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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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내전,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을 연구하는 지은이 바버라 F.월터가 “내전”, “전쟁”은 정치적 성향이 아닌 인종, 종족주의가 밑바탕을 이루고 그 상태는 발발(勃發) 전야라고 보고 있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은 마치 주전자 속 물이 끓어 올라 기체로 바뀌기 직전의 내는 소리나 요란한 움직임은 “파벌화”와 “극단주의”다. 이는 단지 우려에서 나오는 주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 분석과 연구결과로 입증됐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교과서 수준의 설명과 정반대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그 징후는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이든 부분적 민주주의이든 독재체제이든 공통으로 나타나는 <아노크라시(anocracy)> 현상은 완전 독재(autocracy)와 민주주의(democracy) 경계 상태를 의미하는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노크라시는 한 나라를 내전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라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책 구성은 8꼭지다. 1장은 아노크라시의 위협은 모습을 그려보고, 2장 파벌이 어떻게 생겨나고 고조되는지를, 3장에서는 기득권이 없어지는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는가, 지위 상실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 4장에서는 희망이 사라질 때, 5장 촉매, 6장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 7장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 8장에서는 어떻게 내전을 예방할 것인가라는 내용을 담았다. 


아노크라시, 정치 불안정 연구단의 정치체 점수 ?10에서 +10까지


정치 불안정의 변수는 사회, 경제, 정치 분야의 38개 변수, 빈곤, 종족 다양성, 인구 규모, 불평등, 부패 등인데, 가장 좋은 불안정 예측 지표는 소득 불평등이나 빈곤이 아니라 정치체의 점수였다. 오늘날 미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아노크라시의 문턱에 선 파벌화된 나라로 빠른 속도로 공공연한 반란 단계로 접근 중이다. 아노크라시는 ?5에서 +5사이에 상태다. 


특히, 2020년 미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트럼프지지자였는지, 아니면 소셜미디어 음험한 선동에 사로잡힌 시민들이었는지, 전통적인 공화당원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치적 스펙트럼 자체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백인의 땅이며 지금 백인의 권리가 소수 민족에게 빼앗기고 있다. 이렇게 무장해제를 당하면 결국 우리는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개소리를 담은 MAGA(위대한 미국만들기)내전 상태다. 


2021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했다. 무늬만 민주주의이지 내용은 전통적으로 인식했던 전체주의와 독재체제가 새롭게 포장하여 국민의 눈을 가리고 거짓말을 하면서 독재의 고속도로를 뚫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용화시키는 것이다. 안전장치에는 대통령에 대한 제압과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을 귀찮은 장애물로 여기는 것이다. 헝가리의 오르반,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러시아의 푸틴, 브라질 보우소나루 등이 독재자 지망생들이다. 


내전의 메커니즘


일종이 ‘각본’에 따라 일어나는 갈등이라면 내전 예방 또한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전이 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기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보면, 보스니아나 우크라이나,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특히 영국의 북아일랜드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의 차별과 아랍의 봄을 계기로 중동국가에서 보이는 현상은 독재에서 급격한 민주주의로 옮아가는 프로그램은 내전 발발환경을 무르익게 했다. 상당 기간 억압된 다양한 불만은 종교 파벌화로 집약되어 폭발했다. 인도의 무디 역시 힌두주의를 주장하면서 무슬림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미얀마의 민주주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찌는 로힝야족의 말살을 눈감았다. 이제는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의 정신과 문화를 지배하는 종교나 인종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생각이 깊다는 독일 국민이 왜 히틀러의 나치 선동에 넘어가 그를 열렬히 환영한 걸까,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말처럼 거짓말도 백 번을 하면 진짜처럼 믿는다는 것처럼. 그때는 오프라인의 선전선동이었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다. 


