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심중일기 1 - 혁명이냐 죽음이냐 그의 진짜 속마음은?
유광남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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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심중일기

 

마음속에 가두고 꿈꿨던 생각들, 머릿속에 그렸던 세상, 누군가에 들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누군가에게 들켰으면 하는 마음, 세상을 갈아엎어 “민” 주인 된 대동 세상을 만들자고 선동하는 것인가, 무혈, 역성, 대동혁명을.

 

작가 유광남은 이 책<이순신의 심중 일기>을 팩션이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순신을 언급한 기록의 행간에서 그를 소환하여, 정유년 일본군과의 격돌현장으로 데려다 놓고 말을 하게 한다. 난중일기는 보이기 위한 것이고 내심은 심중일기에 적었던 그이 생각들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순신과 어릴 적에 같이 자랐던 서애 류성룡과 행주대첩의 권율, 그의 사위인 병조판서 오성 이항복, 조선인 어머니를 둔 항왜장수 사야가 김충선, 김덕령의 정혼자, 후금의 누르하치의 딸과 다른 주인공인 선조와 광해,

 

작가는 이순신을 소재로 글쓰기 자료를 찾던 중, 임진년 왜와 싸움 중에 이순신에게 투항한 철포장수 사야가를 발견한다. 그의 이야기를 전작 소설<사야가 김충선 1~3>에 담았다. 소설<심중일기>은 선조가 부산에서 군사를 움직이는 가토 기요마사를 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순신이 출전을 하지 않아 항명죄로 감금되었던 1597년 정유년의 34일간 기록이다. 작가의 전작 <이순신의 반역>(스타북스, 2011) “이순신의 장계는 누가 숨겼을까”를 다시 쓴 것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순신의 선조 이 균의 정치적 맞수, 백성을 등에 업은 이순신을 죽여야만 내가 산다?

 

선조는 왜군 간자의 말을 듣고, 이순신에게 출전을 명했다. 영특하고 교활은 선조에게 왜의 이간계는 통하지 않는다. 선조는 이간계에서 이순신을 제거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선조, 그는 누구인가 조선이 왜에 침탈당하자 조선을 버리고 명으로 망명하려 했던 그 수치스러운 기억, 백성들은 다 알고 있다. 이들의 임금을 향한 원성이 얼마나 컸으면 그의 장자 임해군 부자를 잡아서 가토 군에게 넘겼을까, 땅에 떨어질 때로 떨어진 왕에 대한 기대는 분조를 이끄는 광해군에게 미래의 희망이라는 모습으로 옮아간 지 한참이다. 좌불안석에 불안, 망상이 엄습해오는 상황에서 선조 이 균 앞에 놓인 선택지는 별로 없다.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이순신을 없애야 한다. 선조에게 이순신은 왕권을 위협하는 적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의금부 옥에 갇힌 이순신, 항명죄의 이유를 밝히려는 추국, 국문은 간신 좌의정 손으로, 소설은 의금부 옥 앞으로 모여들어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묘사에서 시작한다. 그 뒤로 하나둘 나타나는 도원수 권율, 영의정 류성룡 당대의 최고 실력자들이 이순신의 석방시위 대열에 끼어있다. 역성혁명의 시작이다. 이것은 “꿈인가”, 사야가는 아버지처럼 모시는 주군 이순신의 세상이 열리기를 바란다. 아니 백성들의 세상, 자력 국방의 강건한 조선을 만들 사람을 세우려 한다.

 

사야가는 옥에 갇힌 이순신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국면의 전환인가, 이순신은 선조의 출전 명령을 받자, 왜군의 의도와 조선 수군의 전략을 설명하는 장계를 올리는데. 그 장계만 있으면, 이순신을 살릴 수 있다. 군왕의 명령에 항명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였기에, 그런데 장계가 사라졌다.

