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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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원의 그리움, 마음의 깨달음과 몸의 욕망


성지혜 작가의 소설집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 인간의 그리움이란 창의적인 기능의 하나로 작가는 이런 속성을 매개로 자신을 회복하고 삶 속에 남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2019년에 발표했던 <나귀 타고 오신 성자>와 2021년의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을 비롯하여 아빠 면접 소동, 표제작인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 결을 향한 단상, 옥도장 이야기, 초콜릿인가요, 우유 탄 초콜릿인가요, 얼굴 없는 나라, 777 프리즘 등 9편의 소설과 작품해설로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알레고리 미학의 결실<나귀 타고 온 성자>을 비롯하여 4편이 실려있다. 소설로든 문학평론으로든 이 소설집이 꽤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아빠 면접 소동>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미혼모(글쎄다 이런 낱말이 주는 묘한 이질감 때문에 나는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비혼모라는 표현이 상황을 전해주는 가치 중립적 낱말이 아닐까 싶다)였든 아빠와 혼인하여 사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지금 그들의 곁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대학 3년의 딸은 결혼상담소에 어머니의 결혼 상대를 구해달라고, 캐나다에서 일하는 남자친구 곁으로 가기 위해, 어머니의 반려를 찾아, 맘 편하게 떠나려고, 아빠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결혼 상대가 아니라 상대의 딸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영어번역가였던 외할아버지처럼 어머니도 영어번역 일을 한다. 그리고 골동품에 깊은 조예가 있고, 재산도 있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중국에 어머니는 왜 비혼모로 자신을 낳았는지 사정을 말하고….


<나귀 타고 오신 성자> 201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정리해고 당한 Q(Q란 이니셜은 루쉰의<아 Q 정전>을 떠올리게 한다)는 항의 농성을 벌이다 쫓겨 지하(교도소인지, 노숙 생활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에서 8개월 동안 머물다 나온 우리 시대의 “을”의 전형이자, 집단 농성 중,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홀로 남은 사람, 나름대로 성공을 꿈꾸며 10년의 젊은 날을 열공에 받쳤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술타령을 일삼다가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를 당하고, 제주에서 사 온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헤매다가 만난 두 사람, 세상에 내몰린 두 사람, 이들의 경험은 우리 사회 누구나 한때 했던 경험이기도 하다. 나들이 나온 유치원생 무리를 만나, 시름을 잊고 한없이 행복한 웃음을, 그리고 또다시 거리를 방황하는 당나귀를 탄 사나이를 목격한 교통경찰에게…. 경찰이 이 둘에게 하는 말


“척 보아하니, 두 분이 ‘만족 결핍증 환자’인 것 같은데, 이제 그 속박에서 벗어나십시오.”라고, 고주용이 묻는다. ‘그 처방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죠“

”허무와 실망을 털털 털어 버리십시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보람으로 맞이하는 게 바로 행복의 통로라는 걸 명심하시고요.“


교통경찰은 그냥 가라고 호루라기를 분다. 그들은 경찰 말대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두 곳을 더 들리는데, 하나는 시골 정자이고 또 하나는 화성의 융건릉이다. 


시골 정자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고, 고주용의 고향 가까이에 있는 융건릉을 찾는다. 유치원 아이들과 노인네들을 만나면서, 아무런 걱정도 시름도 없는 이들의 평온함 속에서 두 사람의 치열한 경험은 세상을 향한 원망은 어디로 향했을까? 뭔가에 빗대어 사회를 풍자하는 이 소설.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이 소설집 말미의 실린 작품해설에서 이 소설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오늘의 세태를 풍자한 미학적인 신명 때문에 눈여겨봤다고, 신자유주의 사회가 광분하고 출세 가도의 잔혹한 생존경쟁에서 퇴출당한 현대판 돈키호테를 그렸다고 평한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가라는 말 속에 담근 의미는 무엇일까? 그저 만족하면서 살라는 메시지인가, 잃어버린 시절의 그리움은 어떤 색깔일까, 어떤 모습일까, 인간에게 그리움은 앞으로 살 희망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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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 J.R.R. 톨킨과 C.S. 루이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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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무권력의 아나키시스트 톨킨과 루이스


한국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펴낸 두 분의 노학자, 박홍규와 강준만 선생이다. 장르는 다르지만,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던지는 메시지, 전자는 문학과 예술에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후자는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 저널리즘과 정치 등 톺아보게 해준다. 