내전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트위터(X)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인종과 종족주의 부추기는 정치, 유럽의 스웨덴민주당 같은 나치당이라 인식됐던 이 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3당, 2당으로까지 부상했으니, 프랑스 또한 그러하다. 인터넷이 정치판을 복마전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파벌화”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민족, 보호, 타자, 분노, 공포 등을 이용한 국내 불평세력의 열등감을 건드린다. “우파 포퓰리즘이 항상 더 매력적”이라는 무기로, 한편 미국 CIA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 등에 관련된 정보(기밀 해제된 2012년 보고서)에서 자생적 극단주의의 진화를 엿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반란은 생활주기를 거치면서 비슷한 발전 단계를 통과한다는 보편성이다. 반란 전 단계에서는 한 집단이 공통의 불만을 확인하고 흥미를 끄는 서사(지지자 규합과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나 신화)를 중심으로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1990년까지는 내전 연구에 참고할만한 데이터가 드물었고, 19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내전에 관한 연구서 또한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 나라와 시간을 가로질러 되풀이되는 공통된 요소들이 없었다. 최근 노르웨이 웁살라 대학에 있는 내전 관련 데이터 수집처는 오슬로 평화연구소, 스웨덴 연구협회, 국제 개발협력청, 스웨덴 은행 300주년 재단 등이 재정을 보태주고 있다. 


미국의 의사당습격사건과 세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양상, 이를 부추기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극우들의 활동이 놀랄 만큼 한국의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 정치체 점수로 보자면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궁금하다. 이 책에 실린 동유럽에서 서유럽을 거쳐 대서양 건너 미국까지,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한국에 이르기까지, 참고할만한 책으로는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자블랫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 2024)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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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는 기술 - 영혼의 고귀함,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경이로움에 관한 고찰
롭 리멘 지음, 김현지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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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인간이 되기란 진정 어려운 것인가?

 

네덜란드 공공지식인이자 작가인 롭 리멘이 쓴 <인간이 되는 기술>은 영혼의 고귀함,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경이로움에 관한 고찰이란 부제가 붙었다. 동, 서양으로 구분할 필요도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유학이 세상이 질서이던 시절, 사람을 구분할 때,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으로 구분한다. 이 책의 영혼의 고귀함과 진정한 인간이란 “된 사람”을 일컬음이라 여겨진다. 

 

인간이 되는 기술은 학문이 아니며, 인간이 되는 것은 기술이다. 올바른 삶의 방식과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아젠다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독배 사건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죽음에 대한 태도는 한참 후에 이해되기도 했다는데, “정신의 고귀함”이 인간이 되는 기술이었음을. 다윗왕은 2,000여 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도 한다. “우리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겠지,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 신속히 가니 우리는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라고,

 

이 책은 블레즈 파스칼이 <팡세>에서 한 경고에 대한 답이다. 파스칼은 “인간이라는 자신으로 돌아가, 모든 존재와 비교했을 때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중략) 우주라는 작은 방에 갇혀 지구와 세계,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매겨보자. 무한함 속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관한 네 가지 고찰(첫 번째 고찰, 전쟁에서 배우는 삶-니체의 편지, 두 번째 고찰, 어리석음과 거짓에 대하여, 세 번째 고찰, 용기와 연민에 대하여, 네 번째 고찰, 불안과 몽상)을 담았다. “올바른 삶”과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를 찾는 단서들이다. 

 

이 책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빅토르 가르시아 살라스가 철학과 학생들과 지은이가 쓴 책<영혼의 고결함> 읽기에서 나온 학생들의 질문을 전하고 그에 관한 작가의 답신이란 형태로 쓰였다. 

 

세계는 여전히 인권의 존재,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위협받고 있다

 

지은이는 인간이 되는 기술을 위협하는 현대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한다. 모든 것을 돈과 숫자, 계산으로 바꾸는 삶의 경제화(금융자본주의, 물신숭배, 성과주의 성장주의의 모든 것들), 옳고 그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도덕적 상대주의, 그들만이 절대 진리를 독점한다는 자본주의, 즐거움과 덧없는 것을 최고로 평가하는 질 낮은 키치(kitsch)문화, 인간 존재와 기계와 시스템에 종속되는 기술화, 정신적 덩굴 식물처럼 모든 객관적인 진리를 억누르는 비합리주의의 만연, 이 모두는 인간이 되는 기술을 위협한다. 

 

이 책에 실린 네 가지 고찰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고대 철학자의 인간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좋은 사회는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로 각자의 표현으로 제기한다.

