돌봄은 간단치 않다. 그리고 마지막 인간은 죽고 나서 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 말처럼, 돈은 남기지 말라, 운전면허 반납하지 말라, 제멋대로인 노인이 건강하게 살더라. 담배 애써 끊을 필요 없다. 괜히 스트레스받으면 몸에 더 안 좋으니, 그리고 내 이상적인 죽음의 방식, 죽음의 장소, 돌봄 받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다. 


죽음이 뭐라고, 어차피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오는 것, 삶의 질을 우선하라


지은이는 최상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마법의 말, 노인들의 의식변화에 맞춤형으로 전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씩씩하게 사시라고, 70대가 늙음과 싸우는 시기였다면, 80대 이후에는 늙음을 받아들이는 시기, 의사의 말보다는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지은이는 의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는 이미 자라보고 놀랐다. 그렇다고 솥뚜껑 보고 놀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이점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진실, 그래서 지금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한다. 제멋대로 사는 지은이, 혈압 170, 혈당 300 수준으로 조절하면서 좋아하는 라면을 즐겨 먹는다. 술도 마시고, 다소 일찍 죽더라도 지금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한 몇 가지


의사가 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제멋대로 살라. 의사의 말은 그저 충고와 주의 정도로 넘기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우선 나에게 집중하라. 이른바 자중자애(自重自愛)의 태도이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자포자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병, 내 약점은 내가 관리하면 돼,

혈압, 혈당이 이 정도 수준이면 합병증에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음식조절하고 부지런히 약 먹고 운동 열심히 하자는 생각에 지은이는 반대한다. 이게 다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그렇게 오래 살고 싶어, 지금 내일의 건강을 걱정하고 살기보다는 지금을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면 되지. 혈당강하제 먹으면 활력이 떨어져, 비실비실 그게 오늘의 삶을 힘들게 하잖아라는 말이다. 당뇨가 있는 사람한테 보통 쥐약이라는 라면, 지은이는 1년에 라면 100그릇을 먹는데 내년까지 살면 200그릇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매우 긍정적인 사고다. 


존엄사 선언서 미리 작성해두기, 

나에게 사망이 임박했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의료 행위를 통한 연명을 원치 않는다. 단,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치료는 희망한다는 내용의 선언서를 미리 만들어두라는 것이다. 한국의 연명치료 거부 사전신청과도 같은 맥락으로 소극적 안락사다. 


이 책은 의료계(한국이건 일본이건, 미국의 영향 탓인지)가 점차, 사람의 몸이란 전체를 보지 않고, 장기 중심으로 진료를 하다 보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실제 사망자의 통계는 예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노인들의 사망은 어떤 상황이든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지만, 코로나로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나를 보면 심각성을 알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놓치고 같다고, 여기에 병원의 과잉치료 역시 문제라고, 내 몸의 소리를 믿어라. 의사들이 말하는 클리셔는 인제 그만, 케케묵은 상투적인 언설보다는, 너 자신을 믿으라는 말, 


이 책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인 돌봄을 하는 가정이나, 연로하신 부모님이 투병 중인 사람들에게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거리와 질문을 던진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는 참으로 마법의 말이다. 죽을 거니까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는 나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죽음과 함께 생활하는 법, 인간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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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심증주의 - 변호사 유머와 함께 보는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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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


한국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칼 대신에 법전을 들고 눈을 뜨고 있다. 디케,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정의 여신은 후대에는 유스티티아로 불린다. 저스티스(정의)는 여기서 유래한다. 여신 디케는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저울, 그리고 안대로 눈을 가린 모습도 있다. 


변호사인 지은이는 이 책 곳곳에 변호사와 관련된 유머를 싣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은 ‘불신과 부러움’, 즉 양가감정이 존재한다. 변호사는 정의의 수호자인가, 정의로운 변호사는 존재하지 않는가?, 여기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가 규명되어야 하는데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 유머 3- 범인은 누구?


정의로운 변호사와 산타클로스, 경찰이 한 방에 있었고, 그 방 탁자 위에는 많은 돈이 놓여있었다. 잠깐 사이에 정전이 일어났다가 불이 켜지자 돈이 사라졌는데 누가 그 돈을 가져갔을까? 정답은 경찰이다. 왜?, 정의로운 변호사와 산타클로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자들이기에(29쪽)


변호사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위험한 외줄 타기) 사람이라고들 한다. 아무튼, 지은이가 변호사이기에 이런 우스갯소리도 해도 탓할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직업에 과한 유머니 뭐 괜찮지 않을까싶다. 


이 책의 핵심은 실제 법원의 판결에 터 잡아, <자유심증주의>가 재판정에서는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있을까 하는 이야기다. 자유심증주의는 민사소송법 202조,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근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 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이 책이 구성은 2부이며, 1부는 9장에 걸쳐 4개의 사례와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2부는 편지, 증거자료 목록을 싣고 있다. 글이 보통 책 편집과는 조금은 형식을 달리하고 있어, 생소하기도 하지만, 지은이의 주장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국가가 재판권을 독점하고, 국민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 공정, 정의, 형평, 논리와 경험의 법칙(경험측)에 터 잡아 사실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공인이다. 법은 판단의 근거이며, 양심은 보편적 양심(사람에게 보통기대하는 수준), 법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이며, 정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다. 정의를 둘러싼 담론은 분배를 둘러싼 네 가지가 쟁점이다. 무엇을 분배할 것인가,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어떤 기준에 따라 분배할 것인가, 누가 분배 기준 요소를 판단할 것인가이다.


