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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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자리에 앉을 때 벽에 기대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아, 날마다 「소학」글대로 살고자 했으며 짚신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세숫대야로는 도기를 쓰고, 앉을 때는 부들 자리위에 앉고, 음식을 먹을 때는 수저 부딪는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반찬은 끼니마다 세 가지를 넘지 않아 가지와 무와 미역만으로 찬을 삼을 때도 있어 검소한 삶을 살았다. 또한 손님을 모실 때가 아니면 특별한 반찬을 놓지 않았고, 비록 어린이나 아랫사람에게 식사를 내릴 때도 반찬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좋은 물건을 얻으면 반드시 종가로 보내 제상에 올리게 했으며 언제나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갓을 쓰고 서재로 나가 정좌하였고, 제자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는 귀한 손님을 대하듯 했으며 제자들을 ‘너’라고 부르지 않았고 제자가 자리에 앉으면 반드시 그 부모의 안부부터 물었다. 가르침은 자상하고 다정하였으나 제자들은 감히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을 만큼 존경의 대상이었다.

나라에 세금을 낼 때는 언제나 평민들보다 먼저 냈으며, 진실로 예와 의가 아니면 남으로부터 조그마한 물건도 받지 않아 예로서 받은 물건이라 할지라도 이웃이나 친척이나 또는 배우러 오는 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한 점도 집에 쌓아두지 않았다. 아무리 춥고 어두운 밤이라도 방안에서 요강을 쓰지 않고 반드시 밖에 나가서 소변을 보았으며 제사 때는 상을 거둔 후에도 오랫동안 神位(신위)를 향해 정좌해 있었고, 제삿날에는 술이나 고기를 들지 않았을 만큼 윤리 도덕과 예의와 절도, 검소한 삶을 살던 분이셨다.




16세기에 살던 학자로 퇴계 이황의 자료는 다행히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퇴계 이황 선생의 글들은 철학을 담은 내용들이 많아 그 글과 시들을 온전히 번역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저자 또한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를 내기 위해 당시의 풍속, 습관, 제도 등을 많은 자료들을 참고로 하고 많은 전문연구가들의 도움을 받아 ‘퇴계서집성’에 수록된 아들에게 보낸 516통의 편지들 중 퇴계 선생이 55세 때까지 쓴 164통을 우선 수록하여 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버지가 되면 지위를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애틋함과 잘 키우려는 열망과 정성은 같은 것 같다.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요 정치가이자 문인이요 교육자로 살았던 퇴계 이황 선생이 쓴 글들은 모두 딱딱하고 윤리사상만 강조하는 속칭 고리타분한 글들이겠지 라는 고정관념으로 책을 맞았는데 이 책에 나온 편지들은 거의 큰 아들 준에게 쓴 글로 저자가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풀어써서 그런지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소소한 지침의 글로 어렵지 않게 쓰여 진 이 책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과 집안 어른들 이야기, 농토에 씨 뿌리는 방법에 대한 글, 공부에 관한 글, 세금이야기, 노비들에 대한 관리와 다루는 방법 등 아들에게 섬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점검해 주고 도닥거려주는 편지 속의 내용은 이 편지들을 읽는 아들은 어떤 느낌이고 아버지의 글들에 대한 답장은 어떠했을까? 라는 궁금증과 부모와 자식 간의 잔소리로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소중한 글들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실행에 옮기는 바른 자식의 모습으로 답장을 썼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글들로만 엮여진 이 책을 읽으며 아들의 글은 보관이 안되었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각종 매체를 통한 아버지의 위상을 세우기 위한 노력들은 하지만 과연 인간 그 존재자체로 인정하며 아버지의 삶의 여정과 가정 속의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부각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돈만 벌어오는 불쌍한 아버지로 부각되기도 하고 내가 사는 것처럼 살게 하지 않는다며 자식에 대한 교육과 방법이 왜곡된 채 기러기 아버지로 일중독 아버지로만 살아가며 가정이 점점 이상한 관계로 방치되어 부모라는 존재 위기까지 몰아가는 심각한 사회현상들은 어릴 때 막연히 생각했던 늘 가정의 중심을 가지고 늘 그 자리에 묵묵히 계시는 가정의 기둥인 존재로 중심을 가지고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같이 영위하기엔 요즘 세상은 부모로서의 역할이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엄하게’ 아들에게 세상살이의 가르침을 주는 퇴계 이황의 편지는 점점 아버지에 대한 위상이 흐려지고 존귀여부로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아버지에 대한 각종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어 책을 읽고 교육방침을 도움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퇴계 이황의 편지처럼 부모와 자식 간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가끔이라도 주고받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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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이스
아미티지 트레일 외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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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중심 배경으로 그려낸 소설들로 얼마 전 타계한 시드니 폴락의 감독의 제인 폰다, 마이클 사라진, 수잔나 요크, 지그 영, 레드 버튼스가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던 호레이스 스탠리 맥코이의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와 1983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감독에 알 파치노, 스티븐 바우어, 미셸 파이퍼, 로버트 로지아, 메리 엘리자베스 마스트란토니오가 주연으로 두 번에 걸쳐 리메이킹 영화화 되었던 아미티지 트레일의 소설 『스카페이스』.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었던 이 두 편의 소설들이 한 권의 두툼한 책으로 ‘끌림’에서 엮어냈다.

