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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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이 지겨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추락하는 시늉을,
그것도 북미대륙의 20세기사를 훑듯이 삼 대에 걸쳐서 해보지만, 영 석연치 않다.
진정으로 추락하는 자의 이마 속에, 무슨 놈의 동경과 상징과
창백한 추억 부스러기들이 그렇게도 많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를 내버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들은 삶으로의 복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부해진 ''탕자의 귀환'' 같은 걸 곁눈질로 엿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세 사람은 맨 처음부터 떠날 필요나,
스스로를 내버리는 시늉같은 걸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44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에, 쓸데없는 군소리도 많다.

방황하는 시뮬레이션은 실제 방황의 액면보다 과잉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감상적인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
자신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라.
눈빛은 흔들리고, 어조는 흐릿하게 둔 채
중언부언 잔소리는 겁나게 많지만,
늘어놓는 그 자신은 정작 묘사의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침을 튀겨 가며 얄팍한 스타일과 반전 따위로 사건을 연장하려 애쓰고 있다.
그것이 소설가라는 직업의 속기쉬운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약간 냉소적이고 씁쓸한 생각도 해본다.
대중 소설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뭔가 있는 척 심각한 척을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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