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유순덕 외 지음 / 이화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

 

꽤 솔직한, 살벌한 제목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대치동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치(大峙=한티, 한톳재, 큰고개, 큰 언덕)는 뭔가 있어 보인다. 18세기 담양군 대전면에 조선조 건국에 반대해 두문동으로 들어간 고려조 72 충신을 배양하는 대치서원, 이 역시 같은 한자를 쓴다.

 

 

대치동이라 쓰고 큰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며 조선 시대 "과거"는 큰 고개를 넘어야 출세의 길이 펼쳐지듯, 대치동 또한 현대 한국 사회의 교육 메카가 된 게 아닐까?, 한자 말을 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왜 대치동이지 하는 생각, 물론 지리 여건과 주변 환경 때문에 교육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됐을 것이지만 말이다. 시나브로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서당(대치동) 옆으로 이사를 해야, 공부하는 폼이 잡힐까 했던 그런 맹모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터가 좋은 곳일까?

 

 

지은이들은 대치인문독서클럽에서 책을 읽는 이들이다. 이들 중 유순덕 대치도서관장은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 클럽은 도서관이 삶의 놀이터라 생각하는 이들의 모였다. 자그만치 11년이나 됐다. 2021년 길 위의 인문학 심화과정 선정 조건에 책 출판이 있어, 간단한 소감문집을 만들려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책을 펴낸 것이다.

 

 

지은이 유순덕 관장이 말하는 대치동, 누군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꿈을 품은 채 대치동을 찾고, 또 누군가는 아이들의 교육을 마치고 대치동을 떠난다.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 나오는 남매처럼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이 찾던 행복을 찾았을까? 파랑새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혹시 허상과 같은 신기루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쪽) " 자신보다 자녀 인생의 파랑새를 찾아 주고 싶어서 대치동으로 왔다면, 아이들의 가슴속에 이미 파랑새가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들여다봐 주면 어떨까? (21쪽) 바로 이 대목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을 풀어가는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도 고대의 엘리트 교육(플라톤 등이 주장한)과 정부의 고위직 대부분을 명문대 출신으로 채우는 우리나라의 정치 시스템의 영향력이 더해져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주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를 위해 "대치동 행을 결심했다는" 거짓말

 

 

지은이 김한나 선생은 대치도서관에서 한국과 중국 역사, 중국어 강사로 활동한다.

"남들이 극성이라며 혀를 차도, 대치동 한복판까지 우리가 왜 들어왔겠어요? 다 아이를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다른 애들은 달리고 있는데 얘가 자꾸 꾀부리면서 공부도 안 하고 학원 숙제도 제대로 안 해가니 속상해 죽겠어요"라는 말, 지은이는 "어머니…. 혹시 00이가 어머니, 아버지 저를 제대로 키우고 싶으시면 대치동으로 가 주십시오라고 부탁이라도 했나요?(57쪽), 과히 이 대목은 촌철살인이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부모 혹은 보호자는 열등감, 학력, 학벌 콤플렉스(열등감)의 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나는 시대가 됐고, 부모의 재산과 노력 여하에 따라 나아가는 세상의 수준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향과 추세이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잉 일반화라고 할까?, 신문 기사에서 난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출발부터 다른 환경을 만들어줘야 부모 노릇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 사회에서 자식 문제를 들먹이면 전혀 득 될 게 없다. 잘못하면 친구 사이에도 의가 상할 정도로 민감하고도 첨예한 문제다.

 

 

대치동을 떠난 아들과 대치동에 남은 엄마, 우리들의 성장기 "내려놓으면 얻는다"

 

지은이 박동희 선생은 대치인문독서클럽에서 역사도서토론리더로 활동한다. 대치동에 왔을 때, "엄마, 나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 외국으로 가면 안 될까에서 시작된 아들의 결정, 중고, 대학을 나와 해병대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금융업계에서 열심히 잘 살아 있다는 아들, 그 어머니는 말한다. 나는 아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믿지 못했다. 나 스스로 설정한 허상들- 명문대 입학,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 그리고 이를 이루어 줄 대치동의 삶-에 아들을 끼워 넣으려고만 했을 뿐이라고…. (129쪽)

 

 

공부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각과 깨달음이 생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끌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대치동이 대한민국 교육 메카요,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가 모인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말을 물가까지는 끌고 갈 수 있어도,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듯이 어느 환경에서건 자기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 혹은 보호자는 도와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면서 내가 못 이룬 꿈들을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건 아닌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 "허영심"이 때로는 이렇게 애꿎게도 아이도 잡고 부모도 잡아먹는다.

