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장마르크 로셰트 지음, 조민영 옮김 / 리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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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관계 맺기, 한편의 늑대 우화

 

일제강점기, 우리 강역의 산속의 최고 포식자 호랑이와 늑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멧돼지, 자연질서에 인간이 개입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인간세계로 고스란히….

 

<설국열차> 시리즈의 지은이 장마르크 로셰트, 그의 2019년 작품이 이 책 <늑대>이다. 줄거리는 양치기 가스파르, 프랑스 국립공원 안에서 양 떼를 돌본다. 이 양을 노리는 늑대와의 팽팽한 긴장, 양을 물어 죽이는 늑대와 양을 지키는 양치기, 이런 구도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듯한데 이야기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뭘 이야기하고자 한 걸까? 늑대의 복수, 양치기의 복수, 끝없는 대립?, 아니면 자연과 인간이 새롭게 관계를 맺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걸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가 딸린 어미 늑대가 양 떼를 공격하다 가스파르 총에 맞아 죽는다. 가스파르는 죽은 어미의 새끼로 보이는 늑대와 마주치지만, 너무 어려 죽이지 못하고…. 그가 잡았던 산양 내장을 꺼내 놓고 온다. 독수리에게도 먹이를 남겨주고 온다.

 

국립공원 레인저가 가스파르를 찾는다. 총에 맞아 죽은 암컷 늑대를 발견했다고, 그러나 총알을 어디에도 없더라는 것이다. 국립공원에서 늑대를 죽이면 이 또한 범죄라고…. 가스파르는 레인저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비밀 하나 알려주지, “양치기와 늑대는 공존할 수 없어.”라고,

 

어린 늑대는 이제 모습을 갖춘 수컷 늑대로 커가고, 새로 들어온 양 떼를 절벽으로 몰아 떨어뜨린다. 무려 300마리를, 전멸이다. 거기에 아끼던 개 맥스까지 죽었다. 그리고 그날 밤하늘을 가르는 복수에 찬 늑대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늑대사냥, 복수

 

가스파르는 늑대를 잡아 죽여버리겠다고…. 어느 날 해발 3400미터의 겨울 산속에서 분노에 찬 늑대의 울음소리, 나오라 한 판 붙어보자…. 가스파르와 늑대의 대결이 시작된다. 늑대는 가스파르를 깊고 험한 곳으로 유인한다. 총에 맞지 않을 거리를 두면서…. 눈보라는 며칠째 계속되고,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며 겨우 버텨내는데, 비몽사몽, 환상 속으로 그의 양치기 개 막스가 나타나고, 파병 가서 죽은 아들 다미앵이 전투복 차림으로 산막을 찾아오고, 그의 어머니의 안부와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데…. 눈보라가 그치고 늑대는 가스파르 앞에서 또 나타나고, 이를 쫓는 가스파르, 때마침 사격 거리를 조금 벗어난 거리에 들어온 늑대를 향해 총을 쏘는데, 총소리와 함께 늑대의 한쪽 다리를…. 뒤에 이어지는 눈사태로 그도 파묻히면서 다리가 부러진다. 눈을 헤치고 나온 가스파르, 밤이 되자 눈을 파고 들어가, 또다시 비몽사몽에, 그의 아내가 나타나 말을 건넨다. 날이 밝아오고 지칠 대로 지친 가스파르는 쓰러졌다. 그 앞에 나타난 늑대를 죽이려고 칼을 꺼내려 했지만,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늑대는 그에게 산양고기를 놓아둔다. 어린 시절에 가스파르에게 빚을 갚는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

 

그해 겨울 양 떼가 늑대에게 공격받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리, 디(장소)에서 커다란 하얀 늑대가 암컷 세 마리와 함께 있는 것을 봤다고…. 대미는 양 한 마리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가스파르는 죽은 양을 둘러업고, 그가 어미 늑대를 쏴 죽였던 그곳에 놓아둔다. 그곳에 나타난 늑대…. 피를 나눈 형제 바로 그 어린 늑대였다.

