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후쿠야마 마사하루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세 번째 살인'을 보고 쓴 리뷰입니다.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가 받은 느낌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1. 텅 빈 그릇과 장님 코끼리 만지기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 구절에 모두 담겨 있다. 빈 그릇이란 말은 먼저 30여 년 전 미스미의 첫 살인 사건에서 그를 체포한 옛 형사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 당시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취조 때마다 말을 바꾸고 개인적인 원한이나 증오가 없어 보였던 그를 회상하며 노 형사는 미스미가 마치 '텅 빈 그릇' 같았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그릇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접견실 장면에서 시게모리는 미스미에게 "그럼 당신은 단순한 그릇이라고?"라며 묘한 표정으로 이 말을 내뱉는다.

 텅 빈 그릇은 실존적 존재에 대한 상징이다. 어떤 것이 만들어진 목적에 부합하게 존재하는 것이 본질이라면 정해진 목적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실존이다. 사물은 본질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타기 위해, 연필은 쓰기 위해 존재한다. 목적이 없는 사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결정된 목적 없이 실존으로 존재한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라며 실존적 존재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방식을 자유로이 선택하게끔 운명 지어졌다. 빈 그릇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살인을 저지르고 죄책감 없이 감형을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시키는 데로 하는 사이코패스를 담을 수도 있고, 말 못 할 아픔을 간직한 사키에 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아버지 같은 모습을 담을 수도 있으며, 부조리한 세상이나 법조계를 향한 분노를 담을 수도 있다. 이 모든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미스미라는 실존적 존재이다.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어떤 것이 담긴 그릇을 본 순간 그것이 곧 타인을 인식하는 전부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영화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코끼리를 처음 경험하는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만지는 것이 곧 코끼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서로 다투게 된다는 이야기다. 시게모리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미스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키에가 담긴 그릇에 깊이 빠져들고 마치 그것이 전부 인양 여긴다. 자신이 만지는 코끼리가 진짜 코끼리의 모습일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한 믿음은 일순간 산산조각 나게 되고 시게모리는 혼란에 빠진다. 

미스미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의미로 시게모리의 아버지도 살인자는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다고 했다. 만약 악인이라는 본질로 존재하는 인간이 있다면 미스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서는 미스미를 붙잡아 세운 시게모리의 동료는 그런 사람은 없다며 일갈한다. 실존적 존재로서 인간을 본다면 말이다. 


  2. 세 번째 살인

 영화에서 미스미가 저지른 살인은 30여 년 전 살인, 지금의 살인 두 번뿐이다. 나머지 세 번째 살인이란 본인에 대한 살인, 즉 죽기로 결심하여 자신에게 내린 심판, 판결을 의미한다. 사키에의 증언이면 감형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에서 미스미는 돌변한다. 법정에서 지금까지의 증언을 뒤엎고 자신에게 불리한 말들을 쏟아낸다. 이전에 미스미는 본인과 가족들의 삶과 운명이 부당하게 누군가에 의해 심판당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심판자를 늘 동경했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을 심판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 심판은 사키에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나 시게모리는 사키에에 대한 배려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확신한다. 

 피해자를 중심으로 본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피해자는 시게모리로 대표되는 사법제도에 의해서도 살인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사법 제도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형사소송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검사에 의해 지목되는 가해자 중심의 제도이다. 검사는 가해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무죄 혹은 감형을 위해 노력한다. 극 중 대사처럼 감형밖에 모르는 시게모리 같은 변호사 때문에 범인은 자신의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방해받을지도 모른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살인이 될 수 있다.

3. 마지막 접견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접견 장면이다. 특히 두 사람의 얼굴이 겹칠 듯 말 듯 교묘히 편집된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다가가다 멀어지고 또 다가가다 멀어지는 모습은 마치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을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은 결코 다다를 수 없지 않을까? 닿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일지 모른다. 채사장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라는 책에서 과연 우리는 외부의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가라며 의심했다.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외로워지거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번 좌절하거나. 진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2018년3월30일 작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