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저자는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과학기술학 또는 과학기술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이와 유사한 용어가 많다. 과학기술학, 과학기술사회학, 과학사회학, 과학지식사회학, 과학학, 과학사학, 과학철학 등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세밀하게 정의하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후려쳐서 과학과 인문학의 퓨전이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2)

과학기술이나 과학자를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서적 등의 여러 가지 대중 매체에서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일단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영화나 소설을 보지 않았더라도 내용을 잘 간추려 주며, 곁들여 유용한 철학적 개념도 소개한다.


3)

아주 오래전 철학이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고로 현재 분류되는 모든 학문, 특히 과학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뉴턴 때까지만 해도 과학자라는 용어는 없었으며 스스로를 자연철학자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면 학문의 구분이 하나(철학)에서 점점 세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최근에는 다시 융합이 강조되고 있는 형국이다. 나무를 봐야 할 사람도 물론 필요하지만, 숲을 봐야 할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된다.


4)

학문에 대한 이분법은 우리 인식 속에 꽤나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환경의 핑계를 대자면 그것은 고등학교 때 문, 이과를 나누면서 시작되었다. 둘은 섞일 수 없는 관계이며 각자의 영역은 불가침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철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방사광 가속기가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포항공대에 가고 싶었던 열혈 과학도(?)로서 과학에 대해 뭐라고 하는 철학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과학철학은 과학을 비난만 하는 줄 알았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철학은 그 대상이 인간이며 가치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면, 과학은 그 대상이 자연이고 사실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둘은 각자의 이야기만 하면 될 뿐이며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과학 전쟁에 대해 알게 되고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를 읽고 정말 통쾌했다. 특히 라깡을 시원하게 까는 장면은 희열감까지 느꼈다. 역시 라깡의 책을 읽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 잘 알지도 못하는 과학적 개념이나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라깡 잘못이야라며. 게다가 스티븐 와인버그 형님은 한 발 더 나아가 <최종 이론의 꿈>에서 과학에 있어서 철학은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주장한 것을 보고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다.(-_-;) 아..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아니라 책을 한 권만 본 사람이라던데 정말 맞는 말이다. 

 

인문학과 과학이 다루는 대상이 다를지는 몰라도 주체는 같다. 즉, 둘 다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인간과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100% 무시할 수는 없다. 자연 주의적 오류도 마찬가지다. 무어는 <윤리학 원리>에서 사물의 좋음 또는 옳음을 자연적 속성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자연에서 동물들의 약육강식이 보편적이다고 해서 그걸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든지, 진화의 방향에 좋음이라는 가치를 부여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즈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에서 자연 주의적 오류가 분명 논리적인 오류는 맞지만 사실로부터 가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실에 대한 하나의 믿음이 가치를 바로 도출하지는 못하겠지만 누적된 믿음은 가치를 지지하거나 훼손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고과정을 늘 하면서 살아간다. 어쨌든 현재 진리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과학이 철학과 아예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주체가 계속되는 한 과학은 늘 사유와 반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