영화를 두 편 모두 보지 못했던 나는 처음엔 두 편인지 모르고 『스카페이스』가 소설과 영화가 동명이기만 하고 내용은 틀리나보다 하고 읽어갔는데 중간 쯤 스카페이스라는 제목의 중간 간지가 또 들어가더니 앞의 내용과 연결이 안 되는 소설이야기가 나왔다. 어쩐지... 하며 나의 우매함에 혀를 끌끌차며 다시 스카페이스를 읽어갔다.

 

호레이스 스탠리 맥코이의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영화감독이 꿈인 로버트와 배우의 꿈을 꾸며 엑스트라를 하고 있는 글로리아!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사람은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고,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가 해변에서 열리는 탈락할 때까지 춤을 춰야하지만 무료로 숙식도 제공해 주고 우승하면 상금이 천 달러나 되는 댄스마라톤에 참가해 보자는 글로리아의 말에 특별히 갈 곳 없고 별 볼일 없었던 주인공 둘은 먹을 것 제공과 잘하면 영화에도 캐스팅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참가하게 된다.

댄스 마라톤의 규칙은 1시간 50분 동안 춤을 추고 10분 간 휴식을 하는데 잠깐의 잠도 잘 수 있지만 그 동안 면도, 목욕, 혹은 발마사지 등 필요한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으로 10분간의 휴식시간의 활용이 승리의 관건이 될 수 있는 타이트한 댄스는 최후의 승자가 남을 때까지 잠깐씩의 휴식시간 외에는 끊임없이 춤을 춰야 하는 어이없으면서도 최악의 불황의 시대인 그 당시에 혹할 수밖에 없었지만  흥행을 노린 주최 측의 더비경주까지 추가시켜 인간으로선 한계점까지 다다르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부추겨 육체적 한계와 탐욕, 생존경쟁으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비극을 자아내고 마는 이 소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인간을 극한지점으로 몰아가는 건조한 문체로 풀어가 두 주인공의 결말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감에 그 시대의 상황과 인간의 연약함에 연민까지 느껴진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법정과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이 중간 중간 끼어들며 이야기가 이어지는 독특한 구성으로 주인공의 어릴 때의 기억과 살인의 엇갈린 이미지는 살인이었지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까지 끌고 갔던 긴 여운을 남겨주었던 소설이었다.




아미티지 트레일의 소설 『스카페이스』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는 한, 권총은 불발되지 않는 법이다.”

이 말처럼 『그들은 말을 쏘았다』가 염세적인 내용으로 인간의 군상에 대한 생각을 요했던 작품인 반면 『스카페이스』는 남성의 이미지가 물씬 풍겨지는 박진감 넘치고 읽는 동안 귓전에 총소리가 ‘탕탕’ 울리는 갱스터영화의 장면처럼 피로 얼룩진 또 인간의 보고 싶지 않은 뒷면을 보게 되기도 하는 격정적인 소설이었다.

