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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언가 마음아픈일이 생겼고 (그것들은 대부분 그들을 아껴주던 사람들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입은 마음의 상처를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써 치유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책전에는 그녀에 대하여를 읽었었는데 마지막이 충격적이라
이 책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읽기를 미루다가 이 책 뒤에 "아무도 모르는 상처를 안고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이 책을 펼쳐보세요" 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펼쳐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책의 표지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하늘색이다. 그리고 바나나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도 이 책이
좋아졌다.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5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유령의집, 엄마!, 따뜻하지 않아, 도모짱의 행복, 막다른 골목의 추억
유령의 집
셋 짱과 이와쿠라는 대학 동창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다. 셋 짱은 레스토랑의 딸, 이와쿠라는 롤케익 가게의 외동아들이다. 이와쿠라는
가업을 잇기 싫어 나와살고 있는데 그 집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유령이 살고 있다. 그 집에서 둘은 사랑을 나누고 다음날 셋 짱도 그 유령들을
본다. 그들은 평소처럼 부엌에서 찻주전자에서 물을 따르고 할아버지는 체조를 하고 그런다. 이와쿠라는 그 후 프랑스에 가서 파티셰 전문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만나지 못한 후 8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그 둘은 결혼하게 된다.
셋 짱은 무엇이든 천천히 배우고 깊게 익히는 사람으로 가게에서 쓰기 위해 도예를 배우고 메뉴를 쓰기 위해 서예도 배운다.
'무슨 일에든 지나치게 성실한 성격인 나는 모든 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이런 그녀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
엄마!
마쓰오카는 우연히 사내식당에서 카레를 먹었는데 그 안에는 해고 후 회사에 앙심을 품은 야마조에라는 사람이 약물(대량의 감기약)을 넣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행히 목숨은 건지게 되지만..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지 회사에 나갔는데도 정신은 나른한 상태로 지낸다. 그러다 다른 사람
대신 어느 작가를 만나러 갔다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여러가지를 묻는 것에 폭발하여 유리잔을 깨고 엉엉 운다. 그것을 보고 작가와 부인은 자신들이
배려하지 못했다며 급사과.. 그리고 회사 상관도 좀 쉬라고 괜찮다고 말한다. 그녀도 스스로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쉬려고 한다. 이
때 그녀의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한다. ^ㅡ^ 원래 같이 1년 정도 살아보고 결혼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니 자신의 고집스러움을 깨닫게 되고
결혼을 하기로 한다.
엄마는 아빠보다 스무살이나 어렸는데 그녀가 네 살 때 심장발작으로 아빠가 죽고 난 후 엄마는 그녀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마
그녀와 격리되었겠지. 꿈을 꾸고 난 후 그녀는 눈물과 오열을 한 후 말끔하게 낫는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대개 하는 생각이지만, 아무 일도 없던 나날들이 그토록 여유롭고 평온한 것인지 나는 꿈에도 몰랐다.'
꿈을 꾼 후 그녀는 어디선가 아빠와 엄마 모두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자신의 세계를 긍정하게
된다. 앞으로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행복해질거라 여겨진다.
힘든 일이 있은 후 그 고통을 벗어나고 새로운 삶을 살기까지 그녀의 모습이 덤덤하면서도 잔잔히 그려져있다.
따뜻하지 않아.
이건 소설가의 이야기인데 그녀의 집은 책방이고 어렸을 때 만난 마코토는 얌전하고 의젓하고 몸이 약한 전통과자 가게의 도련님과 자주 놀며
친하게 된다. 마코토는 아빠가 바람이 나서 얻은 아들인데 그 집의 불빛을 보면 그녀는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어느날 마코토가 집에 돌아가기
싫어하던 날 도라에몽과 노비타처럼 내내 같이 있자고 하고 나서 돌아간 그밤에 마코토의 친엄마가 나타나 아빠를 칼로 찌르고 마코토를 데리고
절벽에서 추락해 죽게 된다. 그 후 그녀는 그와 한 대화들을 떠올리는데 사람이 살아가며 내는 불빛은 따뜻하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정말
옷가게의 불빛, 모델 하우스의 불빛은 느낌이 없지만 사람이 사는 집의 불빛은 얼마나 따사로운지..
도모짱의 행복
5년 내내 좋아하던 사람이 이제 그녀와 함께 해주려 한다. ^^ 열 여섯 살 때 강간을 당하고도 남자를 경계하지는 않는다. 도모짱은
미사와씨를 오래오래 지켜보며 좋아해왔고 잘 되려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쓰는 또 다른 소설가가 있다. 그 사람은 신인가?? 하지만 신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언제든 도모짱을 보고 있다. 비서의
유혹에 넘어가 이혼을 한 아버지를 볼 때도, 강간을 당할 때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하지만 그녀는 뭔지 모를 것에
안겨있었다. 그래서, 도모짱은 언제나 혼자가 아닐 수 있었다.
우리도 무언가에 안겨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이나 따뜻한 바람같은 것들..? 그래서 안정된 마음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닐까?
막다른 골목의 추억
여기서 막다른 골목은 이중적 의미인것 같다. 철썩같이 믿던 약혼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혼자 지내려던 요코야마 미미는 외삼촌의 가게 '막다른
골목'의 2층에서 혼자 지내게 된다. 그 가게에서 일하는 니시야마를 만나면서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여기서도 노비타군과 도라에몽이
나오는데 그 둘은 행복한 모습이다.
니시야마는 어렸을 때 아버지 때문에 연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영양실조로 죽을 뻔 하다 살아나 친척 밑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그에게 예지력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 그렇게 마음이 편해진 미미는 어느날
약혼자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그 말을 하고 싶어했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 돈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그 돈으로 좋은 일을 한다 생각하면 빛나는 이미지인데 그것을 미끼로 약혼자를 만나게 된다면 시커멓고 꺼림칙한 것이 되는 것..
같은 돈이 갖가지 색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최대한 좋은 색만 상대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고 떠나려는 날 니시야마는 약혼자에게 가서 차를 받아온다. 왠지 꺼름직할것 같지만 니시야마가 세차를 다 해주었고
그가 있는 덕분에 그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한다. 공원으로 가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커피를 마시고.. 행복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니시야마와 전화를 하게 되었을 때 다시 못만날 것을 알지만 그 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이 책 어느 부분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은 거미줄 같은 것으로 보호되어 있어서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검은 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준다고 한 것, 내 주변에 소중한 것들이 원처럼 둘러 쌓여 날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들.. 그런 것들을 읽으며 내 삶도 주변 람들의 사랑으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로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부모님의 사랑이 제일 크겠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사랑도. 내가 그들의
원이 되어주고, 따뜻한 바람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 나도 그렇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중에 마음이 제일 밝아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