 

이순신은 정탁의 상소로 풀려나오게 되지만, 34일 동안, 오락가락하는 그의 심경, 잠들면 꿈에 혁명군의 모습이, 깨어나면 조선의 체제가 현실로 그의 앞에 다가와 있다. 류성룡, 권율 이들 조선의 충신이 역성혁명 따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고려의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삼은(三隱, 목은 이색, 야은 길재, 요즘에는 길재 대신 도은 이숭인을 포함하기도, 모두 모아 사은이라 해도 좋을 듯하지만)은 고려의 충신으로 의리를 지켰다. 후대 조선의 사림파로 이어지는 이들의 후예들, 이것이 당대 유교의 의리다. 이런 역사를 지켜본 이들에게 역성혁명의 후과는 감내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이순신과 그의 내면의 이순신인 사야가

 

사야가는 조선을 굴러가게 하는 지배이념 “유교”(종교)에 관해서 제대로 몰랐다. 아니 잘 알았을지도 모른다. 뼛속까지 유교를 신봉하는 이들의 세계를, 이를 지키는 것이 곧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것임을, 왕이 누구이든 관계없다. 사대부와 양반이 지배하는 체제 자체가 그들에게는 중요할 뿐이었기에, 반역의 대가가 참혹했다. 삼족을 멸하는 보복의 질서가, 사야가는 일곱 살 때부터 전장을 누볐다. 적군의 대장만 잡으면 전쟁은 끝이다. 백성은 그저, 장기판의 말일뿐, 그런데 조선은 다르다. 절집의 승려가 창을 잡고 활을 거머쥔다. 백성이 곡괭이를 들고, 의병이 나서서 전쟁을 치른다. 조선이라는 체제가 아니라 내 가족이 죽임을 당하기에 나선다. 죄 없는 백성이 희생되기에 승려가 절간을 뛰쳐나와 중생을 구제한다. 사야가에게 조선, 선조, 그리고 이순신은 어떻게 이해됐을까?

 

한편으로 사야가는 전혀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꿈꾼다. 조선은 갈아 엎어버려도 된다.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는 부모는 필요 없다. 부모·자식 간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부모와 연을 끊어도 좋다고 여긴 것일까, 비약일 수도 있다. 아무튼 사야가에게 조선의 국왕은 무능 그 자체이며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백성은 불행하다. 그래서 이순신의 혁명을 꿈꾸는 것일까, 지략으로 전쟁을 이끄는 리더십에서 군왕의 자질을 본 것인가? 사야 가는 어쩌면 또 다른 이순신인지도 모른다. 사야기를 통해서 이순신 안에 잠들어 있던 이순신이 깨어나고, 내면의 이순신은 사야가의 입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심중일기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이 심중일기의 후속으로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심중일기에 등장하는 후금의 공주는 이순신의 조선·만력제의 명· 도요토미의 일, 삼국 전쟁으로 이어가는 끈이 된다. 그렇다면 심중일기의 이야기는 34일간으로 끝난 게 아니다. 다만, 혼돈의 꿈에서 현실로,

 

이순신이 옥에서 풀려나와 백의종군으로 전쟁터로 돌아간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이순신 제국1-3>(유운하/유광남,스타북스,2014)에서 펼쳐진다. 역사에서 가정, ~ 만약에는 없지만, 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나라에 살고 있을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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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 끝나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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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소설<사냥이 끝나고>

 

안톤 체호프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알려진 <사냥이 끝나고>는 1884년 8부터 다음 해 6월까지 10개월 동안 노보스트 드냐 신문에 연재됐다. 작가는 2년 후 단편소설집<황혼>으로 푸시킨 상을 받으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소설은 1880년 4월의 어느 날, 신문사로 편집장을 찾아온 작가 지망생 이반 페트로비치 카믜셰프, 40대쯤으로 보이는 키 크고 건장하며 게다가 잘생긴 미남자로 5년 동안 예심판사로 일했다는 이 남자가 내민 소설 원고<사냥이 끝나고>는 글쓰기가 전혀 안 된 사람이 쓴 글이었지만, 내용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편집을 거치면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뺀다면.

