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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내전,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을 연구하는 지은이 바버라 F.월터가 “내전”, “전쟁”은 정치적 성향이 아닌 인종, 종족주의가 밑바탕을 이루고 그 상태는 발발(勃發) 전야라고 보고 있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은 마치 주전자 속 물이 끓어 올라 기체로 바뀌기 직전의 내는 소리나 요란한 움직임은 “파벌화”와 “극단주의”다. 이는 단지 우려에서 나오는 주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 분석과 연구결과로 입증됐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교과서 수준의 설명과 정반대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그 징후는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이든 부분적 민주주의이든 독재체제이든 공통으로 나타나는 <아노크라시(anocracy)> 현상은 완전 독재(autocracy)와 민주주의(democracy) 경계 상태를 의미하는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노크라시는 한 나라를 내전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라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책 구성은 8꼭지다. 1장은 아노크라시의 위협은 모습을 그려보고, 2장 파벌이 어떻게 생겨나고 고조되는지를, 3장에서는 기득권이 없어지는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는가, 지위 상실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 4장에서는 희망이 사라질 때, 5장 촉매, 6장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 7장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 8장에서는 어떻게 내전을 예방할 것인가라는 내용을 담았다.
아노크라시, 정치 불안정 연구단의 정치체 점수 ?10에서 +10까지
정치 불안정의 변수는 사회, 경제, 정치 분야의 38개 변수, 빈곤, 종족 다양성, 인구 규모, 불평등, 부패 등인데, 가장 좋은 불안정 예측 지표는 소득 불평등이나 빈곤이 아니라 정치체의 점수였다. 오늘날 미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아노크라시의 문턱에 선 파벌화된 나라로 빠른 속도로 공공연한 반란 단계로 접근 중이다. 아노크라시는 ?5에서 +5사이에 상태다.
특히, 2020년 미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트럼프지지자였는지, 아니면 소셜미디어 음험한 선동에 사로잡힌 시민들이었는지, 전통적인 공화당원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치적 스펙트럼 자체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백인의 땅이며 지금 백인의 권리가 소수 민족에게 빼앗기고 있다. 이렇게 무장해제를 당하면 결국 우리는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개소리를 담은 MAGA(위대한 미국만들기)내전 상태다.
2021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했다. 무늬만 민주주의이지 내용은 전통적으로 인식했던 전체주의와 독재체제가 새롭게 포장하여 국민의 눈을 가리고 거짓말을 하면서 독재의 고속도로를 뚫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용화시키는 것이다. 안전장치에는 대통령에 대한 제압과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을 귀찮은 장애물로 여기는 것이다. 헝가리의 오르반,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러시아의 푸틴, 브라질 보우소나루 등이 독재자 지망생들이다.
내전의 메커니즘
일종이 ‘각본’에 따라 일어나는 갈등이라면 내전 예방 또한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전이 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기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보면, 보스니아나 우크라이나,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특히 영국의 북아일랜드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의 차별과 아랍의 봄을 계기로 중동국가에서 보이는 현상은 독재에서 급격한 민주주의로 옮아가는 프로그램은 내전 발발환경을 무르익게 했다. 상당 기간 억압된 다양한 불만은 종교 파벌화로 집약되어 폭발했다. 인도의 무디 역시 힌두주의를 주장하면서 무슬림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미얀마의 민주주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찌는 로힝야족의 말살을 눈감았다. 이제는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의 정신과 문화를 지배하는 종교나 인종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생각이 깊다는 독일 국민이 왜 히틀러의 나치 선동에 넘어가 그를 열렬히 환영한 걸까,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말처럼 거짓말도 백 번을 하면 진짜처럼 믿는다는 것처럼. 그때는 오프라인의 선전선동이었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다.
내전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트위터(X)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인종과 종족주의 부추기는 정치, 유럽의 스웨덴민주당 같은 나치당이라 인식됐던 이 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3당, 2당으로까지 부상했으니, 프랑스 또한 그러하다. 인터넷이 정치판을 복마전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파벌화”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민족, 보호, 타자, 분노, 공포 등을 이용한 국내 불평세력의 열등감을 건드린다. “우파 포퓰리즘이 항상 더 매력적”이라는 무기로, 한편 미국 CIA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 등에 관련된 정보(기밀 해제된 2012년 보고서)에서 자생적 극단주의의 진화를 엿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반란은 생활주기를 거치면서 비슷한 발전 단계를 통과한다는 보편성이다. 반란 전 단계에서는 한 집단이 공통의 불만을 확인하고 흥미를 끄는 서사(지지자 규합과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나 신화)를 중심으로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1990년까지는 내전 연구에 참고할만한 데이터가 드물었고, 19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내전에 관한 연구서 또한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 나라와 시간을 가로질러 되풀이되는 공통된 요소들이 없었다. 최근 노르웨이 웁살라 대학에 있는 내전 관련 데이터 수집처는 오슬로 평화연구소, 스웨덴 연구협회, 국제 개발협력청, 스웨덴 은행 300주년 재단 등이 재정을 보태주고 있다.
미국의 의사당습격사건과 세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양상, 이를 부추기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극우들의 활동이 놀랄 만큼 한국의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 정치체 점수로 보자면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궁금하다. 이 책에 실린 동유럽에서 서유럽을 거쳐 대서양 건너 미국까지,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한국에 이르기까지, 참고할만한 책으로는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자블랫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 2024)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