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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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는 제목 글 외에 ‘목격자는 없었다.’ ‘고마워, 할머니’ ‘언니처럼’ ‘그림 속의 남자’ 이렇게 5편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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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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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는 제목 글 외에 ‘목격자는 없었다.’ ‘고마워, 할머니’ ‘언니처럼’ ‘그림 속의 남자’ 이렇게 5편이 실려있다. 용서는 바리지 않습니다와 목격자는 없었다 2편의 느낌을 적는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18년 전, 외할머니는 시아버지인 주인공 류이치의 증조할아버지를 식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재판에서 담담하고도 당당하게 할머니 자신이 시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어차피 폐암으로 몇 개월도 살지 못할 늙은이를 왜 죽여, 시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해방해달라고 부탁한 청부살인이 아닐까, 그러나 할머니는 류이치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성룡의 취권을 흉내를 내다가 TV를 부숴버린 뒤, 새로 TV를 사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미 이 때 폐암을 앓고 있었다. 죽어서도 외지인으로 시아버지를 죽였기에 본가(히사미) 가족묘에는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아니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죽어서라도 해방을 맞이하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할머니는 교도소 안에서 죽고, 유골은 가족묘를 모시던 사당에 묻히지마자, 마을 사람들에 의해 파헤쳐졌다. 17년이 지나서 류이치는 연인 미즈에와 할머니를 절에 모시려고 유골함을 가지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했다.

 

미즈에는 류이치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데 류이치는 망설인다. 살인자의 손자라서, 증조할아버지는 치매다. 이전에 논에 물을 대는 수리관리감독일을 했는데, 간혹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논에 물을 대서, 큰일 내기도 했다. 치매의 시아버지를 관리 못한 책임을 물어 할머니를 무라하치부(집단 따돌림)했다. 살인이 일어난 날도 증조할아버지는 수문을 열어 마을대표의 집안의 논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때마침 다른 마을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할머니는 그 집안 사람이 화를 내며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시아버지를 칼로 찔러죽인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제정신이 상태에서 그 집안 논으로 물을 흘려 보냈던 것이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질기고 질긴 연을 끊는 선언이다. 내 손으로 시아버지를 죽였으니, 살인죄로 처벌해달라고, 죽어서도 그 집안 묘로 들어가기 싫다고, 영원히 해방되고 싶다고..., 용서하지 마세요. 나는 죽어서까지도 히사미 집안에 얽히는 건 싫습니다. 아니,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고, 마을사람들은 할머니를 집단으로 따돌림을 했다.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협박이다. 철저하게 그림자 취급을 한다. 마을 공동쓰레기 집하장에 쓰레기를 내놓아도 할머니네 쓰레기는 수거해가지 않는다. 마을 안 가게에서는 물건도 팔지 않는다. 철저하게 따돌림을 하는 곳, 음습한 집단적 괴롭힘 속에 할머니방식대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누구라도 죽여야만 했다.

 

미즈에는 아주 간단하게 할머니의 살인죄 고백을 해석해 낸다. 다른 곳에 뿌려주자고, 편한 곳에 훨훨날아갈 수 있도록...

 

 

<목격자는 없었다>

 

주인공 가쓰라기 슈야, 샐러리맨이다. 영업실적 때문에 자그마한 실수를 한다. 탁자 1개 주문을 11개로 잘못 발주한 것이다. 이게 들통나면 회사 안에서 받을 눈총과 질책이 싫어 혼자 해결하기로 한다. 1개를 주문한 곳에 가져다 주고 10개를 집에다 가져놓는다. 공장에 가서 11개를 받아 주문한 곳에 1개를 내려주고 움직이려는 순간,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려오던 흰색 승용차가 미니 밴을 들이 받았고 미니 밴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서둘러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가, 탁자13개를 내려놓고 집에서 쉬는 데, 이날 사이와이정 맨션에 불이 나서 사상자 발생, 누군가 맨션에서 가쓰라기 슈야를 봤다고 경찰에 신고, 미니 밴 운전자의 부인은 슈야를 찾아와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해달라고 하고, 경찰은 맨션의 화재는 방화였는데, 그것에 있지 않았음을 증명할 알리바이가 있냐고 묻는데...

