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심증주의 - 변호사 유머와 함께 보는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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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


한국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칼 대신에 법전을 들고 눈을 뜨고 있다. 디케,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정의 여신은 후대에는 유스티티아로 불린다. 저스티스(정의)는 여기서 유래한다. 여신 디케는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저울, 그리고 안대로 눈을 가린 모습도 있다. 


변호사인 지은이는 이 책 곳곳에 변호사와 관련된 유머를 싣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은 ‘불신과 부러움’, 즉 양가감정이 존재한다. 변호사는 정의의 수호자인가, 정의로운 변호사는 존재하지 않는가?, 여기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가 규명되어야 하는데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 유머 3- 범인은 누구?


정의로운 변호사와 산타클로스, 경찰이 한 방에 있었고, 그 방 탁자 위에는 많은 돈이 놓여있었다. 잠깐 사이에 정전이 일어났다가 불이 켜지자 돈이 사라졌는데 누가 그 돈을 가져갔을까? 정답은 경찰이다. 왜?, 정의로운 변호사와 산타클로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자들이기에(29쪽)


변호사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위험한 외줄 타기) 사람이라고들 한다. 아무튼, 지은이가 변호사이기에 이런 우스갯소리도 해도 탓할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직업에 과한 유머니 뭐 괜찮지 않을까싶다. 


이 책의 핵심은 실제 법원의 판결에 터 잡아, <자유심증주의>가 재판정에서는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있을까 하는 이야기다. 자유심증주의는 민사소송법 202조,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근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 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이 책이 구성은 2부이며, 1부는 9장에 걸쳐 4개의 사례와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2부는 편지, 증거자료 목록을 싣고 있다. 글이 보통 책 편집과는 조금은 형식을 달리하고 있어, 생소하기도 하지만, 지은이의 주장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국가가 재판권을 독점하고, 국민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 공정, 정의, 형평, 논리와 경험의 법칙(경험측)에 터 잡아 사실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공인이다. 법은 판단의 근거이며, 양심은 보편적 양심(사람에게 보통기대하는 수준), 법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이며, 정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다. 정의를 둘러싼 담론은 분배를 둘러싼 네 가지가 쟁점이다. 무엇을 분배할 것인가,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어떤 기준에 따라 분배할 것인가, 누가 분배 기준 요소를 판단할 것인가이다.


진실과 정의, 자유심증주의 


이 책에 실린 사례의 바탕에는 진실과 정의 그리고 자유심증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열쇳말이다. 진실이란 거짓 없는 사실이다.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말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장애가 있다. 그리고 자유심증주의는 구체적인 재판과정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이자 도구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자유심증, 여기서 자유란 법관 맘대로 재단하라는 게 아니라 사회정의와 형평 이념에 근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르라는 규준에 맞춰야 한다(한계 혹은 조건). 현실에서는 “법관의 특권인 것처럼” 마치 법관에게 주어진 재량 혹은 자유처럼 여기고 있다는 증거나 정황이 판결에서 읽히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 왜, 이 책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 H 건설 사례에서 뚜렷이 보인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눈을 가렸을까? 한 손에는 칼, 또 한 손에는 저울을. 그만큼 형평을 블라인드처리 됨으로써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터 잡으라는 기본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자유심증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에 걸맞은(삼권분립의 원칙고수 장치로서)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사건 등 이른바 정치 판사라는 표현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겠냐는 우려감, 불안감 또한 존재한다. 변호사 유머가 이제는 사법부의 유머로 확대, 확장될 수 있다. 아니 확장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정치 판사, 정치검사들 이들은 모두 국민의 편에서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침해된 재산권을 회복시켜주는 든든한 방패이자 심판관이었는데, 이제 그 이미지가 흔들리고, 신뢰하지 않는 경향도 짙어진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의 형사재판은 말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재벌에게는 한 없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 없이 가혹하고 냉정한 법적 판단, 이중 잣대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일반의 법감정이니)라는 비판이든 비난이든 피해갈길이 없을 듯하다. "자유심증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가 하는 전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법률가 혹은 법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수준이기는 하지만, 법과 양심, 정의, 형평, 공정 등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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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로 씽킹
이예지 지음 / 더로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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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로 씽킹


too better thinking(두베러 씽킹) 이렇게 읽으면 <두 배로 씽킹>이 된다. 지은이가 “생각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목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아~하다.


