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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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이 지겨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추락하는 시늉을,
그것도 북미대륙의 20세기사를 훑듯이 삼 대에 걸쳐서 해보지만, 영 석연치 않다.
진정으로 추락하는 자의 이마 속에, 무슨 놈의 동경과 상징과
창백한 추억 부스러기들이 그렇게도 많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를 내버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들은 삶으로의 복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부해진 ''탕자의 귀환'' 같은 걸 곁눈질로 엿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세 사람은 맨 처음부터 떠날 필요나,
스스로를 내버리는 시늉같은 걸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44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에, 쓸데없는 군소리도 많다.

방황하는 시뮬레이션은 실제 방황의 액면보다 과잉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감상적인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
자신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라.
눈빛은 흔들리고, 어조는 흐릿하게 둔 채
중언부언 잔소리는 겁나게 많지만,
늘어놓는 그 자신은 정작 묘사의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침을 튀겨 가며 얄팍한 스타일과 반전 따위로 사건을 연장하려 애쓰고 있다.
그것이 소설가라는 직업의 속기쉬운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약간 냉소적이고 씁쓸한 생각도 해본다.
대중 소설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뭔가 있는 척 심각한 척을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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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의 세 사람 - 할인판
장 피에르 멜빌 감독, 알랑 드롱 외 출연 / 기타 (DVD)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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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삐에르 멜빌의 갱 영화다.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지 않다. 특히 고유 명사 처리에서 형편없다.
알랑 들롱을 '알레인 드론'이라느니, 어디서 보니 크리테리온 판을 베껴온거라하는데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아마도 영어 자막을 그대로 옮겨 베낀 것 같다.

화질은 꽤 좋다.
영어 자막으로만 볼 분이라면 그럭저럭 만족할만하다.
그래서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소장가치는 그다지 없다고 생각된다.
원제는 '붉은 원'이다. 라마 크리슈나가 한 말에서 인용한건데
우연히 같은 원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운명을 같이 한다는 아리까리한 말이다.
세사람이 보석방을 터는데 약간 지루하지만 치밀한 준비 과정을 일일히 보여준다.

결국 셋 다 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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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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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하지만 특별히 화려한 문장이 아니다. 주인공이 이색적인 상황이나 소재 속에 처
해 있다거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아니다. 노골적인 퇴폐를 드러내지
도 않는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30살 백수다. 집에 돈이 많다.


아버지가 러일전쟁을 틈타 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형도 그 일을 돕고 있다. 다이스케
는 고등지식인 한량이고 매일 빈둥거리며 외국에서 주문한 원서를 반나절 읽고 부끄
럽지 않은 실력으로 피아노 건반을 땡깡거리고 게다짝을 딸깍거리며 집주변을 돌아댕
기기도 하고 인력거나 전차를 타거나 마당에 물을 뿌리고 낮잠을 자거나 은초롱꽃
을 꺽어 물이 반쯤 들어있는 수반에 담근다. 매일매일이 그렇다.


사업상의 비리를 약간씩 저지르면서 성실과 노력이니 운운하는 그런 아버지를 은근
히 경멸한다. 그러나 애써 충돌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거짓 아첨을 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안개같이 뿌연 휘장을 아버지와 나 사이에 둘러친다.
형은 항상 바쁘고 사교상의 예의를 깍듯이 챙길 줄 알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점에서 나 다이스케와 형은 겉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얼른 보면
형제가 서로 닮아있는 거 같다. 나 다이스케는 물질의 필요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생활에 쫓겨 뇌와 신경 감각이 마비되는 상태를 또한 혐오한다. 다이스케는 한량이다.
다이스케는 그 스스로가 겁쟁이인 줄을 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다.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다이스케와 친구 히라오카, 지금은 히라오카의 처가 된미치요,
이 셋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억지 로맨스가 폭발적으로 돌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친구의 방탕 덕분에 물질적인 궁핍을 겪고 있는 그녀가 안되보였을 뿐이다.
주인공의 머리속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그녀에 대한 감정은 점점 위험한 선홍빛으
로 바뀌어간다. 그녀를 향하는 마음의 묘사는 점증하면서 반복된다. 그리고 330페이
지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비로소 멜로드라마를 빙자하는 절정의 한 순간을 드러낸다.
그런데 구질구질하지 않고 뽕짝같은 기운도 없다. 마지막까지 그 느낌이 깨끗하다.