 

편집장은 카믜셰프 소설을 읽는 순간, 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끔찍한 비밀을 알아버린 듯하다. 그의 소설은 신문에 실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끝부분에 밝힌다는 말로 시작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편집장은 신문연재를 하지 않기로 했을까? 그의 소설은 독창적이며, 매우 특징적이며, 이른바 쉬 제네리스(독특하다)라고 할만한 점이다. 이 문장은 어마어마한 역설이다. 왜 편집장은 이렇게 생각했을까. 왜 독창적, 특징적, 독특한 소설이었을까? 글쓰기도 제대로 못 한 사람의 글이, 그는 소설 속에 무엇을 숨겨놓은 것일까,

 

이 소설은 카믜셰프가 한 신문사의 편집장에게 보낸 소설 원고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밝히는 형식으로, 소설 속에 소설이 존재하는 셈이다. 내용을 적어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리고 결말을 통해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독자에게 묻는다. 이 소설을 쓴 카믜셰프에게 편집장이 질문하는 형태로, 이를 통해 소설 내용이 카믜셰프 자신의 이야기임을 의심, 아니 확신한다.

 

그리고 범인이 소설을 쓴 당사자임을, 왜 카믜셰프는 편집장에게 소설을 연재해달라고 했을까, 8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기를, 스스로 자백하는 게 어려운 것인가,

 

편집장은 카믜셰프에게 이 소설에는 진짜 악당이 빠져있다고 말하며, 누가 진범인가? “당신이 범인입니다” 이미 소설 속에서 꼬리를 밟혔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당신들이(편집장은 이 사냥이 카믜셰프 한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집사에게 그의 새아내를 죽였다는 살인죄의 누명을 뒤집어씌운 죗값을, 누군가는 받아야 할 것이라고,

 

편집장은 집사의 아들이 모스크바에 있음을 알고, 그에게 이미 몰락해 비렁뱅이가 된 백작, 그에게 동냥할 기회를 주겠노라고, 그것이 그들 중 한 사람을 벌하는 것이라고,

 

카믜셰프의 소설<사냥이 끝나고>가 신문에 실리지 못한 이유는 그 신문사가 폐간됐기 때문이다. 편집장에게 그 소설은 흥미로웠지만, 필명으로 낼 것이고, 논픽션이 아닌 말 그대로 픽션이기에 누구도 이 소설이 실제 일어났던 범죄의 일기라고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기에. 소설 속의 소설<사냥이 끝나고>은 19세기 말, 흥청망청한 타락한 귀족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속물근성이 낱낱이 밝히는데, 산림관리인, 집사, 하인, 그리고 귀족 백작을 어슬렁거리는 예심판사, 산이 관리인의 젊고 아름다운 딸은 늙은 집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 이 결혼 후에 카믜셰프와 불륜, 그리고 죽음, 범인은 누구인가? 이 죽음이 사냥인가?

 

안톤 체호프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는 희귀성과 1880년대의 러시아의 상황, 귀족과 그 귀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당대의 환경을 엿볼 수 있다. 의외로 말이다. 소설 본편에 등장하는 예심판사와 검사보, 치안판사 등 다소 우리의 체계와는 다른 개념 때문에 다소 읽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왜 살인의 공범들이 그 사실을 소설로 썼을까?, 그리고 그 의도가 들통나자 왜 카믜셰프는 불같이 화를 냈을까? 누군가에게 알려지지 않아야하지만, 이런 사실을 터놓지 않으면, 무거운 양심의 짐을 벗어던질 수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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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고 뭔가 빠져있다면 - 마음을 치유할 심리치료사의 핵심 아이디어
프랭크 탤리스 지음, 손덕화 옮김, 김정택 감수 / 더로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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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행위 그 자체, 삶에는 오직 한 가지 의미

 

신프로이트학파의 인간중심 정신분석을 연구했던 사회심리학자이자 <자유로부터 도피>을 쓴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삶의 의미는 사는 행위 그 자체라고,

 