 

가스파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늑대와의 복수전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던 걸까?, 누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든 간에, 늑대는 양 떼를 모두 죽게 하고 가스파르가 아끼던 개 맥스마저…. 이렇게 복수를 했다(진짜 그랬는지 아니면 사고였는지, 늑대가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는지)고 믿는다. 가스파르의 늑대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다행스럽게도 복수의 결말은 화해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 않을 만큼, 그들만의 안전거리 속에서 늑대는 양을 더는 헤치지 않고, 가스파르는 죽은 양을 그 어미를 쏴 죽였던 그곳에 가져다 놓았다.

 

아마도 늑대는 어렸을 때, 가스파르가 베풀어주었던 은혜에 보답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낮선 늑대 암수가 그의 구역에 나타나자 목숨결고 싸워 수컷 늑대를 물어죽이고, 암컷 늑대를 보낸다. (여기에서 복수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로 늑대의 정서를 표현했나?, 아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건은 양떼의 죽음과 가스파르가 아끼던 목양견 맥스의 죽음이다. 늑대 냄새를 바람결에 맡은 양 떼들이 혼비백산, 공포 속에서 일어났던 집단사고를, 가스파르는 늑대 짓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다. 양 떼 중 목줄이 물린 흔적이 있던 양은 25마리, 늑대의 본능이었나,

 

늑대는 해수다? , 늑대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채우기에 방해되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처리 방식, "말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이리는 말한다. 본래 우리의 삶터였던 이곳을 인간들이 밀고 들어왔어. 우리의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없애버리고,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이 영화처럼, <늑대> 역시, 사람들의 이익을 해치는 해수로, 늑대를 잡아 죽이려 한다. 본래 늑대들의 보금자리였을 이곳 산 깊은 국립공원….

 

이 책은 보기보다 어려운 대목이 있다. 국립공원에서 양치기할 수 있는가?, 왜 설정이 국립공원이라는 의문, 이 책이 전하려는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모르겠지만, 국립공원으로 설정한 것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깨고 그 영역을 침범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아닐지,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과 화해, 이는 한편의 우화다.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가스파르가 어른 늑대에게 사냥했던 고기를 나눠줬더니, 그 늑대가 사경을 헤매던 가스파르에게 은혜를 갚았다고…. 마치, 호랑이 형님 우화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지은이의 바람…. 자연과 함께하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고….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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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픽션 - 과학은 어떻게 추락하는가
스튜어트 리치 지음, 김종명 옮김 / 더난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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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뇌리에서 줄 곳 떠나지 않은 사건이 있다. 대한민국 과학계의 세계적인 '속임수' 말하자면 과학의 사기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줄줄이 취소되는데 그치지 않고, 국가 가 동원되어 사기에 가담했다는 냉혹한 평가가 따르기도 했다. 기실 과학의 사기는 꼭 연구자 한 사람의 출세욕에서 생기지 않는다. 거기에 뭔가가 더해지고 그것이 자가발전하여 큰 잘못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세겨둬야 한다.

황우석 사태의 배경은 황우석 개인의 영웅심과 허영심이었을까, 황우석은 주변의 기대와 우리 사회의 초일류, 세계 1위, 세계 유수 병이 만들어 낸 국가적인 과학사기다. 우리나라를 세계 과학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던 이들이, 황우석 사태가 터지자마자, 그런 우려가 없지 않아 있었다고, 발 빼기가 바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다. MBC<PD수첩>와 방송사는 매국노로 몰려, 건물 앞에 연일 항의시위가 이어졌다. 놀라운 풍경이다. 영화<제보자>의 한 장면….

영화는 황우석이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심층적 접근이 아니라, 황우석 사태에만 초점을 참으로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이 책 또한 세계 곳곳에 있는 황우석을 국가권력이 개입할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모두 인류를 위한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속내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들일까, 경제적 수치로 환산하는데 바쁘기만 하다.

