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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코끼리 -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는 이유
케빈 심러.로빈 핸슨 지음, 이주현 옮김 / 데이원 / 2023년 1월
평점 :
인간의 이타적 행동 뒤에 숨겨진 이기적인 동기, 인간 동기의 명암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것은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전자는 솔직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아무런 대가 없이 이타심으로 누군가에게 베풀어준다(선의든 악의든, 어떤 숨겨진 동기가 존재하기 마련). 후자를 보자 이것은 너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알고 있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겠지, 부모가 자식에게 너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말의 숨은 동기는 나를 위해 내 체면을 위해 그리고 대리만족을 위해, 내가 자랑할 게 너의 출세밖에 더 있겠어라는 내심의 의사이지 않을까.
지은이 케빈심러와 로빈 핸슨의 뛰어난 통찰은 오래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다.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동기, 이른바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기와 정서, 동기에는 내재적, 외재적으로 구분하지만, 지은이들이 논하는 것은 결을 달리한다. 동기가 없으면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기본, 그렇다면 동기의 표피가 아닌 심층, 동기의 외형 즉 껍질과 알맹이가 다르다는 데 착목한다.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이유는 뭘까, 표리부동(겉과 속이 같지 않다)의 기제를 파헤친다.
책 구성은 2부 17장 체재이며, 1부 동기를 숨기는 이유에서는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왜곡하고 더욱 뒤틀린 자기기만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많은 동기(동물의 행동, 경쟁, 규범, 기만, 자기기만, 거짓된 이유)와 연결 지어 살펴본다. 마음속에 코끼리(이기심)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 2부 일상생활에 숨겨진 동기에서는 코끼리(이기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디랭귀지, 웃음, 대화, 소비, 예술, 자선, 교육, 의료, 종교, 정치 영역에서 각각 감춰진 진짜 이유, 개인에서 사회 제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한다. 표리부동,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웃음 속에 숨겨진 잔인한 미소, 자선 속에 숨겨진 꿍꿍이…. 이렇게 생각하면 아예 동기를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알면 속상하니 말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 “내게 너무 낯선 나”
“누구든 혼자일 때는 성실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면 동시에 위선이 시작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을 인용) 17쪽, 문장은 촌철살인이다. 혼자일 때는 성실하지만, 누군가를 의식하면 위선이 시작된다는 것, 그 동기는 무엇인가, 이를 밝히는 게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지은이들은 인간을 이렇게 본다. 인간은 숨겨진 동기에 근거하여 행동할 수 있다. 그렇게 설계된 종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설계됐을까, 약육강식의 질서 때문인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는 이유인가?, 좀 더 보자. 다른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다른 사람을 잘 속이기 위해서 우리 뇌는 ‘자기 자신’, 의식적 마음에게 조차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자신의 추악한 동기를 자신조차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감추기 쉽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기만은 탐탁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 ‘좋게 보이기’ 위해 뇌가 사용하는 책략이자 전략이다.
이기심이라는 “뇌 속 코끼리”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뇌 속 코끼리>란 “이기심”이 핵심이다. 실제로는 이기심보다 훨씬 많은 개념을 포괄한다. 인간이 권력, 지위, 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속임수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동물, 자신의 동기를 숨긴다는 사실, 그리고 숨기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모두 ‘코끼리’를 의미한다.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을 대상으로 인간이 갖는 ‘이기심’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외형적으로 이타적으로 보이는 걸 살피자는 게 아니라 자선 단체, 기업, 병원, 대학 등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공식적인 목적 외에도 숨겨진 동기를 품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슈는 네 개의 연구 분야(미시사회학, 인지 및 사회심리학, 영장류학, 이론과 실제의 불일치)에서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이른바 “내 안의 낯선 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레이첼 아비브의 책<내게 너무 낯선 나>(타인의 사유, 2024) 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정신건강 의학이 포착하지 못한 복잡한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책과 큰 틀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있는가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1부에서 뇌 속에 코끼리는 자기기만과 자기 위선은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도, 반대로 이런 자기기만과 자기 위선 때문에 겪게 되는 마음의 고통과 갈등, 이렇게 보자면 외재와 내재, 반 정도는 사실일지도.
우리에게 숨겨진 동기가 이상적인 동기와 일치하는 영역에 자신을 스스로 노출하는 것 또한 뇌 속의 코끼리를 무시하는 전략일 수 있다. 내게 너무 낯선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동기와 긍정적인 정서로 조절 혹은 조정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안의 코끼리는 개인을 넘어 정책 수립이나 제도 개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공적 지위)에 올랐을 때, 코끼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큰 차이를 만든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원하는 목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협력을 하는 동물이자, 경쟁하는 사회적 동물이며, 자기 이익만을 좇고 자기기만에 빠진 동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대항적 처지와 상황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이다. 인간의 본능은 무리를 짓고 무리 속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만, 늘 무리 동물이기에 상호협력의 길을 택하기도,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은 인간과 세계 두 항목에 대해 신실존주의를 내세우는 데 신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은 다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근원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