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쳐 -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 장하석 교수 추천 과학책
션 캐럴 지음, 최가영 옮김 / 글루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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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가 '시적 자연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우주와 인간에 대한 정수를 풀어낸 책이다. 먼저 제목 밑의 부제를 보라.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 (헐. 이 넘치는 패기^^;) 개인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거대 담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예외와 관용이 너무 많이 둬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시나 출판사의 미끼 문구라고 생각했으나 찾아보니 원서에도 붙어있는 부제였다. 이쯤 되면 이런 책은 그냥 패스하는 편인데 제목 위에 장하석 교수 추천 책이라고 쓰여있지 않은가? 오래전 장하석 교수님의 '온도계의 철학'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별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참고로 '온도계의 철학'은 온도계로 대표되는 측정에 관한 과학사, 과학적 방법론, 과학철학에 관한 풍부한 내용이 담겨있는 명저다.


초반까지만 해도 저자가 내놓은 '시적 자연주의'라는 아이디어가 단지 '자연주의'의 변명같이 느껴져서 별로 공감이 안 됐다. 여기서 자연주의란 실재하는 자연은 단 하나이며 이 자연이 실재의 전부라고 여기는 동시에 이것은 절대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시적 자연주의(poetic naturalism)는 무엇인가? 션 캐럴은 세 가지 요점을 제시한다. ① 세상을 논하는 화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② 좋은 화법은 서로 일맥상통하며 세상의 모습과 부합한다. ③ 현재 우리의 목적은 가장 바람직한 화법을 찾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시적 자연주의는 물리적 세상이 유일무이한 실재지만 그 세상을 논하는 화법이 여럿이며 화법마다 실재의 일면을 정확히 기술한다는 관점이다.


처음에는 좀 불편했다. 그저 기계론적 유물론자, 과학 지상주의자, 환원론자인 저자가 자연주의를 공격하는 여러 생각에 대해 핑계를 대고 변명하는 책 같았다.(참고로 저 과학 좋아합니다.^^;) 그리고 일원론자면 일원론자답게, 유물론자면 유물론자답게 깡(?)을 갖고 이야기를 해야지, '시적' 이란 말을 붙이면서 다른 세계관을 포용하려 한다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점점 고개를 주억거리며 쉴 새 없이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저자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빅뱅에서 존재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과학, 철학을 넘나드는 장대한 지적인 여정은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관심 있는 분은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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