이 책의 구성은 3부 8장 체제다. 우선 1부는 픽션을 닮은 과학이란 주제로 과학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현되는가, 들키면 한 번에 왕창 가는데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할까, 과학적 위기를 자초한 학자들의 이야기- 짐바르도와 밀그램 같은 집단 권력, 계급의 심리라는 실험을 조작했던 이들의 사례를 싣고 있다.

2부에서는 살수와 오류를 은폐하는 학자들의 속마음을 톺아본다. 얼마나 많은 논문이 철회되고 있는가? 라는 현상을 통해, 과학의 복불복 게임화와 상업화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밝힌다.

과학자의 양심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실험결과, 통계, 조금만 비틀면 대단한 성과이며, 새로운 발견일 수 있는데, 지금까지 투자해 온 노력과 시간 그리고 금전적인 지원, 이런 결과가 공개되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어렵게 잡은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 순간만 피하면 대충 얼버무리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라는 상황과 조건 그리고 환경이 순수한 과학자를 어느덧 타락한 사기꾼으로 몰아간다.

통계는 참으로 유혹적이다. 하얀 거짓말, 빨간 거짓말, 개소리도 있지만, 진짜로 무서운 건 통계조작이다. 늘렸다 줄였다. 같은 수치라도 강조점을 달리하면 그런가 하고 넘어간다. 같은 과학자끼리 발표된 논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실험방법대로 하면 재현 혹은 같은 결과에 도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때, 사실 그대로를 공표하고 연구가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풍토, 이 역시 개인의 욕망과도 연결된다.

논문조작의 파급효과 등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의 결론은 과학은 허구가 아니다. 과학은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이미 과학은 소설이 됐고 허구가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인가,

지은이는 과학은 좀 더 지루해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잘못된 동기부여와 잘못된 출판체계와 왜곡된 학계, 과학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도구들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고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더 많은 연구 활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에밀졸라는 예술을 괴팍함과 눈을 통해 보는 자연의 한 모서리라 했다. 현재 과학계에서 벌어진 일들, 이를 혁신하는 일은 절대 간단치 않다.

우선, 과학은 명백히 밝히는 것이다. 증명하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해서 사람들은 어렵다고 한다. 뭐 어려워야 있어 보이듯 말이다. 과학자들에게 요구할 일은 아니다. 다만,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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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악에게 묻는다 - 누구나 조금씩은 비정상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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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악은 늘 존재하며, 상대적이기도 절대적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본 악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선의 반대말과는 다르다.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상 심리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 남에게 불안감을 주는 것도 악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대학강단에서 5년간 강의록을 정리한 것이다.

 

성선설, 성악설, 아니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세상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도록 태어났을까?,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심리적 지경에 갇혀 본의 아니게 악을 저지른 건 아닐까, 이다.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는 말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 이나 악하다는 ‘성악설’의 논쟁 가운데 있지 않다. 그는 인간은 ‘악과 선’의 공존한다고.

 

누구에게는 착한 사람이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악한 사람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선험적,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선과 악의 뚜렷한 구별은 사실상 어렵다. 또 선악은 모호하게 엮여있기도 하고, 바라보는 방식과 상황에 따라서 판단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는 출판사와 인터뷰에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그리고 이 책을 쓴 계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이론서를 찾던 때였어요. 서점에서 심리학 이론서들을 살펴보던 중 어네스트 베커라는 죽음심리학자의 <죽음의 부정>이라는 책의 제목에 이끌렸어요. 그래서 선 채로 읽게 됐는데, 이런 말이 눈에 띄더라고요. ‘자연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이 서로 물어뜯고 죽이게 만드는 잔인한 창조자’라고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결국 자연의 다른 피조물들을 물어뜯고 죽임으로써 생존하는 필연적 악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살기 위해 끊임없이 악을 행하고, 자신에게 시시각각 닥쳐오는 자기 존재 파멸의 공포인 죽음을 어떻게든 유보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알기 위해, 악을 연구하게 된 겁니다. “(YES24 7문 7답 중에서)

 

 

이 책은 13장으로 구성됐는데, 집단과 계급의 악, 무능한 생각이 만드는 악, 거짓말의 진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등을 다루고 있다. 우선 1장이 꽤 재밌다. 인간은 정말로 공정과 평등을 지향할까 하는 주제로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의 ‘감옥 실험’통해 평범한 대학생이 교도관과 재소자 역할극을 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집단과 계급이 자신들도 모르게 권력이 되고, 이를 휘두르는 가운데 희열을 느낀다는 점, 하지만, 이 실험 자체는 심리학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39년 만에 영화<엑스페리먼트>에서 다시 보여주고 있다.

