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 9개 테마로 읽는 인류 문명의 역사
표학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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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9개 테마로 읽는 인류문명의 역사 -



시대구분이 없는 역사교과서, 여성사, 종교사, 문화사, 물질사 등 주제로 엮어 설명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 다원화와 다문화 시대와 관련된 여러 주제 중 신화, 종교와 정치, 전쟁과 역사, 이슬람 세계, 일본의 정체성, 여성사, 실패한 이상주의자들 그리고 대도시 이렇게 해서 9가지를 살펴본다. 물론 주제별로 각각의 장에 담았다. 신화는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어도, 그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종교와 정치 여기서는 그리스, 불교와 아소카, 기독교와 콘스탄티누스(국교화), 종교개혁, 과학이라는 신과 근대정치를 본다. 조금 특징적인 것은 이슬람과 일본 그리고 여성을 보는 게 흥미롭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게 아니라, 주제별로 구성했기에 장별 상관성은 없다. 하지만, 주제별로 무게가 다르다. 다들 무거운 것들이어서 어느 것이 더 무거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일까 싶다.



주제선정의 흥미로움



왜 이런 주제들을 선정했을까, 목차를 훑어보면서, 상관관계, 즉 현대 사회와의 접점을 생각해봤다. 주제와 그 내용, 작은 에피소드들은 흥미롭다. 내 취향에 맞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힐러리는 왜 대통령이 되지 못했겠냐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여전히 마녀사냥이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그런가, 하지만, 영국에서는 대처, 철의 여인이 집권하지 않았던가, 아하, 수상이기에 그게 가능했을 수도, 힐러리의 승리 기운과 실패의 현실 간의 괴리를 지은이는 여성의 정치적 진출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296쪽). 글쎄다. 오히려, 미국 사회가 여성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준비가 됐다 안됐다는 논의 보다는 여전히 미국 사회의 성차별, 마녀론=남들보다 튀는 여성들은 절대 가만두지 마라. 상원의원, 장관은 좋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이름을 건국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는 바꿀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남성주의와 가부장 체제가 강고함을 확인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탈코운동 브래지어를 벗어던지자라는 대목을 여성사 안에 담은 것도 좋은시도다. 최근 경단녀들 목소리, 마녀 등, 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탈코운동이 아닌 탈남성중심주의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책으로 여행, 역시 신화가 압권이다.



신화는 현실로 스타워즈 등 서양의 스토리 콘텐츠가 대부분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서 왔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절반은 그렇다고 답을 할 것이다.


중국의 여와 씨의 이야기, 진실로 고대 사회에서 여장군이 가능했을까? 또 실제로 전투를 지휘했을까?, 전투도 전투 나름이고, 여자, 지금의 여성과는 다른 지위, 일족의 장 역할을 맡지 않았을까 싶다. 언제부터 남자 중심의 세계가 됐을까? 하는 것도 재미있는 물음이겠다.


특히 눈길이 간 곳은 티베트 신화, 관음보살이 티베트인을 낳았다는 대목이다. 히말라야 북쪽에 있는 고원지대로 인구수가 적은 이곳에서 관음보살이 원숭이로 변해 바위의 정령과 결합, 거기서 아이를 여섯 낳았으니 그 자손들이 티베트인이라는 것인데, 그런 연유 때문인지 달라이라마라는 특별한 종교지도자가 있다. 중국의 점령으로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이곳은 불교의 4개 교파가 있고 주요 종파는 관음보살의 현신인 달라이라마로 그의 추종 세력과 1959년 국외로 나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미타불의 현신이 판첸라마를 받드는 세력이 있다. 현재 이들은 중국과 타협을 하면서 티베트에서 종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아무튼 티베트는 서양에 각별한 곳이다. 라마교의 내세론은 기독교철학과 어울린다. 윤회론이 아닌가? 아무튼, 현실이 아닌 내세 다른 생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점이다.


