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조종사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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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노르웨이 시골 출신으로 북유럽 문학을 전공하고 인도유럽어족(인도와 유럽 지역에 뿌리를 둔 여러 언어들이 속한 어족)을 집착적으로 파고드는 한 중년의 남자는 잘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을 자기 집 드나들듯 한다. 왜? 표면적인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친구도 하나 없는 이 남자는 가족끼리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거짓으로 죽은 자와의 관계를 만들어내 장례식장을 전전한다.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추모식장의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고(거짓으로 만들어낸) 고대 게르만의 신앙이나 관습, 언어학적 지식을 자랑한다. 그리하여 타인과의 유대감을 느낀다.


 남자는 실존에 대한 양가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홀로 완전한 섬'을 이루어 자유로운 존재이고자 하지만, 또 한편에선 인도유럽어족의 계통수와 같은 관계의 얽힘이 심연에 존재한다. 공통된 원천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이들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장례식장을 찾는 행위는 관계를 통해 존재하고자 하는 이 남자의 실존이다.


 물론 자유를 향한 열망도 있다. 어린 시절 제비뽑기를 해서 뽑은 꼭두각시 인형 펠레는 늘 주인공의 곁에서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생활한다. 사회적 관습이나 관계를 초월해 자유로워 지고자 할 때면 남자는 왼팔에 펠레를 끼워 대화를 시작한다. 해리 장애를 보여주는 이 대목은 펠레의 독립성과 자발성을 위해 꼭두각시 조종사가 되는 남자를 볼 수 있다. 아까 얘기한 뿌리와 관계를 끊어 내고 자유로 존재하고자 하는 또 다른 실존의 모습이다.


 결국 남자와 펠레는 존재를 관통하는 두 가지 속성을 잘 보여준다. 관계와 자유. 사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꼭두각시 인형과 조종사의 입장에서 홀로 존재하는 섬과 대륙의 한 부분으로의 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지도 모른다.


 소피의 세계로 유명한 작가의 이번 소설은 독특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왠지 인기는 없을듯하지만 관심 있는 분은 읽어 보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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