 

2장에서는 땅콩회항사건, 백화점 점원을 주차장에 무릎 꿇려놓고 해대던 갑질은 사회적 공분을 샀는데, 왜 갑질과 차별을 멈추지 못할까, 라는 주제로 무능한 생각이 만드는 악을 설명하면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논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 어떻게 그들 속에 내재한 악이 깨어나게 됐는가를, 생각의 무능은 행위의 무능으로…. 결국, 자신이 행한 악이 악인 줄 모른다는 것 자체가 무섭다.

 

인간을 복종시키는 권위의 힘

 

권위는 가상의 실재가 만들어 낸 무형의 힘으로써 물리적 힘이 아닌 상징적 힘으로 다른 이를 복종시키는 권력을 의미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어떤 특정한 사람 그 자체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직위와 상징에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관한 실험을 소개한다. 유명한 밀그램의 전기충격장치는 인간 마음속에 내재한 악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보면 마치 인간은 악하게 태어났는데, 교육 등을 통해 그 악성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기에 건넌 뛰련다.

 

사이코패스는 악인가?

 

이에 관해서는 여러 학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데, 인류의 돌연변이라 보는 견해에 가깝다. 사이코패스는 살기 위해 냉철한 이성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미래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뭐 이를 인류 번영을 위한 양날의 검이라는 표현이다. 이수정 등 텔레페서들이 나오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극히 네거티브로 쓰고 있어, 학교 역사 선생님이 말하는 역사보다는 설민석이 말하는 걸 역사라고 이해하는 학생들처럼, 이들 범죄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 책은 교양서다. 우리 일상생활과 내 주변의 ‘악’을 어떻게 봐야 할까?, 대학강의 교재라는 점에서 그 한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비교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흔적, 절제의 고심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장애인차별을 당연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보다 경제적 처지가 어려운 이들을 부족한 사람이나 덜떨어진 낙오자로 비웃는 우리 사회 그 자체가 ‘지옥’이다, ‘악’이다. 20·30세대에게는 더 가혹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없는 사람의 겨울이 더 혹독한 것처럼,

‘악’이란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이해 지평을 넓히는데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된다. 널리 읽히기 바란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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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를 하는 마음 - 오해를 넘어 이해로
임민경 지음 / 아몬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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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올바른 이해로 이끌기 위한 전 자해러 임상심리전문가의 세상을 향한 고언 자해를 하는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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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를 하는 마음 - 오해를 넘어 이해로
임민경 지음 / 아몬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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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를 경험했던 임상심리전문가의 세상을 향한 고언 “자해를 이해해 주세요” 

 

한국 사회에서 자해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2010년 후반의 일이다. 2018년에는 자해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여러 시사 언론 매체에서 자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하게 됐다. 왜 이 시기에 그런가, 사회적 배경을 들어 설명하는 이도 있지만, 우선은 자해의 기능이 뭔지, 왜 자해를 하는 것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겠다. 

 

도대체 왜 자해하느냐?

 

자해하는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해는 보편적인 인간 행동에 속하지 않으며 분명 어느 정도 병리적이지만 미친 사람이나 하는 짓은 아니다. 단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 방법이 자신을 해치는 행위였다는 점이다. 자해는 정서적 위안을 즉각적으로 얻기 위해 선택한다. 무슨 말인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데 왜 자신을 해치는 행위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자해의 기능이란 걸 알게 되면 이해가 될 듯하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해, 그리고 자해하는 마음을 적고 있다. 자해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

 

자해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자해는 유행한다, 자해는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다. 자해는 손목을 긋는다(리스트 컷). 주로 여성이 한다. 자해는 주로 청소년기의 문제로 크게 문제화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해라는 신호를 너무 쉽게 본 듯하다. 

