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ㅣ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평점 :
세상에 “로봇”이라는 말을 내놓았던 차페크
카렐 차페크는 1890년에 체코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15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이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1920년 로봇이라는 말을 세상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희곡<R.U.R>을 펴냈다. 100년 전에 ‘강제노동’, 체코어로 ‘로보타’에서 따왔다. 그는 이 희곡을 통해 현대기술 문명의 비인간화를 상징적으로 알렸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모던 타임스>(1931)와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에 관해서 말이다. 그의 글쓰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희곡은 물론, 에세이, 소설, 동화도 썼다. 장르에 따라 다른 글쓰기를 했던 모양이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정치적 신념인 ‘반나치’ 어쩌면 세속의 눈에 비친 모습이 ‘조금 미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죽기 오 년 전인 1933년부터 체코 문학의 최고봉이자 차페크 문학의 정수인 철학 소설 3부작 <호르두발> <별똥별> <평범한 인생>을 연달아 내놓았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로 꼽힌 차페크, 이 책의 옮긴이 이리나는 책 뒤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는 20세기가 카프카와 쿤데라를 발견한 시기라면 21세기는 차페크를 재발견할 시기라고”, 즉,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톺아봐야 한다고.
그는 당대의 영국, 네덜란드, 북유럽,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면서 인상적인 삽화와 함께 여행기를 남겼는데, 이 책<조금 미친 사람들>은 그의 스페인 여행기로 “인상적인 여행기” 시리즈의 하나다. 왜 이렇게 여행기를 많이 남겼을까?, 아마도 체코 정부와의 관계에서 그에게 정부 직책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올 때마다, 그는 거절했지만, 당시 체코는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럽에서 나름대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고, 그런 노력의 하나로 차페크의 여행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조금 미친 사람들
조금 미친 사람들이란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229쪽)라는 의미다. 뭔가에 몰입하여 밤낮도 모른 채 거기에 열중하는 사람은 우리는 “~ 미쳤다”라고 하듯, 스페인 여행에서 인상적인 만남이 그에는 조금 미친 사람들로 보였다. 로봇과 강제노동, 문명과 문화, 사회, 풍경, 사람이 다 들어있다. 스페인과 체코, 스페인과 영국, 프랑스도
20세기 초, 증기기관차가 진화, ‘국제특급열차’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열차는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차장 너머로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여행은 역시 완행이다. 지방 곳곳의 역을 들러 천천히 가는 그런 기차 여행을, 여기서 차페크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차페크에게 여행은 단순히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한다는 관광이란 의미가 아닌 다른 문화와의 진정한 만남이다. 이런 만남은 예리한 관찰과 통찰이 요구된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그 해석이 달라질 수가 있음이다. 이 책은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남과 북 급행열차에 관한 소회, 안달루시아, 세비야 거리 알카사르 요새, 만틸라, 트리아나, 투우와 일반적인 투우, 플라멩코 부엘타에 이르는 여정 속에서 그에게 다가온 스페인의 마을과 거리, 사람들, 풍경, 그리고 이들 사이의 문화, 사회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스페인” 바로 그 자체다. 세계 어디나 사람은 같다.
그곳 사람들이 그곳 사람 자체라서 즐겁고 놀랍다
“우리 여행자들이 그토록 즐겁고 놀랐던 이유는 단순히 세비야 사람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세비야 사람들이 세비야 사람 그 자체라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218쪽)이라고, 포르투갈 사람들을 그들이 포르투갈 사람이고 우리가 그들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있고, 유일신을 믿으며, 보데가와 선술집을 닫기만 하면 온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들만의 문명화된 모습이 받아들여져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공원, 정원은 무엇인가, 그 문화에 관하여
스페인의 정원 은밀한 꿈이 담긴 곳, 영국의 공원은 경작된 풍경, 프랑스의 공원은 기념비적인 건축물, 바로 이들 정원과 공원에 담긴 혹은 새겨진 역사가 있다. 차페크는 스페인의 정원을 이곳에서 생활하고 지나쳤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공원, 정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하는 대목이다. 문화는 당연히 포함되지만, 동물원도 공원이며 정원이다. 여기에 담겨진 영국 제국주의의 뻔뻔함 또한 눈여겨 봐야, 이렇게 비교해보면 공원, 정원의 의미가 새롭게...
이 여행기로 1920년대의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엿보는 그 이상의 상상을 할 수 있다. 차페크는 관광객이 아니다. 그저 이웃 동네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 그곳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은 본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거리야말로 가장 좋은 박물관인 것처럼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