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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혹시, 그때 그 곳을 기억하니. 황량하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초라하지만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작업실. 너는 겨울동안 그림에 매진해있었기 때문에 말끔한 손은 언제나 물감이 묻어있기 일쑤였고 그것을 발견하는 건 이상하게도 늘 나였어. 그래서 나는 여분의 손수건을 두어개씩 챙겼던 것을 기억해. 너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리는 네 등 뒤에 있는 소파에서 책을 읽었지. 방해가 될까봐 자세도 바꾸지 못한 채 숨죽여 있었지만 너는 그 모습을 보고 놀리듯이 웃었어. 네가 타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먼지 낀 나무창틈으로 들어오는 아이보리색 햇살에 의지해 책을 읽다 지쳐 잠이 들면 언제나 너의 코트가 덮여 있었어. 물감과 목탄과 종이냄새, 네가 쓰는 향수가 섞인 뭐라 하기 어려운 네 냄새. 날 깨우는 건 시간이나 잠의 양이 아닌 그 냄새였어.
그곳도 기억하겠지. 내가 굳이 우겨서 갔던 처음 가 본 겨울의 바다. 그 해 가장 추웠던 날, 하필 바다를 고른 나는 울상이 되었지만 누구도 한마디 책망이 없었지. w만이 가끔 이죽거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을 뿐이었어. 결국 독감에 걸려 돌아왔지만, 소금기조차 사라진 듯한 그 바다냄새는 지금도 기억해, 놀랍게도 말야. 우리 중 누구도 그날, 아니 여러 날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어. 묘하게도 하나같이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아마 우리는 현재를 기록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 거야. 사진을 담는 것은 과거가 될 때를 대비하는 거라고, 우리는 서로의 현재이자 역사가 될 터이니 굳이 과거를 남길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오만하게 말이지. 그래서 w가 외국에서 사진을 잔뜩 찍어 보냈을 때 나는 많이 놀랐고 아주 조금 배신감 비슷한 걸 느꼈어. 색채가 두드러진 과일이 잔뜩 실린 시장과 등(燈)이 예쁜 야경, 그리고 끊임없이 펼쳐진 수평선에 걸친 해를 본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더라. 그리고 다시 그 사진을 보지 않았어.
며칠 전 한 소설을 읽었어. 누군가의 병실을 지키는 자리에서였어. 그는 이미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웠기에 나는 마치 스스로가 식인상어이거나 저승사자가 된 것 같았어. 조금만 애를 쓰면 나도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이었어. 꺼끌꺼끌한 숨이 붙어서 가슴은 가쁘게 움직이고, 눈에는 총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는데 식사 시간과 겨우 몇 분을 제외하고는 그마저도 늘 감은 채 잠들어있었어.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밥을 먹었고 때로는 잠이 부족해 졸기도 했어. 갈퀴 같은 손을 붙잡고 억새풀 같은 머리카락을 넘기기도 하고. 건강한 내 몸이 다행스럽고도 부끄러웠어. 그래, 건강했으니까 그 덥고 두툼한 공기를 견디지 못해 잠시 휴게실로 나왔지. 고작 오 분여 남짓이었을 거야. 그런데 그 사이에 환자가 깨어나서 움직이면서 팔에서 링거가 빠졌던 모양이야. 병실로 돌아갔을 때는 검붉은 피가 눈물처럼 떨어지고 있었어, 이미 바닥이 흥건했지.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고 그녀가 링거와 바닥을 정리해주고 돌아갔어. 환자는 다시 잠이 들었고 환자의 발에 묻은 핏자국을 닦다 보니 내 손도, 신발도 피투성이라는 것을 알았어. 물티슈를 이용해 조심스레 닦아내는데 나는 울고 있더라. 놀라서, 무서워서였을까. 그래, 어쩌면. 하지만 두려워서는 아니었을까.
