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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 초대 공수처장이 말하다
김진욱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평점 :
법의 지배, 법에 의한 지배
이 책<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전반부에서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을 지냈던 김진욱의 법관념(1.2장)과 정의와 공정에 관한 생각을(3, 4장), 후반부에서는 대한민국이 과연 법이 지배하는 나라인지 묻고 형사사법의 변모 과정을 살펴본다(5.6장). 마지막으로 공수처 관련된 이슈를 중심으로 한국형사정책학회장과의 대담을 싣고 있다. 법에 관한 그의 생각과 실제 공수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다루고 있어, 공수처라는 조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판사, 대형로펌의 변호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경험한 지은이가 헌법을 바탕으로 법의 지배와 국민 주권의 의미, 공수처의 미래 전망 즉,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서 논한다. 법과 법에 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나, 법을 공부하거나 법률가가 되려는 사람 모두에게 한 번쯤은 생각하고 고민할 말한 중요한 쟁점들을 다루면서, 동서고금을 통해 법을 둘러싼 문제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
영국의 시사잡지<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알파벳으로 쓰면서 한국에서는 이 말이 하나의 명사처럼 쓰인다고 비꼰다. 촌철살인이다. 이 한 마디로 한국의 법 실정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권력형 비리와 재벌의 3?5 법칙, 이해 안 되는 법관의 독립 등이 그 배경에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현대차 회장에 대한 판결, 징역 대신에 수천억 원을 사회 환원하라는 창조적인 판결, 감옥에 넣어두기보다는 돈을 잃는 게 더 교화나 교정의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국민의 법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서. 나라 경제까지 생각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 모양새가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낳게 한 것이다.
일본의 과로사(KAROSI)가 보통명사화되듯 말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전자는 권력자의 자의적인 지배가 아니라 합리성, 객관성을 갖추고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후자는 권력자가 법을 수단 삼아서 자의적 통치를 할 수도 있는 체제다.
지은이는 한국형사정책학회장 오병두와의 대담에서 지은이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란 전통적인 사고 틀에서 법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나와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민주공화국은 합리성과 객관성을 내용으로 한 법, 정의롭고 공정한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고, 나는 대한민국 주권자로서 대한민국을 이런 의미의 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 책임이 있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수처의 과제
공수처의 과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1996년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으로 시작된 고위공직자와 그 친인척의 부패범죄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기소이고, 다른 하나는 2017년 이후 강조됐던 권력기관(특히 검찰)에 대한 견제다. 지은이는 공수처가 전자를 잘 수행한다면 그 효과로 권력기관의 견제라는 과제는 자연스럽게 수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멘토였던 신평 변호사는 후자에 무게를 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검사나 판사 모두 초인이라면 초인이다. 하지만, 사법기관과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법의 지배가 아닌 권력의 지배가 될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면서 균형과 견제를 확보하는 시스템으로서 역할도 중요하다고.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법에 대한 인식과 감정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공수처는 애초에 전자, 즉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됐다는 점을 강조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정의와 공정의 담론
한국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 지은이는 동서고금의 정의론과 공정론을 비교하면서 한국 사회 상황, 특히 교육과 취업기회 등 사회적 이슈를 공정한 입시와 공정한 취업에 들여다봤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을 휩쓸고 이어 등장한 <공정하다는 착각>, 사실상 능력주의는 헌법 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른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규정이다. “능력에 따른”다는 말은 수학 혹은 학습능력을 말하는 것이며, 부모 기회를 능력으로 보지는 않는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의 입시부정을 지적하면서 미국의 표준화된 대학 입학시험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능력에 따른 기회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 학생일수록 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큰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공수처의 정체성은?
25년이 걸려 우여곡절 속에 만들어진 공수처, 복수의 검찰인가, 상설 특검인가, 옥상옥일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처럼 균형을 유지하며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 공수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조용한 수사의 의미 또한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 등, 검찰이 제 역할을 못 하고 법에 의한 지배로 돌아섰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한다. 그래서 공수처는 두 가지 역할을 해야 하며, 실제 기능 면에서도 현실적인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안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법 앞에 평등한가, 지은이는 헌법 정신과 원칙을 강조한다. 특히 대담 편에서는 공수처에 대한 다각적인 질문과 답변이 실려있는데 결국 공수처의 미래, 나아갈 길과 바람직한 모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 못할 바에야 우리는 없는 게 낫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