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
김영수 엮음 / 창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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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비자>가 어려운 이유,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은이 김영수는 사마천과 <사기>의 연구자다. 지난 30년 가까이 150여 번의 중국방문, 이른바 역사현장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톺아보면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찾아다니는 발로 뛰는 실천가이기도 하다. 마치 미제사건을 추적하면서 사소한 증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형사처럼, 한편 다양한 각도와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현대 사회의 이슈와 접맥한 저서들도 왕성하게 펴내고 있다. 


그의 이번 책은 한비자(韓非子)를 향한 오해와 이해를 함께 들여다본다. 우리가 입에 자주 올리는 사자성어 중 “좋은 약은 입에 쓰다”(양약고구)처럼 <한비자>에서 발원된 것이 적지 않다. 이 책 <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는 진계천의 10권 55편을 저본으로 삼아 리더십이란 개념으로 포착한 것이다. 한비자에 관한 평가는 상반됐다. 호불호가 정확히 갈린다. 최고가 되려는 이는 한비자를 읽어야 한다. 제왕학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천하제일금서라는 평가도 있다. 이는 마치 서양세계의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반에 살다간 불운한 사상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두고, 금서라고 규정한 로마교황, 이 두 사람은 리더십에 관해서 말하지만 다소 결은 다르다. 하지만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논리 주장은 약소국의 처지에서 나온 것이기에 맥이 통하는 부분도 있다. 이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지은이는 비교의 핵심인 “사상”이란 면에서는 마키아벨리는 한비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평했다.


중국 사상사의 “뜨거운 감자” <한비자>


이 책은 중국 사상사의 뜨거운 감자, 진시황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한비자, 그만큼 그의 사고는 위험했다. 내 편이면 다행이지만 적으로 돌아선다면 살려둬서는 절대 안 될 그런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한비자 연구자 중국의 이종오는 중국 정치가와 지도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비자>의 사상, 특히 통치술에서 일정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공산당체제의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시진핑 주석 그의 황제를 꿈꾸고 있다. 그의 이런 사고 배경에는 한비자의 리더십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이니, <한비자>는 기원전에서 현재까지 2천 년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마키아벨리도 마찬가지이지만. 과연 여기에는 오해가 없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내용은 3부 구성이고, 1부는 한비자와 <한비자> 실제 한비자가 한 말과 후일 제자들이 지은 글들이 한데 묶여 <한비자>라는 서책이,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내용의 책인가,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등을 한비자에 관한 소개다. 2부는 <한비자> 가볍게 읽기는 20대목을 골라 그 의미를 짚어본다. 3부는 <한비자> 무겁게 읽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가면 읽어볼 대목 등이다. 아무래도 인간이란 불완전체 관한 이해, 인간관계 또한 스승 순자처럼 성악설을 고수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삼국지의 제갈량의 “읍참마속” 고사처럼 법가사상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한비자. 법은 늘 엄중한 게 아니라 적용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태도가 중요하다. 눈에는 눈과 입과 귀가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법처럼, 


<한비자>의 핵심 법(法), 술(術), 세(勢)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한비자>를 가볍게 읽든 무겁게 읽든 놓쳐서는 안 될 기준이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 술, 세의 통합이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통치술에 관한 전문서이고 통치는 권력자와 그에 기생하는 신하의 관계 설정이 핵심이니, 이를 유념하면서 세 범주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법은 통치의 기본도구다. 술은 법을 시행하는 방법이다. 법조문을 있는 그대로 적용해서는 신하와 백성을 따르게 할 수 없다. 원칙의 본질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만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제갈량의 “읍참마속”은 어떻게 평가해야 한단 말인가?, 제갈량이 평소 아끼던 마속이 군령을 어기고 싸움에서 패하자 그의 목을 벴다. 이로써 제갈량이 얻는 것은 추상같은 명령의 권위와 힘인가, 아니면 병사들 사이에 퍼지는 공포일까, 답은 쉽지 않다. 아마도 <한비자>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이중성,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가능한데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 술(術)은 늘 흔들리기에 재정의가 필요하다. 긴장감을 놓치는 순간, 술은 말 그대로 기술에 그친다. 기술 풀이라는 말이고 정치학적으로는 정치 공학이라 할 수 있다. 순간순간 무원칙하게 적용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법보다도 어려운 게 술이지 않을까 싶다. 


세는 권세(權勢)다. 즉, 권력자의 세력, “힘(power)”이다. 인사권 없는 통치는 무기력하다. 개인으로 보자면 자신이 정한 원칙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돈, 명예, 자리, 성취 등과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 지은이가 이해하는 권위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그는 마음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권위까지 있으면 금상첨화(45쪽)라고, 하지만 권위(authority)는 정당성을 얻은 권력이기에 존경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한비자는 세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결국 법과 술이 능하더라도 힘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이른바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비자가 법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든가, 술이 핵심이라고 본다든가 하는 따위는 모두 한비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이를 뒤집어보면 그만큼 한비자는 까다로운 책이란 뜻이기도 하다. 


리더의 수준은 누구와 함께하느냐로 결정된다


<주도(主道)> 편에 이르는 데로 ‘군주의 길’ 즉 ‘리더의 길’이다. 총명한 리더는 눈과 귀를 항상 열어두고 인재들의 재능과 제안을 살핀다. 그런 다음 일과 상황에 맞추어 인재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와 권한을 준다. 한의 개조가 된 유방과 항우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유방의 삼불여(三不如)의 리더십으로 세 사람만도 못하다. 소하, 장량, 한신을 이름이다. 총명하지 않고도 총명한 자의 스승이 되고, 지혜가 없더라도 지혜로운 자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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