무소유는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들어봤지만, 무권력은 낮설다. 어떤 상태가 무권력인가, 박홍규 선생이 쓴 책<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톨킨과 루이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가 이 두 사람이 쓴 소설이란 점 때문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전자는 “호빗”이라는 키가 1미터 남짓의 털이 많고 귀가 크고 발이 튼튼한 착하고 겁 많은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후자는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이 책의 머리말 “소유와 권력에 저항하다”라는 게 이 두 사람의 세계관이며 본질은 자유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를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 역시 헬영국, 헬대영제국이었음을 적고 있다. 이 책은 톨킨과 루이스의 성장(1장)과 우정(2장)을, 그리고 루이스의 <우주3부작>, <나니아연대기>(3, 4장)와 톨킨의 <호빗>과 <반지의 제왕>(5.6장)을 다루고 있다. 싣는 순서는 두 사람의 기독교가 모든 작품의 기본이며, 기독교에 대해서는 톨킨보다는 루이스가 직접 드러냈기에 앞에 둔 것이다. 


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톨킨과 루이스에게 가치는 “자유”다


출생지도 성장배경도 다른 고대 영어학자였던 두 사람의 브로맨스, 이들 우정은 둘 모두 옥스퍼드 교수로 일했고, 소설을 썼다. 당시에는 교수에게 기대되는 활동에서 벗어난 외도였던 셈인데, 우리에게 흥미 주의로 다가섰던 <호빗>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거나 알게 됐다면, 다시 보기를 통해 확인해볼 게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호빗이라는 아주 평범한 이들이 용기를 낼 때는 어떻게 하는지,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는 악의 상징물을 없애기 위해 멀리 떠나는 아홉 명은 친구들이고 그 우정연대는 우정으로 모인 연대의 모임이다. 이들의 반지에 관한 욕망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울러 상하 관계, 주인과 하인 관계를 노골적으로 들어내지 않고 그들은 친구이고 우정 관계임을 드러낸다. 영화의 장면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관계설정을 상하와 주종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톨킨은 바로 이점을 경계했다. 그는 “공화국”이라 번역되는 비군주제도 실은 연원은 우정을 기초로 한 것이자 원리로 삼은 것이어서 “우정으로 만든 사회”라는 말이다. 


가운데땅, 샤이어라는 공동체에 시장은 있지만, 이는 상징적 의미일 뿐 이들 사회에는 위, 아래도 없는 평등함이 바탕에 깔린 사회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해석이 달라지는 건, 사고 가치체계의 문제라고 지은이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톨킨과 루이스의 사고체계 바탕에 깔린 기독교,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인물 설정과 배경에도 반영돼있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선은 흰색, 악은 검은색, 황색으로 형상화된다. 백인 우월과 흑인과 황인 열등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악당 오르크는 검은 피부의 흑인을 연상하게 한다. 황인에 관한 톨킨의 평가는 혐오하는 몽골 유형의 타락하고 혐오스러운 버전이다. 또, 오르크는 노동자들로 나오는데 노동자를 무시한 것일까?, 여성 또한 비현실적인 숭배 대상인 성스러운 존재로 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불편한 사실을 알았다면, 그토록 열광하며 <반지의 제왕>을 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장점이랄까, 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주의에서 벗어나 일하는 사람과 기계혁명 이전의 사람 관계와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군주든, 시장이든 이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다만, 조정자일 뿐이다. 무 권력자다. 우정에 기초한 사회로 서로 돕고 돕는 사회다. 전체의 틀로 보면, 힘없고 못생긴 오르크를 앞세워 군림하는 어둠과 악의 재배자 사우론은 자본주의의 형상이다. 마치 기계 인간의 세상이 된 영화 <매트릭스>의 실체처럼, 


지은이는 톨킨과 루이스의 아나키스트로서의 삶과 작품세계를 톺아본다. 루이스 의<우주 3부작>에서 사랑의 알레고리로 중세 전통의 연구를, 기계 이전과 이후로 세상을 나누는지 등, 톨킨과 루이스의 정치관과 복지국가의 노예가 되려는 의지 등을 들여다본다.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선악의 싸움과 아슬란은 누구인가, 어떤 상징인가를, 루이스의 아동문학론을.


