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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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북카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서야 “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참으로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사랑이니, 이별이니 하는 영역의 감정과 담을 쌓고 사는 건지, 한 권의 소설이 뭐라고 금세 내 무미건조한 감정이 가랑비에 젖듯이 젖어 들었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 "입에 담는 순간 그것의 본질은 왜곡되고 재단되고 말거야" 아무래도 이 소설의 감상은 이렇게 밖에 달리 할 표현이 없다. "너와 헤어지지 않는 이별은 없는 걸까?" 여러분이라면 뭐라고 말하시겠는지, 여기서 동작그만형으로 잠시 눈을 감고 옛날로 돌아보자, 풋풋한 가슴설레는 세상이 온통 하얗게, 머리가 핑핑도는 딱 그런 시절의 그런 기분으로... 

이치조 미사키가 왜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지.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이 책으로 알게 됐다는 독자리뷰에 동감한다. 상상의 친구, 세상은 나만이 사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청소년 시기의 풍부한 감정은 학업 중심의 학교와 교실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제대로 숨 쉴 수 없이 짓누르고 강요한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 다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공부하라고 할 때가 좋은 거야, 행복은 성적순이야, 적어도 이 세상은 말이지, 학교는 5%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나머지 95%는 이들을 빛나게 하려는 장식품일 뿐, 인생 또한 그러하지, 영원히 이게 청소년 시절을 둘러싼 방어막이라면, “사랑”이란 어디에 있는 걸까, 위치하는 걸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은….


이 소설은 풋풋한 사랑, 이매지너리 프렌드, 본인에게만 보이는 특수한 ‘상상 속의 친구’를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만이 머릿속에서 거품처럼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은 아이, ‘아리마’, 주인공 히구치에게만 보이는 이매지너리 프렌드일까, 전학생이란다.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아리마는 어떤 비밀을 안고 사는지, 왜 이 학교로 전학 온 것인지, 히구치 옆에 앉게 된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다. 
미나세 린은 히구치 친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나세의 첫사랑인 히구치, 미나세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둘 다 중학생이던 때였지만 히구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미나세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질 못했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실은 그렇게 전해 들은 날 미나세는 좋은 곳으로 갔다. 하지만 히구치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알지도, 어느덧 히구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버린 미나세는 중학생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왜, 나타나는 걸까,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히구치, 아리마, 미나세, 이들을 둘러싼 가족 사연, 히구치에게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그에게만 보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살고 있을까, 왜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소설의 소재, 있을 법한 이야기, 이상하게 기시감이 드는 스토리텔링, 내가 이런 경험을 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감정의 이입으로까지, 나라면. 또다시 책 띠에 실린 독자 리뷰 중 이란 문장에 눈길이 간다.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이 책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라는 글 말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사랑중독의 시대,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시대, 내가 너를 사랑해서라는 말로 간섭하고 억압하고 조정하려 드는 건, 사랑이 아니야, 진정한, 참사람을 모르는 거라는 말의 의미를 안다는 건 아마도 이 소설을 마음으로 읽은 사람이 아닐까, 많은 이가 참사람을 모른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란다고 수없이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역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오늘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순정, 애정 소설이 아니라 참사랑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길라잡이다. 가슴이 저려온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이 소설을 읽으면 제대로 그 의미를 깨우치게 될지도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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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말한다 -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물 이야기
PPI 기술연구소 편저 / 예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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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물을 보는 관점, 물의 미래가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중요하다.  "중, 미 지정학적 전장터가 되기도"