진실과 정의, 자유심증주의 


이 책에 실린 사례의 바탕에는 진실과 정의 그리고 자유심증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열쇳말이다. 진실이란 거짓 없는 사실이다.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말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장애가 있다. 그리고 자유심증주의는 구체적인 재판과정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이자 도구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자유심증, 여기서 자유란 법관 맘대로 재단하라는 게 아니라 사회정의와 형평 이념에 근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르라는 규준에 맞춰야 한다(한계 혹은 조건). 현실에서는 “법관의 특권인 것처럼” 마치 법관에게 주어진 재량 혹은 자유처럼 여기고 있다는 증거나 정황이 판결에서 읽히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 왜, 이 책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 H 건설 사례에서 뚜렷이 보인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눈을 가렸을까? 한 손에는 칼, 또 한 손에는 저울을. 그만큼 형평을 블라인드처리 됨으로써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터 잡으라는 기본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자유심증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에 걸맞은(삼권분립의 원칙고수 장치로서)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사건 등 이른바 정치 판사라는 표현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겠냐는 우려감, 불안감 또한 존재한다. 변호사 유머가 이제는 사법부의 유머로 확대, 확장될 수 있다. 아니 확장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정치 판사, 정치검사들 이들은 모두 국민의 편에서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침해된 재산권을 회복시켜주는 든든한 방패이자 심판관이었는데, 이제 그 이미지가 흔들리고, 신뢰하지 않는 경향도 짙어진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의 형사재판은 말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재벌에게는 한 없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 없이 가혹하고 냉정한 법적 판단, 이중 잣대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일반의 법감정이니)라는 비판이든 비난이든 피해갈길이 없을 듯하다. "자유심증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가 하는 전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법률가 혹은 법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수준이기는 하지만, 법과 양심, 정의, 형평, 공정 등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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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두리 2025-07-0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옹두리 입니다.
소중한 리뷰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음 따뜻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도서출판 옹두리 올림-
 
두 배로 씽킹
이예지 지음 / 더로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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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로 씽킹


too better thinking(두베러 씽킹) 이렇게 읽으면 <두 배로 씽킹>이 된다. 지은이가 “생각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목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아~하다.


아들 쌍둥이를 단기 동자승으로 출가시켰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에 또 한 번 빵하고 터졌다. 두 아이의 다름을 왜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 물건은 마음만 먹으면 새것으로 바꿀 수 있지만, 생각이 고루해지고 틀에 박히기 시작하면 바꾸기가 힘들다. 이른바 고정된 관념(고정관념)이다. 자기 생각에 갇힌 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간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건, 몸에 익숙한 옷을 벗어 던지고 익숙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부자유스럽다. 


지은이는 능력과 열의보다 중요한 게 바로 사고방식이다. 비판적인 사람은 비판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은 자유고,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책은 똑똑하게 사고하는 법을 소개한다. 5장으로 구성됐는데 생각하기를 톺아본다. 상·하, 좌·우로 톺아본다. 1장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첫 쪽부터 창의력테스트가 나온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의 차이, 지식의 폭을 넓히는 방법, Why(왜)의 중요성을 다룬다. 2장 거시적으로 생각하기에서는 영감의 공간과 피드백으로 성장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3장에서는 비상식적으로 이른바 역발상이다. 세상은 어떻게 보는가 그 각도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정면으로 보는 게 상식이라면 뒤집어보고, 비틀어보는 게 비상식적인 태도일 듯하다. 4장 구조적으로 5장 긍정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기의 5부문, 영역이라고 해도 괜찮다. 


추석에 고속도로가 꽉 막히는 이유, 인지의 유사성, 비슷한 사고 틀


이른바 인지의 유사성 때문인데, 예를 들면, 올해는 추석 명절이 평일 그리고 주말 사이에 낀 샌드위치다. 연차휴가를 쓰면, 아흐레 정도 푹 쉴 수 있다. 긴 명절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푹 쉬고 새벽녘에 출발하면 고속도로가 붐비지 않을 것이라고, 이게 상식적이라면 상식인데, 모두 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속도로가 막힐 수밖에. 알고 보면 간단한 사고법인데 말이다. 


비상식, 고정관념은 조금만 비틀어보면 전혀 다른 가치의 발견으로 


그러면, 비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인지의 유사성이 있음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수 있다는 점, 즉, 조그만 신경 쓰면…. 세상은 보기 나름이라는 좋은 예로 오늘날 최고의 발명가로 꼽히는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일생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놀이였을 뿐이다.” 역발상이다. 하기야 노동은 가치를 만들어내지만, 그저 생계수단으로서라면 힘들다. 그런데 활동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수입이 생긴다면, 한나 아렌트가 1950년대 중반에 쓴 <인간의 조건>(이진우 역, 한길사, 2019)에서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관점과 행위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역량들이 파괴되지 않는 한 그들은 깔끔하고 예측할 수 있는 모형에 맞지 않는다고 갈파했던 대목과도 통한다. 


