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편협 - 우리는 필연적인 편협을 깨야 한다
라뮤나 지음 / 나비소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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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필연적인 편협함을 가져야 한다? 왜?

 

이 책의 제목은 <필연적 편협>이고, 부제는 “우리는 필연적인 편협을 깨야 한다”고 적혀있다. 지은이 라뮤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즉, 생애과정에서 막딱뜨리는 여러 가지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이 책은 7장체제다.

 

우선 목차를 보자,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1장이다, 누군가에게, 20대와 30대를 이야기한다. “필연적 편협” 참, 잘 선택한 표현이다. 3장의 표제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 소수가 바라보는 세상, 세상은 오로지 내 중심으로 움직인다. 실린 제목만 봐도 편협함이 느겨지지 않는가, 4장에서는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5장 시대적 배경으로 피와 땀, 눈물을 적고 있다. 6장은 종교, 7장에서 또 필연적 편협과 3가지 행운을 논한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유대인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이슬람, 힌두교, 그리고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이야기, 미국인, 중국인, 한국인도 한다.

 

 

 

왜 우리는 필연적인 편협함을 가져야 할까? 보통사람이니까, 사돈이 논사면 배가 아프고, 옆집의 누가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면 아주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쉬면 저까짓 것도 다 들어가는 회사를 왜 우리 아들은 못 들어가라며. 질투하고 원망도 한다. 이런 게 필연적인 편협함이라면 가져야 한다. 동기유발이 되니까, 경쟁심을 일으키는 자극이 되니까, 하지만 늘 정도껏. 과유불급이란 저울에서 걸리고 마니까, 아예 편협함을 떼어 내버리자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때쯤이면, 이래서 필연적인 편협이라는 제목을 붙였구나, 라고 조금은 이해될 듯….

 

이 책에서는 뭐가 필연적인 편협함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필연적인 편협함”이라는 열쇳말에 끌렸는데, 편협함, 이 낱말을 쓰는 장면은 너그럽지 못하다, 또는 사고가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는 뜻인데,

 

지은이는 열쇳말로 편협함을 거창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혹은 은연중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는 표현이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속에 편협함이 깔려있다고, 거꾸로 말하면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하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다.

 

“내가 인도를 갔다 왔는데 인도는 이래서 성장 가능성 없을 것 같다.” “내가 이슬람 생활권에서 근무를 몇십 년 했는데, 거긴 그래서 안 돼.”라는 편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75쪽) 이라고 말한다. 글쎄, 이들의 태도가 편협함에서 나온 것일까?,

 