아쉽게도 영화로 개봉되어진 ‘스카페이스’는 보지 못했지만 주인공인 토니는 작가가 알 카포네를 염두에 두고 쓴 인물이라고 할 만큼 영화포스터를 보아도 스토리를 읽어도 알카포네의 카리스마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소설이었다.

20세기 초, 뉴욕의 암흑가를 평정한 한 남자의 잔혹한 인생과 사랑을 그린 『스카페이스』는 여자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고 그 때문에 군대에 입대하여 부상을 당해 흉터난 얼굴이라는 뜻의 스카페이스가 되어 이미 그의 고향에선 사망이라는 오보의 잔재로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음에 스카페이스 토니로 다른 삶을 살며 그의 뛰어난 두뇌게임과 무모할 정도의 대담함으로 그는 어둠의 세계에서 우두머리로 또한 비정하고 교활한 사업가로 살게 된다.

갱스터 영화나 소설에선 늘 늘씬하고 금발머리의 얼굴 하얀 여자와 돈과 마약 등의 소재가 꼭 따라붙듯이 이 영화 또한 전형적인 갱스터 소설로 이 소설을 영화화한 『스카페이스』가 갱스터 영화의 교본으로 불릴 만큼 교과서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론 하드보일드 소설도, 갱스터 영화도 잘 보거나 선뜻 손이 가진 않지만 우리에게 유명한 영화 ‘대부’는 매체에서 많은 재방으로 공교롭게도 몇 번 시리즈 별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엔 거부감이 좀 들다가 어느 덧 또 다시 보게 되었던 영화로 또 봐도 볼 때마다 달리 받아들여지는 강한 매력이 담긴 갱스터 소설과 영화. 히스패닉계와 흑인들을 열광시켰다는 영화『스카페이스』. 소설은 영화보다 더 다이나믹한 글과 탄탄한 구성이라고 해 영화가 과연 이 소설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물씬 풍기는 강한 장면 하나하나를 알카포네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궁금해졌던 그런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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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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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원래의 그리스어로 된 원문은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이 사랑은 이 절의 나머지 내용을 실행하는데 동기가 되었다.

독생자를...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삼위일체의 두번째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다.

주셨으니...

하나님은 뭔가 그의 아들을 희생으로 드리고 싶으셨다.

이는 그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구주되신 예수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믿는...

구원은 사람의 행실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자마다...

구원이 모든 믿는 자에게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멸망하지 않고...

지옥의 교리, 즉 믿지 않은 자들이 당할 운명을 내포한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천국의 교리, 즉 믿는 자들이 보상으로 얻을 것을 보여준다.


『 3:16 내 생애 최고의 축복 』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중의 하나로 성경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뜻인 요한복음 3장 16절의 내용이 수록된 이 책은 한동안 성경책을 멀리하고 내 멋데로 살았던 나는 성경책을 선뜻 집어들기가  어렵듯이 이 책 또한 그러했다.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주시기로하신 하나님의 크신 언약이요 사람들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큰 하나님의 참사랑이자 죄에 대하여서는 자신의 독생자까지 십자가의 희생으로 내어주시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를 바라시지 않으시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경구절! 그런 크신 은혜의 말씀 때문일까? 나는 첫 장부터 저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파악할 수 없어 읽다가 접고 다시 읽고 반복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결코 어렵거나 딱딱한 글로만 엮여진 책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편 단편 짧은 글들로 하나님의 말씀이 저자의 글로 표현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하나님을 그동안 영접하지 않고 멀리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정보화 시대는 혼돈의 시대이기도 하다. 뭔가를 하는 방법을 많이 아는데 그것을 왜 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해답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바로 그 해답을 주신다.

하지만 그분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그걸 아는 방법은 단 한가지. 내가 리우데자데이루에서 했던 대로 하라. 그분을 찾는 것이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목표로 삼으라. 잠깐 흘긋거리거나 어쩌다 한 번씩 쳐다보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

예수님을 당신의 북극성으로 판단기준으로 삼으라.

혼잡한 거리와 그림자를 드리우는 지붕들 사이로 예수님의 얼굴을 찾으면, 그분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난 이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다. 마치 나에게 그것을 일깨워주시려는 듯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 이 글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난 다시 기도를 드렸다.