이 책의 지은이 프랭크 텔리스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작가다. 그는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부쩍 늘어난 심리학 관련 서적들, 찾는 사람들이 많이 진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명쾌한 답을 얻기란 쉽지 않다. 누구도 제대로 말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심리치료의 유형을 정신분석학, 인본주의적 실존주의, 인지적 행동주의 등 세 가지로 나뉘지만,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을 제외하고는 심리치료의 지적 유산은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인터넷이나 대중적인 심리학 서적 등은 많이 나오지만, 심리학자들의 핵심 아이디어는 외전, 왜곡, 지나친 단순화 추세와 경향이 보인다. 지금처럼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 심리학이나 정신 건강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 때인데도 말이다.

 

심리치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 관한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은이는 주장한다. 이 책의 감수자 심리학자 김정택 신부도 심리치료에 관한 더 많은 아이디어와 잠재적인 치료법이 제안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14장으로 구성됐으며 대화를 비롯하여 안전과 통찰, 왜곡, 정체성, 이야기, 나르시시즘 그리고 섹스, 열등감, 욕망, 역경과 의미, 수용 등을 심리치료의 열쇳말별로 현상과 연구자들의 논의를 심리치료의 유형이나 특정 학파 등 이론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을 찾아 절충해나가면서 심리치료의 주요 인물과 그들의 공과도 톺아본다. 지은이는 이 책의 부제를 "마음을 치유할 심리치료사의 핵심 아이디어"라고 붙였다.

 

산다는 것, 사는 그 자체

 

인간의 본능인 무리 활동에서는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필수적인 활동은 상호의사소통이다. 신생아는 어머니 품에 안기는 순간에 소통은 시작된다(존 볼 비의 애착이론 등).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읽는 비언어적 직접적인 대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지만, 소통이 드물어지고, 엄마들은 자녀들보다 전자 기기와 상호작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2014년 소아청소년과 저널에서 실린 연구결과). 사람들은 직접적인 의사소통은 노력이 필요하고, 부담이 크고, 심지어는 혐오스럽다고 말할 정도다. 일본에서는 정보기술 발달이 개인 간의 친밀도와 국가 출생률에 급격한 하락을 초래했다고….

 

결국, 대화의 부재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점, 이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개인의 고립, 외로움 등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모든 대화가 같지는 않다. 어떤 대화 형태는 다른 형태의 대화보다 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심리치료가 최적의 대화 특징이 무엇인지 유용한 지표를 제공할 수 있을까?

 

안전은 원초적 본능, 최적의 삶은 특정한 과업의 완수에 따른 결과

 

다른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 늘 불안한 외부환경에서 벗어나 ‘안전’을 찾는 것이 원초적인 본능이다. 안전을 찾는 무의식, 태아기의 공생적 의존 상태는 안전지향이자 사람 간의 유대다. 안전함을 우리 일상과 가정을 연관시켜볼 때 다소 무미건조하다. 우리가 너무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관계는 잠재적으로 지루하고 예측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처럼.

 

통찰력 또한 그렇다. 프로이트의 인간에 대한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된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통찰력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자주 자기 패배적인 행동 패턴을 반복한다. 인간에는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인간은 이성적이라고 본다)와 반대로 전혀 그렇지 않다는 프로이트, 실제 통찰력은 큰 노력이 필요하다. 콤플렉스(실은 융이 먼저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무의식적 지식과 관련된 감정의 집합이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리의 세계, 인간의 뇌, 신경의 조화인가, 마치 우주의 신비처럼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비유일 듯하다. 나르시시즘, 이른바 자기애는 사람을 어떻게 조정하고, 다루는지를, 섹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성욕이란 기제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본능적인 것, 이외의 또 다른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열등감은 우월감에서 비롯된 거울에 비친 반대편의 모습인지, 대척점인지, 아울러 욕망과 역경, 의미, 수용, 이 모든 것들이 인간 내면의 감정을 이루는 요소인지 아니면 제각각의 따로 존재하는 그 무엇인지, 바로 마음을 치유할 심리치료사의 핵심 아이디어를 다시 톺아봐야 할 이유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종교를 찾고, 심리상담사를 찾고, 심리치료에 관한 사회적 평가, 자본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불평의 해로운 영향에서 관심을 돌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급진적이고 계몽된 사회 정책의 실행을 무기한 연기시킨다고. 고통의 더 중요한 사회적 원인인 부족한 주택, 빈곤, 기회의 부족에 대해 고려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진화적, 생물학적, 정신역동적, 인지적, 대인관계적 원인이 있다. 부의 재분배의 왜곡과 불평등이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해소하면 정신 건강이 회복된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부자들 역시 우울하다.