원숭이로 변한 관음보살, 이 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 산스크리트로 아발로키테슈바라(Avalokite?vara)이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등으로 불린다. 그럼, 손오공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인 관점에서 상상해보자. 삼장법사와 손오공 이야기는 실은 불교의 마음공부인 계율(저팔계), 선정(사오정), 지혜(손오공)를 3학이라고 한다. 삼장법사(신심)의 덕과 법사가 타고 다니는 말(정진)을 합쳐 5가지의 힘, 오력이라 한다.



책으로의 여행 선동의 정치



이 책을 읽을 때, 지은이가 들어가면서, 정치와 역사를 논하는 대목에서 선동 정치를 언급했다.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군중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전면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지만, 느리게 천천히 하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질풍노도처럼 거세게 밀려온다. 세상 온갖 것을 다 뒤집어 엎어버릴 만큼,


선동 정치의 역사에서 선동이 왜 민중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지라는 의문에 단순 명쾌하게 답하는 건 사실 어렵다. 특히,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서 의도적으로 조작, 확산 유출하는 “가짜뉴스”가 어떻게 군중에 영향을 미치는가?

중국대륙 역사적 변환기마다 등장하는 종교, 징크스인가?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면서 정립된 삼국시대, 태평천국의 난, 그리고 현재 22년째 중국공산당에게 억압받아온 파룬궁, G2의 중국 파룬궁으로 혼란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절대권력도 없는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본다.

태양왕 루리 16세와 결혼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소시오패스라는 것,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왕비, 글쎄다. 그 역학 구조를 단순화 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여기서는 “거짓 선동의 양면성”에 방점을 찍어두자.


군중심리(구스타브 르 봉,W미디어, 2008)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군중행동(에버릿 딘 마틴, 까만양, 2012) 역시 이런 맥락이다. 군중이란 무엇인가?, 귀스타브 르 봉은 책에서 어느 권력자보다도 큰 위력을 지닌 '군중'이라는 존재와 그들을 선동하는 수단과 기술에 대한 분석을 제시한다. 그는 모든 사회적 격변의 주체가 되었던 군중이야말로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군중과 권력(엘리아 카네티, 바다, 2010)에서는 군중의 다양한 형태 분석과 역학을 규명, 이를 바탕으로 이런 군중이 어떻게 권력에 길들고 복종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군중은 천태만상이 극장이나 경기장의 정체된 군중, 종교적 군중으로 대표되는 느린 군중 등 다양하다. 심지어 죽은 자, 악마, 천사와 같은 보이지 않는 군중, 미래의 후손이나 정자로까지 끝없이 확대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또 거꾸로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나치 영화<올림피아>(1938), <의지의 승리>(1934) 은 각각 베를린 올림픽과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를 촬영, 편집한 것으로 전체주의 영상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대목에서 선전장관 괴벨스의 말이 생각난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이 말이 지금도 한국 정치판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어, 참으로 탁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도를 자주 접했으면 한다.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말이다.



<출판사에서 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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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모나 숄레 지음, 유정애 옮김 / 마음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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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모나 숄레

 

지은이 모나 숄레는 스위스에서 나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다. 이 책 <마녀>는 한 권의 연구보고서처럼 여겨진다.

 

 

가끔 언론매체에서 어떤 사건을 두고 “마녀사냥” 혹은 “마냥 사냥 식”으로 몰아간다고 논평한다. 도대체 마녀(魔女=麻+鬼+女, 천[삼베(麻)를 귀신같이 짜는 여인]는 왜 증오의 대상이 되었나?,

진짜, 빗자루를 타고 한밤중에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일까, 아동서, 동화집에나 나오는 마녀, 신과는 틀어진 관계?, 농경사회에서 베를 잘 짜는 여인, 아주 귀신같이 일을 잘하는 여인, 주술가, 제사장일까? 언어유희를 하지만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말을 풀어보면, 거기에 담긴 뜻을 추론해볼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어서 풀어본 것이다.