 

얼마전 1급장애인 판정을 받은 25살의 목소리가 앳된 소녀와 같이 살고 있는 아버지와의 삶을 그린 방송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허름판 벽돌집에서 바닷바람을 다 받으며 돈독한 사랑 속에 살아가는 이 부녀는 장애인1급이면서도 순수한 마음과 긍정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아버지와 서로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 따뜻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걷긴 하지만 몸을 온전히 가눌 수는 없는 그녀는 간혹 화장을 뽀얗게 하고 아버지에게 이쁘냐며 배시시 수줍은 웃음을 띄며 기쁨을 드렸고 부끄럽다며 얼른 지우고 아버지를 위해 잘 못가누는 몸을 의자에 지탱하며 서툰 계란말이로 가끔 밥상을 차리기도 하고 아버지와 같이 시장도 가기도 하는 그녀는 인터넷 방송국을 운영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찬송을 틀어주며 은혜를 베풀며 수줍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직접 부르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넷 방송국을 운영하며 세상사람들과 만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나누고 자신감도 생겨 생활의 활기를 가졌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밖엔 다니지 못해 구구단을 못배워 인터넷에서 노래로 배우는 구구단을 외우는 그녀는 아버지의 자상함 속에 한없는 사랑으로 감사와 은혜가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다.

늘 감사와 베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 인간의 삶 중 하나일텐데 많은 이들이 온전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의 온전함을 감사하지 못한채 정신의 불완전 속에서 허덕이는 삶을 살며 고난의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에게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후 5:21

 

과연 이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이 말의 참 뜻을 깨달을 수 있을까?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사 53:6)셨다."

이 사실을 깊이 깨우친 한 중국인 여성도가 있었다. 그 여성도가 세례를 받게 되자 목사님은 그 여성도가 십자가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예수님에게 죄가 있었습니까?"

"예"

당황한 목사님이 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그래도 여성도는 여전히 그렇게 대답했다.

"예수님에게는 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저의 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분이셨지만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다. 우리에게는 병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건강하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죄가 없다고 선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되 병고침 받은 심장이 아니라 그분의 심장을 가지고 들어간다. 마치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십시오. 새 것이 됐습니다." - 고후 5:17

 

맥스루케이도의 『 3:16 내 생애 최고의 축복 』. 맥스 루케이도는 이 책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 이 말씀이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에 나왔다는 배경을 설명한 뒤 약속의 말씀을 다른 성경구절과 실제의 사례를 통해 잘 접목시켜 말씀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짚어 주고 있다.

하나님의 본성이자 계획이며 목적의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 어쩌면 가장 많이 들었던 익숙한 성경구절로 우린 그 크신 은혜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삶의 여유를 종종 놓쳐 버려 삶의 이정표를 찾아 헤매는 우리에게 큰 소망의 메시지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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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명상 - 내 안의 1%를 바꾼다
대안 지음 / 오래된미래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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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맛이 없다. 계절 탓인가? 그런데 대안 스님이 쓴 『식탁위의 명상』에 그 대안이 나와 있었다.

‘냉이 죽’ 아..서글퍼라! 요즘은 냉이가 없잖아... 몇 주전 쑥캐러 간 날 냉이도 샅샅이 찾아볼걸...

하지만 어떻게 만드는지 읽어나 봐야지... 냉이죽이라는 레시피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입맛이 없을 때 냉이를 잘게 썰어 쌀과 함께 참기름을 넣고 볶다가 집간장으로 간을 하고, 표고버섯 우린 물로 죽물을 맞추어 죽을 쑨다.’

읽기만 해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군침이 돈다.

절에서도 참기름을 쓰던가? 라는 의아함을 가지며 이 책을 읽어본다.