말하는 이들은 자기 가치판단의 중심이 서 있다, 그것이 잘못됐다면, 아마도 포용성과 다양성, 그리고 다른 문화에 관한 이해가 부족할 따름이다. 이를 편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필연적으로 편협한 것인가는 차원을 달리해서 논해야 할 듯하다. 적어도 필연이라면 내, 외부적인 환경 요인(문화이해를 위한 교육, 종교에 대한 태도, 사람을 대할 때의 마음 등)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반드시 그러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사물의 관련이나 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이라면 사람에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편견과 편협은 또 어떻게 다른 것인가?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고 하고, 편협은 한쪽으로 치우쳐 도량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다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늘 편견과 편협함이 자리한다.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의 경쟁상대가 될 것인가, 경쟁이 되지 않을 사람에게는 양보도, 배려도, 베풂도 물론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측은지심이다. 그런데 누가 내 경쟁상대라는 생각이 들면,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고깝게만 보일 수도 있다. 상대의 능력을 존중하고 또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함이 당연하다고 자신을 태도를 반성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역사라는 거울 통해서 보자.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질투, 증오, 혐오, 차별과 배제의 동무들이 편견이고 편협함이다. 이런 장면이 필연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관계라는 것인데, 이는 정도, 친소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이해한다면, 아마도 인간이란 동물이 지는 본능 중 하나인 편협은 나르시시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왕자병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어딘가,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라는 자긍, 자존, 자기 과시욕이 정도를 벗어난 상태다. 이를 어떻게 쓸어 담을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나를 놓고 보자, 내가 세상에 주인공임은 틀림없다. 내가 죽어버리면 세상도 없으니,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답게 살자, 나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자,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사랑도 하고…. 자중자애(自重自愛), 내가 나를 중히 여기고 아끼면 남 또한 그러하리라.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왔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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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h 2023-11-1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작가님... 예스24에 댓글 올렸습니다. 평가는 반영이 잘못된 듯하여 수정했습니다. 파이팅하시기 바랍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 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
벤 펜턴 지음, 박정은 옮김 / 아이콤마(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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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이 불공정성의 반대는 아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간단치 않다. 인류 역사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협력과 경쟁 사이의 균형이다. 이 균형은 국가들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정당 간, 기업 간, 그 밖에 가족을 포함해 지능 있는 인간의 우연한 모임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유전적 재능인 공정성 감각이 요구된다. 협력과 경쟁의 균형은 선조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뤄져 왔는데 이전 세대와 문명이 얻은 교훈은 온전히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늘 협력과 경쟁의 균형을 유지하려 움직이는 것이다. 이 균형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이 공정성이다. 인간의 정신에는 공정성이 내재해 있어, 공정하지 않으면 원시적인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영리 단체의 예를 보자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종업원, 주주, 고객의 이해관계를 균형적으로 도모할 때 각 집단에 가장 큰 이익을 돌려줄 확률이 높다. 정지 또한 같다. 민주주의는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에 책임과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도 균형을 보여주는데, 정치인에게 공정성은 유행이다. 필요할 때 공동의 옷장에서 고르는 옷처럼 말이다. 공정성은 한때 쟁점이 됐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미국에서 일어난 경찰의 조지 플리드 사망사건)라는 운동의 중심에 있었는데, 인간은 경쟁과 협력이란 관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지은이는 인간의 타고난 의사 결정 과정인 공정성이야말로 궁극적인 해답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공정성의 가장 중요한 정의 중 하나 누구든 “제한”을 받아야 하는 원칙의 유지

 

사회 계약의 양 당사자 중 ‘통치를 하거나 행동규칙을 정하는 사람들도 통치를 받거나 행동규칙을 따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정성으로 인한 제한을 받아야 한다.’라는 원칙이 깨졌다. 공정한 사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협상 지위를 위임받은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통치를 하고, 합법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며, 진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공개하길 바란다.'라는 토대가 흔들렸다. 공정성은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이루려 했던 사회 유형의 중심축이었다는 점이다. 권력자를 견제(법의 지배)하고 성인에게 참정권을 주어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했다(선거). 그리고 국가의 의무로서 환자나 노인들이 평생 비용 부담에 이바지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공정한 교환(연금)과 의료, 등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이른바 민주주의다.

 

 

 

 

공정한 것이 정당한 것, 평등한 것, 선한 것, 중립을 지키는 것과 다른 이유, 아니 그 이상인 이유

 

공정 의미의 다양성은 첫째, 공정과 평등의 구분, 평등과 같지 않다. 한 개인이 이익을 얻을 때 다른 개인은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개인 혹은 집단이 개인 또는 집단 간 복지의 교환에 동의할 만큼 서로 충분히 믿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상태다. 여기서 강요된 평등은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평등을 추구하는 듯이 보일 때조차 실제로는 공정한 결과를 추구한다. 이것이 공정성을 평등과 구별 짓는 것이며 공정성은 평등과 같지 않다. 그 이상이다.

 

둘째, 공정성과 정당성과의 구별, 공동체 내에서 일부 사람들의 혜택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의 허용 정도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로 정당하다는 개념 또한 판단하는 사람과 판단되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을 포함하고 공정성이 적용되지 않는다(롤스<공정으로서의 정의>법은 헌법에 부합하더라도 불공정할 수 있다는 말처럼)

 

셋째, 평평한 운동장 상태와 구분 짓는 공정성, 공동체 내에서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노력에 따라 똑같은 성공 가능성을 가지거나 또는 그 가능성을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는 상태, 평평한 운동장 개념이 한쪽을 유리하게 하지 않는 운동장만 공정하다고 암시하는 점에서 실제 공정성과는 다른데,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일 때도 평평하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회 중간에 양 팀의 진영을 바꿔버리면 된다. 글쎄다. 아무튼, 공정성은 유리하거나, 불리한 점을 제거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에.

