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내공 - 내가 단단해지는 새벽 공부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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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내공

 

지은이 조윤제는 참으로 꼰대다. 요즘말로 하는 눈치꼬치없는 꼰대스러움이 아니라 은어로 ‘선생님’을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함께 공유해보시지요라고 세상에 알린다.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나 자기관리론’이니 책과도 같은 것이다. 안 보면 그만이니, 보고 배우고, 또 생각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열려있으니, 말을 물가까지는 데려갈 수 있지만,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듯,

 

어른이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그 확신에 책임을 지는 내공을 갖춘 사람이다. 내공이란 무엇인가, 세월을 버티며 얻은 주름과 그 안에 스며든 시공의 더께들이 쌓인 무게라 지은이는 말한다. 내공을 쌓기 좋은 어른의 시간이 새벽이란다. 어제와 오늘의 갈림길,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히 다르기에, 다르다는 느낌을 새벽과 함께.

 

격(格), 치(治), 기(氣) 이 삼박자를 갖춘 사람이 어른

 

천년의 내공, 수천 년의 지혜를 녹여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기체로서의 인간 본성은 본질은 시공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처한 환경에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뿐이다.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생각은 행동으로 나오는 법이니, 보편적 사고법이라, 정신을 살찌우는 방법이다. 하지만, <예기>의 학기 편에 나오는 말, 박식하고 잘 암기하는 학문만으로는(記問之學)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不足以爲人師), 으로만 하는 것은 뭐라도 못하겠는가, 실사구시요, 지행합일이 되지 아니하면, 별 볼 일 없다는 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높임으로써 함께 높아지는 품격이 ‘격’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어른의 경지를 이름이다. 리더는 현재 겪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내고 이를 통해 상황을 다스리고 부하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함이 ‘치’다. 즉 주변을 장악하고 길을 제시해주는 깊이라 한다. 아울러 상대의 오만함을 제압할 수 있는 기세가 말에는 있어야 ‘기’다. 단 한마디로 가로질러 제압하는 단단한 힘,

 

이 책은 이런 격,치,기를 중심으로 10장으로 나누고 거기에 다시 9개의 새겨둘 말을 넣어 90구절을 담고 있다, 물론 중국의 스승 지센린이 고전에서 뽑아낸 148구절에 있는 글이다.

 

마음공부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든 없든, 나라는 자기인식과 정체성,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걸 고민할 때, 차분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좋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격, 치, 기에서 한 구절씩을 음미해보련다.

 

세상사는 승패로 구분되지 않는다(인자무적)

 

어른이란 먼저 등을 보여주고 길을 여는 존재다. 어려울 때 그 사람의 품격과 힘이 드러난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그의 발전을 기다려 주는 어른이 존재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한마디 말의 힘을 느낀다.

 

마음이 깨끗해야 멀리 내다본다(영정치원)

 

한 번의 확신을 위해 만 번을 준비한다.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해서 말을 내뱉기까지 적어도 수백 번 그 낱말을 되뇌고, 또 되뇐다.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터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치우침이 없어야 대의를 실천한다(대공무사)

 

늘 이러지 못하기 때문에 대사를 그르친다. 참으로 어렵다. 사소한 타협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주변에서 봐오지 않았던가, 적어도 나에게만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차라리,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를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바르지 않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어른이란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진 당당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화를 잘 낼 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다(음오질타)

 

아무 데서나 화를 내지 말고, 어른답게 분노하고 어른답게 다스려라.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작은 불의를 양보하면 큰 불의를 불러들이게 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걸러내야 조직이 산다.

 

세상사는 지혜는 시공을 떠나, 때로는 불변의 진리로 다가올 때가 있다. 위대함은 크고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곳에서 온다. 나비효과처럼.

 

이 책은 편한 곳에 놓아두자. 그저 읽자. 또 읽자 이해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니, 그저 내 생활 속의 명심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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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운 2023-08-2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윤제작가 책들을 보고 놀라고, 님 서평에 또 놀랍니다. 천외천

moonbh 2024-03-0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답글을 제가 확인 못했습니다.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니니...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아시아에서의 냉전
션즈화 지음, 김국헌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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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선즈화는 한국전쟁에 관여한 중국과 소련, 미국, 일본이 얽힌 동북아시아전쟁이며, 동북아시아체제, 즉 냉전이라는 큰 배경아래, 대일강화, 정전협정 등으로 이어졌다고, 소련의 비밀문서해제로 새롭게 드러난 증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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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냉전
션즈화 지음, 김국헌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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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냉전

 

지은이 선즈화(沈志華)화북사범대학 냉전사연구센터장으로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러시아에서 신규 자료를 발굴, 독자적으로 검토하여 1999년에 <중소 동맹과 한국전쟁 연구>를 내놓았다. 그의 연구 분야는 국제냉전사, 소련사, 중소관계사, 중·북 관계 등으로 그의 연구성과 중 한국에 소개된 책은 <조선전쟁의 재탐구>, <마오쩌둥 스탈린과 조선전쟁> 등이다.