세상은 아는 만큼, 작품을 넘어서


우리가 아는 톨킨과 루이스의 그저 소설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로 그칠 뻔했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습은 일부분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희망했던 사회, 소설을 통해서 세상에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후자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만큼은 규명된 셈이다. 세상에 뭘 전하려 했는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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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어원 사전 - 이 세계를 열 배로 즐기는 법
덩컨 매든 지음, 고정아 옮김, 레비슨 우드 서문 / 윌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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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어원 사전


넓고 얇은 상식으로서는 안성맞춤인 책 <여행자의 어원사전>, 지은이 덩컨 매든은 65개국을 찾아 국명의 어원과 역사 속에서 의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찾는 이른바 ‘어원학’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7000개의 언어가, 1000명 미만이 쓰는 언어가 40%를 차지, 세계 사람 절반이 이상이 스물세 개 언어를 사용한다. 국명의 어원은 네 갈래 중 하나에 속한다는 재미있는 현상도, 주요 지형, 위치나 방향, 민족,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중국, 일본은 두 번째 ‘위치나 방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과 네덜란드, 포루투칼,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16세기 유럽의 각국이 경쟁적으로 해양으로 방향을 돌린 시기와 맞물려있다. 신대륙의 발견, 원주민과 대화, 당시에는 심각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오는 대화, 여기가 어디야라는 물음에 너희는 어디서 왔어(유카탄). 그래서 유카탄이 됐다. 아메리카도 그러하고 캐나다도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어원 역시 현대 인도유럽어족 군에 속하는 유럽에서 인도에 걸친 언어는 고대 언어의 흔적을 남긴다. 


일부 지명은 ~ia(이아), 오스트레일리아, 몽골리아, 볼리비아, 나미비아이나, 페르시아어 “~스탄”은 땅, 혹은 지방, 나라라는 뜻이다. 아마도 누구누구의 땅이란 뜻일 것이다. 7개 나라(우스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프가니스탄, 키르키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몽골제국의 정복지에 세워진 칸(한:汗)국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65개국은 북아프리카 캐나다에서 쿠바, 아이티까지 9개 나라를, 남아메리카는 베네수엘라에서 볼리비아까지 9개 나라, 유럽 아이슬란드에서 포르투갈까지 15개 나라, 아프리카대륙의 세네갈, 감비아를 비롯하여 마다가스카르까지 14개 나라, 아시아대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얀마, 스리랑카 14개 나라(남과 북은 하나로 묶여있다), 오세아니아 4개 나라. 


파키스탄 국명에 숨겨진 위대한 꿈


파키스탄(펀자브의 P를 비롯하여 아프가니야, 카슈미르, 이란, 신디, 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발치 이스타까지 포함한다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거대한 나라를 만들려 했던 라흐맛 알리, 결국 그는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국명은 파키스탄이라고 붙인 것은 이런 위대한 꿈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으니.


일본: 동쪽의 해 뜨는 나라?, 임진왜란 때, 명정가도, 도쿠가와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이후, 조선 정벌은 명나라를 치러가기 위해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는 데서 출발했다는 통설적 견해를 취하고 있다. 이전에 왜(倭)는 왜소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이 벼를 이고 있다는 의미다. 와(和) 혹은 야마토(大和), 이는 자칭형이다. “왜(倭)”라는 명칭은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다. 당시 일본과 중국 해적에게 왜구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왜는 반드시 일본, 중국이 아닌 한반도 안에도 존재했다는 견해도 있으니 말이다.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른 구석도 없지 않으니.


아무튼, 이름의 기원을 알면 그 나라가 다시 보인다는 말에 동감한다. 왜 베트남이라 부르지(비엣남 아닌가), 18세기 응우옌왕조가 비엣남을 통일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청에 사신을 보내 국왕 책봉을 요청하며 국호를 남비엣(월남과 비슷한 남월)으로 했는데, 남쪽의 안남(安南)과 비엣트엉(비엣)통합했다는 것으로 북과 남이 통합했다는 의미였는데, 청에서는 글자 순서를 바꾸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 책은 흥미롭다. 수리남의 이야기는 TV 드라마로 나왔던 “수리남”, 칠레산 홍어보다 수리남 홍어가 더 싸다는 말을 듣고, 한몫 잡기 위해 수리남으로 간 주인공이 마약 사건과 엮이면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이렇게 뭔가 어떤 계기로 특정 국가나 지역명을 기억하는 게 보통이다. 