그 병실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어. 거친 숨과 지나치게 따뜻한 난방, 핏자국을 닦은 라디에이터와 분홍색이 되어버린 물티슈 사이에 앉아서 책을 읽었어. 왜 하필 이 책을 가져왔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곳에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그냥 읽기로 했어. 아주 천천히 잠이 들 것처럼 읽었는데도 환자는 여전히 깨지 않았어. 책을 덮고 눈두덩을 만지며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내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겠니. 너의 기억과 책과 병실의 이야기 사이에 대체 어떤 것들이 빠져 있거나 더해졌는지. 실은 나는 잘 모르겠어. 어떤 것이 어느 것을 불러일으켰는지, 무엇이 무엇을 가르켰는지. 그저 ‘그리고’ 너에게 편지를 써야한다는 생각뿐이었어. 너는 무엇이든 빨리 이해하고, 언제나 논리적이었으니 어쩌면 나도 모르는 인과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병실에 있었고 책을 읽었고 너를 생각하다 편지를 쓰고 있어.
내가 읽은 책은 한강의 소설이었어. 『희랍어 시간』이라는 제목이야. 한강의 신간이 나왔다고, 그런데 제목이 희랍어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눈을 가늘게 떴어. 뭐라고 할까, 제목에서부터 벌써 고된 느낌이 들었어. 형형한 풍경 그러나 헛헛한 종소리 같은 것이 들렸어. 대외적으로 풀어보면 말을 잃은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야. 아니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었어. 다만 만나게 되지. 빛을 잃어가는 와중에, 말을 잃어버린 후에. 그냥 그 상태로 거기 있는 상대를 발견해. 격정적인 멜로나 신파 같은 건 아니야. 갑작스럽게 말을 잃은 이의 서툰 독순술(讀脣術)같은, 서서히 빛을 잃은 이의 더듬거림 없는 익숙한 손길 같은 소설이지. 그러니까, 너도 짐작했다시피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글이야.
어쩌면 말야. 작가는 어쩌면 이 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그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구를 위해서든 무엇을 통해서든 뭔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데, 그것이 자신에게 천착되어 버릴까봐 소설의 형태를 빌린 자기 기록이 아닐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 문장과 감정은 또렷하고 선명한데 내용은 흐릿하고 불분명했거든. 그리고 많이 아파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혹은 그 감정의 극단을 짐작하는 사람만이 할 법한 표현과 생각이 있었거든.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소설의 형태를 빌린 일기라고 생각했어.
가끔 너무 괴로운 사람들을 소설에서 만날 때, 그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어. 유려한 문장과 첨예한 감각에 감명 받기는 했지만 대체 그녀들은 왜 이리 괴로운가, 생각하곤 했지. 하지만 이제는 그녀들의 아픔이 엄살도 투정도 아님을 알았어. 괴로운 기억을 안고 어쩔 수 없이 그 기억을 공유하며 사는 사람들, 인생이 사실은 불가해한 일 투성이라는 것을 깨지고 넘어지고 다쳐서 알게 된 사람들. 정말 그런 삶이 존재한다는 거 말이야. 이 책을 봐봐, 남자는 빛을 잃었고 여자는 말을 잃었어. 하지만 그것만이 둘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남자의 성격과 현재를 설명하는 것이 꼭 빛이어야 하고, 여자의 실언을 증명하는 것이 여자의 상황이어야 하는걸까? 아니, 그건 아닐거야.
삶에는 뭉툭한 부분과 날카로운 부분이 있고, 옴폭 패인 부분과 오목하게 올라온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이 어떤 단면인지 모르고 그저 묵묵히 걷지. 아픔을, 닿는 순간에에 느낄 수도 있지만, 평평한 길을 걸을 때야 비로소 문득 아, 내가 날카로운 부분에서 발을 베였구나 느낄 때도 있잖아. 깨닫고 나서 지나온 길을 보니 옴폭 패인 곳에 넘어졌던 것 같다고 기억하기도 하고. 이 책에 나오는 남녀가 그런 사람들인 것 같아. 우둘투둘한 길을 걸어오며 피를 흘리는 발, 접지른 발을 갖고도 무심하게 걸어. 자신의 발에서 피가 나는지, 그것이 흐르고 고여 이미 작은 웅덩이를 이루는지도 모른 채 혹은 일부러 보지 않은 채 절룩절룩 그렇게.