 

넷째, 중립성을 지키는 것과 구별 짓는 것, 공정성은 중립을 지키는 것과 같지 않다. 다른 사람과의 합의점을 찾으려는 사람이 모든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반영할 입장을 계산하기 위해 불필요한 편견을 버리고 권리, 자유와 같이 인간의 번영과 관련된 삶의 원칙에 집중하는 상태. 조금 어렵다. 이야기의 핵심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그 집단의 구성원인지 아닌지나 나이, 성별, 성적 취향, 인종, 종교, 국적 등의 구별 요소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섯째, 공정성은 옳고 그름의 절대적 정의가 공정성에 의해 보류되거나 인정되지 않는 상태다. 화합, 합의, 번영을 우선시하는 동의로 대체된다. 공정성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것과 구별 짓는 것이다. 공정성은 선과 같지 않고 그 이상이다.

 

 

 

이 다섯 가지 상태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상황에서 적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공통적인 한 가지 요소, 절차적 접근법이 절대적인 접근법을 대체했다. 즉, 균형, 한도 내에서 행동할 자유, 공공복리의 우선순위 매기기, 동의 우선하기, 기존의 전제 조건에 순응하기가, 강요된 평등이나 법의 지배, 옳고 그름이라는 종교적 또는 정치적 신념을 대체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공정하다는 것은 다섯 가지 외에도 다른 정의들이 존재한다. 이는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뭔간가 공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들, 고용주와 노동자, 부모와 자녀, 인종과 인종, 성별 등에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기능하는 공정.

 

지은이 벤 펜턴, 30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15년전부터 공정성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연구자들 못지 않게 그만의 시선으로 존 롤스의 이론과 프린시스 후쿠야마의 논점 등을 꽤 날카롭게 지적한다. 공정성의 원칙, 역사에서의 공정성은 꽤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며, 다양한 관점에서 공정성을 톺아보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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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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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모루와 망치, 100년 동안 거란과의 전쟁

 

길승수 작가의 <고려거란전쟁>이 KBS창사 50주년 대하사극으로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는 원작자와 자문으로 참여했다. 이 소설은 올해 5월에 들녘에서 출판한 그의 소설<고려거란전쟁>과는 구성이 다르다. 구체적으로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11.11일 TV드라마 첫방영... 어떤 장면이 첫 화면에 등장할지 자못 궁금하다.

 

서희의 담판 이후, 17년, 강조의 정변때문인가, 승천황태후를 극복하기 위함인가

 

1차 고려거란전쟁(993년), 거란의 소손녕과 서희의 담판으로 상징되는 이 전쟁은 서희가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쳤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서희가 협상에 나선 것이라고. 소손녕은 고구려는 거란 땅이라고, 서희는 거란 동경까지 우리 땅이니 그곳까지 돌려달라고, 당시 고려는 고구려를 잇는 나라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모두 고려의 땅으로 인식했다.

 

당시 거란이 전쟁을 일으킨 목적은 고려가 거란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데 있었기에 종전 협상이 가능했다. 거란의 실권자 승천황태후는 고려의 땅을 서쪽은 요동성(遼東城, 거란 동경) 근처 언덕으로 하고, 동쪽은 개사수(일설에는 지금의 요녕성과 길림성의 경계를 흐르는 부이강이 옛 이름이라고 한다)까지로 확정했다고 한다.

 

2차 고려거란전쟁은 1010년 11월이다. 1차 전쟁 후 17년이 지났다. 침략의 구실은 강조의 변으로 삼았으나, 승천황태후가 실권을 쥐고 있는 동안 황제였던 야율융서(耶律隆緖)는 황태후의 사후에 그녀처럼 전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는 설이 있다. 송은 거란의 눈치를 살피며, 고려를 응원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당시의 고려 방패는 서북면도순검사 양규다(후일 조선에서 “무성(武成) 묘를 세워서 신라 김유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유금필, 강감찬, 양규, 윤관 등을 배향하게 하소서”라고, 양규는 고려거란2차 전쟁 때, 거란을 물리친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조선 초에는 무성으로 모셔진다).