일체유심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마틴 셀리그만이 말하는 긍정적 사고는 그가 30년 동안 연구했던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의 사고방식 차이, 후자는 스스로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고, 전자는 그 반대라고, 위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사람과 비판적인 사람의 사고방식과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생각하기”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비판과 비평, 비난을 구분해서 적확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체로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데, 듣는 사람도 대충 구분한다. 이른바 ‘암묵지’ 때문인데, 생각하기는 바로 개념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까, 창의적, 비상식적, 거시적, 구조적, 긍정적, 5개 부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생각법이다. 창의적으로 되려면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즉 비상식적으로, 큰 틀에서 구조적으로 이른바 전략적 사고도 구조적으로 생각하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생각 디자인하기를 권하는 게 이 책이다.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사고의 폭 넓히기, 사고단련법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힌트가 가득 담겨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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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근후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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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지은이 이근후 선생의 이 책<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은 90대의 정신건강과 의사로서 또, 현자로서 삶의 깊이에서 나온 사유와 지혜를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인생은 늘 기대할 게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기대를 저버리는 순간, 인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생물적인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래저래 변명처럼, 사회 경제활동의 장에서 은퇴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나만의 인생을 즐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생활고에 밀려 접어야 할 때도, 건강상의 이유로 포기하기도 한다. 


아마도 사회 경제활동을 할 때 우리는 짓누르는 부담, 의식적, 무의식적이든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아오다 불현듯 삶이 헛된 건 아닌가, 나는 잘살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런데 우리는 닫힌 문만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라는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기 전까지 닫혀버린 삶이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삶이 헛되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제목으로 어찌 우리는 죽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처럼 구는가를 비롯하여 영원한 상실감에 대하여, 죽음 앞에 담담한 사람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면, 왜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을까 등이 실려있다. 2부, 백만 가지 참견 속에서도 끝끝내 ‘나’로 살아가리에서는 부주의한 칭찬과 경솔한 비판으로 비롯하여 당신은 누구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서 사는가라고 묻는다. 나를 평가하는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는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기, 나는 누구이냐는 물음이 필요하다고, 3부 인생이란 길고 긴 터널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담고 있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스스로 나는 누구일까, 내 인정욕구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른바 자기 성찰을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나이를 먹다 보면 나를 소개할 말이 점점 사라져 간다고, 젊은 시절 나에게 뭐 하는 분이냐고 물으면 나는 의사나 교수 아니면 한 집안의 가장이라고 답할 수 있었다. 이제 이름 석 자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에 따라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는 문교부 장관이라는 어느 분교장 선생의 사례를 소개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존재를 증명하면서 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상실감은 이렇게 이상행동으로 나타나기도, 


어찌 우리는 죽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처럼 구는가? 


죽기 살기로 일만 한 사람에게 한 처방, “퇴근은 6시에” 어쩌면 3, 8 법칙이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은 가족과 함께든, 나를 위하든 시간을 쓰라고, 과로사 직전까지 자신을 몰고 갈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아니다. 8시간 이상의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 중독에서 해방될 시간이 없으면 우리 몸은 계속 중독상태가 놓이게 되니, 의식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하라는 말이다. 이 대목에 딱 들어맞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의 말 “야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커다란 행운과 재물이 굴러들어 올 것이라 믿기에 늘 무엇인가를 뒤쫓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단지 피로와 분주한 나날뿐이다.”라는 문구다.


죽음 앞에서 담담한 사람


수양이 깊은 종교인들도 그가 미리 아는 죽음 앞에서는 고통스럽다.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온 것인가, 미련이 남는다.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일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은 어떻게 멋지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성철 스님도 스스로 자신의 죽을 날을 정해서 그렇게 가지 않았는가, 지은이는 죽음 앞에 담담한 사람이란, 자신이 죽었을 때,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열심히 산다면 이 또한 좋은 게 아니겠냐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는 참인생을 살기란 어렵기도 쉽지도 않다는 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답게 살라고, 누구에게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누군가 기대하는 삶에 맞추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내 불행은 남의 탓, 주변의 불행은 내 탓이라는 사람들


내가 불행한 이유가 남의 탓일까, 아니면 내 탓일까, 너와 나, 누구의 탓도 아니다. 열등감에서 나온 표현일 뿐, 내 탓이라는 가톨릭의 참회 방식도 아니고, 동양 사회에서 자식이 잘못해도 내 탓이요. 가족이 사고를 당해도 내 탓이라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환경 탓이고 부모 탓이라니, 아니다. “나”가 주인공임을, 이 대목에서 노자의 “자중자애”란 말을 되새겨보자. 즉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나를 모르고 어찌 주변을 그리고 세상을 우주를 알 수 있겠는가?, 우선 내가 누군인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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