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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ㅣ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아련한 추억이 어리던 시절, 비록 춥고 배고프고 살기는 불편했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그 때가 좋았다고...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의 이호준씨의 글과 사진을 보다 보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하나 둘씩 기억나매 저절로 "그래... 그 시절이 참 좋았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의 끝자락이어서인지 어렸을 땐 시골의 풍경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어느 덧 내가 이 동네의 토박이처럼 한 동네에서 이사는 몇 번 했지만 어느덧 40년이 되었으니 나도 이젠 이 동네의 귀신이 되겠지.(헛...갑자기 끔찍한 느낌..)
이사 올 당시엔 동네가 온통 논과 밭으로 곳곳에 큰 거름 웅덩이가 있어 인분 냄새가 가득했었다. 그 웅덩이에 우리 집 이삿짐 트럭 바퀴가 빠져 고난을 치르다가 결국 짐 하나하나를 손으로 일일이 들고 집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헤프닝이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땐 어찌나 내가 사는 동네가 창피하던지 어딜 가든지 동네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집 문만 나가면 온통 초록과 황토, 파란 하늘로 가득한 동네는 얕은 개울가의 미루나무와 물 속의 개구리 잡는다고 이리저리 망둥이처럼 뛰놀고 토끼풀로 꽃반지 만들어 끼고 다니고 풀피리 불고 뛰노느라 장딴지엔 풀 베인 자욱과 신발이 한 달을 못가 엄마한테 "계집애가 선머슴처럼 날뛴다"는 꾸중도 엄청 들었던 어린 시절.... 밤 되면 집 앞에 보초 서던(?) 부엉이의 울음소리에 겁쟁이 남동생의 "엄마, 무서워"라며 엄마 품을 파고들을 때 옆에서 그런 동생이 어찌나 바보 같아 보이던지 "에이, 바보. 뭐가 무섭냐? 사내자식이!" 툭 내뱉고 부엉이 울음소리와 휘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던 시절.
그 뿐인가. 겨울엔 여기저기 얼어붙은 얼음으로 자치기, 썰매타기, 억지로 스케이트 타기(얼음이 고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스릴도 있고 엄청 재밌었다) 등 놀거리도 참 많았었다.
또 어쩌다 할머니와 같이 가던 동네 아지트... 떡갈나무 있던 곳. 뜨거운 여름 한 나절, 동네 한 가운데 나무 신이 있을 것 같은 큰 떡갈나무 아래엔 동네 아낙네들, 동네 노인들 누구나 할 것 없이 큰 평상에 앉아 부채질 슬렁슬렁 하며 매미소리와 함께 동네 입담이 오고 가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는 사는 이야기, 누구 누구 이야기, 어느 집 자식 이야기 등 동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거리로 한 나절을 한가이 이야기 하며 동네사람들이 즐겨 쉬어가던 곳이었다. 그곳의 이야기들은 어쩌다 남의 흉을 보더라도 지금처럼 날카로운 비수 같은 그런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저 아쉬움에 안스러운 걱정의 대화들이었다. 또한 장기를 두던 어떤 놀이를 하든 늘 웃음꽃이 가득하고 치열함이 없었던 나른한 매미소리같이 한 나절의 나른함이 느껴지던 그런 평화로운 곳. 하지만 동네도 하나 둘 개발이라는 회오리바람이 스쳐 지나가 이젠 그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졌다. 아직도 의구심이 드는 건 떡갈나무를 벤 날 그 자리에 시장을 짓기로 했던 주인의 노모가 갑자기 다락에 얼굴을 박고 돌아겼다는 것. 세수하려다 노인이라 기운이 딸려 쓰러지셨거니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큰 나무를 벤 그 날 밤에 범상치 않은 죽음은 한 동안 나무 귀신이 그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동생들과 친구들도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물론 그 이후도 그 시장은 동네 하나 뿐인 큰 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흥했던 시장도 아니었으니... 정말 나무 귀신이 있는 걸까?
엄마의 말은 생명을 소중히 공손하게 다루지 않았음에 일어난 결과라고 하신 말씀에 절대 공감하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이 한 권의 책은 중년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은 내용 하나하나마다 저마다의 추억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 추억이 가득 담긴 책이다. 기억의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던 지난 시절의 풋풋한 추억거리는 각박한 세상을 사는 현실에 내 맘과 몸을 편안하게 하는 여백을 만들어주어 커다란 기쁨을 맛보게 된다. 돈 주고도 못살 이젠 흔적도 없는 소중했던 그 것들을 어떻게 내 머리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진이 가장 큰 위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기억 밖으로 쏟아져 나온 글들과 사진들은 읽는 이들의 감성을 더욱 더 살려주고 그런 것들을 모르는 세대들에겐 호기심과 신선함을 안겨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진자료가 많지 않은 점이긴 하지만 덕분에 가슴 속의 추억과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정리할 수 있던 시간을 갖게 되어 출판사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