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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선 “뱃님 오시는 날”
이 소설의 작가 요시무라 아키라는 1927년생이다. 1973년에 낸 소설<관동대지진>에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6천 명이 일본 자경단에 학살당한 사건을 다뤘다. 철저한 취재와 고증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 기록문학이란 영역을 새롭게 각인, 기쿠치간상을 받았다. 이 소설 <파선>은 1982년에 발표했다.
암초 더미가 많은 외진 갯가 척박한 마을, 이곳에는 17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촌장과 부촌장, 바람만 피할 수 있는 거칠고 험한 집에서, 이들은 늘 보릿고개다, 바다에 나가 잡아 온 생선을 말려 대처에 내다 팔고 식량으로 바꿔온다. 이마저 없으면 초근목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아비나 딸이 고용 하인으로 큰 포구로 팔려 간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남자아이는 10살이 되면 한 몫으로 쳐주고, 여성은 15살이 되면 결혼할 수 있는 나이지만, 17가구 중 누군가는 고용살이하러 마을을 떠난다. 딸들은 대처에서 몇 년을 살고 오면 결혼적령기를 지나 홀아비 등과 혼인을 하고 살기도 한다. 주요 등장인물 이사고, 그의 아버지도 가족들 생계를 위해 3년의 고용살이를 떠났다. 시기에 따라 찾아오는 고기떼, 문어, 오징어, 정어리, 꽁치 떼가, 이들에게 암초투성이 외진 갯가는 신산한 삶의 터전이다. 이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뱃님”이다.
이곳 해안가에서 깊은 산을 이틀 정도 넘어야 번화가에 닿는다. 그곳 역시 포구다. 일본의 자연환경은 화산의 영향으로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우리의 산천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전국 통일과 함께 다이묘들의 영지는 높은 산과 골이 자연스러운 경계가 돼, 백성들은 그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지 못했다. 군사력이자 경제력이었으니.
뱃님은 하늘이 준 혜택이기도 하지만, 욕망이 빚어낸 참극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에도 바쿠후(幕府) 시절일 터이고, 번(藩)에서 번으로 혹은 바쿠후로 가는 조운선(쌀 운반선)이나 번 소유 선박, 상인들의 선박이 풍랑을 만나 좌초, 난파, 파선, 피난 등의 이유로 암초투성이인 외진 해안가에 도달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베풀어준, 부처님의 보살핌이었다. 뱃님은 그들에게 점지된 것이다. 마을에서 죽은 이가 오랫동안 헤매다가 마을 사람 누군가의 배를 빌어 세상에 나오듯, 이들에게 뱃님 또한 그렇게 반가운 존재다. 아니 생명줄이다. 한 해에 한 두 차례 혹은 수년에 한 차례, 이렇게 갯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뱃님,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뱃님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풍랑이 이는 겨울, 갯가에서 장작불 아궁이를 만들고 거기서 소금을 굽는다. 거친 바다 풍랑을 피해오는 배가 이 불빛을 찾아오다 암초에 걸리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눈은 덫을 쳐놓고 기다리는 동물의 매서운 눈빛처럼 바뀐다. 배가 걸려들면, 번의 배 즉 관공선이 아니라면 배 안의 있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이것이 뱃님의 운명이다. 아무런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되기에 그렇게 비밀을 유지해야만 이들이 사니까,
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방식은 철저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뱃님이 온 흔적도 지워야 한다. 어쩌다 찾아오는 뱃님, 멋지고 고급스러운 그릇, 나무, 쌀, 기름, 초, 소금 등 생필품을 얻는다. 그리고 흔적을 없애야 한다. 마치 흔적도 없이 배가 사라진 듯. 번의 배는 손대지 않는다. 잘못 손댔다가 꼬리라도 밟히면 마을 전체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기에.
이런 삶 속에서 이사쿠는 10살이 되고 이제 한몫하는 축에 든다. 이들에게 죽음은 탄생의 기원이다. 이 마을에서 죽은 영혼은 멀리 되돌아서 다시 이 마을의 누군가의 뱃속에 잉태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객사하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도. 부부 사이의 성행위도 죽은 이를 불러들이는 예식이라고,
인간의 욕심은 재앙을 부른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
어느 날 뱃님이 오셨다. 이 배 안에 탄 사람은 모두 죽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다. 붉은 옷은 고급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붉은 옷을 챙겼다. 뱃님이 이들에게 안긴 것은 식량이 아닌 천연두였다.
소설은 인간의 숙명, 제약된 자연환경 속에서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뱃님을 오라고 기원하며 밥상을 차서 날리고 이 밥상에 올랐던 것들이, 멀리 날아갈수록 뱃님오시기 기원이 잘 듣는다고, 이들의 삶은 누군가의 불행이 그들에게는 횡재가 된다.
일본의 오래된 이야기, 마을 전설에는 이런 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생존의 본능”이 공동체에서 어떻게 집단의식이 되는지, 도덕도 윤리도 이들에게는 사치다. 측은지심을 베푸는 순간 그들은 오랫동안 굶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이들의 장례 의식도 마찬가지다. 가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불경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멀리 돌아서 마을의 누군가의 뱃속에 잉태되기를, 이렇게 해서 마을 공동체는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되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 마을에 찾아온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탄 뱃님은 천연두를 가져왔다. 하늘의 벌인지, 촌장과 이사쿠의 어머니 등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 죽어야 한다. 그리고 며칠 후 멀리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아버지, 고용 하인 생활을 마치고 귀향한 것이다. 이사쿠는 바다를 향해 배를 저어나간다.
꽤 흥미로운 주제의 소설이다. 고려장이란 풍습이 고려 시대에 나왔다는 황당한 말, 나이 든 부모를 산에 버렸다는 이야기는 오래전 일본의 풍습이었다. 먹을거리가 다 떨어지고 나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기에 입을 하나 더는 것이 나머지 가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이었기에 여기서 도덕, 윤리는 사치였고 이를 따질 겨를이 없다. 이 역시 삶의 모습이다. 이런 죄책감을 없애는 게 “윤회”다. 이 마을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나 다시 마을 사람이 된다는 믿음은 이들이 뱃님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받았던 죄책감과 불안을 벗어나는 그 무엇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뱃님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뱃님을 유인하는지도 모른다. 한비자의 "재앙은 복에 기대어 있고, 복에는 재앙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을 새겨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