 

 

아마도 일을 잘하는 이는 지도력과 카리스마가 그리고 공동체의 존숭 대상으로 그래서 사실상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근세(주로 16세~17세기) 유럽 문명에서 기독교적 악마개념을 끌어다 악마는 천사 출신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악의 편으로 돌아선 타락한 영적 존재로 봤다. 악은 물질계에서 바로 힘을 쓸 수 없어 매개 전달체인 마녀를 통해 악을 퍼뜨린다고 생각했었다. 한편 마녀로 규정한 여성을 악마화하는 과정은 반유대주의와 많은 공통점이 있다. 희생양을 지명하는 것은 하층민이 아닌 상층계급에서 이뤄졌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22쪽).

 

 

마녀는 지은이 말에 따르면, 책 표지에 쓰인 것처럼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아주 살벌한 표현이지만, 마녀란 튀는 여성이라는 말이고, 목을 치라는 이 짧은 문구는 상징적이다. 여성이란 모름지기 질서에 순종하고, 맹목적 헌신, 알려고 들지도 않고, 고분고분한 여성, 즉 고정화된 여성상을 바탕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하면 “마녀”가 아닌, 정상적이고 착한 여성이다. 고문을 당하면서 신음을 참고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으면 바로 마녀다.

 

 

악의 기운이 그 고통을 막아준다고 죽이고, 또 고통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마녀라고 하면, 마녀여서 죽는다. 한 번 걸리면 영락없이 빼지도 박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실비아 페데리치(“캘리번과 마녀”,갈무리,2011)는 마녀에 대한 선전활동과 공포의 시기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깊은 심리적 반감의 씨앗을 뿌리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마녀로 의심하는 전반적 분위기를

“귀찮은 정부나 아내를 떼어버리기나 혹은 자신들이 유혹하거나 성폭행한 여성의 복수를 막는데” 써먹었다.(26쪽)

 

이런 광기는 종교의 위엄과 남성중심주의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크게 번져간다. 가부장 체제에서 똑똑한 여성은 늘 눈엣가시다. 마녀사냥의 원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편견과 오만 그리고 여성성, 절대적인 남성우월의식이다. 현저히 오늘날에도 마녀사냥은 진행형이다.

 

 

마녀라는 상징, 프레임에 대해, 재밌는 견해를 내놓은 어느 역사학자 (키스 토마스)는 흉작이나 전염병 등이 돌면, 마을 사람이 이웃을 어떻게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을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돌림으로써 자신이 용서받았다. 편안해졌다는 등의 행동에서, 또 재난 상황과 환경 속에서 쌓였던 갈등을 해소 도구로 “마녀사냥”을, 마치 조선 시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왕이 부덕하고, 죄를 지어서 그런 거라고 몰아가듯, 집단 내 갈등, 종교적 이유 등으로 이른바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고, 폭정이나 억압에 항거하려는 움직임의 배후에는 악의 책동과 마녀의 술수가 있어 이런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의도들이 어우러져 나온 “샐러드 볼”, “비빔밥”이다.

 

 

지은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연구보고서에 필적할 만한 내용을 이 책에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자주 등장하는 학자, 이론가, 페미니스트 등등, 영화에서 소설에 이르기까지 마녀를 다루면서 마녀사냥의 표적이 됐던 세 유형의 여성을 통해 그, 흔적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우리의 편견과 가치 속에 어떤 식으로 반영됐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의 짜임 또한 그러하다.

첫째, 비혼, 독신녀와 미망인 같은 독립된 여성, 둘째 출산하지 않은 무자녀 여성과 셋째, 나이 든 여성이다. 결혼과 출산의 가족주의 전통을 깨려는 마녀들, 영원한 젊음의 상징인 여성, 나이 든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니, 마녀다. 이를 각각1~4장에 싣고 있다.