물은 미래의 핵심가치다. 이 책의 편저자 PPI 기술연구소는 주로 PVC배관의 실용기술과 연구 개발을 해온 곳이다. 기후위기는 단순하게 온돈가 높아지는데 그치지 않고 미증유의 집중호우와 가뭄으로 인류의 생존 자원인 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대 국가의 수리권, 곧 치수가 지배자의 권리이자 의무이었듯이, 물은 오랜 역사를 통해 여전히 중요한 자원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는 각국을 관통하는 생명줄 메콩강에서 물을 얻는다. 중국이 상류(란창강)에 11개의 댐을 세워 이들 나라의 수자원 고갈(2010년과 비교 70% 감소)과 가뭄 등을 겪고 있다. 중국은 추가로 댐을 더 건설할 예정이라고. 한 마디로 물의 전쟁이 지금 조용히, 아주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 미는 수자원을 둘러싸고 지정학적 전장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물 분야 연구 및 컨설팅 전문 업체 '아이즈 온 어스'(Eyes on Earth)는 2020.4. 펴낸 보고서에서  가뭄의 원인은 중국의 댐 건설 때문이라고, 이 연구는 유엔의 후원을 받는 '지속가능인프라파트너십'(SIP)와 '메콩강하류지역협력이니셔티브'(LMI) 의뢰로 작성됐다. LMI는 2009년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5개 메콩강 유역 국가들과 공동으로 설립한 기구다. 2020.7. 중국은 정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오히려 상류지역의 가뭄이 하류쪽보다 더 높다고... 


물 이용(기술, 도구 등)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책


이 책은 고대에서 현재까지 인류 역사와 함께했던 ”물의 역사”를 따라가며 국가별로 물 공급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해왔는지, 그리고 배관의 발전과 변천사를 통해 안전한 물 공급을 위한 배관의 중요성을 소개한다. 
구성의 순서는 5장 체계로, 1장에서는 문명의 역사와 함께한 물의 역사를, 2장, 건강한 물을 향한 인류의 활동, 3장 세계 수도관의 변천, 4장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으로써 물, 5장. 세계의 물 관리법과 안전한 물의 조건으로 구성됐다. 아무래도 현대인의 관심사는 4~5장일 듯싶기도 하다. 역사와 법제 그리고 기술변천 등이 한대 어우러져 있기에 보는 이의 취사 선택에 따라 관심 분야를 먼저 읽어도 될 듯하다. 각 장 사이의 관련성은 긴밀하지 않다. 우물과 두레박에서 시작된 먹는 물 공급이 로마의 수도관으로 도시의 물관리,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도시의 물 공급 시스템, 하수도 등 본격적으로 인간의 생활 속에 등장한다. 공동주택 아파트 단지 등에 물을 공급하는 관의 종류와 굵기를 아시는지, 관의 굵기에 따라 수도료가 달라지기도 한다. 수도관의 종류도 여러 가지 그 특성 또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다. 주철관, 석면시멘트관, 강관, 아연도 강관 스테인리스관, PE, PVC관 등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넘쳐나는 정보 또한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얇고 넓은 상식을 위하여.


물을 옮겨주는 상수관, 이른바 수도관 또한 눈에 보이지 않아 접근하기 쉽지 않은데, 현재 한국에는 노후 상수관로가 누적됐고, 이를 관리하는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고, 또, 지방 상수도의 현대화사업 확대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스마트 물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으며, 앨빈 토플러는 20세기가 블랙 골드(석유)였다면 21세기는 ‘블루 골드’(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가 있는데, 극심한 기후변화로 홍수, 가뭄과 물 부족에 대응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성공은 물과 직결돼 있다. 사우디에서는 글로벌 농업기술회사인 네덜란드 원예기업 반 데르 호에벤과 함께 사막 한가운데서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안보를 확보가 중요하지만, 열쇠는 물이다. 