아들 쌍둥이를 단기 동자승으로 출가시켰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에 또 한 번 빵하고 터졌다. 두 아이의 다름을 왜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 물건은 마음만 먹으면 새것으로 바꿀 수 있지만, 생각이 고루해지고 틀에 박히기 시작하면 바꾸기가 힘들다. 이른바 고정된 관념(고정관념)이다. 자기 생각에 갇힌 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간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건, 몸에 익숙한 옷을 벗어 던지고 익숙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부자유스럽다. 


지은이는 능력과 열의보다 중요한 게 바로 사고방식이다. 비판적인 사람은 비판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은 자유고,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책은 똑똑하게 사고하는 법을 소개한다. 5장으로 구성됐는데 생각하기를 톺아본다. 상·하, 좌·우로 톺아본다. 1장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첫 쪽부터 창의력테스트가 나온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의 차이, 지식의 폭을 넓히는 방법, Why(왜)의 중요성을 다룬다. 2장 거시적으로 생각하기에서는 영감의 공간과 피드백으로 성장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3장에서는 비상식적으로 이른바 역발상이다. 세상은 어떻게 보는가 그 각도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정면으로 보는 게 상식이라면 뒤집어보고, 비틀어보는 게 비상식적인 태도일 듯하다. 4장 구조적으로 5장 긍정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기의 5부문, 영역이라고 해도 괜찮다. 


추석에 고속도로가 꽉 막히는 이유, 인지의 유사성, 비슷한 사고 틀


이른바 인지의 유사성 때문인데, 예를 들면, 올해는 추석 명절이 평일 그리고 주말 사이에 낀 샌드위치다. 연차휴가를 쓰면, 아흐레 정도 푹 쉴 수 있다. 긴 명절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푹 쉬고 새벽녘에 출발하면 고속도로가 붐비지 않을 것이라고, 이게 상식적이라면 상식인데, 모두 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속도로가 막힐 수밖에. 알고 보면 간단한 사고법인데 말이다. 


비상식, 고정관념은 조금만 비틀어보면 전혀 다른 가치의 발견으로 


그러면, 비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인지의 유사성이 있음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수 있다는 점, 즉, 조그만 신경 쓰면…. 세상은 보기 나름이라는 좋은 예로 오늘날 최고의 발명가로 꼽히는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일생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놀이였을 뿐이다.” 역발상이다. 하기야 노동은 가치를 만들어내지만, 그저 생계수단으로서라면 힘들다. 그런데 활동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수입이 생긴다면, 한나 아렌트가 1950년대 중반에 쓴 <인간의 조건>(이진우 역, 한길사, 2019)에서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관점과 행위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역량들이 파괴되지 않는 한 그들은 깔끔하고 예측할 수 있는 모형에 맞지 않는다고 갈파했던 대목과도 통한다. 


일체유심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마틴 셀리그만이 말하는 긍정적 사고는 그가 30년 동안 연구했던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의 사고방식 차이, 후자는 스스로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고, 전자는 그 반대라고, 위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사람과 비판적인 사람의 사고방식과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생각하기”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비판과 비평, 비난을 구분해서 적확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체로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데, 듣는 사람도 대충 구분한다. 이른바 ‘암묵지’ 때문인데, 생각하기는 바로 개념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까, 창의적, 비상식적, 거시적, 구조적, 긍정적, 5개 부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생각법이다. 창의적으로 되려면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즉 비상식적으로, 큰 틀에서 구조적으로 이른바 전략적 사고도 구조적으로 생각하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생각 디자인하기를 권하는 게 이 책이다.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사고의 폭 넓히기, 사고단련법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힌트가 가득 담겨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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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근후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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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지은이 이근후 선생의 이 책<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은 90대의 정신건강과 의사로서 또, 현자로서 삶의 깊이에서 나온 사유와 지혜를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인생은 늘 기대할 게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기대를 저버리는 순간, 인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생물적인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래저래 변명처럼, 사회 경제활동의 장에서 은퇴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나만의 인생을 즐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생활고에 밀려 접어야 할 때도, 건강상의 이유로 포기하기도 한다. 