 

이 책은 2013년에 <아시아에서의 냉전: 조선전쟁과 중국의 출병>(중국원전)으로 중국 국내에서 출판됐다. 와다 하루키가 주장하는 ‘동북아시아 전쟁’이나 윌리엄 스톡의<한국전쟁: 국제사>에서 그 타이밍과 결과 측면에서 한국전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물이었다고 했는데, 한국전쟁은 종식이 아닌 ‘정전(휴전)’으로 동북아시아의 구조에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냉전의 흐름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즉, 아시아에서 정치, 외교, 이념상의 갈등,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은 한국전쟁 발발로 인한 것이라고,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러시아의 비밀해제 문서를 통해 새롭게 혹은 기왕의 문제를 보충하는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38선의 유래와 역사적 작용으로 시작되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역사적 진실에 접근, 김일성의 적극적인 전쟁 획책과 스탈린의 전쟁계획 참여, 소련과 북한이 연합하여 침공을 개시했다고 적고 있다(남침설, 이런 인식은 1970년대 전쟁 관련 문서가 공개되면서부터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는데, 부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1945년부터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1950년에 누가 전쟁을 시작했느냐는 물음에는 답을 내놓을 수 없으면, 이를 따져서도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한국전쟁은 미국의 반격전략을 전제로 한국전쟁을 논하고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무대의 주역들인 소련, 중국, 미국, 남북한의 관계를 러시아의 문건을 중심으로 중소조약과 소련의 극동에서의 전략목표, 전략이익의 보장, 미국의 한국전쟁 과정과 근거(한국전쟁의 확전 전략적 결정) 등 꽤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그리고 50년 뒤 한국전쟁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중국의 한반도 출병 정책 결정에서의 시비와 득실을 논하고, 그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논평을 한다. 이 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북위 38도 선에 관한 견해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미, 소, 중의 전략인데, “냉전”이라는 큰 배경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정전 50년 후의 한국전쟁에 관한 중국 측의 역사적 고찰과 반성과 한국전쟁에서의 중국의 정책결정과정 논평 부분이다.

 

3.8선의 유래와 역사적 적용

 

3.8선은 어느 날 갑자기 그어진 경계가 아니라 일본군의 조선 주둔 병력배치 조정선이었다. 이북은 관동군, 이남의 군대 대본영에 소속된다. 2차 대전 때는 연합군으로서의 소련과 미국이 이 3.8선을 기준으로 작전구역을 정한 것이다. 우연히 그리고 지리적으로 300킬로에 걸친 구분으로 산골 능선 등을 따라서, 정치적인 이유는 없었다고 이해됐으나, 그 역사적 과정에서 미, 소 모두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꽤 흥미로운 지적이다. 어쨌든 간에 소련의 비밀해제 문서에서 찾아낸 근거들이니,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노림수, 미국의 방어선 확립, 일본을 미국의 무기공장으로

 

소련은 대일(對日) 강화 건의에 연설 가운데 중국 대표가 참가할 수 없다면 대일강화토론을 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고, 미국은 반대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효력 발생 7시간 전에 이미 국민당 정부와 일본이 일화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해서 소련, 중국의 제안이 거부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공산세력의 저지선으로 상정, 소련의 우려는 일본이 미군을 위해 무기생산을 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극동 무기공장으로 미군에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미국이 단독으로 대일강화라는 새로운 방침을 확정하게 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소련과 중국은 전쟁협상 과정에서 강경한 태도와 불타협으로 한반도에 미국의 힘을 끌어들이고 소모하려 했다. 냉전이라는 큰 배경 아래서 말이다.

 

중국의 한국전에 참여하게 된 합리적 동기

 

중국이 왜 한국전에 끼어들게 되었나를 알려주는 문건이나 자료의 부족으로 합리적 추측밖에, 비교적 설득력 있는 관점은 두 가지로 하나는 국가안전의 이익고려(대만 문제), 또 다른 관점은 마오쩌둥의 혁명에 대한 신념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합리적 동기로 ‘항미원조, 보가위국’ 미제국주의를 상대로 하는 혁명 일정, 사회주의진영에 대한 국제주의적 책무, 신중국의 안전과 주권 보호를 위해서 3.8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논평

 

80년대 후반부터 학계나 민간에서는 한국전쟁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다. 지은이는 이 토론 자체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 때문에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그는 위기상황에서의 정책 결정이라는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군사와 외교적 수단을 바꿔가면서 사용하고, 전쟁과 협상의 전환을 해야 하는지를…. 동북아시아의 구조 혹은 체제 수립과 냉전체제로의 이행 등을 아울러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즈화라는 걸출한 중국 역사가가 끊임없이 한국전쟁과 동북아시아 구조, 냉전 연구에 천착하면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중국과 소련의 처지에서 톺아보고 있음은 꽤 중요한 관점이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와다 하루키의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와 이 책<아시아에서의 냉전>은 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닌, 국제전, 동북아시아의 구조를 만들어 낸 동북아시아 전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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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금술사 - 생각하는 대로 해내는
미야자키 신지 지음, 박수현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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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는 건 "핑계"일뿐

 

이 책<시간 연금술사> 생각하는 대로 시간을 만들어낸다. 시간의 소비자에서 창조자로 생각만 바꾸면(발상의 전환) 세상이 달라 보인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신뿐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는 거짓말쟁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기에 시간의 지배를 받는 이른바 소비자로 사는 것이라는 말인데 꽤 흥미로운 발상이다.