가끔 가족들끼리 산을 탔다가 절에 들러 절 밥을 얻어먹고 하산할 때가 종종 있었다. 늘 느끼는거지만 절 특유의 고요함과 정갈함에 숙연해지고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절 밥이라 해서 특별한 반찬은 별로 없었다. 각종 제철 산나물과 맑은 된장국 등으로 비벼서 먹을 수 있었던 절 밥은 쌀 한 톨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고 먹은 것은 깨끗이 설거지를 해야 한다. 가끔 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절의 설거지에 익숙해진 세제문화에 길들여진 나는 찝찝하긴 하지만 믿는 마음에 집과 다름없이 먹어치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절 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가 않다. 물론 낑낑거리고 산을 올라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욕심을 버리라는 배부름의 절제일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궤변으로 횡설수설해 본다.

『식탁위의 명상』엔 계절별로 각종 나물들과 계절에 따라 해 먹기 좋은 레시피가 소개되어져 있다. 그리고 본초강목 등에 실린 나물의 약재로서의 성분이 기록되어져 있어 요즘처럼 탁한 음식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준다. 요즘 아이들은 먹거리가 넘쳐나서인지 나물을 잘 먹지 않아 어른을 모시고 있지 않은 가정들 대부분 식탁 위엔 아채를 뺀 나머지 반찬들이 식탁위에 올라와 있다. 사실 그 음식을 먹는데 영양성분과 효능에 제대로 알고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물을 해 먹기엔 이것저것 손도 많이 가고 계절식품이라 신경을 써야지만 제철 나물을 해 먹을 수 있다. 그 뿐인가 바로 해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조시킨 후 삶고 씻고 볶든지 묻히든지 잔 손질이 많이 간다. 거기다 어머니의 나물 솜씨와 요즘 젊은 엄마들의 나물 솜씨는 확연히 달라 나물도 연륜에 따라 맛이 다른 것 같아 그 손 맛의 노하우에 신비롭기까지 하다.

좋은 음식, 안전한 음식을 먹어야 그것이 연이 되어 다음 생으로 끊임없이 좋은 기운이 지속된다. 음식을 다루는 마음가짐이 진실해야 우리가 음식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안전하지 않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심각해져 병이 생기고 고통을 받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린 세상에 끊임없이 배설과 배출만 할 뿐 절제라는 것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기는건 아닐까? 이것은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이 영원한 존재라는 인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대안스님은 말하고 있다.

식탁에서부터 시작된 좋은 습관 식탁 위에서의 명상은 일상에서 실천하는 구도의 좋은 시작이 되어 삶 전체를 올바로 이끌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식탁 앞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의 기도와 식탁 앞에서 밥 먹을 때 지키는 예의범절은 그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식탁 앞에서 쩝쩝거리고 밥 먹지 않고 바로 앉은 자세로 바르게 음식을 섭취하는 모습은 그 사람의 됨됨이가 바로 보여 신뢰감이 생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행동거지는 산만하지 않고 늘 바른 자세와 감정의 기복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기본에 충실하게 산다는 것이 쉽고도 어려운 것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음식과 만나며, ‘잘’먹는 것도 일상생활에서 행할 수 있는 수행의 하나라고 한다. 먹는 시간만큼은 마음을 다해 음식을 살피고, 맛을 음미하고, 몸에 잘 녹아들도록 천천히 소화시키며 여유롭게 밥을 먹는 것. 이런 것에서 '식탁 위의 명상‘은 시작되는 것이다.

『식탁위의 명상』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글을 읽기보다는 혼탁한 음식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들의 음식문화를 간결하고 정갈한 사찰음식을 통해서 기본에 충실하고 평상심을 유지하여 내 안의 작은 변화를 절제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끝으로 <불경 '숫타니파타' 중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흩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노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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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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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이 어리던 시절, 비록 춥고 배고프고 살기는 불편했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그 때가 좋았다고...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의 이호준씨의 글과 사진을 보다 보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하나 둘씩 기억나매 저절로 "그래... 그 시절이 참 좋았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의 끝자락이어서인지 어렸을 땐 시골의 풍경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어느 덧 내가 이 동네의 토박이처럼 한 동네에서 이사는 몇 번 했지만 어느덧 40년이 되었으니 나도 이젠 이 동네의 귀신이 되겠지.(헛...갑자기 끔찍한 느낌..)