 

 

자기만의 인생, 재앙이 된 여성 독립

왜 결혼 안 해, 결혼해서 안정된 생활을 해야지, 독신은 고독하고 불행해 라는 속삭임

 

 

실비아 페데리치에 따르면 마녀사냥은 자본주의에 필요한 노동의 성별 분업을 준비하게 했다. 이 분업은 남성들에게는 유급 노동을, 여성들에게는 출산과 미래의 노동자 교육을 할당했다. 마치 일본의 아베노믹스처럼 저출산초고령사회 타개책으로 출산장려를 하는데, 그 논조가 실로 대단하다. 인구절벽을 넘어 감소가 시작되는 일본, 출산율을 높여 노동 인력을 공급하지 않으면, 여러분 주위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는 발언, 여성의 역할 규정, 다문화사회에 대한 공포감을 제대로 써먹는다.

 

 

여성의 독립은 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회의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면에서는 과거나 오늘날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성이 자기희생의 방식으로 남편이나 자녀들과 맺는 관계는 여전히 여성 정체성(여성성)을 구성하는 핵심으로 남는다. 아이를 원치 않는 여성들은 간혹 비정한 사람 또는 남의 아이에게 악의를 품은 막연히 나쁜 사람으로 인식된다.

또한 여성의 노화는 여전히 추하고 수치스럽고 위협적이고 악마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자본주의 체제 확립에 필수적인 여성의 노예화는 노예들, 하급이라고 선고받은 사람들과 같다고(69쪽)

지은이는 말한다. 나는 프랑스 미디어만큼 여성에게 순종과 포기를 노골적으로 명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프랑스 방송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부모가 나와서 자신의 일상과 여가생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상적인 집, 인테리어 이미지…. 보여주고 인터뷰를 동원해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선전한다. (103쪽)

 

1980년대 영화 <위험한 정사> 속 주인공 댄과 유망한 직장 여성 알렉스, 이들은 만나,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자, 요즘 말하면 쿨하게 즐기는 거야로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알렉스는 임신하고, 낙태하라는 댄에게 알렉스는 말한다. 내 나이 서른셋,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라는 말, 자신감 넘치는 자유로운 직장 여성의 페르소나를 걷어내고 자신을 아내와 어머니 위치로 데려가 줄 구원자를 따분하게 기다리는 비참한 여성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104쪽). 영화제작자는 직장이 있고 자유로운 여성이라 할지라도 가정을 그리워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가정 내에서, 이른바 산업화 시대의 남녀의 사회적 역할론의 관철이다.

 

 

무자녀는 가능성을 위한 선택

 

 

출산과 관련해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의 담론은 최악의 고정관념에 학문적 권위를 씌워 본성 담론을 이어가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다.

 

자율과 독립 등 남성적 자질들은 생명의 선물을 수용하는데, 즉 모성의 접근에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여성의 자세에 접근하는 데 방해가 되는 듯하다. (183쪽).

어머니들, 이 게으르고 의존적 피조물들은 생명의 거대한 신비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만족하며 정치는 남성들에게 맡긴다. 대단히 의도적이고 악질적이다.

 

 

여성은 항상 늙어 있는 존재

 

 

수전 손택은 1972년 ‘두 개의 저울, 이중 잣대’로는 제목으로 남녀의 노화에 관한 기사를 썼다. 글에서 그녀는 스물한 살 생일에 이렇게 한탄했던 친구를 떠올린다.

 

“ 내 인생 최고의 시기는 끝났어. 난 이제 젊지 않아!” 서른 한 살이 된 그녀는 ‘정말 끝장’이라고 선언했다. 10년이 더 지나서는 파티에 참석하지도 않은 수전에게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은 인생의 최악의 날이라고 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만끽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더러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는 20살이 금메달, 22달 은메달, 24살 동메달…. 그 이상 넘어가면 번외가 된다고, 아마도 미국이나 한국, 일본 등 모두 이렇게 나이가 어릴 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전통적 공식, 늘, 너 언제 결혼할거니라는 것들….