 

오늘도 대치동으로 고고(GoGo)를 외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미래의 길을 열어가는 힘은 부모의 도움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일 뿐이라고.

 

사족, 그래도 자식 문제 앞에서만큼은 모두가 팔불출인 셈이다. 부모가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자식을 믿어주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찾아내서 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학업 중심체제의 한국에서 지와 덕과 체를 함께 갖춘 씩씩한 미래세대로….

박성수의 책 "개천의 용, 공정교육은 가능한가"(공명, 2021)도 한 번 봐둘 필요가 있겠다. 대치동 행 결정에 앞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부모교육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는 제목 글 외에 ‘목격자는 없었다.’ ‘고마워, 할머니’ ‘언니처럼’ ‘그림 속의 남자’ 이렇게 5편이 실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는 제목 글 외에 ‘목격자는 없었다.’ ‘고마워, 할머니’ ‘언니처럼’ ‘그림 속의 남자’ 이렇게 5편이 실려있다. 용서는 바리지 않습니다와 목격자는 없었다 2편의 느낌을 적는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18년 전, 외할머니는 시아버지인 주인공 류이치의 증조할아버지를 식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재판에서 담담하고도 당당하게 할머니 자신이 시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어차피 폐암으로 몇 개월도 살지 못할 늙은이를 왜 죽여, 시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해방해달라고 부탁한 청부살인이 아닐까, 그러나 할머니는 류이치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성룡의 취권을 흉내를 내다가 TV를 부숴버린 뒤, 새로 TV를 사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미 이 때 폐암을 앓고 있었다. 죽어서도 외지인으로 시아버지를 죽였기에 본가(히사미) 가족묘에는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아니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죽어서라도 해방을 맞이하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할머니는 교도소 안에서 죽고, 유골은 가족묘를 모시던 사당에 묻히지마자, 마을 사람들에 의해 파헤쳐졌다. 17년이 지나서 류이치는 연인 미즈에와 할머니를 절에 모시려고 유골함을 가지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했다.

 

미즈에는 류이치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데 류이치는 망설인다. 살인자의 손자라서, 증조할아버지는 치매다. 이전에 논에 물을 대는 수리관리감독일을 했는데, 간혹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논에 물을 대서, 큰일 내기도 했다. 치매의 시아버지를 관리 못한 책임을 물어 할머니를 무라하치부(집단 따돌림)했다. 살인이 일어난 날도 증조할아버지는 수문을 열어 마을대표의 집안의 논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때마침 다른 마을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할머니는 그 집안 사람이 화를 내며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시아버지를 칼로 찔러죽인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제정신이 상태에서 그 집안 논으로 물을 흘려 보냈던 것이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질기고 질긴 연을 끊는 선언이다. 내 손으로 시아버지를 죽였으니, 살인죄로 처벌해달라고, 죽어서도 그 집안 묘로 들어가기 싫다고, 영원히 해방되고 싶다고..., 용서하지 마세요. 나는 죽어서까지도 히사미 집안에 얽히는 건 싫습니다. 아니,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고, 마을사람들은 할머니를 집단으로 따돌림을 했다.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협박이다. 철저하게 그림자 취급을 한다. 마을 공동쓰레기 집하장에 쓰레기를 내놓아도 할머니네 쓰레기는 수거해가지 않는다. 마을 안 가게에서는 물건도 팔지 않는다. 철저하게 따돌림을 하는 곳, 음습한 집단적 괴롭힘 속에 할머니방식대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누구라도 죽여야만 했다.

 

미즈에는 아주 간단하게 할머니의 살인죄 고백을 해석해 낸다. 다른 곳에 뿌려주자고, 편한 곳에 훨훨날아갈 수 있도록...

 

 

<목격자는 없었다>

 

주인공 가쓰라기 슈야, 샐러리맨이다. 영업실적 때문에 자그마한 실수를 한다. 탁자 1개 주문을 11개로 잘못 발주한 것이다. 이게 들통나면 회사 안에서 받을 눈총과 질책이 싫어 혼자 해결하기로 한다. 1개를 주문한 곳에 가져다 주고 10개를 집에다 가져놓는다. 공장에 가서 11개를 받아 주문한 곳에 1개를 내려주고 움직이려는 순간,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려오던 흰색 승용차가 미니 밴을 들이 받았고 미니 밴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서둘러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가, 탁자13개를 내려놓고 집에서 쉬는 데, 이날 사이와이정 맨션에 불이 나서 사상자 발생, 누군가 맨션에서 가쓰라기 슈야를 봤다고 경찰에 신고, 미니 밴 운전자의 부인은 슈야를 찾아와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해달라고 하고, 경찰은 맨션의 화재는 방화였는데, 그것에 있지 않았음을 증명할 알리바이가 있냐고 묻는데...