아무튼, 흥미있는 나라를 하나씩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그 나라의 전설과 문화 등, 어원학을 넘어 지역학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 여기에 각국의 관련 정보는 외교부 홈페이지 등도 해당 국가나 지역명의 유래 등을 찾아서 비교해 읽어보기를 바란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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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심연 - 어느 청년 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탁장한 지음 / 필요한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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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이 책<서울의 심연(深淵)>의 지은이 탁장한은 2019년부터 5년 동안 쪽방촌, 쪽방 거주자, 일선 지원기관 들을 참여관찰하다 2022~2023년 동안 몸으로 서울의 또 다른 세계 “쪽방촌”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그곳에서 잠을 자고 먹고, 놀고 부대끼고, 싸우기도하고, 화해하면서 말 그대로 주민으로 살아온 다섯 계절의 경험을 녹여낸다. 이른바 르포르타주 “쪽방촌 표류기”기 바로 이 책이다. 기자정신과 연구자의 탐구심을…. 실제 책상에서 자료를 통해서 본 쪽방촌 사람들, 이들에 관한 이론과 담론을 분석하는 이론 편인 전작<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의 후속편으로 마치 조지 오웰이 북잉글랜드 탄광 노동자의 삶을 다룬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사, 2023)처럼, 연구자의 관점과 생활 속 경험자의 시간 사이의 틈새, 빈곤의 도사에는 쌓인 해악과 이익이 복잡미묘하게 얽히고설킨 그래서 또 다른 세계 “쪽방촌”은 난해했다. 연구실에서 생각했던 쪽방촌 세계와 발 딛고 사는 쪽방촌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말 그대로 심연(深淵)헤어나오기 힘든 깊은 곳, 깊은 연못이었다. 


이런 참여관찰에서 직접적인 체험으로, 느낀 것들은 결이 다르다. 절실해서 쪽방촌을 찾아든 게 아니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지은이가 이 연구의 의의와 한계에서 밝혔듯이 쪽방촌을 다루는 연구나 언론은 특정 기관에 친화적인 거주자로 연구 대상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와 한정이 존재한다. 따라서 방영되거나 학계에 보고 등 자료가 공개될 때, 현실이 왜곡될 위험성이 높다. 아무리 제한, 한계를 전제로 하더라도 보이는 것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부족하기에. 1,000여 명의 주민, 이 중 200명(20%)의 구술이 쪽방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80%의 구술대상자가 남아있다는 점은 과제다. 


이 책의 흐름은 쪽방촌에 산다는 것에서 입주를 시작으로 돈을, 사회복지 시설, 쪽방 상담소, 사회운동 단체, 사랑방, 종교 기관, 개신교 교회, 수난의 공간, 대안을 위한 제안을 통해서 참여기관들과 거주민 200명의 구술을 정리 분석한 가운데, 이들에게 희망이란 무엇이며, 우려하는 것, 등을 그리고 홈리스(노숙인)등과 함께 펼치는 빈민주거 운동 등과의 접점들 속에서 이들의 하는 사업, 부탄가스, 종이컵, 한우,한돈의 공동구매와 저렴 판매, 마을잔치, 청소, 무연고 장례, 법률상담, 병원 동행, 선반지기 활동(선반 달아주기 등), 소액금융, 식당 식도락 운영(1,000원짜리 밥 공동체), 이사 협동, 연대활동, 주거권 투쟁(쪽방 퇴거 반대 시위 등), 이 작은 세상이 뿔뿔이 흩어진 모래알처럼 살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주체적으로 주민이 돼가는 과정, 의식의 변화 등, 다양한 정보가 함께 사람은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를.


쪽방촌은 양면성이 극도로 강한 지역


쪽방촌으로 밀려들 수밖에 없는 불평등 구조, 경쟁대열에서 탈락한 이들에게는 두 번 다시 탈 기회는 원천봉쇄되고, 빈곤의 뫼비우스 띠에 올라탄 순간 롤러코스터처럼 울렁거림은 심신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데, 한 번 쪽방촌으로 들어가면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가, 탈쪽방을 위한 사회적 지원과 맞춤형 계획은 거주자들의 선택권을 늘리며 그들이 마주한 빈곤의 실질적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는가, 그 밖의 대안이나 정책은?, 탈쪽방 혹은 쪽방에서 삶을 지원하는 기관들의 비전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지은이는 판자촌의 불도저식 해체와 같은 빈민 주거사를 쪽방촌에서 거듭하지 않으려면 국가는 쪽방의 불법화와 세입자 주거권이 미묘하게 연동됨을 이해하고 탈쪽방이 더는 갈 곳 없는 거주의 추방을 뜻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지은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쓴 글에 대해 가장 경계하는 자기 회의, 잠재적 한계는 부분 인용을 통해 세입자 주거 대책이 미비한 상태에서의 쪽방촌 철거와 해체 담론에 여기에서 오랜 관찰 등이 오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아주 귀중한 연구자료를 함께 읽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도록 공유해준 지은이에게 거듭 감사를 드린다. 각 지역의 광역 도심의 쪽방들 또한 이와 같은 처지일 듯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본질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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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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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오르톨랑, 잔인하지만 프랑스 영혼을 담은 멸종위기종 촉새 요리라는 데, 거위나 오리의 간덩이를 키워 음식 재료로 쓰는 푸아그라 또한, 인간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끝판인가 싶기도 하다. 


