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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파괴 - 군중에서 공중으로
윤동준 지음 / 파람북 / 2023년 10월
평점 :
우상파괴, 군중에서 공중으로
보이는 것들의 형상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형상화한 것을 신으로 믿고 섬기는 것이 성서에서는 우상숭배라 한다. 우상을 섬기지 마라. 우상이란 무엇인가, 탐심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를 추종하고 스스로 그것이 옳다고 믿거나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는 무리인 군중이다. 군중에서 공중으로 인간적 사유와 자기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상파괴를 하자고 주장한다.
20대 청년 윤동준의 글에서 “인간이 오롯이 자신 스스로 이룬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우리는 뭐라 답할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인간은 무리를 짓는 본능 때문에 오롯이 나 홀로 뭔가를 이룬다는 착각 속에서 살 뿐이다. 개개인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인간집단의 거대한 회로는 서로를 연결한다. 세상이 지식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행동이 결여되면, 어떻게 될까?
군중 속 개인은 개성을 잃고 집단사고에 지배를 받고,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판단한다. 확언, 반복, 전염을 활용하면 군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퀴스타브르봉<군중심리>(현대지성,2021) 이런 의미에서의 군중과 대비되는 개념인 공중(J.타르드에 제기한 개념)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로 특정한 공공문제에 관하여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관심이 정책 결정의 고려 대상이 되는 다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중사회의 형성으로 사회 주역으로서의 공중의 역할은 막을 내리고 주역으로 대중이 등장한다. 공중과 대중의 다른 점은 공중은 그 성원 간에 직, 간접적이든 능동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데 반해 대중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 없이 일방적인 대중매체의 수신자, 즉 수동적 위치에 놓인다는 점이다.
군중에서 공중으로 그리고 대중으로, 다시 공중으로
그는 고전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은 수많은 세월 동안 우상을 만들고, 자신을 스스로 세뇌하며 그 울타리 속에서 안주하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평온한 양, 안전하고도 안정된 것처럼, 하지만, 그저 새장에 갇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고, 시간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지저귄다. 그래야 제 할 일을 한 것이고 생각한다. 몰개성의 사회 대중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공중으로 되돌아오기
삶의 주체는 나, 자신
지은이는 삶의 문제는 모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라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는 길을 잃고 무턱대고 무리를 따르는 것은 무지이고, 모방을 마치 자신이 만들어 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자신을 어느 우상 속에 가두는 짓이라고. 이는 마치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비교했던 최진석 <나 홀로 읽는 도덕경>(시공사, 2021)은 동양사상에 대한 오해 특히 공자와 노자에 관한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자-하나라문명-왕권,지배권-태양-남성-흰색(중심색)-모더니즘-중앙집권-인간관에 있어서 불완전한 것으로 그래서 학습, 이상적인 모델을 좇아, 성인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으로 기준이 외부에 있어, 외부의 것과 경쟁한다. 반면, 노자-은나라문명-지도자,모계-달-여성-검은색(중심색)-포스트모더니즘-지방분권-인간관에 있어서 완전한 것으로(갓난아기), 자신이 완전한 존재임을 아는 데 있으므로 기준이 내부, 즉 나 자신과 경쟁한다.
이는 모방이란 것이 바로 이상적인 모델을 좇아 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인데, 성인의 길로 가지 못하고 실패하면 열등감과 낭패감으로 인생의 주체는 사라지게 된다.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에머슨이 모방은 자살행위라고 했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노자처럼 기준은 내 안에 있으며, 나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은이는 서양 고전을 인용하고 있지만, 동양의 철학과 사상에서도 서양의 그것과 같은 류의 사유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지은이가 인용한 많은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어찌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인식과 사유였다는 점들을, 우상파괴, 머리만으로 움직이는 세상은 절대 미래가 없다.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행동은 용기다. 이타와 이기의 구분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지은이는 명확하게 말한다. "위험한 것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으로 위장한 다수의 침묵이다."라고,
한국이든 어디든 이 시기를 비극의 시대로 보는 것은 글쎄다. 그런 징후도 있지만, 세상은 비극 속에 희망이 싹트듯, 명암이 존재한다. 희망이 없는 세대는 오히려 희망을 일굴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시대는 기회가 많음을, 아마도 이런 메시지를 청년세대에게 전하는 의도는 어렵더라도 늘 희망은 존재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늘 전환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 끌고 간다는 점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