 

더 평등한 사회는 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문화에 내재한 불안을 경험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빅터 프랭클의 말, 개인은 개별적인 의미가 아닌, 자기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 위대한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성찰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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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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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길, 봄과 맞닿아

 

루이즈 글릭의 열세 번째 시집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은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나온 첫 번째 시집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의 마무리 같은 느낌이다. 노벨상이 시인의 작품에는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한 듯하다고, 글릭은 여전히 그의 이야기를 시로 노래할 뿐이라고 한다.

 

옮긴이 정은귀는 이 시집을 번역하는 동안 글릭의 부음을 들었다. 작업을 그와 같이 했다는 느낌, 시인과 옮긴이는 시를 통해 마치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이었다고, 같은 번역이라도 시인의 죽음을 듣고 다시 읽어 본 시의 느낌이 달라졌다고,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표제작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을 비롯하여 18개의 시가 실려있다. 죽음의 부정, 겨울 여행, 가을, 지는 해, 어이들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 빈방, 어떤 기억들 제목에서 풍기는 왠지 모를 쓸쓸함, 끝에 실린 노래라는 시로 반전을 꾀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깊어지는 겨울 끝에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맞닿아있지만, 이것이 새로운 시작은 아니다.

 

시 “죽음의 부정” 글릭은 여권을 전날 머물던 호텔에 두고와, 이곳 호텔에 묵을 수 없게 돼, 호텔 밖에서 지내야 하는데, 컨시어지의 무심과 세심,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의 동정의 눈길, 친밀감과 배려, 한겨울 추위를 피할 곳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 주변의 도움으로…. 이는 삶의 그것과 닮아있다. 묵을 조건 아니 여기서는 자격이다. 쉴 공간조차 자격을 요구한다. 질서에 따르는 이들, 경계선 너머에서 이쪽을 보며 동정의 눈길을.

 

“모든 건 변해요. 그가 말했다. 모든 건 연결되어 있고요.

또 모든 건 되돌아와요.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떠나갔던 것이 아니랍니다.”

 

모든 것이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는 순리라고나 할까?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해마다 겨울이 오면 노인들이 숲으로 가는 이야기다. 노인들은 숲에서 이끼를 모으고 이끼를 숙성하면서 힘든 겨울을 난다. 협동 농장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인내와 공동의 힘을 모으던 시절의 협동 농장, 이 시는 겨울(인생의 후반부를 의미하든, 어려운 시기를 의미하든)이라는 계절이 몰고 오는 위기(한파, 먹거리) 속에서 반복되는 인간 노동이 갖는 의미, 공동으로 뭔가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의 추위를 어떻게 이기는지. 겨울 끝자락에 묻어있는 봄의 기운은 닿을 듯 말 듯,

 

협동 농장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잘 살려내고, 보살피고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척박한 겨울, 남은 것은 죽어가는 일밖에 없다. 노인들은 일을 해야 한다. 기다림도, 희망도 없는 노년의 노동이, 노동의 방식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차곡차곡, 묵묵히 같은 걸음으로 같은 속도로…. 글릭은 기원을 지우고, 같은 일을 같은 순서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시인이 자신의 생을 정리하면서 쓴 시의 언어가 바로 이런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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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 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알려주는 시간에 대한 10가지 이야기
콜린 스튜어트 지음, 김노경 옮김, 지웅배 감수 / 미래의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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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은 가능할까

 

이 책의 지은이 콜린 스튜어트라는 꽤 독특한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지식의 소통자,전달자, 해설자)의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과학이론의 첫 자만 들어도 울렁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키미테(멀미약, 귀밑에 붙이는 패치)와 같은 효과를 준다. 기실,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출중한 능력이다. 특히 커뮤니케이터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우주의 위대한 신비,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안드로메다 이런 게 은하계에 3조 개가 있다면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지구는 138억 년에 빅뱅으로 생겨나고 계속 팽창하는 모양이다.