물이 미래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 책은 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지, 이 기술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꽤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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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독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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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쥐독, 성서의 야곱


인간의 욕망이란, 어떤 명분을 세우든 한 끗발 차이, 이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쥐독>은 독 안에 든 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왜 쥐독인지는 그 의미를 설명하는 11줄이다. 11줄이 450여 쪽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원재료다. 쥐독은 항아리 안에 참기름을 바른 주먹밥을 넣고, 한가운데 열십자로 찢은 얇은 한지로 항아리 입구를 덮어둬. 그러면 고소한 냄새를 맡은 쥐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다 항아리 안으로 떨어진다. 웬 횡재냐 싶어 주먹밥을 먹는다. 또다시 항아리 안에 주먹을 넣어두기를 반복하다 어느 정도 쥐들이 차면 밥을 주지 않는다. 동족을 먹는 현상, 이미 길들어진 쥐를 이제는 풀어놓는다. 그러면 집 안에 있는 쥐를 쥐가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 쥐는 이미 그 맛에 길들어져 있으니까, 


서울연대기 2029년 국제 금융 센터지수는 뉴욕에 이어 세계 2위, 33년 서울 인구 3,000만 명, 2040년 코로나 219 대유행으로 세계적인 혼란이 일고, 2045년 세계 3차 대전 발발, 2050년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 붕괴, 2051년 뉴소울시티 공식 출범, 아바리치아 원년 선포. 


디스토피아 서울


2051년 전 세계가 초토화되고,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도시 “서울”은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이 시정을 맡게 된다. 이른바 정부요. 왕조다. 이 연합회 의장이 수반인 셈이다. 연호는 의장사의 사명을 따라 ‘아바리치아’, 이렇게 평화롭게 50년이 흘러, 인구 2억의 메가시티가 됐고, 22세기가 시작될 무렵 “죽음은 극복”됐다. 영생의 문이 열렸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의 심화, 삶은 구역제 1, 2, 그리고 쥐독 순으로 이 배경은 OTT <택배기사> 시리즈,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시간을 사야 하는 영화<인 타임>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 SF영화의 시대적 배경 설정과도 흡사하다. 상위 1%만이 누리는 1구역의 삶과 영생불멸의 시혜, 영원히 늙지 않고 젊은 시절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갑각류가 허물을 벗고 성장하듯, 젊음을 위해 카피 보디로 갈아입는 착복식은 과학기술을 뛰어넘어 신성모독 아라비치아 145년의 일(2195년)이다. 


주요 등장인물 민준, 2구역에 살면서 아바리치아의 생산직으로 분각(화폐)을 얻기 위해, 최저생계가 아닌 최소한의 생명 유지만을 위해 일해야 한다. 장시간 일하기 위해 값싼 각성제 “카푸치노”를 한 달 분각의 30%를 주고 사야 한다. 마치 피를 팔아 생명을 이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사건의 발단은 1구역 사람들이 먹는 부작용 없는 최고급 각성제 “루왁”의 제조가 생산 일정 때문에 민준이 일하는 공장에 맡겨지는데. 루왁 120알을 들고 튄 민준은 쥐독으로 피신하고, 


혁, 연성, 스테파노 등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쥐독세계에도 생존질서는 있는 법, 상위포식자는 폭력조직이다. 루왁을 훔친 사내가 쥐독에 들어왔다, 잡아라, 루왁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평범한 공장노동자 민준은 살아남기 위해 야수처럼 변하고 폭력배들과 싸우는데, 이를 계기로 혁과 연성, 스테파노와 인연을, 민준, 혁, 연성은 ‘삼인회’를 결성


악마를 잡으려다 악마가 된다


본디 쥐독은 서로 빼앗고 뺏는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그들은 2구역 언저리를 맴돌다 밀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모였을 뿐이다. 한때 서울의 강남이라 불렸던 강의 남쪽, 