 

슈야는 탁자 주문일처리를 잘못해서 수습하느라고 직접 배달에 나섰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알리바이도, 교통사고 목격자로서 증언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될 터이지만, 과연 누가 나를 맨션에서 봤다고 신고했을까?, 이로 인해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일까? “당신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증언하는군요”라는 미니밴 운전자 아내의 말이 뇌리를 맴돈다.

 

미니 밴 운전자 스미다 요헤이는 누구지, 아내가 슈야에게 말하는 남편의 징크스,

 

집을 나설 때는 왼발부터 내디딘다. 같이 있는 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손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다. 전철의 홀수 칸에는 타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를 보면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나와야 한다. 전부 남편이 충실하게 지켰던 징크스예요. 그 중에 빨간 불일 때는 멈춰야 한다는 징크스도 있어요. 남편에게 빨간 불일 때 멈추는 건 단순한 교통법규가 아니라 절대 어길 수 없는 징크스였다고요라는 말은 남긴 그의 아내가 슈야를 목격했다고 허위 신고를 한 걸까?

이 소설 속 슈아, 대체로 시류에 영합하려한다. 작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재정적 손해도 감수할 정도다. 그에게 교통사고의 진실 따위는 안중에 없다. 내 안위와 관련된 일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외통수에 걸린 듯하다. 남편의 징크스를 믿는 아내의 교통사고 진실발견의 노력앞에...슈야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까, 어차피 그는 시류와 영합하는 게 더 편하니까. 정의와는 전혀 관계 없이...

 

 

 

 

두 편의 소설을 주는 느낌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원문 용서받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일본 공동체 사회, 물론 우리도 과거에는 마을공동체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탈을 내면 조리돌림, 멍석말이, 덕석말이라는 동네법이 존재했다. 공동체 질서가 훼손되면 규율이 깨지고, 무질서해지면, 마을 대표나 권세가들이 불안해진다. 아울러, 너와 나(일본 밖=소토, 안=우치) 문화, 결혼해서 호적에 오르더라도 여성들은 외부인이다. 부부별성제를 쓴 우리 사회는 성으로 구분한다. 여성을 존중한다는 그런 의미를 보이지 않는듯하다.

마을의 문제아(무라하치부), 우리는 팔푼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배제는 그림자 취급을 한다. 죽거나 재난 상황에서만 그림자를 인정한다. 이 판을 벗어나기 위한 할머니의 몸부림

<목격자는 없습니다> 누구도 목격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 내가 피곤해질 수 있기에 얽히려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한 방의 날림? 이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미스터리라는 표현보다는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리젠가

 

젠가게임과도 같은 우리 사회, 소외, 배제된 계층, 계층통로 사다리마저 치워져 버린, 한 번 놓치면 다시 탈 기회가 없는 열차처럼 아슬아슬한 경계의 삶들,

 

이 소설은 탈산업화, 서비스 경제 사회에서 기간제 교사, 방과 후 교사, 취업준비생, 프리랜서, 플랫폼, 배달노동자들 이른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과연 그들은 어떤 미래비전과 희망으로 자신 “삶”의 주체로 떨쳐 일어설 것인가? 작가의 시선은 그것을 구현해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려 한다.

 

88만 원 세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어렵게 취업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코로나 19 재난 상황 속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이들, 이제 취업의 혹한기 속을 뚫고 나아가려는 취업준비생, 이들은 이 사회의 공정룰을 따질 만한 위치도 처지도 아닌 상황에 매몰된 이들이다. 청년 일자리 정책 속에는 청년들이 없듯이, 공정한 룰 논쟁에도 주인공인 청년들은 없다. 파편화되고, 분산된 삶이 있을 뿐.