 

슈야는 탁자 주문일처리를 잘못해서 수습하느라고 직접 배달에 나섰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알리바이도, 교통사고 목격자로서 증언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될 터이지만, 과연 누가 나를 맨션에서 봤다고 신고했을까?, 이로 인해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일까? “당신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증언하는군요”라는 미니밴 운전자 아내의 말이 뇌리를 맴돈다.

 

미니 밴 운전자 스미다 요헤이는 누구지, 아내가 슈야에게 말하는 남편의 징크스,

 

집을 나설 때는 왼발부터 내디딘다. 같이 있는 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손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다. 전철의 홀수 칸에는 타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를 보면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나와야 한다. 전부 남편이 충실하게 지켰던 징크스예요. 그 중에 빨간 불일 때는 멈춰야 한다는 징크스도 있어요. 남편에게 빨간 불일 때 멈추는 건 단순한 교통법규가 아니라 절대 어길 수 없는 징크스였다고요라는 말은 남긴 그의 아내가 슈야를 목격했다고 허위 신고를 한 걸까?

이 소설 속 슈아, 대체로 시류에 영합하려한다. 작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재정적 손해도 감수할 정도다. 그에게 교통사고의 진실 따위는 안중에 없다. 내 안위와 관련된 일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외통수에 걸린 듯하다. 남편의 징크스를 믿는 아내의 교통사고 진실발견의 노력앞에...슈야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까, 어차피 그는 시류와 영합하는 게 더 편하니까. 정의와는 전혀 관계 없이...

 

 

 

 

두 편의 소설을 주는 느낌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원문 용서받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일본 공동체 사회, 물론 우리도 과거에는 마을공동체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탈을 내면 조리돌림, 멍석말이, 덕석말이라는 동네법이 존재했다. 공동체 질서가 훼손되면 규율이 깨지고, 무질서해지면, 마을 대표나 권세가들이 불안해진다. 아울러, 너와 나(일본 밖=소토, 안=우치) 문화, 결혼해서 호적에 오르더라도 여성들은 외부인이다. 부부별성제를 쓴 우리 사회는 성으로 구분한다. 여성을 존중한다는 그런 의미를 보이지 않는듯하다.

마을의 문제아(무라하치부), 우리는 팔푼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배제는 그림자 취급을 한다. 죽거나 재난 상황에서만 그림자를 인정한다. 이 판을 벗어나기 위한 할머니의 몸부림

<목격자는 없습니다> 누구도 목격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 내가 피곤해질 수 있기에 얽히려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한 방의 날림? 이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미스터리라는 표현보다는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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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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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젠가

 

젠가게임과도 같은 우리 사회, 소외, 배제된 계층, 계층통로 사다리마저 치워져 버린, 한 번 놓치면 다시 탈 기회가 없는 열차처럼 아슬아슬한 경계의 삶들,

 

이 소설은 탈산업화, 서비스 경제 사회에서 기간제 교사, 방과 후 교사, 취업준비생, 프리랜서, 플랫폼, 배달노동자들 이른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과연 그들은 어떤 미래비전과 희망으로 자신 “삶”의 주체로 떨쳐 일어설 것인가? 작가의 시선은 그것을 구현해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려 한다.

 

88만 원 세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어렵게 취업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코로나 19 재난 상황 속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이들, 이제 취업의 혹한기 속을 뚫고 나아가려는 취업준비생, 이들은 이 사회의 공정룰을 따질 만한 위치도 처지도 아닌 상황에 매몰된 이들이다. 청년 일자리 정책 속에는 청년들이 없듯이, 공정한 룰 논쟁에도 주인공인 청년들은 없다. 파편화되고, 분산된 삶이 있을 뿐.