혁명을 꿈꾸는 연맹의 지도자 제이콥, 성서의 야곱이 신과 싸우는 사람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신이 된 전기련을 무너뜨리고 영생불멸, 신을 극복한 집단으로부터 “죽음”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이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의 한 명 박태일, 그는 지식이 있어야만 구조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2구역에서 사는 아케데미아에서 역사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2구역이든 쥐독이든 사람들은 “통 속의 게”들처럼 통속에서 빠져나가려는 게를 허락하지 않고, 통속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그런 존재들이다. 사유와 철학의 기회마저 빼앗긴 사람들은 그저, 생존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는 그런 무리였다. 아니, 그렇게 설계한 전기련의 거대한 장기판의 졸과 장기판 밖으로 밀려난 그런 것이었다. 
이 대목은 이문열의 단편소설 <시인과 도둑>과 묘하게 겹친다. 시인이라는 지식인에게서 일자무식인 생계형 도둑들은 삶의 목표라는 것을, 깨우친다. 결국, 행동이 굼뜨게 되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생기게 되는데, 끝내는 시인은 천생 제 목숨보다 귀하게 없다는 것을. 도둑들의 스승에서 이를 배반하고 제 목숨 구하기에…. 세상을 들어 엎어버리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시인은 정작 혁명가였을까?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은 오십보백보, 어떤 명분을 들이대든,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전기련의 프로파간다는 누구에게나 신분 상승, 부와 명예를 얻을 기회, 마치 <택배기사>에서 기사 선발전처럼, 로마의 검투 경기를 여는 것처럼,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기다. 사람들의 시선을 그곳으로 돌리고, 인생 목표로 삼게 하는 치밀한 구도다. 
연맹의 태일과 삼인회의 민준이 전기련을 무너뜨리려 하는데.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된 태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전기련과 타협하는 민준, 끝내 그의 양심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 소설은 매우 흥미롭다. 킬링타임용이라면 그 나름의 몰입도가 있지만, 디스토피아 헬조선, 전기련의 의장은 그의 회사의 매출액에 따라 결정된다. 매출이 떨어지면 연호는 다른 회사의 사명으로 바뀌게 되는 규칙, 매출을 올리려면 수요가 필요하고, 수요는 출생률을 높여야 하고, 높이기 위한 각종 프로파간다. 한편으로는 권력 강화와 유지를 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작전, 이이제이(以夷制夷), 전기련의 회원사는 연맹의 적이다. 그것이 악마의 머리든 몸통이든 꼬리든, 힘을 못 쓰게 하면 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의 쟁투,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권력 유지라.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까지, 이 소설은 크게는 디스토피아 한국을, 본질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왜곡돼가는가를. 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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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 배신 -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백신의 추악한 민낯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지음, 홍지수 옮김 / Mid(엠아이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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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공중보건보다 제약사의 이익이 우선하는 이들을 고발하다

67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 지은이는 케네디가(家)의 일원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동생이자 당대 내각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F.케네디의 아들로 변호사이자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로버트 F.케네디 주니어다. 이번 대선에 후보로 출마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물러나기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환경주의자인 지은이가 트럼프 정부에 들어간다. 이는 별론으로 하고 이 책은 미국 자본가들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이익을 취하는 시스템을 고발한다. 


현대 의학 연구의 일차적 목표는 국민 건강증진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이 책은 지은이가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19 대유행 때, 이상주의적 생각을 지닌 미국 국민은 자유, 보건, 민주주의, 시민권, 공공정책의 수호자라고 믿고 의지했던 대중매체(언론), 정부와 보건당국, 소셜미디어의 유명인사들은 일치단결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팬데믹 공포를 조장하면서 전체주의의 대중 선전 선동, 검열, 과학 조작, 토론, 억압 받는 자들을 향한 중상 비방, 시위 금지 등을,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세계 감염 예고>(다섯수레, 2024)에서 미 연방정부, 자치주가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보고 대응했는지, 결코 이들이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1918년 5천만 명이 죽은 스페인독감은 일부 조류의 체내 바이러스가 변이되면서 퍼진 것이었다. 2005년에도 계절성 독감이 비슷한 변이 양상을, 코로나 19는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우한에서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생겨나는 패턴이 있고 그에 따라 생겨난 것이다. 막을 수 있는 재난을 예방하지 못했다, G7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해도 18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정치인과 의료계의 기득권 세력은 기업과 결탁하여 백신의 생산과 보급 속도에만 관심을 보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아무도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공중보건의 채리티 딘과 70년대 말 질병통제예방센터장을 지녔던 빌 포지 등의 증언을 통해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질병을 통제하고 예방하는 게 아니라 정치의 입맛을 맞추는 양념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왜 “백신”에 목을 매는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수없이 등장한다. 