 

 

보통 연하의 애인을 둔 여성을 가리켜 ‘쿠거’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2017년 프랑스 정치권의 남녀 나이 차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줬다. 남편보다 스물네 살 많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아내 브리지트 마크롱은 그칠 줄 모르는 성차별적 농담과 지적의 표적이 됐다. 신문 만평에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아내의 부푼 배를 자랑스럽게 가리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축소하고 폐경기 여성들을 폄훼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하는 짓마다 손가락질의 대상이 됐지만, 그의 아내와 스물세 살이나 차이 나는 점은 조롱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이건 뭘 의미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선진국 프랑스도, 자유의 나라 미국도, 남녀의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가족주의와 남성우월주의가 여전히 기세를 펴고 있는 곳이다. 착각하지 말자.

 

소박맞은 아내, 칠거지악 이런 건 현대에도 여전히, 여성 지리학자 실비 브뤼넬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자유라는 것이 무엇보다 남성이 자유를 말하는 건 아닌지라는 질문을 남겼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혼 후의 여성들,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색하고 이기적이고 싸우기 좋아하는 남편과 맞닥뜨려야 했던 많은 여성을 나는 알고 있다. 남편들은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식들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생활비 지급조차 거부한다.”(239쪽),

어쩌면 한결같을까, 또, 확인한다. 희한하게도 문화, 관습의 차이를 말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묵사발 나는 꼴을 한결같다. 한국 사회, 양육비를 내지 않고 도망치는 전 남편들, 이게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책은 아주 많은 자료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마녀의 탄생과 현대적 의미의 마녀들과 그녀들의 항변을 좇았다. 한편, 기독교적 악의 구도로 재난과 위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를 마녀로, 그 희생물은 할 말 하는 여성들이다.

 

늘, 마녀사냥은 그 명칭만 달리할 뿐, 여전히 가족주의로, 성차별과 혐오로, 여성의 노동, 경력단절 등 모든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내 주변에 마녀가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에서는 초식남이라는 말. 말 그대로 강한 남자가 아니라 약한 남자라는 말이다. 여성에게 휘둘리는 남성성에 문제가 있는 초식남, 이는 마녀라는 비교 대상이 있기에 초식남이지 않을까 싶다. 마녀도 초식남도 규정되고, 고정된 관념인 것을... 늘 휘둘린다.

 

 

정겨운 호칭 “마녀” 나는 마녀가 좋다.

 

 

마지막으로 다소 의문나는 대목이 있다. 16세기 마녀에 대한 절대다수의 유죄판결은 민사재판의 결과였다. 민간 재판관들의 마법에 대한 판단,이란 문장에서 “민간 재판관”?, 민사재판?, 이게 무슨 말인지 문맥전후를 살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녀재판은 형사재판이 대다수 아닌가? 질서 위반, 선동, 혹세무민,유언비어 유포,선동, 체제전복, 사람을 해하는 행동은 모두 형사재판일텐데...영 헷갈린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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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DNA - 300년 전쟁사에서 찾은 승리의 도구
앤드루 로버츠 지음, 문수혜 옮김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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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학자 앤드루 로버츠의 <승자의 DNA>, 이 책의 제목이다. 부제는 300년 전쟁사에서 찾은 승리의 도구

 

내 안에 잠든 전략가를 깨우는 책, 이 책은 순응하는 삶보다는 척박한 세상으로 나가 도전하는 삶을 살라는 게 핵심이다. 이른바, 보고 배우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뉴욕역사 협회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7인의 지도자 반열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들어있다. 알렉산더 대왕, 프리드리히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한니발 바르카, 구스타프 아돌프, 말버러 공작과 함께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나폴레옹을 비롯하여 넬슨 제독, 처칠 수상, 마셜 미 육군참모총장, 드골 사령관, 아이젠하워와 대처, 그리고 히틀러와 스탈린 이렇게 아홉 사람이다.