 

이 소설집은 네 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우선 <시체놀이> 이력서만 수백 장을 쓰고 수십 곳의 면접을 봐도, 면접관의 “경험있어요” 라는 질문에 신입이 어디서 경력을 쌓는가 말인가, 취업 시장에 뛰어든 지 삼 년째, 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 젠가가 마음속에 가득 찼고 금방이라도 내 존재 자체가 와장창 부서질 것만 같았다(16쪽).

 

한때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으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했던 그 허망한 꿈, 어려운 시골 살림으로 학비를 대주던 부모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발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독서실, 유통기한의 직전의 도시락을 먹으며, 살아온 날들, 이제 탈출구가 요원해 보인다. TV 방송국이나 영화의 시체 역할 아르바이트가 최저시급보다는 낫다. 직업으로서 시체놀이, 한때 시대를 주름잡던 대배우도 지금은 시체 대역이란다. 그 많던 돈을 다 날리고 후배들 눈치나 보며, 시체놀이를 한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한 줌으로 재로 돌아갔지만, 시체놀이의 징크스라 회자하던 불행, 내가 아니면 주변의 불행, 편의점에서 일할 때, 먹이를 챙겨주었던 길냥이, 이제 편의점에 나가지 않으니, 누가 밥을 챙겨줄까 싶어 한 번 보러 나간다. 참지 캔을 하나 안겨주고, 그렇게 헤어졌다. 시체놀이를 하고 온 날, 길냥이는 차에 치어 죽었다. 한재덕도 죽었고,

 

오늘의 시체놀이를 끝으로 한재덕 몫까지 살아 보기로 다짐한다. 편안한 시체가 된 몸이 퍽 안락하다. 죽은 듯 자고 일어나 나는 시체가 아닌 내상을 그려보리라. 쓰다 만 자기소개서의 커서가 붉은 눈으로 깜박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절절한 소설이다. 생생하게 취준생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어디로 향해야 하나, 방황과 고통, 시체놀이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내가 하고픈 일을 찾아서 힘들지만, 또 한 걸음 내디딘다.

 

<유리젠가>, 주인공 소영. 7년간의 연애, 서른여섯 결혼하고 싶다.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늘 떨어대는 수다들…. 남들은 의사와 결혼했네, 잘 나가는 직장인과 결혼했네…. 친구들 모임 중 나 혼자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연애를 끝내자 남자친구와 결별을 선언하고, SNS 속으로 뛰어든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사랑을 나누게 된 홍콩에서 일하는 회계사, 데이비드 김. 그의 감미로운 속삭임에 서른여섯의 외로운 여성은 그렇게 위태롭게 유리젠가를 쌓아간다, 이 늦은 나이에도 사랑을 찾아오나 싶어,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또 전화를, 화상통화를 하려고 회사의 회식 자리도 빠진 채….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데이비드 김으로부터 연락, 돈을 빌려달란다.

 

이 천만 원…. 홍콩에서 일이 마무리되면 귀국해서 결혼하잖다. 그로부터 이니셜까지 새겨진 짝통명품가방을 받는다. 이천만 원은 데이비드 김의 통장으로 송금되고, 집에 찾아온 언니와의 대화, TV 뉴스에 나오는 SNS 사랑 사기 소식(로맨스스캠), 나는 그 가운데 있고 그 피해자이다.

 

무너진 유리젠가, 사람들과의 관계

 

미래를 꿈꾸며 쌓아 올린 유리 젠가엔 이미 균열이 갔던 것일지 모른다. 위태로운 젠가의 끝에 서서 난 비틀거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김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나는 도대체 뭘 바라고 있었던 거지? 라는 물음은 많은 걸 떠오르게 한다. 결혼하기 힘든 시대, 미혼 비혼을 떠나, 이 소설은 미래비전이 보이지 않는 연인들,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믿음, 외로움, 고독한 군중,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같은 곳에서 일하고 부대끼고 살지만, 군중은 홀로된 외로움을….

작가는 유리 젠가에서 여성성을 성적 측면으로 접근하지 않고, 거리의 단절, 관계의 문제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달팽이 키우기>, 주인공 자애와 그의 남편, 둘은 캠퍼스커플이다. 자애는 국문과를 나왔지만, 방과 후 교사로 일한단 자애와 여행사에 근무하다 코로나 재난으로 직장을 잃고 무거운 분위가 떠도는 작은 원룸에서 지내는 이들, 도시의 집이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남편은 나름대로 일을 찾아해보려 노력하지만, 따뜻한 사무실에서 여행플래너 일을 하던 그가 추운 현장에서의 일에 적응을 못 하고, 배달일도 제대로 해내질 못한다. 자애는 방과 후 교사의 재계약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교사 일을 하기 전에 몸담았던 잡지사나 신문사에 연락을 해봐도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뿐이다. "~사"자가 붙은 직업이 아닌 바에야 경제적 상황에 휘둘리기 영향을 더 받는다.