반동인물 투성이지만 모두 인간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활력이 넘치는 인물도 없고,
대부분 적막 가운데에서 나른하게 어슬렁거리지만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다. 그녀와
나 사이 백합꽃 향기가 진동한다. 순간 아찔하다. 장지문으로 가려진 초여름의 햇살
에 노출되면 10초도 안되어 내 살은 논바닥처럼 쩍쩍갈라지다가 마침내 진물을 내면
서 물컥 터져버릴 것 같다. 아침에 아버지에게 호출되었고 너무 일찍 일어난 거 같다.
베겟머리와 방의 네 귀퉁이에 향수를 살짝 뿌려두고, 우물처럼 푸른 그늘 속에 잠기어
그 밑으로 점차 빠져든다. 아주 멋진 소설이다. 한문장 한문장 읽어나가는 게 아쉬
울 정도였다. 낭만적인 폭풍, 치기어린 자의식같은 거 빼놓고, 이다지도 탐미적이면
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거의 없다. 불과 3-4년의 간격을 두고 씌어졌는데 <도련님>
의 분위기나 어조와는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소세끼의 데뷔작 <나는 고양이
로소이다>는 동경대 영문과 전임강사를 하던 서른 여덟 살에 장난삼아 씌어졌고 이
소설 <그 후>는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인가가 된다.


'천재'라는 게 있다면, 이런 인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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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 현대정치의 이론과 실천
앤드류 헤이우드 지음, 조현수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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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페이지 정도로 방대하다.

번역이 상당히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이책을 다읽고 나서 이 리뷰를 올린다.

대학원생 수업등을 통해서 파트별로 찢어서 맡긴게 아닐까 할정도 앞뒤 용어 통일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예를 들어, 맑스의 역사유물론 용어 중에 앞에서는 '기초'라고 했다가 뒤에서는 '토대'라고 옮겨놓기도 하고, 학자들 이름도 '풀란차스'혹은 '뿔란차'를 어떤 발음 근거에서인지 '뽈란차'라고 옮겨놓고, 또 전반부엔 줄기차게 존 '스튜아트' 밀이라고 했다가 뒤에가서는 '스튜어트'로 바뀐다. 일반적으로 '비담 Beetham'이라고 표기하는 학자 이름은 '배트햄'으로 옮겼다.

또한 신공공선택론에서 나오는 용어인 'free rider'(무임승차) 효과를 '자유로운 기수'로 말도 안되게 해놓았다. 얼른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정도다.


비문이 아닌 문장들도 성의없는 직역이라 이해하기 아주 모호한 데가 많다.



내가 원문과 비교해서 보지 못해서 그렇지 원문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번역상의 오류가 나올 듯하다.

(번역자의 직업적 양심을 의심하게 할뿐만 아니라, 이런물건은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알라딘에서 책 검색할때 저 위에 역자이름 클릭하면 목록이 주루룩 나온다. 이바닥이 의외로 좁은데,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닐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개론서'라 함은 무엇인가?

잘 모르는 초심자가 뭔지 알아보려고 걸음마떼려고 들여다보는 일종의 안내서 아닌가?
그런 안내서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어놓았으니...
혹시 고시 강의나 대학에서 교재로 쓰는 과목이라면 듣지 말거나 그냥 빌려서 보기 바란다.

게다가 가격은 3만8천원 씩이나 한다.


단 커버 디자인이나 제책 상태는 상당히 좋다.