아마도 사회 경제활동을 할 때 우리는 짓누르는 부담, 의식적, 무의식적이든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아오다 불현듯 삶이 헛된 건 아닌가, 나는 잘살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런데 우리는 닫힌 문만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라는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기 전까지 닫혀버린 삶이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삶이 헛되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제목으로 어찌 우리는 죽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처럼 구는가를 비롯하여 영원한 상실감에 대하여, 죽음 앞에 담담한 사람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면, 왜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을까 등이 실려있다. 2부, 백만 가지 참견 속에서도 끝끝내 ‘나’로 살아가리에서는 부주의한 칭찬과 경솔한 비판으로 비롯하여 당신은 누구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서 사는가라고 묻는다. 나를 평가하는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는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기, 나는 누구이냐는 물음이 필요하다고, 3부 인생이란 길고 긴 터널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담고 있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스스로 나는 누구일까, 내 인정욕구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른바 자기 성찰을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나이를 먹다 보면 나를 소개할 말이 점점 사라져 간다고, 젊은 시절 나에게 뭐 하는 분이냐고 물으면 나는 의사나 교수 아니면 한 집안의 가장이라고 답할 수 있었다. 이제 이름 석 자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에 따라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는 문교부 장관이라는 어느 분교장 선생의 사례를 소개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존재를 증명하면서 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상실감은 이렇게 이상행동으로 나타나기도, 


어찌 우리는 죽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처럼 구는가? 


죽기 살기로 일만 한 사람에게 한 처방, “퇴근은 6시에” 어쩌면 3, 8 법칙이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은 가족과 함께든, 나를 위하든 시간을 쓰라고, 과로사 직전까지 자신을 몰고 갈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아니다. 8시간 이상의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 중독에서 해방될 시간이 없으면 우리 몸은 계속 중독상태가 놓이게 되니, 의식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하라는 말이다. 이 대목에 딱 들어맞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의 말 “야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커다란 행운과 재물이 굴러들어 올 것이라 믿기에 늘 무엇인가를 뒤쫓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단지 피로와 분주한 나날뿐이다.”라는 문구다.


죽음 앞에서 담담한 사람


수양이 깊은 종교인들도 그가 미리 아는 죽음 앞에서는 고통스럽다.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온 것인가, 미련이 남는다.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일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은 어떻게 멋지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성철 스님도 스스로 자신의 죽을 날을 정해서 그렇게 가지 않았는가, 지은이는 죽음 앞에 담담한 사람이란, 자신이 죽었을 때,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열심히 산다면 이 또한 좋은 게 아니겠냐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는 참인생을 살기란 어렵기도 쉽지도 않다는 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답게 살라고, 누구에게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누군가 기대하는 삶에 맞추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내 불행은 남의 탓, 주변의 불행은 내 탓이라는 사람들


내가 불행한 이유가 남의 탓일까, 아니면 내 탓일까, 너와 나, 누구의 탓도 아니다. 열등감에서 나온 표현일 뿐, 내 탓이라는 가톨릭의 참회 방식도 아니고, 동양 사회에서 자식이 잘못해도 내 탓이요. 가족이 사고를 당해도 내 탓이라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환경 탓이고 부모 탓이라니, 아니다. “나”가 주인공임을, 이 대목에서 노자의 “자중자애”란 말을 되새겨보자. 즉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나를 모르고 어찌 주변을 그리고 세상을 우주를 알 수 있겠는가?, 우선 내가 누군인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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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노부인이 던진 네 가지 인생 질문
테사 란다우 지음, 송경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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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인생 질문, 너는 왜 사니?


이 책의 지은이 테사 란다우가 말하는 숲속 노부인은 누구일까? 실존 인물일까, 아니면 그가 만들어 낸 상상 속의 멘토일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숲속 노부인이라는 현자는 누구에게도 있는 진짜 자신인 듯하다. 다만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모르듯, 내 안에 숨겨진 회복력이라고 해야 할까, 삶을 통해 얻은 지혜의 상징?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모든 것은 나로부터” 법정 스님으로 상징되는 ‘무소유’, 철학을 하는 것은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만물의 모두 제각각의 몫을 하고 있어 뛰어나거나 모자라지도 않다는 성철 스님, 이들의 말속에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라는 숨어있다. 우리 주변의 나이 드신 분들이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타고난 능력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알고, 그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자문자답과 자기 성찰일 것이다. 


“진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난 지금 잘살고 있는 걸까?” 일과 육아 등으로 지친 일상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해볼 여유 없이 목적 없이 인생이란 길을 쉼 없이 달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일들이.