 

시간 관리, 시간 소비자에서 생산자, 창조자로 발상 전환은 어려울까?

 

이 책은 발상의 전환과 자신에 관한 성찰을 다루며 8장으로 돼 있고,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선 내 시간을 분석해보자(1장). 나는 온종일 뭐하며 보내는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지은이는 쉬는 날 뭐 하는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시간의 누구에게나 한정된 24시간뿐이다.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을 과감하게 없애버리라는 말이다. 시간의 복덕방(2장), ‘지금 바로’, 주어진 시간 안에 한 시간 뒤에, 내일 할게요라는 것은 이미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모든 결정이 끝나면, 바로 즉시, 또 보자 시간 역행자(3장), 시간 수집가(4장) 소소한 시간의 역습(5장)에서는 시간으로 나를 옭아매지 말라. 휴식의 중요성, 휴식하면 1시간이 늘어난다는 시간의 역설(6장)을, 그리고 시간의 선택(7장), 시간의 결괏값을 말하고 있다.

 

오늘부터 시작, 첫날, 하루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언제부터 시작하느냐다. 지은이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난다면 Now, Here, 지금 여기서, 즉시 하라는 말이다. 학창 시절 늘 고민하는 영어, 하루아침에 깨우치는 천재란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래서 성문종합영어이던 가에 실린 글귀, 영어에 왕도는 없다는 말처럼,

 

실패에서 벗어나기만 잘해도 된다

 

온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머릿속에는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실패 회로가 작동되면서 급격히 소진상태에 빠진다. 이를 허탈감이라 해도 좋다. 그 뒤가 문제다. 칠전팔기, 보통 사람이 하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지레짐작, 두려움, 이건 서랍에 넣어두고, 뭘 계기로 삼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머리를 비우자, 리셋이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미쳐보는 것,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든, 소설책을 보기를 하든, 아무튼 몇 날이고 며칠이고 올인해보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질리도록, 그러고 나서, 움직인다. 아주 새롭게,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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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이종범 지음 / 아마존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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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기독교 교회의 손으로 조작되지 않은 원래<성경>에 나온 예수

 

지은이 이종범은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로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천주교회 사목연구소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예수에 관해서 한 번쯤 가져볼 만한 의문에 이 책<예수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모르는 이야기>을 통해 답을 찾아주고 있다. 예수의 전설, 예수의 가족, 그리고 예수의 교회 등 3장으로 구분하여, 예수에 관한 거짓과 진실 22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가운데 제도화 된 교회가 해석해 주는 예수가 아닌 성경에 나타난 본래 예수의 모습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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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본디 신성한 곳? 종교 이데올로기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는 애초부터 다르다. 즉, 예수 말씀의 실천을 멀리하고 분열과 갈등이 큰 자리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21세기 기독교 교회는 말씀의 성령이 떠나고 부동산투기와 권위주의의 악령이 판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그리고 유대인이 아니라 사실 기독교 교회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말이, 말세가 아니고서야,

 

그래서 말세라고, 교회가 타락했다고, 아니다. 본디 교회는 그렇게 해왔다. 그게 교회니까, 이런 모습에 질려버린 사람들을 위해 제도적 기독교 손으로 조작되지 않은 원래<성경>에 나온, 그대로의 예수와 가족,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수에게 족보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루살렘 파괴 이후, 포교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다윗과 연결 지을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족보다.

 

그렇다면 신은 왜 예수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은 적어도 세계 양차대전 전에는 철저히 인간을 위한 인간의 아버지였다. 버팀목이며 중재자였던 아버지가 있는 교회, 이제 더는 세상과 사회의 중심이 아니며 되지도 못한다. 교회에서 성직자는 아버지 역할을, 가부장의 권위는 그의 지휘를 받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한 데, 이제는 가짜 권위, 권위주의만 남게 됐다.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나?, 신의 침묵,

 

예수가 말한 아버지는 어디 있는 것인가, 기독교가 철저히 인격신을 고수하는 한 신은 차가운 우주 원리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의존할 수 있는 자상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침묵하고 있다. 자상한 아버지가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기독교의 신의 침묵은 신의 본질이다. 그래서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파악할 수 없는 초월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과의 대화는 역설적이게도 침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침묵으로 말하는 신과의 대화는 기도다. 현대에 들어 이런 기도는 개인화되고 있다. 또한, 교회라는 제도 안에서 형식화된 신과 만남의 의미 자체는 이미 없어져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죽은 것이다.

 

교회 공간은 신의 집이 아니라 돈과 권력으로 쌓아 올린 적당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래의 장소, 이른바 주식회사 예수교회일까? 세속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성경 자체에서 본래 예수의 모습을 찾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교회나 성직자가 제 입맛대로 ‘해석해준’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교회는 자본사회에 들어, 물신주의 풍조가 망친게 아니라는 지적 등, 꽤 흥미로운 이야기와 예수에 관한 의구심에 대해 꽤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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