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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독 ㅣ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4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쥐독, 성서의 야곱
인간의 욕망이란, 어떤 명분을 세우든 한 끗발 차이, 이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쥐독>은 독 안에 든 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왜 쥐독인지는 그 의미를 설명하는 11줄이다. 11줄이 450여 쪽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원재료다. 쥐독은 항아리 안에 참기름을 바른 주먹밥을 넣고, 한가운데 열십자로 찢은 얇은 한지로 항아리 입구를 덮어둬. 그러면 고소한 냄새를 맡은 쥐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다 항아리 안으로 떨어진다. 웬 횡재냐 싶어 주먹밥을 먹는다. 또다시 항아리 안에 주먹을 넣어두기를 반복하다 어느 정도 쥐들이 차면 밥을 주지 않는다. 동족을 먹는 현상, 이미 길들어진 쥐를 이제는 풀어놓는다. 그러면 집 안에 있는 쥐를 쥐가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 쥐는 이미 그 맛에 길들어져 있으니까,
서울연대기 2029년 국제 금융 센터지수는 뉴욕에 이어 세계 2위, 33년 서울 인구 3,000만 명, 2040년 코로나 219 대유행으로 세계적인 혼란이 일고, 2045년 세계 3차 대전 발발, 2050년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 붕괴, 2051년 뉴소울시티 공식 출범, 아바리치아 원년 선포.
디스토피아 서울
2051년 전 세계가 초토화되고,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도시 “서울”은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이 시정을 맡게 된다. 이른바 정부요. 왕조다. 이 연합회 의장이 수반인 셈이다. 연호는 의장사의 사명을 따라 ‘아바리치아’, 이렇게 평화롭게 50년이 흘러, 인구 2억의 메가시티가 됐고, 22세기가 시작될 무렵 “죽음은 극복”됐다. 영생의 문이 열렸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의 심화, 삶은 구역제 1, 2, 그리고 쥐독 순으로 이 배경은 OTT <택배기사> 시리즈,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시간을 사야 하는 영화<인 타임>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 SF영화의 시대적 배경 설정과도 흡사하다. 상위 1%만이 누리는 1구역의 삶과 영생불멸의 시혜, 영원히 늙지 않고 젊은 시절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갑각류가 허물을 벗고 성장하듯, 젊음을 위해 카피 보디로 갈아입는 착복식은 과학기술을 뛰어넘어 신성모독 아라비치아 145년의 일(2195년)이다.
주요 등장인물 민준, 2구역에 살면서 아바리치아의 생산직으로 분각(화폐)을 얻기 위해, 최저생계가 아닌 최소한의 생명 유지만을 위해 일해야 한다. 장시간 일하기 위해 값싼 각성제 “카푸치노”를 한 달 분각의 30%를 주고 사야 한다. 마치 피를 팔아 생명을 이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사건의 발단은 1구역 사람들이 먹는 부작용 없는 최고급 각성제 “루왁”의 제조가 생산 일정 때문에 민준이 일하는 공장에 맡겨지는데. 루왁 120알을 들고 튄 민준은 쥐독으로 피신하고,
혁, 연성, 스테파노 등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쥐독세계에도 생존질서는 있는 법, 상위포식자는 폭력조직이다. 루왁을 훔친 사내가 쥐독에 들어왔다, 잡아라, 루왁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평범한 공장노동자 민준은 살아남기 위해 야수처럼 변하고 폭력배들과 싸우는데, 이를 계기로 혁과 연성, 스테파노와 인연을, 민준, 혁, 연성은 ‘삼인회’를 결성
악마를 잡으려다 악마가 된다
본디 쥐독은 서로 빼앗고 뺏는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그들은 2구역 언저리를 맴돌다 밀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모였을 뿐이다. 한때 서울의 강남이라 불렸던 강의 남쪽,
혁명을 꿈꾸는 연맹의 지도자 제이콥, 성서의 야곱이 신과 싸우는 사람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신이 된 전기련을 무너뜨리고 영생불멸, 신을 극복한 집단으로부터 “죽음”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이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의 한 명 박태일, 그는 지식이 있어야만 구조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2구역에서 사는 아케데미아에서 역사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2구역이든 쥐독이든 사람들은 “통 속의 게”들처럼 통속에서 빠져나가려는 게를 허락하지 않고, 통속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그런 존재들이다. 사유와 철학의 기회마저 빼앗긴 사람들은 그저, 생존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는 그런 무리였다. 아니, 그렇게 설계한 전기련의 거대한 장기판의 졸과 장기판 밖으로 밀려난 그런 것이었다.
이 대목은 이문열의 단편소설 <시인과 도둑>과 묘하게 겹친다. 시인이라는 지식인에게서 일자무식인 생계형 도둑들은 삶의 목표라는 것을, 깨우친다. 결국, 행동이 굼뜨게 되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생기게 되는데, 끝내는 시인은 천생 제 목숨보다 귀하게 없다는 것을. 도둑들의 스승에서 이를 배반하고 제 목숨 구하기에…. 세상을 들어 엎어버리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시인은 정작 혁명가였을까?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은 오십보백보, 어떤 명분을 들이대든,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전기련의 프로파간다는 누구에게나 신분 상승, 부와 명예를 얻을 기회, 마치 <택배기사>에서 기사 선발전처럼, 로마의 검투 경기를 여는 것처럼,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기다. 사람들의 시선을 그곳으로 돌리고, 인생 목표로 삼게 하는 치밀한 구도다.
연맹의 태일과 삼인회의 민준이 전기련을 무너뜨리려 하는데.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된 태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전기련과 타협하는 민준, 끝내 그의 양심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 소설은 매우 흥미롭다. 킬링타임용이라면 그 나름의 몰입도가 있지만, 디스토피아 헬조선, 전기련의 의장은 그의 회사의 매출액에 따라 결정된다. 매출이 떨어지면 연호는 다른 회사의 사명으로 바뀌게 되는 규칙, 매출을 올리려면 수요가 필요하고, 수요는 출생률을 높여야 하고, 높이기 위한 각종 프로파간다. 한편으로는 권력 강화와 유지를 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작전, 이이제이(以夷制夷), 전기련의 회원사는 연맹의 적이다. 그것이 악마의 머리든 몸통이든 꼬리든, 힘을 못 쓰게 하면 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의 쟁투,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권력 유지라.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까지, 이 소설은 크게는 디스토피아 한국을, 본질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왜곡돼가는가를. 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