이사 올 당시엔 동네가 온통 논과 밭으로 곳곳에 큰 거름 웅덩이가 있어 인분 냄새가 가득했었다. 그 웅덩이에 우리 집 이삿짐 트럭 바퀴가 빠져 고난을 치르다가 결국 짐 하나하나를 손으로 일일이 들고 집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헤프닝이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땐 어찌나 내가 사는 동네가 창피하던지 어딜 가든지 동네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집 문만 나가면 온통 초록과 황토, 파란 하늘로 가득한 동네는 얕은 개울가의 미루나무와 물 속의 개구리 잡는다고 이리저리 망둥이처럼 뛰놀고 토끼풀로 꽃반지 만들어 끼고 다니고 풀피리 불고 뛰노느라 장딴지엔 풀 베인 자욱과 신발이 한 달을 못가 엄마한테 "계집애가 선머슴처럼 날뛴다"는 꾸중도 엄청 들었던 어린 시절.... 밤 되면 집 앞에 보초 서던(?) 부엉이의 울음소리에 겁쟁이 남동생의 "엄마, 무서워"라며 엄마 품을 파고들을 때 옆에서 그런 동생이 어찌나 바보 같아 보이던지 "에이, 바보. 뭐가 무섭냐? 사내자식이!" 툭 내뱉고 부엉이 울음소리와 휘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던 시절.

그 뿐인가. 겨울엔 여기저기 얼어붙은 얼음으로 자치기, 썰매타기, 억지로 스케이트 타기(얼음이 고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스릴도 있고 엄청 재밌었다) 등 놀거리도 참 많았었다.

또 어쩌다 할머니와 같이 가던 동네 아지트... 떡갈나무 있던 곳. 뜨거운 여름 한 나절, 동네 한 가운데 나무 신이 있을 것 같은 큰 떡갈나무 아래엔 동네 아낙네들, 동네 노인들 누구나 할 것 없이 큰 평상에 앉아 부채질 슬렁슬렁 하며 매미소리와 함께 동네 입담이 오고 가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는 사는 이야기, 누구 누구 이야기, 어느 집 자식 이야기 등 동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거리로 한 나절을 한가이 이야기 하며 동네사람들이 즐겨 쉬어가던 곳이었다. 그곳의 이야기들은 어쩌다 남의 흉을 보더라도 지금처럼 날카로운 비수 같은 그런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저 아쉬움에 안스러운 걱정의 대화들이었다. 또한 장기를 두던 어떤 놀이를 하든 늘 웃음꽃이 가득하고 치열함이 없었던 나른한 매미소리같이 한 나절의 나른함이 느껴지던 그런 평화로운 곳. 하지만 동네도 하나 둘 개발이라는 회오리바람이 스쳐 지나가 이젠 그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졌다. 아직도 의구심이 드는 건 떡갈나무를 벤 날 그 자리에 시장을 짓기로 했던 주인의 노모가 갑자기 다락에 얼굴을 박고 돌아겼다는 것. 세수하려다 노인이라 기운이 딸려 쓰러지셨거니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큰 나무를 벤 그 날 밤에 범상치 않은 죽음은 한 동안 나무 귀신이 그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동생들과 친구들도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물론 그 이후도 그 시장은 동네 하나 뿐인 큰 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흥했던 시장도 아니었으니... 정말 나무 귀신이 있는 걸까?
엄마의 말은 생명을 소중히 공손하게 다루지 않았음에 일어난 결과라고 하신 말씀에 절대 공감하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이 한 권의 책은 중년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은 내용 하나하나마다 저마다의 추억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 추억이 가득 담긴 책이다. 기억의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던 지난 시절의 풋풋한 추억거리는 각박한 세상을 사는 현실에 내 맘과 몸을 편안하게 하는 여백을 만들어주어 커다란 기쁨을 맛보게 된다. 돈 주고도 못살 이젠 흔적도 없는 소중했던 그 것들을 어떻게 내 머리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진이 가장 큰 위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기억 밖으로 쏟아져 나온 글들과 사진들은 읽는 이들의 감성을 더욱 더 살려주고 그런 것들을 모르는 세대들에겐 호기심과 신선함을 안겨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진자료가 많지 않은 점이긴 하지만 덕분에 가슴 속의 추억과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정리할 수 있던 시간을 갖게 되어 출판사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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