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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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 마침내 모습 드러낸 카야. 40대 여성으로 밝혀져” 이 소설의 반전에 반전을, 지성은 카야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 전에 같이 지냈던 채리였음을 확인하는 순간 놀란다.

 

이야기의 시작은 채리(카야)가 지성이 술에 취해 잡은 택시에 합승했는데, 지성의 목적지, 아마도 집 근처에 도착, 택시기사가 깨워도 인사불성인 지성, 택시기사는 그를 차에서 끌어 내려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 돈을 챙겼다. 이를 말리려던 채리, 기사와 옥신각신, 겨우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어찌어찌 지성의 집까지 오게 됐다(지성에게 채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대목,170쪽~), 이것은 의도된 것이다. 채리라는 문화적 산물을 평론해오던 그는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문학평론가, 문화, 시사평론가로까지 변신,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고 라디오에 출연하는 셀럽.

 

카야는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 걸까, 아마도 반전에 반전, 지금까지 읽었던 지성의 이야기는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채리가 전소현의 이야기까지 어떻게 안 것일까?, 아무튼, 열심히 읽다 보면, 몇 군데 함정을 눈치챌 수 있다(하지만 리뷰 정도로는 모른다. 직접 읽어봐야 안다.)

 

 

지성은 출판사의 편집위원, 대학의 시간강사 아무튼 꽤 이름을 날리는 평론가다. 그의 아내는 시민운동과 연을 맺으면서 그와 별거, 다른 남자와 산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않았다. 밤새 문인들(민주도 거기에 끼어있었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다음 날 아침, 목이 말라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잠들어 있다. 우렁이 각시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몇 가지 암시를 해두고 있었다. 채리라는 의문의 여인,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점을, 그러나 지성은 자신을 만나 클래식을 듣게 되면서 잠재된 능력, 잠들었던 끼가 깨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유명 문인의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미투가 이어진다. 위선적 지식인들에게 미투는 호재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기회다. 이들은 노림수는 미투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그 순간 어떻게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동료에 대한 신뢰도 의리도 내버린 채 그야말로 정글, 개싸움을 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는 유명 문인의 결백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는 여러 남자와 염문을 뿌렸고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 사연 역시 반전이다.

 

이 책 표지에 적힌 문장

“몰락한 풍경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대중의 광기, 지식인의 위선, 그리고 반전하는 진실들” 이 소설의 깔끔한 완결이다.

 

지성의 오랜 동료이자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 민주는 지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에둘러 지성에게 사랑을 표현하나, 지성은 거절한다. 민주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지성을 미투의 가해자로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가, 지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밤의 기억은 누가 일부러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런 얼개로 소설이 끝났다면, 그저 그런 소설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반전의 시작,

 

민주는 믿음을 쉬이 배반하는 지식인의 위선에 질렸고, 이들의 민낯을 까발리기 위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지성과 함께 술 한잔하던 날, 각본을 짠다. 원래 각본은 지성을 미투 가해자로 폭로하고, 대중들의 반응을 본 후에, 내가 꾸민 일이라고 밝힐 참이었는데, 약물 과다 복용으로 계획과 달리 죽어버린 민주,

 

이 틈새에 채리가 있다. 채리는 지성의 민낯을 본다. 지성에게 도발을 한다. 아주 귀엽게 약간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다가서서, 지성이 미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본다. 좌파진영의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동창이기도 한 현 정부의 교육부장관 이원형의 아들 문제를 TV 토론회에 나와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후, 원고청탁도, 강의 요청도 줄어들면서, 자신이 30대까지 안티운동을 펼쳤던 신화일보에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채리에게 묻는다. 나 그 신문에 글을 써야 해? 라고, 쓰겠다고 맘먹고 이메일을 보내려는 순간에 중도의 고려일보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채리는 지켜봤다.

 

이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나는 강간범이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또다시 이어지는 반전

 

지성은 민주와의 하룻밤을 기억하지 못했듯이 20년 전 처음으로 책을 낼 때, 같이 작업했던 편집자 전소현을 완력으로 범한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아니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 버렸다. 서로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전소현을 만나 정말 그때 일을 기억 못 했노라고, 그런 일을 벌인 자신이 부끄러워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전소현은 내가 버림받은 이유를 알아야 겠다고, 미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녀는 오로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지성,... 전소현으로 부터 온 문자 "건필하세요 작가님"이란 문장을 보면서 안도의 한 숨을... 지성이 완력으로 어찌해보려 했던 여성은 전소현 뿐만이 아니었다. 또 이름도 모를 어떤 여인에게도 덤벼들었던 기억이 난다.

 

민주의 미투를 계기로 지난날 지성이 기억을 못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이, 그 진실을 털어놓을 용기가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양심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그의 민낯과 그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소설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을 읽어본 후라면 어떨까?

 

 

할 말은 많고, 놓치고 싶지 않은 대목들이 많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다. 읽는 동안 채리의 모습이 떠오르고, 민주의 모습이, 유경과 그 밖의 군상들이…. 페미니즘의 저열한 이해들을 공박하는 작가의 생각을 유정을 통해서 말한다. 정아은의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그럼 두 번째 이야기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으로 옮겨가 보련다. 사족, 이 소설을 두 번째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정은아 작가는 젠더에 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작가연구를 해봐야겠다. 소설<모던 하트>, <잠실동 사람들>들부터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까지…. 이 소설 참으로 오랜만에 몰입했다. 쉬지 않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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