 

이 소설집은 네 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우선 <시체놀이> 이력서만 수백 장을 쓰고 수십 곳의 면접을 봐도, 면접관의 “경험있어요” 라는 질문에 신입이 어디서 경력을 쌓는가 말인가, 취업 시장에 뛰어든 지 삼 년째, 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 젠가가 마음속에 가득 찼고 금방이라도 내 존재 자체가 와장창 부서질 것만 같았다(16쪽).

 

한때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으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했던 그 허망한 꿈, 어려운 시골 살림으로 학비를 대주던 부모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발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독서실, 유통기한의 직전의 도시락을 먹으며, 살아온 날들, 이제 탈출구가 요원해 보인다. TV 방송국이나 영화의 시체 역할 아르바이트가 최저시급보다는 낫다. 직업으로서 시체놀이, 한때 시대를 주름잡던 대배우도 지금은 시체 대역이란다. 그 많던 돈을 다 날리고 후배들 눈치나 보며, 시체놀이를 한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한 줌으로 재로 돌아갔지만, 시체놀이의 징크스라 회자하던 불행, 내가 아니면 주변의 불행, 편의점에서 일할 때, 먹이를 챙겨주었던 길냥이, 이제 편의점에 나가지 않으니, 누가 밥을 챙겨줄까 싶어 한 번 보러 나간다. 참지 캔을 하나 안겨주고, 그렇게 헤어졌다. 시체놀이를 하고 온 날, 길냥이는 차에 치어 죽었다. 한재덕도 죽었고,

 

오늘의 시체놀이를 끝으로 한재덕 몫까지 살아 보기로 다짐한다. 편안한 시체가 된 몸이 퍽 안락하다. 죽은 듯 자고 일어나 나는 시체가 아닌 내상을 그려보리라. 쓰다 만 자기소개서의 커서가 붉은 눈으로 깜박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절절한 소설이다. 생생하게 취준생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어디로 향해야 하나, 방황과 고통, 시체놀이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내가 하고픈 일을 찾아서 힘들지만, 또 한 걸음 내디딘다.

 

<유리젠가>, 주인공 소영. 7년간의 연애, 서른여섯 결혼하고 싶다.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늘 떨어대는 수다들…. 남들은 의사와 결혼했네, 잘 나가는 직장인과 결혼했네…. 친구들 모임 중 나 혼자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연애를 끝내자 남자친구와 결별을 선언하고, SNS 속으로 뛰어든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사랑을 나누게 된 홍콩에서 일하는 회계사, 데이비드 김. 그의 감미로운 속삭임에 서른여섯의 외로운 여성은 그렇게 위태롭게 유리젠가를 쌓아간다, 이 늦은 나이에도 사랑을 찾아오나 싶어,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또 전화를, 화상통화를 하려고 회사의 회식 자리도 빠진 채….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데이비드 김으로부터 연락, 돈을 빌려달란다.

 

이 천만 원…. 홍콩에서 일이 마무리되면 귀국해서 결혼하잖다. 그로부터 이니셜까지 새겨진 짝통명품가방을 받는다. 이천만 원은 데이비드 김의 통장으로 송금되고, 집에 찾아온 언니와의 대화, TV 뉴스에 나오는 SNS 사랑 사기 소식(로맨스스캠), 나는 그 가운데 있고 그 피해자이다.

 

무너진 유리젠가, 사람들과의 관계

 

미래를 꿈꾸며 쌓아 올린 유리 젠가엔 이미 균열이 갔던 것일지 모른다. 위태로운 젠가의 끝에 서서 난 비틀거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김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나는 도대체 뭘 바라고 있었던 거지? 라는 물음은 많은 걸 떠오르게 한다. 결혼하기 힘든 시대, 미혼 비혼을 떠나, 이 소설은 미래비전이 보이지 않는 연인들,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믿음, 외로움, 고독한 군중,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같은 곳에서 일하고 부대끼고 살지만, 군중은 홀로된 외로움을….

