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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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젠가

 

젠가게임과도 같은 우리 사회, 소외, 배제된 계층, 계층통로 사다리마저 치워져 버린, 한 번 놓치면 다시 탈 기회가 없는 열차처럼 아슬아슬한 경계의 삶들,

 

이 소설은 탈산업화, 서비스 경제 사회에서 기간제 교사, 방과 후 교사, 취업준비생, 프리랜서, 플랫폼, 배달노동자들 이른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과연 그들은 어떤 미래비전과 희망으로 자신 “삶”의 주체로 떨쳐 일어설 것인가? 작가의 시선은 그것을 구현해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려 한다.

 

88만 원 세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어렵게 취업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코로나 19 재난 상황 속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이들, 이제 취업의 혹한기 속을 뚫고 나아가려는 취업준비생, 이들은 이 사회의 공정룰을 따질 만한 위치도 처지도 아닌 상황에 매몰된 이들이다. 청년 일자리 정책 속에는 청년들이 없듯이, 공정한 룰 논쟁에도 주인공인 청년들은 없다. 파편화되고, 분산된 삶이 있을 뿐.

 

이 소설집은 네 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우선 <시체놀이> 이력서만 수백 장을 쓰고 수십 곳의 면접을 봐도, 면접관의 “경험있어요” 라는 질문에 신입이 어디서 경력을 쌓는가 말인가, 취업 시장에 뛰어든 지 삼 년째, 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 젠가가 마음속에 가득 찼고 금방이라도 내 존재 자체가 와장창 부서질 것만 같았다(16쪽).

 

한때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으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했던 그 허망한 꿈, 어려운 시골 살림으로 학비를 대주던 부모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발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독서실, 유통기한의 직전의 도시락을 먹으며, 살아온 날들, 이제 탈출구가 요원해 보인다. TV 방송국이나 영화의 시체 역할 아르바이트가 최저시급보다는 낫다. 직업으로서 시체놀이, 한때 시대를 주름잡던 대배우도 지금은 시체 대역이란다. 그 많던 돈을 다 날리고 후배들 눈치나 보며, 시체놀이를 한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한 줌으로 재로 돌아갔지만, 시체놀이의 징크스라 회자하던 불행, 내가 아니면 주변의 불행, 편의점에서 일할 때, 먹이를 챙겨주었던 길냥이, 이제 편의점에 나가지 않으니, 누가 밥을 챙겨줄까 싶어 한 번 보러 나간다. 참지 캔을 하나 안겨주고, 그렇게 헤어졌다. 시체놀이를 하고 온 날, 길냥이는 차에 치어 죽었다. 한재덕도 죽었고,

 

오늘의 시체놀이를 끝으로 한재덕 몫까지 살아 보기로 다짐한다. 편안한 시체가 된 몸이 퍽 안락하다. 죽은 듯 자고 일어나 나는 시체가 아닌 내상을 그려보리라. 쓰다 만 자기소개서의 커서가 붉은 눈으로 깜박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절절한 소설이다. 생생하게 취준생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어디로 향해야 하나, 방황과 고통, 시체놀이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내가 하고픈 일을 찾아서 힘들지만, 또 한 걸음 내디딘다.

 

<유리젠가>, 주인공 소영. 7년간의 연애, 서른여섯 결혼하고 싶다.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늘 떨어대는 수다들…. 남들은 의사와 결혼했네, 잘 나가는 직장인과 결혼했네…. 친구들 모임 중 나 혼자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연애를 끝내자 남자친구와 결별을 선언하고, SNS 속으로 뛰어든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사랑을 나누게 된 홍콩에서 일하는 회계사, 데이비드 김. 그의 감미로운 속삭임에 서른여섯의 외로운 여성은 그렇게 위태롭게 유리젠가를 쌓아간다, 이 늦은 나이에도 사랑을 찾아오나 싶어,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또 전화를, 화상통화를 하려고 회사의 회식 자리도 빠진 채….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데이비드 김으로부터 연락, 돈을 빌려달란다.

 

이 천만 원…. 홍콩에서 일이 마무리되면 귀국해서 결혼하잖다. 그로부터 이니셜까지 새겨진 짝통명품가방을 받는다. 이천만 원은 데이비드 김의 통장으로 송금되고, 집에 찾아온 언니와의 대화, TV 뉴스에 나오는 SNS 사랑 사기 소식(로맨스스캠), 나는 그 가운데 있고 그 피해자이다.

 

무너진 유리젠가, 사람들과의 관계

 

미래를 꿈꾸며 쌓아 올린 유리 젠가엔 이미 균열이 갔던 것일지 모른다. 위태로운 젠가의 끝에 서서 난 비틀거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김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나는 도대체 뭘 바라고 있었던 거지? 라는 물음은 많은 걸 떠오르게 한다. 결혼하기 힘든 시대, 미혼 비혼을 떠나, 이 소설은 미래비전이 보이지 않는 연인들,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믿음, 외로움, 고독한 군중,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같은 곳에서 일하고 부대끼고 살지만, 군중은 홀로된 외로움을….