이 책은 미국 정부의 코로나 19대응 책임자 앤서니 파우치(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NIAID)가 어떤 방식으로 미국 국민과 미국의 가치를 배반하는 폭력을 자행했는지를, 이미 1980년을 기점으로 친기업적인 기관으로 탈바꿈한 보건 관련 기관들과 제약사의 움직임 등을 12장에 걸쳐 적고 있다. 특히 3장 제약업계 수익 창출의 기본 틀이 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팬데믹, 4장 팬데믹의 기본 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아지도타이미딘, 6장. HIV에 이설(異說), 즉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이단자로 몰아 처형, 7장. 지킬 파우치 박사와 하이드, 아동을 대상으로 한 NIAID의 불법 실험, 11장 가짜 팬데믹 부추기 등 <백신의 배신>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다.


지킬 파우치 박사와 하이드 “아동실험”


NIAID(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제약사 동업자들은 실험 대상으로 아동들을 제공한 대가로 인카네이션 아동센터에 금전적 보상을 한다. 기자 리엄 셰프는 파우치 등이 어떤 짓을 했는지를 고발했다. 아이들에게 투여한 약은 독성이 강하다. 유전자 돌연변이, 장기부전, 척수 괴사, 기형, 뇌 손상, 치명적인 피부질환을 일으킨다고, 약을 거부하는 아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하여 강제투여 했다. 이 대목만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파우치의 만행을 조사하고 아동 상대의 잔인한 실험을 못 하게 하려던 연구대상 보호연맹(의료산업 감시기구)회장 베라 샤라브는 파우치의 강제아동수용소 인카네이션 아동센터에서 적어도 80명의 아이가 죽었고, NIAID와 그 동업자들이 아이들의 시신을 집단으로 매장했다고 전했다. 영국의 BBC가 2004년에 방영한 다큐멘터리<기니피그 아이들>는 파우치의 과학프로젝트의 잔인함과 야만성을 피해자인 아이들의 관점에서 기록했다. 수익성 높은 AIDS 신약 개발 과정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쳤다. 


“생물안보”의 시대, 군-산-의료 복합체의 탄생


놀랍게도 이 책의 한 부분이지만, 이런 셀 수 없는 사례들이 관련 증언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미국의 세계 각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민주주의 수호와 자유 진영을 위한 게 아니라 군산복합체 산업을, 미국의 경제를 위해서, 미국의 자본가를 위해서 정치와 행정이 결탁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제약사를 중심으로 한 의료산업과의 커넥션 또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탁은 각자 분야에서 제각각 이루진 게 아니라 1990년 초반 소련 붕괴 이후 군산복합체와 의료산업의 연대가 2001년 등장한 탄저균의 공포(조작됐지는 여부와는 별개로 이를 계기로)“생물안보”가 군-산-의료 복합체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군-산-의료 복합체는 이미 잠재적 팬데믹이나 테러리즘을 지렛대 삼아 재정적 지원을 얻어낼 전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으로 세계 민주주의 본보기가 되는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안보 국가로 바꾸는 수단으로 “생물안보”를 개념화하고 있었다.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선제공격을 가한 미국의 얼굴, 한 손에는 평화를 다른 손에는 칼을, 결국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한 미국” “강한 미국”은 이렇게 추악한 커넥션을 강화해줄 뿐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세계 감염 예고에서 용기 있는 착한 미국 시민들이 공중보건이든 백신이든 우선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라는 외침이 어떻게 뭉개졌는지, 팬데믹을 예견한 목소리는 왜 묵살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답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책 “백신의 배신”이다.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믿었던 백신의 추악한 민낯, 백신에 목을 메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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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
이석현 지음 / icox(아이콕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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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

