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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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 탐욕의 시대 중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때문에 도덕행위를 '수행'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아이히만은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아이히만은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목표는 조직내 출세라는 개인적인 욕망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 누구도 죽이라고 지시하거나 죽인 적이 없고, 다만 국가라는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충실한 임무 수행은 수십만명의 유태인의 학살이라는 결과는 낳았고 그 범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사형당했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도 결국 아이히만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단지 '이윤 극대화'라는 자신들의 목표에 충실했을 뿐이고 이것은 민간기업으로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단지 하나의 기업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모든 것을 배제한 단순한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지향은 수천만명의 기아와 죽음을 대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이후 대량생산을 통해 어느때보다도 풍요로운 이 지구상에서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농업 생산력으로는 120억 명을 정상적으로 먹일 수 있다. 반면, 오늘날 지구의 인구는 62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즉, 기아는 절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기아로 죽은 어린아이는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편성된 세계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질서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역장벽 철폐와 세계경제의 통합을 주장한다. 골리앗과 다윗의 말도 안되는 싸움에서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과 극빈국인 제3세계 국가들의 싸움에서도 과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대해야만 할 것인가?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째서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콜롬비아의 광부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까? 페르남부쿠의 혼혈인 카보클루는? 염산에 의 해서 얼굴이 일그러진 치타공의 벵갈 여인은?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이들 우연의 희생자 한 명 한명은 나의 아내,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삶을 구성하며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다. - 탐욕의 시대 중 -)

배고픈 그들이 쓰레기통의 뒤지면서 수치심을 느끼듯 우리들은 그들을 방관하면서 수치심을 느낀다.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방관하듯 나와 상관없는 일로 돌려버리고 그들의 방관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다국적 기업의 욕심채우기를 지원하고 있는 한 축일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은 누구도 살인하지 않았다. 우리들도 누구도 살인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히만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 순응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무관심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윗의 옆에 서서 골리앗과 싸울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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