작가 이우연의 소설집에 담긴 소설들은 “혼자”에 관한 글이다. 동시에 혼자일 수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에 관한 글이다. 비현실, 악몽, 잔인하게 태어난 유령들의 목소리, 청소 도구함 속에 갇힌, 피해자, 돌아오지 않는 가해 악동들, 


이 소설집을 채우는 글들은 작가가 미학, 심리학을 공부한 데서 오는 그 무엇인가, 비현실적이기도 하면서, 몽상인 듯하지만, 인간의 심리 속을 헤엄치듯이 다니며, 뭔가를 찾고 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한다. 갇혀있던 그 공간과 장소에서 밖으로 혹은 위로, 자그만 촉새가 재미있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 마치 메추리와 참새구이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 과정은 잔인해서 마치 예술적으로 비치는 건 아닌가, 


소설집은 2장으로, 1장은 “교실 속의 미로는 새들의 우주를 닮았다.”, 2장 “그녀는 TV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여자를 꿈꾸었다”로, 갇힌 공간 청소 도구함, 미로, 조종실, 교실, 다락방, 서커스장, 동아리실, 우주, 고래의 배 속, 유원지 따위 장소와 공간 속 이야기다. 소름 돋치는 서커스장과 고래의 뱃속 이야기, 


서커스장, 잔인한 반복의 굴레, 탈출하지 못한 것들


서커스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폭죽 소리에 귀가 먹고 말았다. 어떤 때보다 관중들은 아버지의 퍼포먼스에 열광하고 흥분해서 환호를 지르는 순간, 서커스장 뒤쪽에서는 평소 죽은 고기만 먹던 사자가 아버지보다 한참 키 작은 엄마의 머리를 먹어버렸다. 나는 사자의 배 속에서 배를 가르고 세상에 나왔다. 내 엄마는 누구일까, 내게 배가 뚫린 짐승, 

“사자가 저의 죄를 감내하고 숨죽이는 오랜 세월. 사람이 짐승을 도축하고 사육하고, 겁간하고 젖을 짜고 새끼를 놓고 질겅이고 버리고 사랑하고 겁간시키고 젖을 짜고 새끼를 먹이는 그 오랜 시간. 사자는 죄를 먹이며 먹히며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난 그의 죄를 기생충처럼 파먹고 바깥으로 나왔어요.”


서커스장이라는 공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은 그 옛날 인간과 동물의 벌이던 채집경제에서 재배, 목축 정주 경제가 되면서 식량을 얻기 위한 반복과정, 한 생명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목숨을 거두는 행동, 아이누족은 곰사냥을 할 때, 어쩔 수 없는 공존을 위해 곰의 생명을 거둘 때, 그 정령이나마 평안한 곳으로 가라고, 제를 지냈듯, 예의라는 게 있었다. 시나브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는 인간은 생명의 존중도 가치도 모든 것이 그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양, 생각하고 또 행동하고 굳어지고 양식이 되고 문화가 돼버린 것이다. 사자는 순치된 자연의 반란이다. 잠들어있는 야생 본능의 발현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잔인한 사치를 입맛을 위해 멸종되어가는 오르톨랑처럼, 또, 수많은 장소, 공간을 떠도는 유령처럼.


꽤 어렵게 느껴지는 소설들, 하지만 짧은 글 속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가 왜라는 말보다는 그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작가 이우연의 작품은 세계가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나무 문에 질러진 빗장 사이로 새어드는 빛처럼 다가온다. 한 줄기 빛이, 그 빛을 따라 작가가 이끄는 유령의 세계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그런 세계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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