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중의 정원
김다은 지음 / 무블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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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중의 정원

 

불문학자이면서 문예창작가 교수, 작가인 김다은의 소설<덕중의 정원>은 수작이다. 10년에 쓴 <모반의 연애편지>조선왕조실록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 아니 실릴 수 없는 시대의 비밀, 만약에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세조는 역적이 되는 것이다. 어린 조카를 내몰고 왕이 된 세조의 역모 혐의가 밝혀진다면…. 그 역모의 흔적을 통해 역모의 전모를 그린 것이다. 후궁 소용 박씨(덕중)이 주상인 세조의 조카 귀성군에게 연서(연애편지)를 보낸다. 왕의 여인이 조카에게, 그녀의 아들 아지 왕자군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인가?, 왕은 동생 임영대군과 귀성군이 어느 날 이른 아침, 궁에 들어와 그 연서를 바치고, 이 일로 후궁 소용 박씨는 죽는다. 도대체 그 편지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있길래... 귀성군이 전한 한 통의 편지가 십 년 만에 깨어나서 우연의 덫과 정치적인 계략의 회오리를 몰고왔을까?

 

풀려가는 의문의 실타래

 

등장인물 덕중이 그 은밀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양대군의 잠저 여종이었던 덕중, 그리고 수양대군에게 목숨을 빚졌던 승려 덕중, 이 둘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짝패로 묶였다. 누군가가 그린 세조를 주상으로 세우기 위한 왕자의 게임 설계도를, 누구도 자기가 대군 수양이 왕이 되는 게임판에 말이 됐는지, 졸이 됐는지 아니면 핵심에 선 인물이었는지 조차 모른다.

 

총일 백팔장(摠一百八張)의 비밀

 

<월인석보> 1권의 마지막 쪽 끝부분에 있는 총일 백팔장이라는 표기의 비밀,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그리고 세종의 한글(양반들은 특히 최만리로 대표되는 한글 보급 반대파들의 논리는 지배계급이 모든 정보를 쥐어야 한다, 한자를 읽히고 경서 익히기를 일삼았던 조선의 양반들이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평생에 걸쳐, 입신출세를 꿈꾸고 그들만의 소통 도구였던 한자 대신에 며칠 만 익히는 터득할 수 있는 언문, 반절을 반길 리 없다. 정보독점이 깨지고, 언론이 생길 것이며, 집안에 노비가 몰라야 하는 정보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니, 지배층의 공고한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것이다)창제와 반포, 과거시험에도 한글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훈민정음 언해본이 왜 음모의 증거였을까

 

훈민정음 언해본은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의 본문을 먼저 쓰고, 그 아래 한글로 협주를 단 뒤 한글로 새로이 한문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에 쓰인 한문을 읽은 뒤 그 한문의 각 글자 풀이를 읽고, 한글로 번역된 부분을 읽게 되는 것이다. 곧 한문을 모르더라도 훈민정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한문으로 쓰인 <훈민정음 해례본> 중에서 어제 서문과 예의(例義) 부분만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것이다.

 

이 소설은 세조의 후궁이 된 덕중과 세조의 동생 임영대군의 아들 귀성군(젊은 나이에 병조판서, 영의정을 지낸 왕족), 문종의 죽음 뒤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세조가 지은 <월인석보>, 훈민정음 언해본의 숨겨진 역모의 흔적을 중간중간에 실린 서간(편지로), 승려조직인 세조와 모종의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역모였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승려조직은 백팔장모임이다. 일장인 덕중과 후궁 박 소용(덕중), 그리고 귀성군은 총일과 백팔장 사이에 밀약서를 절반으로 찢어 갖는데, 어떻게 이 밀약서의 원본이 박소용에게 들어갔을까,

 

세조는 어떻게 어린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이 되었을까?

 

왕조실록에 실리지 않았던 비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은밀한 비밀, 훈민정음 언해본의 정본이 사라지고, 108자로 된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훈민정음 언해본이 돌아다닌다. 한자 54로 쓰인 문장이 한글로 번역하면서 108자 되었다. 108자의 의미는 불교에서 상서로운 숫자,

 

성군의 자질을 갖춘 안평대군을 선택한 승려무리들, 그들은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불교 부흥을 꾀하며, 이를 해줄 파트너를 찾는다. 첫 번째 선택된 사람이 안평대군, 몽유도원도에 절을 그려 넣으라는 승려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실제로는 승려집단이 택군을 하고, 성군의 자질을 보인다는 소문을 치밀하게 퍼트린 것이다. 안평은 불교 부흥에 협조할 것 같지 않자, 수양을 선택하게 되는데, 덕중과 세조의 만남도 설계된 것인가, 그리고 수양의 잠저 여종 덕중도 그 그림판에 들어있는 것인가, 덕중과 귀성군 사이에 은밀히 싹뜬 사랑은, 이를 눈치챈 중전은... 씨줄과 날줄로 치밀하게 엮인 이야기.