앞 자리에 앉아 입만 나불대는 똘똘이 스머프의 뒷통수를 내리쳐서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좋은 볼륨감을 확보하고 있다. 베개로 사용하기엔 적당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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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한길그레이트북스 40
윌리엄 제임스 지음, 김재영 옮김 / 한길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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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의 이책에 대해서는 내가 읽던 다른 책들에서도 여러번 언급되어서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를 읽다가, 전설적인 이 분석철학의 시조가 제임스의 이책을 읽고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콜린 윌슨의 재기발랄한, 그러나 얄팍하지는 않은 문예비평서 <아웃사이더>에서도 본문의 여러 지면을 통해 이 책을 언급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임스의 이책을 읽었다. 분량은 600페이지를 넘어가고 풍부한 사례들로 뒤덮혀 있다. 나에게는 대단한 지적 자극이었다! 윌리엄 제임스는 단순한 과학적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비주의에 온몸을 던져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 맹목적이지도 않았다. 예민한 검침 바늘처럼, 두 양극 사이에서 흔들리는 역동적인 긴장감이, 노학자의 폭넓은 정신 속에서 얼마나 생산적인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는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 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 노학자는 저 수많은 종교 신비적 현상들에 대해서 이상 심리적 평판을 가할 수 있는 충분한 학식과 논리를 갖추었고 또 내용의 일부는 그러한 냉소에 바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비 현상들에 대한 평생에 걸친 지속적인 매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또 그의 지적인 나약함으로 비치지 않고, 인간적인 폭넓음으로 읽히는데, 이것은 (별로 많진 않지만) 나의 독서 리스트 중에서는 희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지적해두고 싶은 점은 번역과 본문 편집에 대해서다.

종교학에 대한 배경 지식에 비추어 영어 원문을 유추해보면,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원문의 구조에 충실하겠다는 역자의 말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그 예가 열거할 수 없이 아주 많은데, 한가지 단순한 예를 들어 '속물적인'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philistine 같은 단어를 '필리스틴적인'이라고 옮겨놓았다. 물론 '블레셋 사람들의'라고 엮을 수 도있겠지만 본문의 맥락상 '속물적인'이 맞다. 역자인 김재영 교수님은 왜 그렇게 옮겼을까? 저 단어의 뜻을 맥락에 비추어 약간만 돌이켜 봐도 알수 있는 건데, 최소한 영어사전만 떠들쳐 봐도 알수 있는 걸 저렇게 대충 연결해놓았다. 나로서는 이 흔적이 '대충'으로 밖에는 안느껴진다. 그리고 거대한 초월적 전체에 자기를 내던지는 적극적 내맡김에 해당되는 단어를 이상하게 '자기 포기'라고 번역했는데 이것도 상당히 이상하다. 이런 기본적인 실수가 적지 않다.

번역의 상태는 후반부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냥 우직한 직역투에서 올수 있는 껄끄러움이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기본적인 한국어 통사 구조에도 미달되는 문장들이 남발된다. 특히 역자 주같은 것은, 후기에 언급되어있는 대학원생 조교들에게 시켜 대충 '때운 게' 아닐까 상상해볼 정도로, 거의 어쩔 수 없이 해놓은 초벌번역 수준이다. 역자 후기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역자 교수님이 이책과 맺어왔던 개인적인 인연에 관한 언급이나, 번역상의 애로점과 세심한 당부 사항 따위가 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3년 동안'이나 온갖 산고를 겪으며 하셨다는데, 끝마무리까지 확실히 하셨으면, 당장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누구 말대로 이 '일급 철학자의 일급 서적'을 번역하신 공로가 빛이 났을 텐데 참 아쉽다.

또 한가지, 이책은 특성상 수많은 사례들이 인용되었는데, 이 사례들이 제임스 자신의 코멘트와 구별되지 않고 뒤섞여 있어서 이것도 역시 편집상의 성의부족이라고 밖에는 말못하겠다. 게다가 이책은 소매가가 25,000원씩이나 한다. 가난한 대학원생, 인문학도들이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포기하고 큰맘 먹고 집어들 수도 있는 책이다. 강사 선생님께서 미리 읽어보고 판단하시겠지만, <종교학의 이해>등의 대학 강의에서 교재로 사용된다면 최악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배경지식과 함께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이해못할 것도 없지만, 이런 명저가 한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나 안타깝다. 하루 빨리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책이다. 한길사와 같은 대형 출판사의 시스템에 대한 신용까지 재고해보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래서 이책을 덥썩 추천하질 못하겠다. 미래의 독자 여러분들은 개선된 판이 나오시면 그때 보시거나, 정 봐야하겠거든 영어 원서와 대조해서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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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 2007-04-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준것으로도 고맙다고 하기엔 좀 얄미운데요. 한번 나와버렸으니까 다른 역자가 나와서 다시 제대로 해서 내고 싶어도 어렵게 되잖아요. 거기다가 전공학과 교수'님'의 번역서라고 나온거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