 

서경(평양)까지 밀린 고려군의 항전, 양규의 1,700명 결사대의 활동으로 거란군 6천 명이 주둔해있던 곽주성을 습격, 모조리 전멸시키고 고려인 포로 7천 명을 데리고 나온다. 개경까지 함락당하고 나주까지 몽진한 현종, 양규의 반격으로. 강민첨 등의 구국 영웅들이 이때 다수 나온다. 전쟁은 영웅을 만들 듯….

 

고려의 수많은 영웅들

 

첫 장면은 1010년 11월16일, 홍위위의 정용(기병)선명은 곡주를 떠나 개성으로 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시골뜨기지만 무예가 출중했고 그의 아버지 역시 정용으로 활동했던터라 이른 나이에 주력군에 편제된 선명, 그는 나중에 어떤 활약을 할 것인가?

 

자, 이렇게 전개되는 고려거란의 전쟁 상편은 고려의 영웅들을 다룬다. D-데이를 향해가듯 날짜와 시간별로 장면의 바뀌면서 고려와 거란의 움직임이 입체적으로 전개되는데, 홍화진에 포진하는 거란군의 총지휘관 행군도통 소배압, 이번 진군은 황제(성종, 야율융서)의 친정이다. 물러설 수도 우회할 수도 없이 고려성을 깨고 앞으로 나가면서 싹쓸이를 해야하는데...

 

고려군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일촉측발, 거란의 대군을 맞이한 고려군은 어떻게 나올까? 통군사 최사위는 다수의 적을 혼란에 속으로 몰아 넣을 방법을 생각한다. 거란군이 감히라는 생각의 허를 찌르는 작전, 강조도 이에 동의하는데, 바로 “모루와 망치”작전,

 

한편, 홍화진을 지키고 있는 도순검사 양규,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 주력은 통주에서 홍화진으로 북상, 최사위는 구주 북쪽에서 육돈도, 탕정도, 서성도 셋방면으로 진군, 주력은 무로대를 공격하고 다른 부대는 내원성 쪽으로 전방위적 공격으로 거란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위와 아래에서 적을 동시에 치는 모루와 망치처럼...

 

하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루한 싸움으로 옮아간다. 밀고 밀리는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데...

 

서경까지 밀려들어온 거란군, 고려왕 현종(왕순)은 위장 항복 작전에 나서고, 조원과 강민첩이 등장한다. 상권의 흐름은 흐르는 화면을 보듯, 수많은 등장인물, 거란군과 맞섰던 역사기록에 이름 조차 남기지 못했던 이들의 장렬한 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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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파괴 - 군중에서 공중으로
윤동준 지음 / 파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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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파괴, 군중에서 공중으로

 

보이는 것들의 형상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형상화한 것을 신으로 믿고 섬기는 것이 성서에서는 우상숭배라 한다. 우상을 섬기지 마라. 우상이란 무엇인가, 탐심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를 추종하고 스스로 그것이 옳다고 믿거나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는 무리인 군중이다. 군중에서 공중으로 인간적 사유와 자기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상파괴를 하자고 주장한다.

 

20대 청년 윤동준의 글에서 “인간이 오롯이 자신 스스로 이룬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우리는 뭐라 답할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인간은 무리를 짓는 본능 때문에 오롯이 나 홀로 뭔가를 이룬다는 착각 속에서 살 뿐이다. 개개인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인간집단의 거대한 회로는 서로를 연결한다. 세상이 지식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행동이 결여되면, 어떻게 될까?

 

군중 속 개인은 개성을 잃고 집단사고에 지배를 받고,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판단한다. 확언, 반복, 전염을 활용하면 군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퀴스타브르봉<군중심리>(현대지성,2021) 이런 의미에서의 군중과 대비되는 개념인 공중(J.타르드에 제기한 개념)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로 특정한 공공문제에 관하여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관심이 정책 결정의 고려 대상이 되는 다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중사회의 형성으로 사회 주역으로서의 공중의 역할은 막을 내리고 주역으로 대중이 등장한다. 공중과 대중의 다른 점은 공중은 그 성원 간에 직, 간접적이든 능동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데 반해 대중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 없이 일방적인 대중매체의 수신자, 즉 수동적 위치에 놓인다는 점이다.