작가는 유리 젠가에서 여성성을 성적 측면으로 접근하지 않고, 거리의 단절, 관계의 문제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달팽이 키우기>, 주인공 자애와 그의 남편, 둘은 캠퍼스커플이다. 자애는 국문과를 나왔지만, 방과 후 교사로 일한단 자애와 여행사에 근무하다 코로나 재난으로 직장을 잃고 무거운 분위가 떠도는 작은 원룸에서 지내는 이들, 도시의 집이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남편은 나름대로 일을 찾아해보려 노력하지만, 따뜻한 사무실에서 여행플래너 일을 하던 그가 추운 현장에서의 일에 적응을 못 하고, 배달일도 제대로 해내질 못한다. 자애는 방과 후 교사의 재계약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교사 일을 하기 전에 몸담았던 잡지사나 신문사에 연락을 해봐도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뿐이다. "~사"자가 붙은 직업이 아닌 바에야 경제적 상황에 휘둘리기 영향을 더 받는다.

 

이 글의 매개인 달팽이와 만남, 새로운 희망의 씨앗 달팽이를 데려온다.

 

어느 날 엄마의 김장 일 도우러 시골집에 내려갔다, 배춧속 작은 달팽이를 발견하고, 우유병 속에 넣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달팽이 키우기가 시작된다. 야생달팽이 알콩이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먹이를 주면서, 알콩이가 외로워할 것 같아서 양식 애완용 달팽이 달콩이를 데려와 함께 살도록 해주지만…. 결국 달콩이는 죽는다. 야생달팽이 알콩이는 세찬 비와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배추 안에서 살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때의 치열한 경험과 노력으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 수 있었던 걸 거야(140쪽).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나 사실, 너와 함께 달팽이를 키우며 깨달은 게 많아.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지 어느 누가 알았겠어.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로 잘 잔이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수입이 없어져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고, 평소 하지도 않았던 일을 도전하는 게…. 나 역시 내 일상이 이렇게 조각나고 처참히 망가질 줄 생각도 못 했거든…. 너한테 미안해서…. 너랑 마주치는 게 불편하고….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매일 자책했어. 그런데 네가 데려온 달팽이를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 느리더라도 꾸준히 제 할 일을 해내며 점점 커가는 알콩이를 보며 희망이 생겼어, 알콩이는 거친 환경을 겪고 극복해왔기에 분명 잘 자랄 수 있었던 거야.

 

우리 상황도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잘 극복해 살아갈 수 있을 그것이라고 믿는다. 조급함이나 불안감은 잠시 내려두고, 우리 천천히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자.

 

<발효의 시간>, 묵묵히 정성스레 만들어온 일상,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처질 거라고 분명 그렇다. 청주에서 이제 3대째로 이어지는 직지글빵, 2대째인 아버지는 가업을 이으려는 아들에게 대학가라고 한다. 이 빵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빵 만들기를 하려는 아들의 고집이 바보스럽기만 하다. 직지 정신도 현실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직지글빵, 유튜브 정성스럼을 알리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아들은 유튜브를 통해 직지글빵이 얼마나 정성스레 빵 만들기를 해온 지를 알리면 빵 판매 실적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결국 널리 알려졌고, 주문이 밀려온다.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남이 알고, 우리 빵을 맛보는 손님들이 분명 느끼게 될 거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직지 글빵 속에 들어가는 저당분 팥앙금이나 유기농 호두, 직접 키운 블루베리는 모두 먹는 이들의 건강을 생각한 재료잖니. 이 비용이 아까워 다른 재료로 바꾼다면 결국 소탐대실의 결과에 직면하게 될 거다. 철아. 이것 하나만 약속해주겠니? 우리 빵이 아무리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좋은 평가를 받고, 돈을 많이 벌어도 초심을 잊지 않겠다고 말이야. 귀찮고 번잡한 과정일지라도 빵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 꼭 필요한 일이란다. 직지를 찾는 일처럼 말이야 그는 아버지의 진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169쪽).

 

아무리 새로운 시대가 올 지언정 반드시 거쳐야 할 것들이 있다. 발효의 시간이 그것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라도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아들세대다. 딱 부러진 자신의 삶의 태도와 방향이 없이 헤매는 힘들어 하는 청년들, 이들에게 자신만의 가치와 하고싶은 것들에 대한 도전을 가져보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이수현의 네 편의 소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갈등과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동안 갈등 요소였던 계급 간의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은 또 다른 방향으로 증폭되어 인류 공동체의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 생명이 위협받을 때 그 어떤 문화, 사상도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는 걸 코로나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고 전기철은 이 소설 평론에서 말한다(174쪽).

 

정의는 함께 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 모색을 바깥에서가 아닌, 안에서 그 자신의 실천에서 찾는다.

 

 

<1인 창업스쿨로부터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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