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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 - 조국의 독립에 바친 뜨거운 젊음,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찬란한 그 순간
장호철 지음 / 북피움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평면적 역사서술 너머 입체적 역동적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을 그리면서
지은이 장호철은 3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오마이뉴스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를 운영했다. 일제 강점기 20, 30대의 찬란한 청춘 시기에 자신의 실존을 걸었다가 스러져간 이들의 비극적인 삶과 투쟁이 나의 것일 수도 있다고 깨닫기도 했다고, 해마다 반복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 등 해묵은 갈등은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픈 현실로 남아있다. 평면적 역사서술로 연대기로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나열하기도 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체적 역동적 인간의 모습으로 남겨진 그 날의 사진 속에서 그들을 그린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유명한 경구는 누가 했든 중요하지 않다. 역사를 잊지 말라는 뜻이 중요하니, 한국 사회에서 독립운동가는 계륵이다. 돌아가신 지 한참이 됐지만, 여전히 이러 저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죽어서도 편히 눈감을 수 없을 정도로, 역사를 잊는 대통령과 극우들은 홍범도 장군을 육사 교정에서 몰아냈고, 이승만 기념관과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설쳐댄다. 역사 망각의 태도에 맞선 기억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 실린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촬영연대 순으로 배치한 것이라, 중요도에 따른 것은 아니다.
책 구성은 2부로 1부는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들, 그 청춘의 초상’에서는 16분의 이야기를, 고종의 통역을 맡았던 신여성, 조선의 앞길에 등불을 켜다의 주인공 스물여덟의 김란사를 비롯하여 스물일곱의 안창호, 서른세 살에 처형당한 사회주의자 김 알렉산드라, 샌프란시스코에서 울린 3발의 총성, 일본의 앞잡이를 처단한 서른두 살의 장인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서른 살의 안중근, 을사오적 이완용을 찌른 스물두 살의 이재명,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스물여섯의 김익상, 만세운동의 유관순, 김상옥, 나석주, 김마리아, 박자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그리고 스물네 살의 윤동주,
2부 ‘돌아온 독립운동가들, 그 청춘의 초상’,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들은 40, 50대 이상의 장년과 50, 60대의 노년이었다. 남북협상을 주도했던 김규식을 비롯한 10분의 이야기를, 서른 살의 김구, 전명운, 차미리사, 김원봉, 주세죽, 엄항섭, 권기옥, 정정화, 장준하 등이다. 여기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많은 독립운동가, 우리는 이들을 찾아 역사의 전당에 모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벌어지는 지도자들의 역사 배반 행위에 항거할 근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방향도 인식도, 용기도, 눈 앞에 펼쳐진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려앉을 것이다.
신여성 김란사의 “꺼진 등불에 불을 밝히다”
1세대 신여성, 1900년에 찍은 한 장의 사진 속 그녀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앙다문 입술에 서린 결기가 만만찮아 보인다. 스물여덟에 미국 웨슬리언 대학에 입학, 학사호를 받고 1906년 귀국 후 이화여학당의 교감으로, 대학설립 때는 한국인 교수로 활동, 1893년 하상기와 혼인, 2년 후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세례명 “낸시”를 받았고, 낸시의 음역이 란사 하, 하란사로 알려졌다가 최근에 김란사로 기록하는 추세, 1911년 개화파 정치인 윤치호는 한국선교현장(영문선교잡지)에 국내 여성 교육 불만 사항을 나열, 여성들이 요리와 바느질도 못 한다고 비판한 것을 김란사가 몇 달 후 같은 잡지에 “항의”라는 제목으로 윤치호의 주장을 맹목적인 편견이라고 재비판했다. 아무튼, 하란사든 김란사든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다. 제자들에게 “꺼진 등에 불을 켜라”라고 말했다. 유관순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선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을사오적 이완용을 처단한 스물두 살의 청년 이재명 열사
노동이민으로 미국에 건너가 안창호가 설립한 애국계몽단체 “공립협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1907년 을사늑약과 한일신협약 체결 후, 공립협회에서 나를 팔아먹은 도적의 숙청 결의에 따라 1907년 10월에 조선으로 돌아온 이재명은 1909년 12월에 이완용 처단, 죽이지는 못했고, 다음 해에 사형형으로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두 달 후의 일이었다. 황현의 매천록과 김구의 백범일지는 그의 의거를 전하고 있다.
이봉창, 윤봉길 의거,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던 임정을 살리다
임정은 집세도 낼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국내외 동포의 지지도 상실하여 존재 가치를 잃어가고 있던 때, 도쿄 한복판에서 펼쳐진 이봉창의 의거,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는 한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을 호전시켰다. 의거에 고무된 미국과 하와이, 멕시코와 쿠바에 사는 동포들은 임정을 후원, 사업확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한편, 장제스와 김구는 육군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에 합의, 마오쩌둥은 임정 존재를 인정하기도, 1940년 광복군 창립대회에 중국공산당을 대표한 저우언라이와 둥비우가 참석할 정도였다고. 윤봉길 의사는 일경의 고문 끝에 1932.12.19.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으로 희미해지거나 잊힌 기억 속의 그들을 오늘로 소환한다. 26년 동안 임시정부를 이끈 민주주의자의 조국광복을 위한 풍찬노숙의 역사 속 사진이 남아있다. 1906년 광진학교 교원 시절, 서른 살의 김구와 어린 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도 보인다.
사진이란 키워드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이지만, 이 책은 시의적절하다. 역사를 잊어버리고 일본이 식민지근대화 도왔다는 말을 부끄럽지도 않게 서슴없이 해대는 오늘,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와 징용에 끌려갔던 한인들의 기억이 아직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일본의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한 한국 정부, 이들에게는 잊혀야 할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더 잊히기를 바랄지도.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