 

이 책은 10장으로 구성됐다. 시간의 탄생과 지구 그리고 우주의 나이(1, 2장)와 빛의 속도와 엔트로피 법칙(3, 4장), 상대성이론과 시공간개념(5장), 시간 지연과 블랙홀의 특이점 웜홀과 타임머신, 블록 우주와 시간의 존재(6-10장)를 다룬다.

 

이 책의 열쇳말을 ‘시간’이다. 영화<백투더퓨처>(이른바 벽뚫고퓨처) 영화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역시 시간 여행에 관한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것이다. 시간은 앞으로 갈 뿐 뒤로는 갈 수 없다(엔트로피 법칙). 만약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자, 히틀러를 죽이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오스트리아의 한 소년을 죽였다 치자, 그러면 현실의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이를 할아버지 역설 혹은 타임머신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를 죽이면 아버지는 물론 나도 태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그런데도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열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이 우주 신비 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활용될까?,

 

 

 

 

지구 시계는 우주의 시계로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1년과 365일 기준은 외부의 영향으로 흔들릴 수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지진으로 시간이 빨라지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불안한 지구 시계는 1967년 국제도량형위원회 제13차 공식회의에서 우주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기로 한다.

 

1초의 현대적 정의는 세슘-133 원자가 바닥 상태에 있는 2개의 초미세 에너지 준위 사이를 전이할 때 나오는 빛이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도대체. 그래서 시간은 빛의 속도란 말을 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몇 초전의 과거다. 전달이 시작되는 순간(빛의 속도는 초당 30만 킬로미터), 과거이니, 불과 1미터 앞에서 일어난 뭔가일지라도 시간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절대 현재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절대 시공간개념을 무너뜨린 상대성이론

 

고전역학(뉴턴의 만류 인력의 법칙, 중력이론)은 지구의 중력 때문에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게 되고, 지구는 태양이 끌어당기며, 달은 지구의 중력으로 끌려왔다 벗어났다 하면서 바다의 만조, 간조 현상을 일으킨다고. 그건 그렇다 치자.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시공간이 휘어지는 결과가 중력이라고, 시공간이 구부러지고 형성되고 왜곡될 수 있다면, 공간과 시간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어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면 시간 이동도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 여행의 가능성이 열린다.

 

시간 지연 효과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자 효과이다. 단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자동차의 GPS의 예를 보자. 인공위성에서 차량으로 핸드폰으로 보내는 신호, 한 번에 여러 개의 위성을 사용하여 신호가 돌아오는 시간을 비교하면 GPS가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위성에는 원자시계가 탑재되어 있어야만 신호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시간 지연은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 정상 재생 속도보다 빨리 돌리는 효과, 즉 미래를 향한 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지만, 과거로 돌릴 수는 없다. 이것이 한계요 딜레마다.

 

 

 

 

블랙홀의 툭이점과 양자물리학, 상대성이론의 충돌 등,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두 이론을 양자 중려기 이론으로 조화롭게 통합하는 일은 물리학계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해결하고 싶은 숙제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두 이론이 조화하기 어려운 원인의 핵심은 매끄러움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 때문이다. 시공간은 매끄럽고 연속적인 구조이어야 한다. 반면 양자물리학은 모든 것은 비연속적인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시간의 탄생과 시간의 존재”에 관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새롭거나 새로운 이란 표현보다는 그저 무덤덤하게 무관심하게 바라보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도 무의미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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