당신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대로 뭔가를 하면서 살았습니까? 이 질문에 “예”라고 머뭇거림 없이 즉답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일을 앞에 두고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이성과 감정이 내면에서 서로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감정이 결정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했다고 해서 무조건 마음이 편한 건 아니기에 그렇다. 그래서 겉으로 보여야 이성적 관점에 따른 태도와 실제 내면의 또 다른 내가 느끼는 감정의 불일치, 하고 싶지 않은 데 체면이나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 지은이는 우선 우리가 내린 결정에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지은이의 이야기는 9개 에피소드다. 숲속 노부인과 만남에서 내면의 나침판 사용 방법을 그리고 배낭과 방패를 감정이 수학을 만나다, 잘못된 것투성이, 숲속에서 만난 고양이, 무지개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의 새로운 길, 인생의 도미노 순이다. 


첫 번째 질문, 아닐 때는 아니라고 말해야, 내면의 나침판으로 결정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나는 겉으로 예라고 말할 때, 이때 “예”는 자갈이다. 예라고 할 때마다 배낭에 자갈을 한 개씩 집어넣는다면, 어느 틈엔가 등에 질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내면의 소리를 나침판으로 본다면, 이 나침판은 보호장비나 방패라고 여기면. 적당한 곳에 바운더리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 “이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이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감정이 수학을 만난다는 말은 지수로 표시하는 것은 수학의 영역이고 그 구분은 감정의 영역이다. 감정에 점수를 매긴다면, 측정 불가능한 그 무엇이 나에게 얼마만큼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1에서 100까지 이 일이 어디쯤 자리할까, 이를 모르면 있다. 없다 밖에, 중간은 없다. 


세 번째 질문,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내가 살아가는 데 정작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사방팔방에 널려있다. 책도, 옷도, 음식도,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치우면, 뭐가 남을까?,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만 남을까, 이 대목이 장애다. 이것은 당장에는 필요 없지만, 이래서 필요하고, 저것은 저래서. 결국,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추억 혹은 필요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네 번째 질문 “내가 1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계속 살고 싶은가?”


아마도 이야기의 핵심을 관통하는 물음일 듯싶다. 1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가끔 TV 드라마의 소재로 불치병에 걸린 젊은이들이 모여서 얼마 남지 않은 이 세상에서의 자신들의 삶, 지금껏 가장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걸 해보자고 이른바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1년 후에 죽을 것인데, 뭘 남기나, 돈이고, 사랑이고, 심지어는 그렇게 아끼며 애지중지하던 옷도 장난감도 다 소용없게 된 마당에.


이런 생각을 하면, 욕망이 사그라든다. 90대의 정신과 의사 이근후는 그의 책<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책들의 정원, 2024)에서 그냥 있는 그대로 살라고 한다. 그의 장례식 때,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에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 이상 그 무엇이 있겠는가.


지은이 내가 1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계속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답 대신에 실천으로 보여준다. 꼭 필요한 물건과 가족들이 함께 살기에 필요한 공간만 있는 거처,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고. 바로 이것이 현자들이 바라는 삶이지 않을까, 먹지도 못할 것들, 필요 이상으로 큰 집, 쓸데없는 장식들, 이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란 말인가?


숲속의 노인은 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아등바등 일 중독자처럼 그렇게 사니, 그게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돈은 쓸 만큼이면 되지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닌데, 지금, 이 순간 너에게 중요한 것,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면 1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단순 명쾌하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글쎄다 쉬이 답을 찾을 수 없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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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당정치 정치연구총서 9
이정진 지음 / 버니온더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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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당정치- 지구당 부활 논란을 중심으로-


지은이 이정진은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연구관으로 일하는 한국 정치 전공을 한 연구자다. 2007년부터 국회입법조사처의 정당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고려대학교 정치연구총서 09로 발간된 것이며 2017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연구서이다. 책은 3장으로 구성됐고, 1장 정당이란 무엇인지 정의와 당원과 유권자, 한국의 정당을 소개한다. 그 내용 중에는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는데, 당시 조직장악력과 인지도가 높았던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노무현 후보가 대선 후보자로, 경선 과정과 결과 모두 국민의 관심을 모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기까지의 흐름을 소개하고 있다. 2장에서는 정당과 정당법을 다루는데 정당법은 정당 활동을 어떻게 제한하는가를, 3장은 본론으로 지구당, 왜 필요한가를 논한다. 지구당이란 무엇이며, 왜 폐지됐고, 이후 정당 활동의 실제, 지구당 논의 부활 등을 다룬다. 


