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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어스
마이크 카힐 감독, 브리트 말링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다. 늘 지난 일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과거에 내가 그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또는 했더라면 어땠을까? 대개는 전자에 대한 후회가 많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공상에 빠지다가 금세 잊고 다시 일상에 매몰되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쉽사리 잊기 힘든 기억들도 있는 법이다.
주인공 로라는 과거에 용서받기 힘든 일을 저질렀고 그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법적인 처벌은 받았지만 인간적인 용서를 받은 것은 아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죄책감이란 매 순간 소화되지 못한 삶이 겹겹이 쌓이고 뭉쳐져 한순간 울컥해서 토해내는 구토 같은, 좁은 우주선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리는 작은 소음 같은 그런 것이다. 눈과 귀를 닫아도 쉬이 떨쳐내기 힘들다. 예컨대 극중 로라의 동료는 사방에서 보이는 자기 모습(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두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절망에 빠진 나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나의 죄로 고통받는 타인? 물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것이 기본 전제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어렵게 받은 용서만으로 나 자신이 완전한 위로에 이르지는 못한다. 타인의 용서는 위대하지만 외부의 시선이다. 경우에 따라서 그런 대상이 되는 타인의 경계가 희미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는 과연 누구한테 용서를 구해야 하겠는가? 따라서 내가 나를 용서하고 위로해야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러한 용서와 위로를 표현하기 위해 내면의 자아를 외부로 형상화 시킨 것이 제2의 지구이다.
우여곡절 끝에 존 버로스는 로라 대신 제2의 지구에 가게 되고 4개월 뒤 로라는 제2의 지구에서 온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온 것이다. 영화 초반에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 로라가 무언가에 홀린 듯 창밖 하늘 위 파란색 별, 즉 제2의 지구를 본 순간 제1의 지구와 제2의 지구의 동기화는 깨지게 된다. 아마 제2의 지구에서의 로라는 가까스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이후 4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한 로라는 운명처럼 제1의 지구 여행 프로젝트에 응모했을 것이다.(그녀의 우주에 대한 사랑은 사고가 나기 전부터 지대했다) 아니면 제2의 지구에 도착한 존 버로스의 얘기를 듣고 참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긴 이야기를 들은 후 결심했을 것이다. 제1의 지구에 있는 나를 용서하고 위로하기 위해.
어나더 어스는 SF를 가장한(?) 용서와 치유에 관한 영화이다. 그래서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한없는 위로가 된다.
<2018년5월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