 

귀성군과 덕중의 사랑, 내시와 궁녀의 사랑. 이 소설을 통해서 조선왕조의 내명부의 세계를 엿보고, 승려들이 불교 부흥을 위해 어떤 일을 벌였는지를…. 결국 이들 사이에서 오고 간 편지로 모든 것이 하나둘씩 밝혀지는데. 교묘하게 석보상절을 통해, 형을 제치고 왕이 된 아우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장면이 수양을 움직이는 신호탄이 된다니.

이런 역사 속에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시나리오로 완성한 작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이 소설은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롭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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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에세이 쓰기
김효선 지음 / 북샤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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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에세이 쓰기를 목표로 하면서 1인 출판기획을 운영하는 지은이, 5년 전에 이 일을 시작, 현재 10권 정도를 책을 쓰면서 자기 발견을 한 모양이다. 정보를 분석, 도출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재가공하는 역량이 있음을. 그래서 제목이 <전략적 에세이 쓰기>인가 싶기도 하다.

 

정작 “나는 과연 에세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생각해 보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필을 쓰고 싶다는 희망만 있었을 뿐, 지은이는 1주에 두 세 권의 책을 읽어가며 자기가 잘하는 정보분석과 도출역량이 앞길을 헤쳐나가는데, 힘이 됐다고,

 

본디, 에세이는 수필의 영어표현이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 이양하의 “경이와 건이”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주인공 건이가 국무총리를 했던 고건 씨다. 그의 아버지의 친구였던 이양하 선생이 고건 형제의 어린 시절을 그런 것이다. 다른 문학자이자 수필가는 에세이를 “신변잡기”라고 말하면서 특별히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라고도 말한다.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있다.

 

어떻게 하면 에세이를 쓰기가 두렵지 않을까, 나도 쓸 수 있을까?

 

지은이가 독자들에게 공유해주는 비법은 4장이다. 이론과 실전으로 나눠 전자는 1장과 2장에 담고 후자는 3장과 4장에 실었다. 글 목차 각 꼭지 옆에 별표가 1에서 3까지, 아마도 중요도를 표시한 듯하니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다.

 

 

 

핵심만 보자. 첫째로 나만 보는 일기에서 불특정 다수가 돌려 읽기(공유일기 형식)로 옮아갈 때, 생각하고 쓰는 글은 뭐가 달라야 하는지 에세이는 형식이 없다. 붓 가는 데로 마음 가는 대로 구애됨이 없이 하는 말을 강조할 뿐, 문장이니 형식은 있다는 점을….

 

둘째로 독자가 중요한 기획자임을, 공적인 글은 아무리 신변잡기라 하더라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여기에는 흥미롭게도 글이 곧 마케팅 홍보 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른바 “카피 라이터” “광고 카피” 등도,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전, 글쓰기 방법과 실습(4장)인데, 단문, 단문이 이어지는 것도 간결해서 좋기는 하지만, 뭔가 건조한 느낌, 건조체와 만연체의 느낌이랄까, 이 대목에서는 자기 글쓰기 스타일과 생각, 성격도 작용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과 문장, 긴장감을 끌어내는 문단 구조와 구체적인 묘사, 함축적인 시구 등의 스킬 또한 중요하다. 이른바 글의 결이 달라진다, 지은이의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정보를 분석하고 거기서 뭔가를 끄집어내 새로운 내용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이 글쓰기에도 고스란히 옮겨올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 가지 스킬은 나만의 결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인의 비법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다. 이를테면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가져오기 등 말이다.

 

 

 

문장력을 높이는 집필 방법 7가지

 

생각나는 대로 손 끝 가는 대로 만든 초고, 이제부터 글 다듬기에 들어간다. 초고나 퇴고의 구분 없이 단숨에 일사천리, 일필휘지의 경지라면 모르겠지만, 글쓰기는 어디 그리 쉬운가, 우선 단 문장 쓰기, 긴 글을 잘 쓸 수 없다고 판단되면 단 문장을 써라. 그리고 중복된 단어를 찾아라. 문장연결 조사는 꼭 필요한 때만 넣어라. 자신의 개성과 글의 결과 맛을 입히는 새로운 단어, 빠뜨릴 수 없는 “문법 확인” 그리고 문장의 강, 약, 흐름, 단락의 연결성 이렇게만 염두에 두면 읽는 사람의 불편함이 작아질 것이다.

 

 

좋은 글이란 게 관점이나 글 성격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에 여기까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집필 방법 7개의 기본만 지켜도,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지 않을까, 물론 연습이 매우 필요하겠지만.