 

자해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자해 연구자들은 최초의 자해자로 스파르타 왕이었던 클레오메네스 1세를 들고 있다. 헤로도토스<역사>에 따르면 아마도 정신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의학적인 최초보고는 1846년 독일 의사 에른스트 폰 베르크만의 논문에서 등장한 조울증 추정의 48세 여성이 마태복음의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버려라 라는 구절을 읽은 후, 자신의 눈을 빼버렸다 한다. 아무튼, 이런 자해를 현대의 연구자들은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라고 본다. 

 

19세기 중반, 성별에 따라 자해 원인이 달랐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병역, 세금, 그밖에 의무이행을 피하고자 자해한 남성들의 사례가 보고됐다. 이 시기에 남성의 자해는 경제적, 실리적 관점에서 받아들여졌다. 한편, 여성은 히스테리아(이 용어는 자궁 문제에서 기인했다고)와의 관련으로 접근한다. 현대 이르러 남성도 히스테리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 

 

자해는 ‘관종’?

 

자해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질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렇다면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 것일까, 관심을 끄는 것으로 그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해결방법인가, 지은이는 자해를 해봐야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자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식처럼 단순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의 관계나 관심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고 한다. 

 

 

 

 

자해의 기능

 

자해는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자해로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듯, 자해라는 탈출구를 긍정하는 뉘앙스로 들릴 수 있어, 중립적인 언어선택이 ‘자해의 기능’이다.

 

즉, 자해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또 확인한다는 것이다. 만약 괴로운 정서 상태나 신체 감각을 빨리 가라앉혀 주는 약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약을 찾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해가 바로 진통제로 작용한다. 득보다는 실이 많기는 하지만, 

 

자해의 심리적 요인들

 

미국의 심리학자 왓슨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그는 나에게 건강한 12명의 아이와 그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달라. 그러면, 그 아이 중 한 아이를 무작위로 골라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되도록 훈련할 수 있다. 의사, 법률가, 예술가, 실업가 등으로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사고 발상인가, 어린 앨버트 실험, 11개월 된 앨버트에게 흰 쥐를 보여주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려고 하면 큰 소음을 내서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후, 앨버트는 잘 가지고 놀던 흰 쥐를 보기만 해도 울고 난리를 친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보여주는 예였다. 

 

자해를 새롭게 보기

 

자해를 경험했던 지은이는 심리학을 공부했고, 자해러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임상 심리전문가가 됐다. 그는 우리 사회가 ‘자해’에 대한 이해도,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마치 벌레 보듯 피하려 한다. 얼마나 잔혹하고, 냉정하면 제 팔목을 그어버렸을까, 충동적이지 않나, 생각이란 걸 할까?, 이 모든 것들이 자해에 이르는 심리상태, 즉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동기와 과정을 필요 없다. 결과만이 중요한 사회에서 ‘자해’란 인생의 낙오자들이 하는 도피행위라고, 한치의 이해심도 배려도 아깝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여러분 주변에서 누군가 ‘자해’를 했다면 어떨까, 각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 당사자의 성격과 행동으로 봐서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혹은 응, 언젠가는 저지를 줄 알았지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했으면,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나 봐 따위의 해석도 나올 수 있다. 또 정반대로 누군가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거 아니야라는 반응, 자해에 대한 세상의 이해는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자해의 기능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자해는 개인의 내적 기능과 개인 간 기능을 한다고, 전자는 자기 정서 조절에 미치는 영향을 후자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지은이는 자해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심리학적 실험과 이론을 끌어와 설명한다. 자해는 정말 죽고 싶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만이었을까? 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자해한 이의 심신 상태는 어떠했는가를 먼저 살펴보라고 한다. 자해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해라는 다소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에는 어쨌든 그 기능이 있다는 점을 새겨둬야 한다. 자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게 아니라, 그런 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누구(자녀, 형제, 친구 등)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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