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한길그레이트북스 40
윌리엄 제임스 지음, 김재영 옮김 / 한길사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윌리엄 제임스의 이책에 대해서는 내가 읽던 다른 책들에서도 여러번 언급되어서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를 읽다가, 전설적인 이 분석철학의 시조가 제임스의 이책을 읽고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콜린 윌슨의 재기발랄한, 그러나 얄팍하지는 않은 문예비평서 <아웃사이더>에서도 본문의 여러 지면을 통해 이 책을 언급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임스의 이책을 읽었다. 분량은 600페이지를 넘어가고 풍부한 사례들로 뒤덮혀 있다. 나에게는 대단한 지적 자극이었다! 윌리엄 제임스는 단순한 과학적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비주의에 온몸을 던져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 맹목적이지도 않았다. 예민한 검침 바늘처럼, 두 양극 사이에서 흔들리는 역동적인 긴장감이, 노학자의 폭넓은 정신 속에서 얼마나 생산적인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는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 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 노학자는 저 수많은 종교 신비적 현상들에 대해서 이상 심리적 평판을 가할 수 있는 충분한 학식과 논리를 갖추었고 또 내용의 일부는 그러한 냉소에 바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비 현상들에 대한 평생에 걸친 지속적인 매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또 그의 지적인 나약함으로 비치지 않고, 인간적인 폭넓음으로 읽히는데, 이것은 (별로 많진 않지만) 나의 독서 리스트 중에서는 희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지적해두고 싶은 점은 번역과 본문 편집에 대해서다.

종교학에 대한 배경 지식에 비추어 영어 원문을 유추해보면,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원문의 구조에 충실하겠다는 역자의 말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그 예가 열거할 수 없이 아주 많은데, 한가지 단순한 예를 들어 '속물적인'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philistine 같은 단어를 '필리스틴적인'이라고 옮겨놓았다. 물론 '블레셋 사람들의'라고 엮을 수 도있겠지만 본문의 맥락상 '속물적인'이 맞다. 역자인 김재영 교수님은 왜 그렇게 옮겼을까? 저 단어의 뜻을 맥락에 비추어 약간만 돌이켜 봐도 알수 있는 건데, 최소한 영어사전만 떠들쳐 봐도 알수 있는 걸 저렇게 대충 연결해놓았다. 나로서는 이 흔적이 '대충'으로 밖에는 안느껴진다. 그리고 거대한 초월적 전체에 자기를 내던지는 적극적 내맡김에 해당되는 단어를 이상하게 '자기 포기'라고 번역했는데 이것도 상당히 이상하다. 이런 기본적인 실수가 적지 않다.

번역의 상태는 후반부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냥 우직한 직역투에서 올수 있는 껄끄러움이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기본적인 한국어 통사 구조에도 미달되는 문장들이 남발된다. 특히 역자 주같은 것은, 후기에 언급되어있는 대학원생 조교들에게 시켜 대충 '때운 게' 아닐까 상상해볼 정도로, 거의 어쩔 수 없이 해놓은 초벌번역 수준이다. 역자 후기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역자 교수님이 이책과 맺어왔던 개인적인 인연에 관한 언급이나, 번역상의 애로점과 세심한 당부 사항 따위가 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3년 동안'이나 온갖 산고를 겪으며 하셨다는데, 끝마무리까지 확실히 하셨으면, 당장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누구 말대로 이 '일급 철학자의 일급 서적'을 번역하신 공로가 빛이 났을 텐데 참 아쉽다.

또 한가지, 이책은 특성상 수많은 사례들이 인용되었는데, 이 사례들이 제임스 자신의 코멘트와 구별되지 않고 뒤섞여 있어서 이것도 역시 편집상의 성의부족이라고 밖에는 말못하겠다. 게다가 이책은 소매가가 25,000원씩이나 한다. 가난한 대학원생, 인문학도들이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포기하고 큰맘 먹고 집어들 수도 있는 책이다. 강사 선생님께서 미리 읽어보고 판단하시겠지만, <종교학의 이해>등의 대학 강의에서 교재로 사용된다면 최악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배경지식과 함께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이해못할 것도 없지만, 이런 명저가 한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나 안타깝다. 하루 빨리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책이다. 한길사와 같은 대형 출판사의 시스템에 대한 신용까지 재고해보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래서 이책을 덥썩 추천하질 못하겠다. 미래의 독자 여러분들은 개선된 판이 나오시면 그때 보시거나, 정 봐야하겠거든 영어 원서와 대조해서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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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 2007-04-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준것으로도 고맙다고 하기엔 좀 얄미운데요. 한번 나와버렸으니까 다른 역자가 나와서 다시 제대로 해서 내고 싶어도 어렵게 되잖아요. 거기다가 전공학과 교수'님'의 번역서라고 나온거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