 

이 책을 달달 외워서(기계적) 매뉴얼화 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분석해서 지은이처럼 자신에 맞는 방법으로 새롭게 만들면 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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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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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해자의 행동이 아닌 피해자를 탓할 때 정의는 깨진다. 뿌리 깊은 남성중심, 가부장질서 속에서 작지만 끊임없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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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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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목록

 

목록은 여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경험했던 성차별에 대한 고백과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근원은 사회와 제도 시스템에 있다. 지은이는 우리가 쉽게 나한테 일어난 재수 없는 일이라고 개인화, 사적화 시켰던 사건들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라 할 때,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목록>은 자신 안의 목록을 말로 바꾸어(언어화) 세상에 알리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페미니즘이 맞이한 거대한 백래시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인가, 다시 한번 일어나 목소릴 높여 “인제 그만” 입은 삐뚤어져 있어도 말은 바로 하자고 외칠 것인가,

 

이 책은 10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목록, 시초, 가부장제? 무슨 가부장제?, 미꾸라지, 피해자를 심판대에 올리기, 정치와 특권, 점과 점 연결하기 등이다. 이 책 내용 중 한국의 상황과도 흡사한 장면들을 살펴보련다.

 

 

 

동서고금의 막론하고, 집단 세뇌를 받아온 여성들

 

2021년 리버플의 한 가톨릭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투명한 유리 계단 밑에서 여학생들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붙잡히자, 학교는 여학생들에게 속바지를 입으라고 했다. 이건 학교 앞 바바리맨과처럼…. 여학생들에게 그곳으로 다니지 말라는 말과 같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처럼, 네가 참아, 쟤들은 원래 나쁜 애들이야, 여자애가 어떻게 처신했으면 강간을 당하고 그러냐, 조신하지 못한 게,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부모.

 

남학생에게 투명 계단 밑에서 여학생들의 치마 속을 훔쳐보고 촬영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뭐, 여학생들이 속치마를 입으면 남학생들이 촬영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겠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힘이 없어 두들겨 맞은 놈이 바보라는 말이다. 이건 집단 세뇌다. 남녀의 차이는 이렇게 시스템적으로 만들어진다. 온 사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여성은 스스로 지켜야 해, 즉, 여성이 문제라는 말이다.

 

우리는 시스템을 통해 아이들에게 여성의 신체를 비난하고, 성적 대상화 하고, 경멸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성의 기능적인 신체 부위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보는 시스템을 통해 여성 개개인에게 스키마(낙인)을 찍고 있다.

 

 

 

 

영국 그레이터 런던 경찰청 내에 여성 혐오 문화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지, 여성을 어떻게 대하든 경찰문화고 또 공정한 거야, 기득권, 가부장,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은 그저 보조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여성 혐오로 조사받은 경찰 열네 명 중 아홉 명이 여전히 근무한다. 지은이는 이 부분이 가장 열 받는다고, 64%가 사라졌으니, 해결된 게 아니냐고, 그런데 여전히 46%가 남아있지 않는가, 인권의 옹호 기관에서 경찰은 제외된 것인가,

 

오차구미 영국의 여성 경찰

 

일본의 예를 보자. 오피스걸(OL)은 오 차구미(차를 타서 나르는 일)를 업무의 기본으로 여길 만큼 남존여비 사고가 강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보고서에 실린 경찰긴급신고센터의 유일한 여성 경찰의 이야기, 남성 경찰들은 “나를 엉좁이, 어이쿠”라고 부르며, 탕비실에 가서 차나 끓여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참고 일해야 하는 남자들은 날마다 휴대전화로 포르노를 보고 여자 동료들이나 여성 전반에 대해 혐오스럽고 얄팍한 말을 한다. 만약에 여성이 진급하면 나는 며칠 동안 그들이 소수자 우대정책에 대해 투덜대는 것을 참아야 한다.

 

경찰 내 문화와 분위기가 이러하니 경찰이 성범죄를 다루는 방식에 관해서 고민해야 한다. 강간 사건을 신고해도 기소나 소환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1.4%에 불과하고 가정폭력 사건이 기소 없이 종결되는 경우도 4분의 3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모습과 겹쳐온다. 스토커 처벌법이 유명무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여론 속에서도 여전히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영국도 강간사건, 성추행,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대책과 법률을 쏟아내고 있지만, 솜방망이다. 왜 그럴까, 영국이건 한국이건, 일본이건 국경을 경계로 하는 국가별 대응은 별 의미 없다. 애초부터 남성우위의 사회질서 자체가 문제다. 이것이 사회구조의 기본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기에. 이것을 제도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이독경, 쇠귀에 경 읽기다.