 

막스베버의 ”소명으로서의 학문“에 담긴 경고 속에서

 

1971년 11월 뮌헨에서 열린 강연에서 학문은 무한한 전문화로 세분될 것이다. 합리화의 결과로 학문은 모든 사실을 규정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 사실의 가치는 결코 규정할 수 없는 지성화, 따라서 학문은 언제나 본질적인 명확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베버는 ‘합리화’와 ‘지성화’를 통해 가장 심오하고 숭고한 가치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신비적인 삶의 초자연적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실존적 선택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훨씬 낫다고 봤다. 

 

수많은 저작의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이 되는 기술“에 관한 언설을 담은 이 책은 교양서를 넘어,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서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인가를 음미해볼 수 있는 계기를, 동기를 유발하는 책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갈라진 생각들, 그 바탕에 자리한 이데올로기,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면 적이다. 시대의 똘레랑스, 당신 생각은 그런가요라는. 존중의 태도가 사라진 지금의 대한민국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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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안 가르쳐주는 업무 센스 - 전체 프로세스를 꿰뚫는 87가지 일의 기술
이동조 지음 / 경이로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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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의 일머리란? 

 

이 책 <회사에서는 안 가르쳐주는 업무 센스>는 실무현장 지침서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법에서 1장짜리 보고서 만드는 법, 팀 리더의 의중까지 파악하여 프로젝트 관련 사전(시장, 과거 유사 프로젝트 등에 관한 정보취합 등) 조사를 한다면, 어떨까, 이런 걸 “일머리”라고 하지 않을까, 늘 염두에 두지만 일에 매몰되다 보면 마치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상하좌우와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늪에 빠질 때가 있다. 

 

지은이 이동조는 프로젝트 기획을 수행하기도 하고, 기획 자문, 기술평가위원 등으로 현장에서 터득한 자신의 경험을 매뉴얼화(지은이의 “통합 업무 스킬 교육 매뉴얼”)하여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지침을 이 책에 담았다. 구성은 일의 성공을 전제로 구조화된 5가지 영역을 각 장에 실었다. 

 

1장에서는 위기와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일 통찰과 혁신 사고 영역’을 다루는데,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일을 장악하는 법 등 20가지의 기술을 설명한다. 

 

2장은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방법을 담은 ‘업무역량 향상 영역’이다. 프로젝트 기획안 작성법에서 일할 때 실수를 줄이는 법과 전문가 찾기가 중요한 이유까지 19가지의 기술을, 3장에서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소통이란 어떤 것인가를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다. 핵심은 의사결정자의 심리 파악, 효과적인 회의 준비, 말하는 법, 신뢰감을 주는 언어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것까지 16개의 기술을, 여기서는 작은 차이가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을 설명한다. 

 

4장 조직문화 이해 영역은 이른바 건강, 행복한 조직 만들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주제인데, 싫은 선배와 일 잘하는 법, 직원 사이의 선을 넘지 않는 방법 등, 자칫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비롯하여 성평등, 성인지, 차별적 용어(성희롱, 여성비하 표현 등 주의하기 등과도 관련된 부분이다. 선배가 후배를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고 정중하게 알려주었는데, 이런 행위의 의도가 후배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한다면,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선을 넘지 않는 태도, 이른바 평등 대우와 상대에 관한 존중이다. 퇴근 후까지 이어지는 미묘한 활동들, 후배, 선배 모두 경계해야 할 내용으로 17가지 스킬을, 

 

그리고 마지막 5장은 자기 창조 기술이다. 집단 혹은 조직안에서 구성원들과 소통, 호흡도 중요하지만, 자기 계발, 즉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 조직과 개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미래를 바꾸는 마인드 셋을 비롯하여 유리멘탈 극복에서 마인드 컨트롤까지 15가지 스킬이 실려있다.