지구당의 폐지, 배경과 논쟁 그리고 부활론까지 


2004년 지구당 정치의 방만함과 지구당 위원장의 사유화 등의 정치적 비효율성과 운영유지에 고비용 등을 이유로 폐지됐다. 이는 1987년 이후 민주화운동의 사회적 흐름이 1997년 IMF의 구제 금융지원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신자유주의로 개편되면서 사회에서 우선 가치가 효율화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지구당은 “고비용 저효율”제도로 개편 대상이 되는데, 국회에서 논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진행돼 존치와 폐지의 논란은 있었지만, 정당정치의 기초가 되는 지구당의 역할론에 대한 정치(精緻)한 논의와 검토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지구당 재건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정당정치와 선진국 특히 유럽의 국가의 정당정치의 흐름(경향, 당원 수, 정당법 등)을 소개하는 한편 이를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여, 한국에만 있는 유일한 정당법(헌법 제8조 제2항에 명시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정하고 있어)에서 정당은 수도를 포함한 시, 도 5곳에 각각 당원 수 1,000명이 있어야만 등록할 수 있다고 정해두고 있다(정당법 제4조).


한국에만 있는 정당법, "비민주적인 법" 개정해야 


한나라당을 제외하고는 10년 이상 유지된 당명이 없다. 미국처럼 민주/공화, 영국처럼 노동/보수처럼, 100년도 넘게 같은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 한국처럼 여, 야 모두 수시로 당명이 바뀌는 바람에 우선 양대 더불어 민주/국민의 힘과 정의당, 진보당 정도는 국민이 기억한다. 실제 한국에 있는 정당은 50여 개, 이름도 생소하다. 그런데 이들 정당 모두가 위에 적은 정당 등록 요건을 갖춰야 한다면 한 개 당이 적어도 5,000명의 최소당원이 있어야 하니 25만 명이 필요하다. 영국의 노동당이 48만 명 정도다 한때 500만 명이나 된 적도 있었으니, 말을 다 한 셈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정당 지원에 관한 법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정당의 자격과 요건, 지원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두지 않는다.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기에 그렇다. 공무원이나 교사 등의 교원은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는가 하는 문제 제기(헌법소원에서 공무원 등의 중립 원칙에 따라 정당 가입을 막고 있다)도 여전하다. 


지역정당도 만들 수 없다. 2021.11. 이후 3차례 걸친 헌법 제8조 제2항이 위헌임을 판단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지역정당네트워크는 은평민들레당,과천시민정치당,진주같이,직접행동영등포당, 노동정치사람, 익산like포럼, 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 전국민회 등이 있다.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빠진 사회라고...


지구당, 왜 필요한가? 


아무튼 한나라당 돈봉투사건으로 불붙은 지구당 폐지론은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지구당이 없어지고 시, 도당만 존재하게 됐다. 지구당이 해왔던 당원 교육이며, 지역 민원창구, 당원의 관리 등을 시,도당이 모두 떠 안아야 했다. 경기도의 경우는 50개 지구당이 사라지고 이 업무가 도당으로 이관됐지만,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이다. 현재는 당원협의회(국민의 힘이 사용하는 명칭)나 지역위원회(더불어민주, 정의, 진보 등이 사용하는 명칭)는 253개 국회의원 선거구에 모두 두고 있다. 지구당과 다른 것은 유급사무직원을 둘 수 없고, 사무소를 설치할 수 없다는 점인데, 이런 형식 요건 또한 비판을 대상이 된다. 사무실에서 모여 회의를 하면 법 위반 소지가 있으나, 카페에서 모여서 회의를 하면 괜찮다는 논리다. 지방의원들이 모여서 합동사무소를 내고 그곳에서 회의 모이는 편법을 유도하는 행위다. 결과적으로는 말이다. 


지구당의 폐지는 정당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화 강화라는 측면에서 추진됐으나, 정당활동의 위축을 불러왔다. 위에서 본 것처럼 사무실 설치를 단속하는 것은 현역의원과 정치 신인간의 불평등, 지역구 후원회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는 국회의원과 비교하여 원외 당원협의회 혹은 지역위원장들은 지역민과의 소통과 홍보의 어려움이 있다. 당원참여 정치구조가 깨진 것이고, 현역 국회의원 프리미엄이라는 불공정, 불평등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구당의 순기능은 전혀 없는 것일까?, 지구당 폐지 20년 동안, 글쎄다, 지구당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지역구에서는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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