 

이 글의 매개인 달팽이와 만남, 새로운 희망의 씨앗 달팽이를 데려온다.

 

어느 날 엄마의 김장 일 도우러 시골집에 내려갔다, 배춧속 작은 달팽이를 발견하고, 우유병 속에 넣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달팽이 키우기가 시작된다. 야생달팽이 알콩이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먹이를 주면서, 알콩이가 외로워할 것 같아서 양식 애완용 달팽이 달콩이를 데려와 함께 살도록 해주지만…. 결국 달콩이는 죽는다. 야생달팽이 알콩이는 세찬 비와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배추 안에서 살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때의 치열한 경험과 노력으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 수 있었던 걸 거야(140쪽).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나 사실, 너와 함께 달팽이를 키우며 깨달은 게 많아.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지 어느 누가 알았겠어.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로 잘 잔이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수입이 없어져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고, 평소 하지도 않았던 일을 도전하는 게…. 나 역시 내 일상이 이렇게 조각나고 처참히 망가질 줄 생각도 못 했거든…. 너한테 미안해서…. 너랑 마주치는 게 불편하고….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매일 자책했어. 그런데 네가 데려온 달팽이를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 느리더라도 꾸준히 제 할 일을 해내며 점점 커가는 알콩이를 보며 희망이 생겼어, 알콩이는 거친 환경을 겪고 극복해왔기에 분명 잘 자랄 수 있었던 거야.

 

우리 상황도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잘 극복해 살아갈 수 있을 그것이라고 믿는다. 조급함이나 불안감은 잠시 내려두고, 우리 천천히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자.

 

<발효의 시간>, 묵묵히 정성스레 만들어온 일상,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처질 거라고 분명 그렇다. 청주에서 이제 3대째로 이어지는 직지글빵, 2대째인 아버지는 가업을 이으려는 아들에게 대학가라고 한다. 이 빵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빵 만들기를 하려는 아들의 고집이 바보스럽기만 하다. 직지 정신도 현실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직지글빵, 유튜브 정성스럼을 알리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아들은 유튜브를 통해 직지글빵이 얼마나 정성스레 빵 만들기를 해온 지를 알리면 빵 판매 실적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결국 널리 알려졌고, 주문이 밀려온다.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남이 알고, 우리 빵을 맛보는 손님들이 분명 느끼게 될 거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직지 글빵 속에 들어가는 저당분 팥앙금이나 유기농 호두, 직접 키운 블루베리는 모두 먹는 이들의 건강을 생각한 재료잖니. 이 비용이 아까워 다른 재료로 바꾼다면 결국 소탐대실의 결과에 직면하게 될 거다. 철아. 이것 하나만 약속해주겠니? 우리 빵이 아무리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좋은 평가를 받고, 돈을 많이 벌어도 초심을 잊지 않겠다고 말이야. 귀찮고 번잡한 과정일지라도 빵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 꼭 필요한 일이란다. 직지를 찾는 일처럼 말이야 그는 아버지의 진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169쪽).

 

아무리 새로운 시대가 올 지언정 반드시 거쳐야 할 것들이 있다. 발효의 시간이 그것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라도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아들세대다. 딱 부러진 자신의 삶의 태도와 방향이 없이 헤매는 힘들어 하는 청년들, 이들에게 자신만의 가치와 하고싶은 것들에 대한 도전을 가져보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이수현의 네 편의 소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갈등과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동안 갈등 요소였던 계급 간의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은 또 다른 방향으로 증폭되어 인류 공동체의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 생명이 위협받을 때 그 어떤 문화, 사상도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는 걸 코로나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고 전기철은 이 소설 평론에서 말한다(174쪽).

 

정의는 함께 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 모색을 바깥에서가 아닌, 안에서 그 자신의 실천에서 찾는다.

 

 

<1인 창업스쿨로부터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와 함께한 하루
산더 콜라트 지음, 문지희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더콜라트 소설, 반려견 빌런의 죽음을 목적에 둔 주인공 헹크, 17세 조카 생일파티에 초대된 날, 그의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살아있다는 것의 경이로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