작가는 유리 젠가에서 여성성을 성적 측면으로 접근하지 않고, 거리의 단절, 관계의 문제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달팽이 키우기>, 주인공 자애와 그의 남편, 둘은 캠퍼스커플이다. 자애는 국문과를 나왔지만, 방과 후 교사로 일한단 자애와 여행사에 근무하다 코로나 재난으로 직장을 잃고 무거운 분위가 떠도는 작은 원룸에서 지내는 이들, 도시의 집이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남편은 나름대로 일을 찾아해보려 노력하지만, 따뜻한 사무실에서 여행플래너 일을 하던 그가 추운 현장에서의 일에 적응을 못 하고, 배달일도 제대로 해내질 못한다. 자애는 방과 후 교사의 재계약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교사 일을 하기 전에 몸담았던 잡지사나 신문사에 연락을 해봐도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뿐이다. "~사"자가 붙은 직업이 아닌 바에야 경제적 상황에 휘둘리기 영향을 더 받는다.

 

이 글의 매개인 달팽이와 만남, 새로운 희망의 씨앗 달팽이를 데려온다.

 

어느 날 엄마의 김장 일 도우러 시골집에 내려갔다, 배춧속 작은 달팽이를 발견하고, 우유병 속에 넣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달팽이 키우기가 시작된다. 야생달팽이 알콩이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먹이를 주면서, 알콩이가 외로워할 것 같아서 양식 애완용 달팽이 달콩이를 데려와 함께 살도록 해주지만…. 결국 달콩이는 죽는다. 야생달팽이 알콩이는 세찬 비와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배추 안에서 살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때의 치열한 경험과 노력으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 수 있었던 걸 거야(140쪽).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나 사실, 너와 함께 달팽이를 키우며 깨달은 게 많아.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지 어느 누가 알았겠어.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로 잘 잔이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수입이 없어져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고, 평소 하지도 않았던 일을 도전하는 게…. 나 역시 내 일상이 이렇게 조각나고 처참히 망가질 줄 생각도 못 했거든…. 너한테 미안해서…. 너랑 마주치는 게 불편하고….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매일 자책했어. 그런데 네가 데려온 달팽이를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 느리더라도 꾸준히 제 할 일을 해내며 점점 커가는 알콩이를 보며 희망이 생겼어, 알콩이는 거친 환경을 겪고 극복해왔기에 분명 잘 자랄 수 있었던 거야.

 

우리 상황도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잘 극복해 살아갈 수 있을 그것이라고 믿는다. 조급함이나 불안감은 잠시 내려두고, 우리 천천히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자.

 

<발효의 시간>, 묵묵히 정성스레 만들어온 일상,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처질 거라고 분명 그렇다. 청주에서 이제 3대째로 이어지는 직지글빵, 2대째인 아버지는 가업을 이으려는 아들에게 대학가라고 한다. 이 빵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빵 만들기를 하려는 아들의 고집이 바보스럽기만 하다. 직지 정신도 현실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직지글빵, 유튜브 정성스럼을 알리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아들은 유튜브를 통해 직지글빵이 얼마나 정성스레 빵 만들기를 해온 지를 알리면 빵 판매 실적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결국 널리 알려졌고, 주문이 밀려온다.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남이 알고, 우리 빵을 맛보는 손님들이 분명 느끼게 될 거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직지 글빵 속에 들어가는 저당분 팥앙금이나 유기농 호두, 직접 키운 블루베리는 모두 먹는 이들의 건강을 생각한 재료잖니. 이 비용이 아까워 다른 재료로 바꾼다면 결국 소탐대실의 결과에 직면하게 될 거다. 철아. 이것 하나만 약속해주겠니? 우리 빵이 아무리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좋은 평가를 받고, 돈을 많이 벌어도 초심을 잊지 않겠다고 말이야. 귀찮고 번잡한 과정일지라도 빵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 꼭 필요한 일이란다. 직지를 찾는 일처럼 말이야 그는 아버지의 진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169쪽).