AI, 결국에는 인간이 써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 책을 쓴 이석현의 AI와 함께하는 생활할 수밖에 없는 시대라면 AI를 피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품어서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사고다. 그런데 여기서 AI는 어떤 수준의 것을 말하는지, 인간 사고처럼 사고하는 수준은 AI가 아니다. AGI 즉, 인공일반지능이다. 생성형이든 뭐든 인간의 적절한 관여 없이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 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사람들은 챗GPT가 등장하자 열광한다. 알파고가 바둑두기를 스스로 했을까, 알고리즘에 따라, 그러다 보니 AI의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웹 GPT는,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AI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5장으로 나누어, AI 활용법을 보여준다. 아마도 주된 독자인 50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나이의 제한은 없지만, 기계적인 사용보다는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며 지은이가 생각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1장에서는 ‘정체성을 찾으라’, 개발자가 정체성을 갖고 AI 대화한다면 격이 달라짐을, AI는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게 도와준다는 발상의 전환이 보인다. 2장에서는 ‘AI와 함께 독서의 세계로’, 이른바 AI와의 협업이다. 정보수집과 분석의 역량은 인간의 그것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우리에게 가져다준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3장~5장은 AI 활용법으로 표현의 기술을 익히고, 글쓰기를 함께 배우는 것이다. 개인 교사가 있다면 아마도 AI일 것이다. 마지막 5장은 AI와 함께 인생 후반전을 설계하라고. 이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다. 

AI, 빅테크는 인간의 손에 의해, 인간이 판단에 따라 

AI, 빅테크 속에서 재발견한 저널리즘의 본질을 찾는다는 이성규의 책(날리지, 2024) 는, AI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지적했다. 모두 다 동전의 앞면만 보고 있을 때, 뒤에 비친 그림자, 어둠을 본 것이다. 웹 GPT는 가짜뉴스를 생산한다. 챗GPT의 역기능, 거울 속의 쌍둥이처럼 거울 효과다. 저널리즘의 어떤 과정을 통해서 뉴스를 만들어내고 시청자와 구독자에게 전달되는가, 이 과정에서 묻혀있던 기술들이 생명을 찾았다고나 할까, 마치 터미네이터 시즌 5처럼, AGI는 기계와 인간이 서로 융합도 가능한 그런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허위정보 조작, 가짜뉴스의 생성원리, 댓글 조작 등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조지오웰의 소설<1984>, 빅 브러더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듣고 있다는 말이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듯이 말이다. 아무튼, 지은이는 “인간이 AI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물음의 의도는 AI가 생성형이든 뭐든 인간과 공동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AI를 단순히 직업상실의 원인이라며 적대시하거나 AI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단순한 기능적 서비스로 취급한다면 오히려 인간답게 생각하는 능력을 AI에게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의식 없이 AI를 이용하는 기계적인 존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는 꽤 의미 있는 지적이다. 인간의 직업이 AI에게 대체 되는 이유는 이러한 기계적 사용에 있다. 마치 우마차 시대에 등장했던 포드자동차처럼 말이다.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르기에 배척하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는 수동적, 방어적 수준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위축을, 영화 터미네이터의 배경 또한 바로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싶다. AI를 잘 이용하면 인간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AI 시대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가치를 상기하게 한다. 인간이 AI를 뛰어넘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AI는 인간이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확장을 위한 도우미이자 상호 학습을 통해, 인간의 지적 능력의 향상과 창의적인 작업할 수 있도록, 어떻게 보면 노동에서 해방되며, 자신만의 활동을 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글쓰기의 영역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날 듯싶다. 


이 책의 핵심은 AI를 인문학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딥테크로 현실 가능해진 빅데이터, AI, 사회 각 분야에서 일자리를 대체하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종내에는 사회의 통합과 연대마저 끊어져 버리는 초개인화를 가속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까지, AI라는 기술을 우리 활동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거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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