 

읽기 전에 생각해보기, 내 경우와는 다르잖아는 없다 

 

신입부터 경력까지 기본적으로 숙지해두고 체화해야 할 것들 이른바 전체 프로세스를 꿰뚫는 87가지 일의 기술이다. 이 책을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지금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을 목차에서 찾아서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하여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제 것이 되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업무매뉴얼(지침서)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하다. 내용을 외울 필요도 없다. 키워드(주제)항목을 살펴보고, 연계되는 부분을 찾아서 읽어내면 하나의 문제라도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은 자신이 처한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만 알면 헤쳐나가는 데 유용한 팁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현상 파악을 하는 데 우선 일독을 하고 나서 자신의 환경과 현장을 이미지화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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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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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선 “뱃님 오시는 날”


이 소설의 작가 요시무라 아키라는 1927년생이다. 1973년에 낸 소설<관동대지진>에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6천 명이 일본 자경단에 학살당한 사건을 다뤘다. 철저한 취재와 고증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 기록문학이란 영역을 새롭게 각인, 기쿠치간상을 받았다. 이 소설 <파선>은 1982년에 발표했다. 


암초 더미가 많은 외진 갯가 척박한 마을, 이곳에는 17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촌장과 부촌장, 바람만 피할 수 있는 거칠고 험한 집에서, 이들은 늘 보릿고개다, 바다에 나가 잡아 온 생선을 말려 대처에 내다 팔고 식량으로 바꿔온다. 이마저 없으면 초근목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아비나 딸이 고용 하인으로 큰 포구로 팔려 간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남자아이는 10살이 되면 한 몫으로 쳐주고, 여성은 15살이 되면 결혼할 수 있는 나이지만, 17가구 중 누군가는 고용살이하러 마을을 떠난다. 딸들은 대처에서 몇 년을 살고 오면 결혼적령기를 지나 홀아비 등과 혼인을 하고 살기도 한다. 주요 등장인물 이사고, 그의 아버지도 가족들 생계를 위해 3년의 고용살이를 떠났다. 시기에 따라 찾아오는 고기떼, 문어, 오징어, 정어리, 꽁치 떼가, 이들에게 암초투성이 외진 갯가는 신산한 삶의 터전이다. 이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뱃님”이다. 


이곳 해안가에서 깊은 산을 이틀 정도 넘어야 번화가에 닿는다. 그곳 역시 포구다. 일본의 자연환경은 화산의 영향으로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우리의 산천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전국 통일과 함께 다이묘들의 영지는 높은 산과 골이 자연스러운 경계가 돼, 백성들은 그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지 못했다. 군사력이자 경제력이었으니.


뱃님은 하늘이 준 혜택이기도 하지만, 욕망이 빚어낸 참극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에도 바쿠후(幕府) 시절일 터이고, 번(藩)에서 번으로 혹은 바쿠후로 가는 조운선(쌀 운반선)이나 번 소유 선박, 상인들의 선박이 풍랑을 만나 좌초, 난파, 파선, 피난 등의 이유로 암초투성이인 외진 해안가에 도달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베풀어준, 부처님의 보살핌이었다. 뱃님은 그들에게 점지된 것이다. 마을에서 죽은 이가 오랫동안 헤매다가 마을 사람 누군가의 배를 빌어 세상에 나오듯, 이들에게 뱃님 또한 그렇게 반가운 존재다. 아니 생명줄이다. 한 해에 한 두 차례 혹은 수년에 한 차례, 이렇게 갯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뱃님,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뱃님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풍랑이 이는 겨울, 갯가에서 장작불 아궁이를 만들고 거기서 소금을 굽는다. 거친 바다 풍랑을 피해오는 배가 이 불빛을 찾아오다 암초에 걸리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눈은 덫을 쳐놓고 기다리는 동물의 매서운 눈빛처럼 바뀐다. 배가 걸려들면, 번의 배 즉 관공선이 아니라면 배 안의 있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이것이 뱃님의 운명이다. 아무런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되기에 그렇게 비밀을 유지해야만 이들이 사니까,


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방식은 철저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뱃님이 온 흔적도 지워야 한다. 어쩌다 찾아오는 뱃님, 멋지고 고급스러운 그릇, 나무, 쌀, 기름, 초, 소금 등 생필품을 얻는다. 그리고 흔적을 없애야 한다. 마치 흔적도 없이 배가 사라진 듯. 번의 배는 손대지 않는다. 잘못 손댔다가 꼬리라도 밟히면 마을 전체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기에.