 

아무리 새로운 시대가 올 지언정 반드시 거쳐야 할 것들이 있다. 발효의 시간이 그것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라도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아들세대다. 딱 부러진 자신의 삶의 태도와 방향이 없이 헤매는 힘들어 하는 청년들, 이들에게 자신만의 가치와 하고싶은 것들에 대한 도전을 가져보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이수현의 네 편의 소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갈등과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동안 갈등 요소였던 계급 간의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은 또 다른 방향으로 증폭되어 인류 공동체의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 생명이 위협받을 때 그 어떤 문화, 사상도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는 걸 코로나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고 전기철은 이 소설 평론에서 말한다(174쪽).

 

정의는 함께 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 모색을 바깥에서가 아닌, 안에서 그 자신의 실천에서 찾는다.

 

 

<1인 창업스쿨로부터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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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한 하루
산더 콜라트 지음, 문지희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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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콜라트 소설, 반려견 빌런의 죽음을 목적에 둔 주인공 헹크, 17세 조카 생일파티에 초대된 날, 그의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살아있다는 것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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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한 하루
산더 콜라트 지음, 문지희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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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산더 콜라트의 <개와 함께한 하루> 리브리스 문학상의 심사평은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가벼움에 대한 심오하고도 감동적인 소설”이라 했다. “방황과 고통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생의 가치이며, 생의 위대함이다.”이라는 띠지에 적힌 문장, 이런 의미를 애써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리브리스 문학상이 어떤 기준으로 주는 건지 잘 모른다. 따라서 그냥 읽고, 느낌을 적는다. 리뷰도 서평도 아닌 [독서 노트]라 해두자.

 

14살이 돼가는 반려견 빌런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사는 56세의 중환자실 간호사 헹크 판 도른, 17세 된 조카 로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버스로 남동생 집으로 가던 길에 버스에서 만난 미아를 만난다. 이혼한 리디아 이후 처음으로 느껴 본 설렘, 이 소설은 24시간 동안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현상과 사물에 대한 독특한 설명과 회상 등을 4부로 얽어 엮은 글이다.

 

이야기의 실마리는 반려견 “빌런”이다. 전처와 13년 전에 빌런 입양할 때의 기억, 꼬물이 빌런과의 첫 만남, 꼬리치며 반기고 따르는 사랑스러운 빌런이 이제 죽음의 문턱에 와 있다.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와 이혼 후 6개월 만에 재혼하여 미국에 사는 전처 리디아와 공통의 관심사는 빌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녀와 빌런 때문에 전화한다. 빌런이 곧 죽을 것 같다고….

 


 

죽음에 대한 것들, 헹크의 생각

 

심부전으로 죽어가는 빌런, 노쇠한 것도 아니고, 피곤한 것도 아니다. 이따금 숨을 헐떡이며 입 가장자리로 혀를 축 늘어뜨린다. 병이란 이런 거다. 우리의 정상적인 관계를 망가뜨리고 이로 인해 서로를 낯선 존재들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누구이고 또 무엇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당위를 파괴한다. 서로의 친밀감은 훼손된다. 이렇게 둘은 나락의 양 끝자락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24쪽)..

당뇨병 환자에게 당뇨가 익숙한 것처럼…. 기억들은 시간의 순서나 인과 관계와는 상관없이 느슨하게 꿰매어 놓은 패치워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바로 이 느슨함이 이따금 헹크를 힘들게 하는 그의 약한 응집력에 경고를 날린 것이었다고 그는 생각한다(63쪽)..