 

 

 

 

이런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각하는 것이다. 집단 세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여성이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은 대단한 폭력이다. 남성이 남자다워야 한다는 신념은 어릴 때 가정에서 세뇌된 성역할론이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이다.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개소리도 역시 세뇌된 결과다. 여성은 인격적으로 불완전체라는 말과 같다.

 

여성의 목소리가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쓰나미처럼 몰아쳐도 한순간에 견고한 남성의 성(城)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는 목소리는 견고한 성 여기저기에 작은 틈을 만든다. 결국에는 그 틈이 커지면 성은 그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애초부터 그런 성(城)은 없는 게 정상이었으니. 그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들은 가해자의 행동이 아니라 피해자를 탓할 때 정의가 깨진다는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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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혜 문학관
박선경 지음 / 아무책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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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혜 문학관

 

문학관 짓기 붐이 요즘은 조금 사그라진 것 같다. 홍길동이 실제 인물이라며 홍길전관까지 짓던 자치단체도 있고, 제 고장 자랑하기와 관광상품으로 작가 누구누구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노라며, 기념관을 짓기도 한다. 진즉에 글재주를 알아보고 고장 사람들이 그의 작품활동에 도움을 주었던 것일까,

 

작가 박선경은 연암 박지원과 집안과 다산 정약용 집안이 혼인 관계로 맺어지는 등의 교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키워낸 소설이 <정명혜 문학관>이다. 신식여성 정명혜는 다산의 후손이며, 동화라는 곳에서 뼈대 있는 양반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펼치는 인품 좋은 양반가의 박무영, 그리고 뼈대 있는 골수 친일파 윤 판서의 딸인 희진, 평안도 관찰사로 친일하다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간 최우식, 박무영과 정명혜의 딸 박수린과 그 밖의 사람들.

 

정명혜는 산수유라는 시집 한 권을 남기고, 도쿄 유학 중인 남편을 따라갔다, 그곳 유학생사회에서 글을 쓰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자 일주일 후에 같은 병으로 죽었다. 남긴 유족은 딸 수린, 1987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수린이 받았다.

 

하지만, 동화시에서 고장을 빛낸 시인 정명혜를 기리는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보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진 정명혜의 실체가 혜진과 유림에 의해 하나둘씩 벗겨지는데,

 

글쎄다 자유연애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나다움을 추구했던 정명혜의 당찬 면모가 보일 듯, 만약에 박무영이 맘에 들지 않았더라면 처음 대면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까?, 최우식과의 관계도 그렇고, 작가의 말처럼, 남녀상열지사로. 이욱연의 <시대를 견디는 힘, 루쉰의 인문학>에서 소개하는 이광수의 “무정”의 자유 연애관과 루쉰의 작품 속에서 강조하는 “나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갑자기 선회하여, 자식에게 집안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본인으로 고노에유이로 살아가야 했던 정 명혜에게서는 “나다움”을 발견할 수 없다. 인연의 고리였던 딸 때문이었을까?,

 

정명혜는 동화시가 낳은 천재 여성 시인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소설적 재미는 정명혜가 과연 천재 여성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는가, 아니면 친일파였는가 하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진짜로 정명혜가 어떤 사고를 했는가?, 그의 작품은 어떠했는지, 정명혜가 왜 고노에 유이로 살아가게 됐는지, 요절했다고 알려진 정명혜가 딸에게 보낸 편지들, 그리고 대충 얼버무리려 하는 군상들의 이야기가, 시대를 달라졌어도 세상은 어떻게 포장하는가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인다고, 엘리트, 문학, 참문학, 순수문학, 순수 연구와 돈은 서로 배치되는 것인가,

 

정명혜의 페르소나, 그저 한 없이 흔들리는 연약한 여성인가, 나다움을 발견하는 걸 멈춘 것인가, 자신의 삶은 허식인가, 아니면 남편이 박무영이 죽던 날, 그도 죽은 것인가, 이후의 삶은 그저 유령으로서 살았던 것일까 그렇게 했던 이유는? 존재론에 관한 생각, 나다움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이 겹친다...

 

아무튼, 근현대문학을 연구하기로 맘먹은 등장인물 혜림은 자소서 달인으로 경제적 독립을 영위할 수 있게되는데, 현실풍자의 똥침 한방이다. "정명혜 문학관"의 역설, 정명혜 대신에 그 누군가의 이름을 넣어도, 그런 유형의 인물, 아니 원하는 인물형으로 만들어서 관광상품 하나를 늘리는 일이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중요하다. 기획전시자에게도 그렇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모두가 믿고 보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듣기 거북한 불편한 진실을 밝힌다면, 질서를 깨는 행위요 배반행위다. 아마도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노 모 교수의 협박인지 충고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장벽 앞에서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계, 아니 그런 영웅적 행동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명혜가 무엇을 했건,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일주일 후에 같은 병으로 죽은 거야, 그게 팩트야. 알겠어,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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