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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혜 문학관
박선경 지음 / 아무책방 / 2023년 9월
평점 :
정명혜 문학관
문학관 짓기 붐이 요즘은 조금 사그라진 것 같다. 홍길동이 실제 인물이라며 홍길전관까지 짓던 자치단체도 있고, 제 고장 자랑하기와 관광상품으로 작가 누구누구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노라며, 기념관을 짓기도 한다. 진즉에 글재주를 알아보고 고장 사람들이 그의 작품활동에 도움을 주었던 것일까,
작가 박선경은 연암 박지원과 집안과 다산 정약용 집안이 혼인 관계로 맺어지는 등의 교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키워낸 소설이 <정명혜 문학관>이다. 신식여성 정명혜는 다산의 후손이며, 동화라는 곳에서 뼈대 있는 양반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펼치는 인품 좋은 양반가의 박무영, 그리고 뼈대 있는 골수 친일파 윤 판서의 딸인 희진, 평안도 관찰사로 친일하다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간 최우식, 박무영과 정명혜의 딸 박수린과 그 밖의 사람들.
정명혜는 산수유라는 시집 한 권을 남기고, 도쿄 유학 중인 남편을 따라갔다, 그곳 유학생사회에서 글을 쓰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자 일주일 후에 같은 병으로 죽었다. 남긴 유족은 딸 수린, 1987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수린이 받았다.
하지만, 동화시에서 고장을 빛낸 시인 정명혜를 기리는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보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진 정명혜의 실체가 혜진과 유림에 의해 하나둘씩 벗겨지는데,
글쎄다 자유연애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나다움을 추구했던 정명혜의 당찬 면모가 보일 듯, 만약에 박무영이 맘에 들지 않았더라면 처음 대면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까?, 최우식과의 관계도 그렇고, 작가의 말처럼, 남녀상열지사로. 이욱연의 <시대를 견디는 힘, 루쉰의 인문학>에서 소개하는 이광수의 “무정”의 자유 연애관과 루쉰의 작품 속에서 강조하는 “나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갑자기 선회하여, 자식에게 집안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본인으로 고노에유이로 살아가야 했던 정 명혜에게서는 “나다움”을 발견할 수 없다. 인연의 고리였던 딸 때문이었을까?,
정명혜는 동화시가 낳은 천재 여성 시인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소설적 재미는 정명혜가 과연 천재 여성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는가, 아니면 친일파였는가 하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진짜로 정명혜가 어떤 사고를 했는가?, 그의 작품은 어떠했는지, 정명혜가 왜 고노에 유이로 살아가게 됐는지, 요절했다고 알려진 정명혜가 딸에게 보낸 편지들, 그리고 대충 얼버무리려 하는 군상들의 이야기가, 시대를 달라졌어도 세상은 어떻게 포장하는가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인다고, 엘리트, 문학, 참문학, 순수문학, 순수 연구와 돈은 서로 배치되는 것인가,
정명혜의 페르소나, 그저 한 없이 흔들리는 연약한 여성인가, 나다움을 발견하는 걸 멈춘 것인가, 자신의 삶은 허식인가, 아니면 남편이 박무영이 죽던 날, 그도 죽은 것인가, 이후의 삶은 그저 유령으로서 살았던 것일까 그렇게 했던 이유는? 존재론에 관한 생각, 나다움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이 겹친다...
아무튼, 근현대문학을 연구하기로 맘먹은 등장인물 혜림은 자소서 달인으로 경제적 독립을 영위할 수 있게되는데, 현실풍자의 똥침 한방이다. "정명혜 문학관"의 역설, 정명혜 대신에 그 누군가의 이름을 넣어도, 그런 유형의 인물, 아니 원하는 인물형으로 만들어서 관광상품 하나를 늘리는 일이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중요하다. 기획전시자에게도 그렇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모두가 믿고 보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듣기 거북한 불편한 진실을 밝힌다면, 질서를 깨는 행위요 배반행위다. 아마도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노 모 교수의 협박인지 충고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장벽 앞에서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계, 아니 그런 영웅적 행동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명혜가 무엇을 했건,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일주일 후에 같은 병으로 죽은 거야, 그게 팩트야. 알겠어,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