 

일상의 기억들

 

마이꺼와의 기억들, 헹크보다 18살이나 많은 같은 병원의 수간호사 지금 그녀는 치매다 요양원에 있다. 정기적으로 그녀를 찾아본다. 한때 불륜관계였던 적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둘 다 배우자를 사랑했고 가정에 충실했는데…. 지금 제정신이 아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만지고 있다. 그들은 왜 불처럼 뜨거워졌다. 식었는가, 감정의 방황이었던가,

 

리디아와의 이혼, 헹크는 싹싹한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수 년 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 리디아와는 다른 이와 함께 있었다. 불륜이다. 이를 계기로 이혼한다. 물론 뜨거웠던 연애, 사랑 끝에 오는 무덤덤함이 이혼의 배경이기도 했다.

 

죽어가는 빌런을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 헹크는 죽음이 축복이라고 확신하다. 세상이 모든 행복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그 축축한 무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경제학의 원리다. 가치는 유한성에서 비롯된다. 시간, 규모, 수의 유한성. 유한성은 삶의 가치를 제공한다. 게다가 죽음은 우리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가 아닌가? (126쪽)

 

오래전에 잃어버린 말 조각상, 헹크는 조카 로사의 17살 생일에 초대돼, 동생 집을 찾는다. 로사 방에서 발견한 말 조각상! 오랫동안 잃어버린 그 물건을 이렇게 갑자기 보게 되다니…. 그는 자신의 조카가 이따금 관심을 가지고 이 목재 동물을 유심히 관찰할 그것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자세한 관찰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 세계와 연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이 방황하고 표류하고 마침내 망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세히 살펴보고 관찰하는 행동은 현실 자각 또는 현실 직시와 같은 역할을 한다. (180쪽)


헹크는 로사의 생일파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로사에게 가던 길에 같은 버스에서 만났던 ‘미아’를 다시 만나게 된다. 미아는 당신의 개는 어때요라며 말을 건넨다. 좋아요. 아니, 사실은 그렇게 좋지 못해요라며 대답하는 헹크,

 

우리는 이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간의 대화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서로 동기화하려는 시도다. 물론 당사자들이 호의를 가지고 다가간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두 사람의 인생, 두 이야기가 만나 관계성이 형성된다. 그것은 단 몇 분간 버스에 함께 앉아 있었다 하더라도 가능한 일이다.(195쪽)

 

마아는 그가 버스 안에서 운하에서 보트를 타는 소년을 들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미아의 헹크의 시선에서 철학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실존적으로 중요한 무엇인가를 발견했고, 미아는 그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헹크에게 소년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열정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 태고로부터 전해오는 생명의 새로운 형태, 생명력, 삶에 대한 열정,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레벤스베야웅. 삶의 긍정. 이 개념들은 마치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는 듯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214쪽).

 

헹크는 말한다. “미아,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먹고 마시는 음식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 즉 삶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철학적 확신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삶 자체에는 진리의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지만, 마치 보물 사냥꾼처럼 그것을 찾고 발견하고 캐는 것은 우리의 몫이죠”(216쪽)

 

미아는 헹크와 빌런을 보고 있다. 그들의 하루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일종의 카타르시스, 깨끗하게 정화해 주는 경험, 아니, 잠깐 이렇게 하지 말자, 평가의 시간을 갖지 않기로 하자. 하루가 천천히 저물고 있다고 그리고 다시 한번 살펴보자. 물론 자세히 잘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두자.

 

그래, 그거다. 그는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정말 그것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살아 있다는 것”

<개와 함께한 하루>는 24시간,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빌런은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미아와는 사랑을 이어갈 것이다. 반려견을 잃게 됐지만, 또 다른 반려를 찾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 빌런이 헹크에게 남겨주고 간, 선물일까?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사유, 게슈탈트의 그림처럼, 실존철학, 작가 콜라트는 씨줄과 날줄로 철학적 사유, 죽음과 삶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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