 

군중에서 공중으로 그리고 대중으로, 다시 공중으로

 

그는 고전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은 수많은 세월 동안 우상을 만들고, 자신을 스스로 세뇌하며 그 울타리 속에서 안주하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평온한 양, 안전하고도 안정된 것처럼, 하지만, 그저 새장에 갇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고, 시간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지저귄다. 그래야 제 할 일을 한 것이고 생각한다. 몰개성의 사회 대중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공중으로 되돌아오기

 

삶의 주체는 나, 자신

 

지은이는 삶의 문제는 모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라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는 길을 잃고 무턱대고 무리를 따르는 것은 무지이고, 모방을 마치 자신이 만들어 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자신을 어느 우상 속에 가두는 짓이라고. 이는 마치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비교했던 최진석 <나 홀로 읽는 도덕경>(시공사, 2021)은 동양사상에 대한 오해 특히 공자와 노자에 관한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자-하나라문명-왕권,지배권-태양-남성-흰색(중심색)-모더니즘-중앙집권-인간관에 있어서 불완전한 것으로 그래서 학습, 이상적인 모델을 좇아, 성인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으로 기준이 외부에 있어, 외부의 것과 경쟁한다. 반면, 노자-은나라문명-지도자,모계-달-여성-검은색(중심색)-포스트모더니즘-지방분권-인간관에 있어서 완전한 것으로(갓난아기), 자신이 완전한 존재임을 아는 데 있으므로 기준이 내부, 즉 나 자신과 경쟁한다.

 

이는 모방이란 것이 바로 이상적인 모델을 좇아 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인데, 성인의 길로 가지 못하고 실패하면 열등감과 낭패감으로 인생의 주체는 사라지게 된다.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에머슨이 모방은 자살행위라고 했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노자처럼 기준은 내 안에 있으며, 나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은이는 서양 고전을 인용하고 있지만, 동양의 철학과 사상에서도 서양의 그것과 같은 류의 사유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지은이가 인용한 많은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어찌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인식과 사유였다는 점들을, 우상파괴, 머리만으로 움직이는 세상은 절대 미래가 없다.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행동은 용기다. 이타와 이기의 구분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지은이는 명확하게 말한다. "위험한 것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으로 위장한 다수의 침묵이다."라고,

 

한국이든 어디든 이 시기를 비극의 시대로 보는 것은 글쎄다. 그런 징후도 있지만, 세상은 비극 속에 희망이 싹트듯, 명암이 존재한다. 희망이 없는 세대는 오히려 희망을 일굴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시대는 기회가 많음을, 아마도 이런 메시지를 청년세대에게 전하는 의도는 어렵더라도 늘 희망은 존재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늘 전환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 끌고 간다는 점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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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인생 앤드 앤솔러지
권제훈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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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인생

 

다섯 명의 작가들이 집을 주제로 쓴 작품을 한데 묶었다.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권제훈의 “오꾸바오꾸바”,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의 김성준의 “유령들”.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생강 작가의 “O션파크 1302호”, 2020년 자음과 모음을 통해 소설 발표한 이선진의 “보금의 자리”, 그리고 2017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임국영의 “옵션. 없음” 등 다섯 편의 작품이다.

 

첫 번째 소설 권제훈의 “오꾸바오꾸바” 화자 준철의 아내 혜영, 그들에게는 20평대 복도식 아파트도 감지덕지다. 아무튼, 꿈은 높게 이상은 널리라는 말대로, 언제부터인가 이들에게는 손에 닿지도 않을 십억 대의 고급주택 매물 찾아다닌다. 부동산 중개사를 앞세우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청나게 큰 집을 보러 갔다. 맘에 들었다. 부동산 중개사에서 준철은 마치 계약금이라도 송금할 것처럼 행동하다가 여기 조금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보통은 아내 혜영이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못 사더라도 잠시 내 집인 양 감상에 젖어보고 싶어, 오래 머물려고 하는데, 이날은 거꾸로 준철이 부동산 중개사와 같이 나오다 냅다 혜영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버린다. 뷰도 좋고, 넓어. 오고 바(자리 차지하기, 스페인에서는 누구든 빈집에 들어가 48시간 이상 거주했음을 증명하면 거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집주인이 오면 어떡해, 경찰이 오면, 이들의 48시간 버티기가 가능할까?