 

이들의 품성이나 인간성이 어찌 됐건, 이 책의 주제는 전쟁을 둘러싸고 발휘한 초인적인 힘의 원천이 어딘가, 이들은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뎠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들에게는 승자그룹의 DNA에는 어떤 요소가 숨겨져 있을까, 지금도 어디선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승자들의 DNA도 그러할까,

 

우선 지은이가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뉴욕역사 협회 연구원으로 대서양을 오가며 영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게다가 2000년에는 역사학계의 노벨상(나는 이 상이 뭔 의미인 줄 아직 잘 모른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아무튼)이라는 ‘울프슨 역사상’을 탔다고 하니, 꽤 기본이 탄탄한 연구자라는 정도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여기에 실은 인물이 왜 승자인지?, 지은이는 단지 전쟁사라는 측면에서 빛을 비췄을 뿐인데…. 우선 지은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무엇이 한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가?

 

지은이가 이 책을 쓴 의도랄까 목적은 과거의 지혜를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사람들에게 9명의 이야기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인 듯하다.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모두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막무가내다. 그런데 이들이 다른 이유 하나는 누구로부터 신뢰를 받고, 신망을 받았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넘쳤다. 거대한 꿈을 꿨다. 심모원려 하였기에 그들은 언행일치, 표리부동,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 이런 요소들을 전략적으로 끝까지 관철한 삶을 살았다.

아주 전략적이라고 표현하련다. 개개인의 삶에 어떤 계기들을 극복하는 기제가 어떻게 작동했는가 하는 것까지 이 책은 말하고 있지 않기에 때문에 그렇다. 만약 역사 심리 학적인 접근을 했다면 과연 이들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까?, 전쟁의 천재, 전쟁의 신 나폴레옹, 뚝심의 넬슨, 팔삭둥이 처질, 이들과는 조금 성향이 다른 쿨한 마셜을 들여다보련다.

 

 

가벼운 과대망상과 초지일관은 영웅을 만든다?

 

책 속으로 돌아가 보자. 지은이는 나폴레옹은 한 마디로 "가벼운 과대망상증"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절반의 성공과 실패의 복합물인가, 뭔 말인고?,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크게 생각했다. 이른바, 대인의 풍모를 지녔다는 뜻이다.

 ‘실력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일관된 행동으로 정실주의의 앙시앵 레짐(프랑스혁명 이전의 구체제) 질서를 철저하게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 동력이 바로 가벼운 과대망상의 효과다. 법전과 체제, 제도의 모든 것을, 핵심은 실력주의다 출신성분도 출세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없고, 논공행상은 정확히, 자신이 걸고 있던 십자가, 훈장도 그 자리에서 떼어내어 공을 세운 병사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준다. 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왜 천재적인 전략가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이를테면 인의예지 즉 싹수가 즉 싸가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불복종의 명수 넬슨, 그는 앞날을 내다보고 있었다.

 

영국해군의 최고의 제독이라는 넬슨, 그 역시도 불복종의 명수다. 즉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 보통 사람은 둘 중 하나, 살거나 죽거나(망가지거나), 하지만 이들은 살아남았고 영웅으로 칭송된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점이 바로 심모원려다 그랜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략가이든 아니든, 일에 미치면 온 힘을 기울여 매진하면…. 바로 이런 증거 중 하나가 넬슨이다.

 

오랫동안 넬슨을 지켜본 그의 상관 저비스 제독은 “만용은 넬슨 경이 지닌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의 성격과 개인사는 문자 그대로 추했다.” 그러나 넬슨에게는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특별함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마법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85쪽)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오늘날 소신껏 원하는 바를 주장하는 대신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도전을 보류하는 현대인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처칠 또한 근거 없는 망상의 대가다.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나중에 크게 쓰일 제목이라고, 마치 우리나라 김모 대통령처럼 중학교 때부터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는데 그게 글쎄 되더라고, 자신에게 최면은 거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라면 옳은 소리다. 처칠은 용기라는 것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강화할 수 있는 자질이라고 여겼다. 출생과 함께 죽음이라는 벗을 곁에 두고 살았던 팔삭둥이 처질에게 전쟁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였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남들이 은퇴할 나이를 넘은 64세 세계 2차대전 일어나자 영국의 전시내각 수상으로 돌아와서,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마셜은 전쟁을 관리 개념으로 본 냉철한 전략가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한 인물

