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4년 1월
평점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관계는
소설 제목이 퓰리처상과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와 제목이 비슷, 아니 헷갈릴 정도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은 이렇다. 주인공 모스는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만이 남아 있는 사막의 살육 현장에서 거액이 담긴 돈가방을 발견해 집으로 가져오고 그 가방을 발견한 순간부터 모스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안톤 시거라는 추격자에게 쫓기며 도주를 시작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보안관 벨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음울하게 바라보는데...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했는지?, 글쎄다. 아무튼 이 또한 눈여겨 볼 대목 중 하나다. 정성문의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아니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폴리티스 오브 아고라, 호모 사피엔스
소설의 흐름은 간단하다. 토사구팽의 노령인구, 이들에게 나눠 줄 게 없다는 세상에 반기를 든 노인들의 저항과 시위, 왕년에 학생시위 주동자로 구속되기도 했던 노인, 장갑차 앞에서 서서, 진압을 막는다. 기시감마저 드는 이 대목은 5·18, 6·10을 떠올리게 하고, 1989년 중국의 텐안먼을... 시위대를 향해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던 장갑차가 극적으로 서고, 이후 인구 절반이 노인인 이 공화국에서 노인들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는데. 마치 소련 붕괴의 그날이 떠오르기도 한다. 광장의 정치를 바닥에 깔고... 언제든지 힘없이 나약해보이는 노인들일지언정, 분노의 게이지가 임계치를 넘어서면, 활화산이 된다는 것을...
이런 일련의 흐름을 만드는 계기가 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곁들여 흥미롭게 전개한다. 무인 편의점에 들어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에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덤으로 라이터를 챙겨나온 죄로 육 개월 생활비에 맞먹는 벌금을 내야할 한때 잘나가던 증권맨, 토,일요일 휴가도 반납하고 쉼없이 달려온 그는 정리해고돼(토사구팽), 늙으막에 고물을 줍고 헌종이를 주으러 다니며 공공근로 노인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산업역군의 노후는 "국가가 책임지겠노라"는 진부한 그래서 늘 사기처럼 들리는 클리셰 깨뜨리기
2056년 공화국에서 분리 독립된 노인을 위한 나라가 탄생, 국호는 “광장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지금부터 23년 후, 대한민국은 젊은 너희들의 나라(여의국)와 노인들의 나라(노의국)로 갈리는데, 그 화해의 대목이 상징적이다. "목욕탕 정상회담"이다. 실오라기 한올도 걸치지 않고 보여줄 것 다 내보이면서 허심탄회하게... 목욕탕에 누가 더 오래있나 시합에서 이기는 사람 말 들어주기, 아무튼 첫째, 두 공화국은 영구평화, 상호불가침조약, 둘째, 양 국민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국적 이동을 제한하지 않고, 셋째, 기업의 자유로운 교역을 보장하는 경제공동체로 이 땅의 번영을 약속, 넷째, 두 공화국은 상대국 국민을 자국민처럼 존중하고 보호한다. 다섯째 외세 침략에 공동대응, 여섯째 두 공화국은 국민 갈등과 세대 갈등을 불식하고 항구적인 평화 공존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인간 존중 사상을 헌법 전문에 수록, 경로효친 사상을 각급 학교의 정규 교과에서 넣는다. 100세 시대에 생길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해소와 슬기롭게 다가오는 초고령사회 타고 넘어 노인의 나라로 이행될 수있다는 새로운 길의 모색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 명암
작가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과정을 거치면서 한때 노동운동이냐, 밥벌이냐를 고민했던 시대를 살았던 노인국대통령의 입을 빌어 “열렬히 싸우는 노동운동보다, 착한 경영자”가 되는 길도 있다는 말을 남긴다. 또, 사회문제가 된 이혼, 이에 관한 생각도 드러내보인다. 혼인 정년제, 결혼 30주년이 넘으면 단 1번만 혼인 정년을 이유로 이혼 청구가 가능한 나라. 노인 문제를 다룬 이 소설, 주거와 성생활, 그리고 그들이 현재 사회에서 뭘 어떻게 하면서 정년 이후의 삶을 꾸려나가는지, “인간다운 생활”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이제는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안에는 80~90년 초반에 걸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변모,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치변동 흐름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의 60년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몰입도가 좋은 이 소설은 우화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구 공화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치권의 상징인 여러 명의 특징이 녹아있기도 한다. 읽는 이들의 경험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다. 유쾌한 반란이다. 노인 일자리를 만들면 청년들이 일할 곳이 줄어들까?,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워라벨을 하든 뭘 하든, 삶 자체가 피곤한데 둘이 살기도 귀찮은 데서 시작된 선택들이 한 세대, 두 세대 후의 우리 사회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