 

두 번째 소설 “유령” 봉수와 찬호, 그리고 간달프 그들은 노량진 고시촌에서 내일을 꿈꾼다. 집을 가져본 적도, 가질 수도 없어 이 숱한 아파트와 빌라 사이를 배회하는 유령처럼, 국가유공자가 되어 배점이라도 얻어보려고 예비군훈련을 받을 때 진심으로 다치려 했지만, 용감한 예비역이 되고 말았다. 얇은 벽, 벽이랄 것도 없이 그냥 구분해놓은 칙칙하고 어두운 고시촌에서 늙고 또 늙어가는 간달프, 국가유공자 배점을 얻을 수 있는데도 맨날 물먹는 찬호, 인생의 밑바닥에서 어떻게 하든 탈출해보려는 고시촌 사람들, 봉수는 다행히 소방관시험에 붙었지만, 두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마침 노량진 고시촌에서 불이 나고 불 속으로 찬호를 찾기 위해 뛰어든 보수, 거기에는 여학생 한 명 밖에.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차피 이 도시에서는 봉수도 유령인데. 봉수가 쓰던 방은 관짝만하다. 죽어버리면 밖으로 옮길 필요 없이 그대로 묻어버려도 될 만큼, 봉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집 없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망명정부에서 내준 여권으로 외국을 떠도는 기분….

 

이선진 작가의 작품 “보금의 자리” 화자는 유령과 함께 살게 됐다. 그는 살아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도대체 집이란 어떤 곳일까?, 박생강 작가의 “O션파크 1302호” 요즘 말하는 깡통전세 사기를 다룬 이야기다.

 

임국영 작가의 소설 “옵션. 없음”도 화자 주원, 5년 전에 헤어진 연인 해수에게서 연락이 온다. 투룸을 얻었다고 그때 생각나는 게 너였다고, 한때 그들은 2년간 같이 살았다. 하지만, 헤어졌다. 주원에게 집은 그저 머무는 곳일 뿐, 하지만 해수에게는 소유해야 할 곳이었다. 이들은 생각은 정반대다.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막혀 있다. 그저 룸메이트로 생활하자고, 해수는 말한다. 이에 동의한 주원,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인생도 전세 인생이란 게 있나, 대한민국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제대로 눕힐 곳이 없다니, 지하에는 무덤이요. 공중에서는 살 수 없으니, 발붙이고 사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이지만 말이다. 요즘 화두는 땅, 집이다. 박영서의<조선 시대 부동산실록>(들녘, 2023)에서는 조선 시대에도 땅, 고려가 망한 원인 중 하나도 땅 때문이라고, 과전법을 직전법으로 바꾸면 이 나라 양반의 씨가 말라버릴 것이라는 상소도, 양반들의 또한 산을 둘러싼 송사로 날을 지새웠다는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넥스트의 앤드앤솔로지는 “전세”다. 매월 내는 주택 임차료를 목돈으로 내고 월세를 내지 않는 제도다. 은행 금리에 따라서 오르고 내리는 것인데, 월세는 꺼질 새로 매월 이자만큼의 돈이 나가는데, 이것으로 임차권이 보장받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2년 계약 갱신 때마다 집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 그렇지 않으려면 나가라고…. 집 없는 설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런 제도 틈바구니를 파고드는 기생충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의 주머니에 든 돈을 제 주머닛돈인 것처럼 맘대로 가져가도 된다는 생각, 어차피 더 큰 도둑이 있다고 자위하면서, 우리의 아픈 현실 다섯 장면이다. 전세 사기에, 주거불안. 대한 민국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주택전쟁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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