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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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길, 봄과 맞닿아

 

루이즈 글릭의 열세 번째 시집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은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나온 첫 번째 시집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의 마무리 같은 느낌이다. 노벨상이 시인의 작품에는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한 듯하다고, 글릭은 여전히 그의 이야기를 시로 노래할 뿐이라고 한다.

 

옮긴이 정은귀는 이 시집을 번역하는 동안 글릭의 부음을 들었다. 작업을 그와 같이 했다는 느낌, 시인과 옮긴이는 시를 통해 마치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이었다고, 같은 번역이라도 시인의 죽음을 듣고 다시 읽어 본 시의 느낌이 달라졌다고,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표제작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을 비롯하여 18개의 시가 실려있다. 죽음의 부정, 겨울 여행, 가을, 지는 해, 어이들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 빈방, 어떤 기억들 제목에서 풍기는 왠지 모를 쓸쓸함, 끝에 실린 노래라는 시로 반전을 꾀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깊어지는 겨울 끝에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맞닿아있지만, 이것이 새로운 시작은 아니다.

 

시 “죽음의 부정” 글릭은 여권을 전날 머물던 호텔에 두고와, 이곳 호텔에 묵을 수 없게 돼, 호텔 밖에서 지내야 하는데, 컨시어지의 무심과 세심,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의 동정의 눈길, 친밀감과 배려, 한겨울 추위를 피할 곳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 주변의 도움으로…. 이는 삶의 그것과 닮아있다. 묵을 조건 아니 여기서는 자격이다. 쉴 공간조차 자격을 요구한다. 질서에 따르는 이들, 경계선 너머에서 이쪽을 보며 동정의 눈길을.

 

“모든 건 변해요. 그가 말했다. 모든 건 연결되어 있고요.

또 모든 건 되돌아와요.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떠나갔던 것이 아니랍니다.”

 

모든 것이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는 순리라고나 할까?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해마다 겨울이 오면 노인들이 숲으로 가는 이야기다. 노인들은 숲에서 이끼를 모으고 이끼를 숙성하면서 힘든 겨울을 난다. 협동 농장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인내와 공동의 힘을 모으던 시절의 협동 농장, 이 시는 겨울(인생의 후반부를 의미하든, 어려운 시기를 의미하든)이라는 계절이 몰고 오는 위기(한파, 먹거리) 속에서 반복되는 인간 노동이 갖는 의미, 공동으로 뭔가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의 추위를 어떻게 이기는지. 겨울 끝자락에 묻어있는 봄의 기운은 닿을 듯 말 듯,

 

협동 농장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잘 살려내고, 보살피고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척박한 겨울, 남은 것은 죽어가는 일밖에 없다. 노인들은 일을 해야 한다. 기다림도, 희망도 없는 노년의 노동이, 노동의 방식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차곡차곡, 묵묵히 같은 걸음으로 같은 속도로…. 글릭은 기원을 지우고, 같은 일을 같은 순서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시인이 자신의 생을 정리하면서 쓴 시의 언어가 바로 이런게 아니었을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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