 

마셜?, 미 국무장관 마셜, 마셜 플랜의 그 마셜이 미군의 최고수장이었다고. 아이젠하워나 맥아도 등 유명한 장군들의 상관인 마셜, 그런데 왜 우리는 군인 마셜을 기억하지 못할까?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기획자였다고, 무대의 배우가 맥아도요, 아이젠하워였다면 그는 연출자, 감독이었다. 전쟁은 승리가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는 사고의 소유자다. 이른바 무식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셜은 전쟁회고록을 쓰지 않았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친구이기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공사의 구분이 엄격했다. 또한, 이 최고사령관 마셜은 늘 냉정한 두뇌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피곤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셜은 2차 대전을 결정적으로 끝낼 승리를 기획한 사람이다. 그는 전쟁을 관리했다, 이른바 전략의 핵심 건축가였다.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는 전쟁터의 지휘관과 이를 조정하는 정치권 사이에서 냉철하게 미래, 즉 전쟁판을 그랜드 디자인했던 사람이다. 그는 절대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려는 절제심으로 명성을 얻어보려는 노력, 즉 전쟁회고록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인물을 찾는다면 아마도 제갈공명이나 사마의, 정도라 할까? 물론 두 사람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지만 말이다.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 진리가 통하나 보다.

 

지은이는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아니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라 말한다.

 

첫째는 방어벽을 치고, 그 안에 사는 선택과 그 반대로 방어벽을 걷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 죽기 살기로 맞서는 것. 우리는 어느 쪽일까?, 여기에 소개된 9명의 인물은 후자였다. 이판사판으로 즉, 진짜로 심각하게 세상 밖에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生卽死 死卽生)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들은 바로 죽을 각오로 매사에 임했다. 모든 힘을 다해서,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맡기겠지만,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 맞게 만든다. 이름 없는 승자의 DNA를 가진 이들이 우리 사회는 많다. 이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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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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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밤의 기억을 누가 일부러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잘려나갔다.몰락의 풍경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반전들,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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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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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 마침내 모습 드러낸 카야. 40대 여성으로 밝혀져” 이 소설의 반전에 반전을, 지성은 카야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 전에 같이 지냈던 채리였음을 확인하는 순간 놀란다.

 

이야기의 시작은 채리(카야)가 지성이 술에 취해 잡은 택시에 합승했는데, 지성의 목적지, 아마도 집 근처에 도착, 택시기사가 깨워도 인사불성인 지성, 택시기사는 그를 차에서 끌어 내려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 돈을 챙겼다. 이를 말리려던 채리, 기사와 옥신각신, 겨우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어찌어찌 지성의 집까지 오게 됐다(지성에게 채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대목,170쪽~), 이것은 의도된 것이다. 채리라는 문화적 산물을 평론해오던 그는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문학평론가, 문화, 시사평론가로까지 변신,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고 라디오에 출연하는 셀럽.

 

카야는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 걸까, 아마도 반전에 반전, 지금까지 읽었던 지성의 이야기는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채리가 전소현의 이야기까지 어떻게 안 것일까?, 아무튼, 열심히 읽다 보면, 몇 군데 함정을 눈치챌 수 있다(하지만 리뷰 정도로는 모른다. 직접 읽어봐야 안다.)