이런 삶 속에서 이사쿠는 10살이 되고 이제 한몫하는 축에 든다. 이들에게 죽음은 탄생의 기원이다. 이 마을에서 죽은 영혼은 멀리 되돌아서 다시 이 마을의 누군가의 뱃속에 잉태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객사하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도. 부부 사이의 성행위도 죽은 이를 불러들이는 예식이라고, 


인간의 욕심은 재앙을 부른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


어느 날 뱃님이 오셨다. 이 배 안에 탄 사람은 모두 죽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다. 붉은 옷은 고급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붉은 옷을 챙겼다. 뱃님이 이들에게 안긴 것은 식량이 아닌 천연두였다. 


소설은 인간의 숙명, 제약된 자연환경 속에서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뱃님을 오라고 기원하며 밥상을 차서 날리고 이 밥상에 올랐던 것들이, 멀리 날아갈수록 뱃님오시기 기원이 잘 듣는다고, 이들의 삶은 누군가의 불행이 그들에게는 횡재가 된다. 


일본의 오래된 이야기, 마을 전설에는 이런 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생존의 본능”이 공동체에서 어떻게 집단의식이 되는지, 도덕도 윤리도 이들에게는 사치다. 측은지심을 베푸는 순간 그들은 오랫동안 굶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이들의 장례 의식도 마찬가지다. 가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불경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멀리 돌아서 마을의 누군가의 뱃속에 잉태되기를, 이렇게 해서 마을 공동체는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되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 마을에 찾아온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탄 뱃님은 천연두를 가져왔다. 하늘의 벌인지, 촌장과 이사쿠의 어머니 등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 죽어야 한다. 그리고 며칠 후 멀리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아버지, 고용 하인 생활을 마치고 귀향한 것이다. 이사쿠는 바다를 향해 배를 저어나간다. 


꽤 흥미로운 주제의 소설이다. 고려장이란 풍습이 고려 시대에 나왔다는 황당한 말, 나이 든 부모를 산에 버렸다는 이야기는 오래전 일본의 풍습이었다. 먹을거리가 다 떨어지고 나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기에 입을 하나 더는 것이 나머지 가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이었기에 여기서 도덕, 윤리는 사치였고 이를 따질 겨를이 없다. 이 역시 삶의 모습이다. 이런 죄책감을 없애는 게 “윤회”다. 이 마을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나 다시 마을 사람이 된다는 믿음은 이들이 뱃님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받았던 죄책감과 불안을 벗어나는 그 무엇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뱃님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뱃님을 유인하는지도 모른다. 한비자의 "재앙은 복에 기대어 있고, 복에는 재앙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을 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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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
김영수 엮음 / 창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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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비자>가 어려운 이유,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은이 김영수는 사마천과 <사기>의 연구자다. 지난 30년 가까이 150여 번의 중국방문, 이른바 역사현장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톺아보면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찾아다니는 발로 뛰는 실천가이기도 하다. 마치 미제사건을 추적하면서 사소한 증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형사처럼, 한편 다양한 각도와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현대 사회의 이슈와 접맥한 저서들도 왕성하게 펴내고 있다. 


그의 이번 책은 한비자(韓非子)를 향한 오해와 이해를 함께 들여다본다. 우리가 입에 자주 올리는 사자성어 중 “좋은 약은 입에 쓰다”(양약고구)처럼 <한비자>에서 발원된 것이 적지 않다. 이 책 <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는 진계천의 10권 55편을 저본으로 삼아 리더십이란 개념으로 포착한 것이다. 한비자에 관한 평가는 상반됐다. 호불호가 정확히 갈린다. 최고가 되려는 이는 한비자를 읽어야 한다. 제왕학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천하제일금서라는 평가도 있다. 이는 마치 서양세계의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반에 살다간 불운한 사상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두고, 금서라고 규정한 로마교황, 이 두 사람은 리더십에 관해서 말하지만 다소 결은 다르다. 하지만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논리 주장은 약소국의 처지에서 나온 것이기에 맥이 통하는 부분도 있다. 이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지은이는 비교의 핵심인 “사상”이란 면에서는 마키아벨리는 한비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평했다.


