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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습격 - 모두, 홀로 남겨질 것이다
김만권 지음 / 혜다 / 2023년 12월
평점 :
외로움 다시 보기
셰익스피어가 17세기에 만든 ‘외롭다’라는 표현은 지금의 ‘홀로됨’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당대의 사람들은 홀로됨을 오히려 신에게 가까이 간다는 은혜로운 기회로 여겨 긍정적이었고, 외로움은 부정적이었다. 외로움은 에덴동산으로 이브를 유혹하러 간 사탄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유럽에서 ‘외로움’이 본격적으로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이른바 시민권을 얻게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으로 그 배경은 폭발적인 인구증가 때문이었다. 즉 산업혁명과 함께 경천동지할 세상의 변화 속에서 일자리와 비례적으로 실업이 등장, 결국 실업이란 한 개인은 물론 주변이, 모든 것이 송두리째 뽑히고, 더는 쓸모없음으로 인식되자, 불만 세력으로 변한다. “이 세계에 속할 곳이 없다”라는 의미였다.
외로움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사회적 박탈과 패배감이 낳은 학습된 경험
한나 아렌트는 이 현상에 주목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핵심은 바로 이런 불만 세력을 식민지로 내보내 사회 내 불안을 없앴다는 도식 때문에, 외로움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 아닌 산업혁명 이후 배제, 소외 경험 속에서 학습된 감정이라는 점이다.
외로움은 왜 위험한가?, 자아 상실을 넘어 세계 상실로
외로움의 본질은 사회적인 배제와 버려짐, 쓸모없음. 쓰레기 취급을 당하기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2019년 외로움 대처 장관을 일본은 2021년 고독부 장관을 둘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바로 외로움이란 현상의 위험 때문이다. 아렌트는 외로움은 자아 상실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고독’과는 결이 다르다. 물론 아시아(일본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세밀히 구분하지 않고 등치의 것으로 보기에)에서는 외로움이나 고독은 동류의 감정으로 인식해왔지만 서구세계에서는. 고독이란 세상에서 내쳐졌다. 버려졌다는 느낌보다는 자기반성 상태라고 이해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소로는 자기 집에 있는 세 개의 의자, 하나는 고독, 또 하나는 우정, 마지막은 사교를 위해서라고.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개인과 사회 모두 위험하다고 경고한 ‘외로움’의 본질에 접근하려 한다. 외로움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자아 상실이고, 이 자아는 고독 속에서 실현할 수 있지만, 그 정체성은 나와 동등한 사람과 신뢰할 수 있는 교제를 나눌 때만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아 상실 상태에서는 자아와 세계, 사유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상실한 것이다.
이 대목을 곱씹어 보면, 21세기의 디지털과 능력주의가 만나면 어떤 현상을 벌어질까, 이른바 디지털 능력주의 시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외로움이란 표현처럼, 사회의 발전과 과학기술발달, 빅데이터는 어떻게 인식할까, 편견을 갖게 한다. 빅데이터는 가난한 자에게 더 차갑고, 일하는 사람에게 엄격하지만, 학연과 지연, 혈연에 연연한다. 이 말의 의미는 빅데이터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의 패턴을 분류하여, 그 사회의 중심언어와 배제 시켜야 할 것들 층위를 그려내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능력주의를 불러낸다.
외로움의 습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은이 김만권은 외로움이란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이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인사이드에서 아웃사이더로 내몰린다. 누구의 탓도 아닌 체제순환이다. 산업 혁명기에는 불구, 폐질 때문에 생산활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소외된 이른바 당대의 질서 기준 패러다임에서 밀려났듯이 21세기의 디지털과 능력주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빅데이터의 어두운 그림자가 삼켜버린 사람들은 외로움의 습격을 받으면 자아 상실을, 한 번 넘어지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그런 게임의 법칙이 질서가 된 사회, 여기서 탈출을 하지 못하면 대응이라도 해야 한다.
지은이는 대응책으로 몇 가지를 중요한 제언을 한다. 첫째, 사회적 가치 대응책으로서 강박적 자기 윤리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둘째, 사회 문화적 차원의 대응책으로 경청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그리고 경청을 시민교육의 핵심으로 삼자고 한다.
셋째, 분배 차원의 대응책으로 노동시장을 통하지 않는 분배 대안을 생각하자. 즉, 노동을 분배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이 또한 하나의 거대 담론이다. 이에 관한 논쟁은 별론으로 한다, 참고로 홍기빈이 번역한 필리프 판 파레이스, 야니크 판데르보흐트의 <21세기 기본소득> 부제 자유로운 사회,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거대한 전환(흐름출판, 2018)과 서정희 <기본소득론 관점에서 본 기초자산제의 의미와 한계>(한국사회정책. 2021-06 28(2):13-51)].
기초자산제는 생애주기 자본금으로 일시금으로 5천만, 1억 원 등, 평생에 한 번 받아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으로, 그 재원, 배당, 수령조건, 반환 등을 다룬다. 기본소득은 인생 위기, 전환 대응소득개념으로 접근하며 위의 재원 따위 등과 마찬가지의 것을 다룬다. 넷째, 권리 차원의 대응책으로 디지털 시민권을.
지은이는 “외로움”은 고독과 달리 사회적 산물로 본다. 산업사회에 시작과 함께 출현한 학습된 감정,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전체주의가 만들어 낸 질서 안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배제되고, 버려지고, 쓸데없는 잉여 인간이 돼버린다. 인간 존엄의 질서 회복을 위해서 이 책에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논쟁의 여지는 많다. 특히 분배 차원의 대응책, 기본소득론과 기초자산론 모두 나름의 논리 구조가, 장단점만으로 비교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현상 그리고 그 구조와 배경을 함께 생각해야 할 듯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