 

 

지성은 출판사의 편집위원, 대학의 시간강사 아무튼 꽤 이름을 날리는 평론가다. 그의 아내는 시민운동과 연을 맺으면서 그와 별거, 다른 남자와 산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않았다. 밤새 문인들(민주도 거기에 끼어있었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다음 날 아침, 목이 말라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잠들어 있다. 우렁이 각시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몇 가지 암시를 해두고 있었다. 채리라는 의문의 여인,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점을, 그러나 지성은 자신을 만나 클래식을 듣게 되면서 잠재된 능력, 잠들었던 끼가 깨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유명 문인의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미투가 이어진다. 위선적 지식인들에게 미투는 호재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기회다. 이들은 노림수는 미투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그 순간 어떻게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동료에 대한 신뢰도 의리도 내버린 채 그야말로 정글, 개싸움을 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는 유명 문인의 결백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는 여러 남자와 염문을 뿌렸고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 사연 역시 반전이다.

 

이 책 표지에 적힌 문장

“몰락한 풍경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대중의 광기, 지식인의 위선, 그리고 반전하는 진실들” 이 소설의 깔끔한 완결이다.

 

지성의 오랜 동료이자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 민주는 지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에둘러 지성에게 사랑을 표현하나, 지성은 거절한다. 민주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지성을 미투의 가해자로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가, 지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밤의 기억은 누가 일부러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런 얼개로 소설이 끝났다면, 그저 그런 소설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반전의 시작,

 

민주는 믿음을 쉬이 배반하는 지식인의 위선에 질렸고, 이들의 민낯을 까발리기 위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지성과 함께 술 한잔하던 날, 각본을 짠다. 원래 각본은 지성을 미투 가해자로 폭로하고, 대중들의 반응을 본 후에, 내가 꾸민 일이라고 밝힐 참이었는데, 약물 과다 복용으로 계획과 달리 죽어버린 민주,

 

이 틈새에 채리가 있다. 채리는 지성의 민낯을 본다. 지성에게 도발을 한다. 아주 귀엽게 약간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다가서서, 지성이 미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본다. 좌파진영의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동창이기도 한 현 정부의 교육부장관 이원형의 아들 문제를 TV 토론회에 나와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후, 원고청탁도, 강의 요청도 줄어들면서, 자신이 30대까지 안티운동을 펼쳤던 신화일보에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채리에게 묻는다. 나 그 신문에 글을 써야 해? 라고, 쓰겠다고 맘먹고 이메일을 보내려는 순간에 중도의 고려일보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채리는 지켜봤다.

 

이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나는 강간범이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또다시 이어지는 반전

 

지성은 민주와의 하룻밤을 기억하지 못했듯이 20년 전 처음으로 책을 낼 때, 같이 작업했던 편집자 전소현을 완력으로 범한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아니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 버렸다. 서로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전소현을 만나 정말 그때 일을 기억 못 했노라고, 그런 일을 벌인 자신이 부끄러워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전소현은 내가 버림받은 이유를 알아야 겠다고, 미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녀는 오로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지성,... 전소현으로 부터 온 문자 "건필하세요 작가님"이란 문장을 보면서 안도의 한 숨을... 지성이 완력으로 어찌해보려 했던 여성은 전소현 뿐만이 아니었다. 또 이름도 모를 어떤 여인에게도 덤벼들었던 기억이 난다.

 

민주의 미투를 계기로 지난날 지성이 기억을 못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이, 그 진실을 털어놓을 용기가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양심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그의 민낯과 그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소설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을 읽어본 후라면 어떨까?

 

 

할 말은 많고, 놓치고 싶지 않은 대목들이 많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다. 읽는 동안 채리의 모습이 떠오르고, 민주의 모습이, 유경과 그 밖의 군상들이…. 페미니즘의 저열한 이해들을 공박하는 작가의 생각을 유정을 통해서 말한다. 정아은의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그럼 두 번째 이야기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으로 옮겨가 보련다. 사족, 이 소설을 두 번째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정은아 작가는 젠더에 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작가연구를 해봐야겠다. 소설<모던 하트>, <잠실동 사람들>들부터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까지…. 이 소설 참으로 오랜만에 몰입했다. 쉬지 않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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