중국 사상사의 “뜨거운 감자” <한비자>


이 책은 중국 사상사의 뜨거운 감자, 진시황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한비자, 그만큼 그의 사고는 위험했다. 내 편이면 다행이지만 적으로 돌아선다면 살려둬서는 절대 안 될 그런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한비자 연구자 중국의 이종오는 중국 정치가와 지도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비자>의 사상, 특히 통치술에서 일정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공산당체제의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시진핑 주석 그의 황제를 꿈꾸고 있다. 그의 이런 사고 배경에는 한비자의 리더십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이니, <한비자>는 기원전에서 현재까지 2천 년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마키아벨리도 마찬가지이지만. 과연 여기에는 오해가 없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내용은 3부 구성이고, 1부는 한비자와 <한비자> 실제 한비자가 한 말과 후일 제자들이 지은 글들이 한데 묶여 <한비자>라는 서책이,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내용의 책인가,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등을 한비자에 관한 소개다. 2부는 <한비자> 가볍게 읽기는 20대목을 골라 그 의미를 짚어본다. 3부는 <한비자> 무겁게 읽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가면 읽어볼 대목 등이다. 아무래도 인간이란 불완전체 관한 이해, 인간관계 또한 스승 순자처럼 성악설을 고수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삼국지의 제갈량의 “읍참마속” 고사처럼 법가사상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한비자. 법은 늘 엄중한 게 아니라 적용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태도가 중요하다. 눈에는 눈과 입과 귀가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법처럼, 


<한비자>의 핵심 법(法), 술(術), 세(勢)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한비자>를 가볍게 읽든 무겁게 읽든 놓쳐서는 안 될 기준이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 술, 세의 통합이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통치술에 관한 전문서이고 통치는 권력자와 그에 기생하는 신하의 관계 설정이 핵심이니, 이를 유념하면서 세 범주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법은 통치의 기본도구다. 술은 법을 시행하는 방법이다. 법조문을 있는 그대로 적용해서는 신하와 백성을 따르게 할 수 없다. 원칙의 본질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만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제갈량의 “읍참마속”은 어떻게 평가해야 한단 말인가?, 제갈량이 평소 아끼던 마속이 군령을 어기고 싸움에서 패하자 그의 목을 벴다. 이로써 제갈량이 얻는 것은 추상같은 명령의 권위와 힘인가, 아니면 병사들 사이에 퍼지는 공포일까, 답은 쉽지 않다. 아마도 <한비자>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이중성,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가능한데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 술(術)은 늘 흔들리기에 재정의가 필요하다. 긴장감을 놓치는 순간, 술은 말 그대로 기술에 그친다. 기술 풀이라는 말이고 정치학적으로는 정치 공학이라 할 수 있다. 순간순간 무원칙하게 적용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법보다도 어려운 게 술이지 않을까 싶다. 


세는 권세(權勢)다. 즉, 권력자의 세력, “힘(power)”이다. 인사권 없는 통치는 무기력하다. 개인으로 보자면 자신이 정한 원칙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돈, 명예, 자리, 성취 등과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 지은이가 이해하는 권위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그는 마음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권위까지 있으면 금상첨화(45쪽)라고, 하지만 권위(authority)는 정당성을 얻은 권력이기에 존경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한비자는 세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결국 법과 술이 능하더라도 힘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이른바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비자가 법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든가, 술이 핵심이라고 본다든가 하는 따위는 모두 한비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이를 뒤집어보면 그만큼 한비자는 까다로운 책이란 뜻이기도 하다. 


리더의 수준은 누구와 함께하느냐로 결정된다


<주도(主道)> 편에 이르는 데로 ‘군주의 길’ 즉 ‘리더의 길’이다. 총명한 리더는 눈과 귀를 항상 열어두고 인재들의 재능과 제안을 살핀다. 그런 다음 일과 상황에 맞추어 인재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와 권한을 준다. 한의 개조가 된 유방과 항우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유방의 삼불여(三不如)의 리더십으로 세 사람만도 못하다. 소하, 장량, 한신을 이름이다. 총명하지 않고도 총명한 자의 스승이 되고, 지혜가 없더라도 지혜로운 자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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