나는 빛을 잃은 적도, 말을 잃은 적도 아마 없겠지만 불현듯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버렸어. 이상하지 않니. 이해한다는 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덧없는 착각인 줄 알면서도 이 둘의 마음을 안다고 느끼는 것이. 나는 사람이 얼마나 좁은 존재인줄 알아. 아아, 그래. 연민은 소모적이고 회한은 소멸되지. 남의 슬픔은 내 것이 될 수 없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지. 어떤 절망의 늪도 타인과 함께 빠지지는 않고, 그 늪을 빠져나온 사람이 반드시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 사람은 적어도 거기에 늪이 있다는 것을 알지. 그런데도. 그냥, 보였어. 행간에서 느껴지는 쉼표와 마침표 사이에 있는, 마침표와 다음 첫글자 사이에 놓인 침묵과 망설임과 두려움 같은 것이. 남자의 비애와 여자의 통탄과 두 사람의 후회와 분노와 절망 같은 것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해버렸어.
우습지 않니. 빛을 잃어버린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 빛 속에서 애써 말로써 감상을 표현한다는 것이, 서글프고 우습지 않니. 좋은 책은 실은 아무 말도 필요가 없지, 그리고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기에 다시 어떤 말이든 하고 싶어지지. 말이란 얼마나 무용한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몰두할 때는 말은 무의미해지지,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지. 말이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균열이 생기게 될 때야, 점점 커가는 간극을 좁히려 그 간극에 자꾸만 말을 채우게 되지.
그렇다면, 빛을 잃은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빛을 잃은 남자는 말로써 이해시키고 말을 잃은 여자는 빛을 비추어야할까. 남자에게 여자는 빛이 되어주고, 여자에게 남자는 말이 되어줘야 하는 건가. 본다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현혹일 수 있기에, 말은 과장이나 실수가 될 수 있으므로 그들은 좀 더 완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남자에게는 빛으로 여자에게는 말로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 차라리 옳은 것은 아닐까.
병실을 나왔을 때 나는 크게 혼잣말을 하고 뽀얀 해를 올려다봤어. 아직 내게는 빛도 언어도 남아있다는 걸 알았지. 그것을 잃어본 적도 사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이 심히 안심이 됐어. 우습지, 말이란 무용한 것, 본다는 것은 행위 이상이 아니기도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과 빛으로 안도하다니.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링거액이 떨어지던 소리처럼 똑,똑, 그 속도처럼 천천히 소리내어 읊었어.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그 말이 얼마나 나를 안심시켰는지. 소금기 어린 바다, 체온이 묻은 머플러, 뼈가 불거진 손목, 착한 나무처럼 곧았던 뒷모습. 그런 것들이 이렇게나 선연한데. 검붉은 피도 푸른 동맥도 가쁜 숨소리도 이렇게나 안타까운데. 남자의 유예도 여자의 정지도 이렇게나 서글픈데. 완전한 것은 없다니. 얼마나 절망 어린 안도감일까.
책 속에선 이런 말이 나오지. 스위스에 방문했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다고, 그때는 나와 세계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눈으로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그래, 내가 w의 사진을 외면했던 건 거기에 낙인 찍힌 칼자국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너는 어떠니. 내가 말한 모든 것들을 나조차 모르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니. 그때의 너와 세계 사이에 놓인 칼을 나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지금 너와 세계 사이에 놓인 칼은 어떤 것이니. 칼로부터 지킬 수 있는 튼튼한 방패는 찾았을까.
무엇인가를 잃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할 때, 당신을 잃음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보이는 세계를 이제 잃음으로써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내년이면 너를 만난지 십삼년이 되고, 너를 잃은지 칠년이 되는구나. 이제 너를 만났던 시간보다 너를 잃은 시간이 더 길어졌어. 하지만 나는 너를 만난 시간부터를 재는 것이 버릇이 됐어. 내가 지금의 너를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야. 때때로, 너를 만난 육년이 없었다면 너를 잃은 칠년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그러니 너를 잃은 일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만나지 않은 것보다 잃는 것이 나을테니 말야.
네가 내쪽으로 등을 돌리는 찰나의 너의 머리카락이 흩어지던 모양과 네가 쓰던 향수로만은 절대 재현하지 못하는 너의 냄새와
연필을 쥐던 습관과 곧은 이마, 암갈색 눈동자가 온기를 품던 순간의 벅참. 믿기지 않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알고 있어. 그것이, 그 기억이 나의 빛이자 언어가 되어줄 지도 모르지.
이것은 꿈이 아닐거야. 꿈이라면 이 모든 것이 이토록 선명하고 이렇게 모호할 수는 없으니까.
이것은 꿈이 아닐거야, 분명. 네가 있는 세계가 꿈일리는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