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라마 보이☆파노라마 걸
오카자키 교코 지음, 이시현 외 옮김 / 반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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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팝도 그렇지만 일본 버블경제 폭발 직전의 이 뜬구름 같고 매끌매끌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흐름, 지루함 속에서 터지는 엉뚱한 액션, 산뜻한 헛소동의 공기가 마음에 든다. 비극 없는 삶은 그것대로 족한 것, 운이 좋은 것이고, 비극이 예비되어 있다면 crash 직전까지 즐기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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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문학의 숲 13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강성욱 옮김 / 현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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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깔끔해서 전체적으로 술술 잘 읽혔지만 문학상이 된 작가들의 위상 치고는 이게 그들의 대표작이었나? 싶은 의구심이 생기게 하는 애매한 작품도 보인다.


하야시 후미코의 단편 <밀회>는 각자 배우자가 있는 남녀의 불륜 이야기인데, 여러가지로 대표작 <뜬구름>을 연상시킨다. 매너리즘이 느껴지고 원고 마감에 맞춰 본인 감성의 디폴트값을 틀에 우겨넣어 쓴 거 같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은 몇 번 읽었던 건데, 수식어가 많고 과장도 심한 게 이번 독서에서 특히 눈에 띄었지만, 옛날 이야기를 소재로 값비싼 장난감 세공을 의도했다면 일정 정도 참작이 된다. 위스망스나 릴아당, 바르베 도르비이 같은, 자연주의 문학의 한 지류이자 변종인 프랑스 세기말(19c)의 탐미-퇴폐-악마주의 소설과 선을 대어볼 수도 있겠다.


오다 사쿠노스케의 단편은 전후 밀주가의 메틸알콜을 마시다 급사한 선배작가의 기사를 만우절에 접하여, 낮도깨비 같던 그이와의 일화들을 회고하는 내용. 격자를 넘나 드는 게 재밌지만 meta라기 보다는 표류에 가깝다. 잿더미 의식과 밤하늘의 유성. 당대 일본 사소설의 자연주의적 평면성 보다는 피카레스크에 스탕달 취향에 가깝고 '무뢰파는 심술궃은 유머를 잘 해서 무뢰파인가?' 라는 생각을 읽으면서 했다.


나오키 산주고의 <로봇과 침대의 무게>는 SF소설이다. 바람피는 아내에게 죽은 남편 대신 로봇이 복수하는 이야기라서 1930년대의 소재로서는 파격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침대의 흔들림에 반응해 파멸의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이니까 대담한 에로 그로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 밑에 깔린 정서와 톤은 우키요조시(전근대 풍속소설)의 익살에 가깝다.


야마모토 슈고로의 <비 그치다>는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이 촤라락 그려질 정도로 그쪽 설정에 맞춤인 듯하다. 검 실력이 너무 좋아 외려 지방 번주들에게 사범으로 등용이 되지 못하고 빈민가 거리를 아내와 함께 유랑하듯 옮겨다니는 낭인 무사가 주인공이다. 이 무사는 어렸을 때 몸이 약해 절에 맡겨지는데, 주지스님에게 <돌 속에 꽃이 있으니, 때리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받은 후 그걸 화두처럼 품고서 수련을 하다가 검술에서 이를테면 득도를 한다. 모든 사물이나 인간의 무게중심이랄까, 그곳을 찌르면 균형이 무너져내리는 포인트를 간파하는 훈련을 자기도 모르게 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대결을 할 때 후까시가 없고 불필요한 살기를 내뿜거나 예비동작조차 없다. 이겨도 너무 맥없이 이겨 상대도 납득을 못하고 관중들 또한 힘 대결에서 흔히 기대하는 팽팽한 스펙타클이 연출되지 않으니까 시시해 하다 못해 눈앞의 현실을 용납하지 못한다. 게다가 주인공 자신도 비굴해 보일 만큼 겸손하다. 가장 낮은 데로 임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기고 포용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태도. 아내는, '진흙 속에 묻힌 진주'라는 자각이 부족하며 매사에 엄벙덤벙한 그런 남편을 이해한다. 빈민가 이야기가 나머지 반을 이루는데, 아웅다웅해도 같은 처지, 이해하고 어려울 때 나누고 살아야지 식의 일본 서민인정물 특유의 공기를 공유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래도 꽃보다 더>나 마츠모토 타이요의 <죽도 사무라이>와도 설정이 겹치는데, 가부키물 같은, 전통에서 유래해서 공유하는 밑그림 같은 게 깔려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백십일>은 1년 24절기 중 입춘에서 210일이 되는 음력 9월 초순을 말한다. (중의적인 걸 내포했겠지만) 작품의 완결 예정일을 타이틀에 박은 <피안彼岸(춘분 전후로 7일간) 무렵까지>처럼 제목을 대강 짓는 소세키 답다. 규슈 아소 산을 다녀온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각색한 듯하다. 만담 2인조처럼 한 개의 자아에서 분기한 두 캐릭터처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데, 인물들이 사실적이지 않고 따로 수필로 정리할 수도 있는 단상들을 뱉어내기 위해서 여행 풍경에 대한 기억을 필연성이 없는 스테이지로 빌려 왔다는 인상이 강하다. <피안..>이나, <갱부>, <행인> 후반부처럼, 전업 작가였던 소세키가 원고마감일에 닥쳐서 쥐어 짠 느낌이랄까 관념적인 형해가 앙상하게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은 무마취 절개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대중 독자들이 쉽사리 흡수할 법한 낭만적인 연애를 결합한 깔끔한 문체의 괴담이다. 그런 점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그림과 여행하는 남자>와도 하나로 묶을 수 있겠다. 란포 작품은 '기묘하다'는 표현을 서술자 본인이 몇 번이나 반복하던지 문체가 훨씬 B스럽고 조잡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의 작풍을 대표하기 어려울 것 같고, 다자이 식의 자조적인 퇴폐에 익숙하다면 오히려 웃음포인트가 될 수있는 초등학생용 동화다. 우정 의리만세! 기타노 다케시의 <모두 하고 있습니까?>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의사의 최면 암시에 "메로스" 한 마디로 쓰러지던 게 기억난다.


<삼인법사>는 아쿠타가와처럼 구슬픈 옛이야기 각색하기를 잘했던 다니자키 상의 작품인데, 고야산에 들어 앉은 수도승들이 한가한 밤에 모여 왜 세상을 버리고 머리를 깍게 되었나 각자 털어놓는 이야기다. 뜬 세상의 욕됨, 고통, 버림이라는 순환을 세 화자를 통해 세 번 반복하는 소품이다. 인생은 그림자 놀이라는 테마.


개인적으로 오다사쿠의 작품이 가장 좋았고, 나머지는 태작도 있고 쏘쏘도 있어보였지만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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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사카구치 안고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꿈꾸는돌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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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낭만적인 과장과 냉소가 오히려 작품을 동화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극단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작품의 원작인 <간장 선생>은 제도와의 생명력 싸움이라는 메인 테마를 제외하고는 결말이 확 달랐다. 자전적 추억의 농축이 진한 <바람과 빛과 스무 살의 나와> 이 한 편은 머리 기른 막행막식의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도적인 자세, 갓 고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탈속하고 무사평심(upeksa)한 시선, 건조한 어조, 날카로운 인물평이 돋보이는 명편이었다. 이미 다른 데서 몇 번 읽는 작품이지만.


작가적 자아는 파멸 앞에 맨 살갗을 노출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는 것 같다. 그래서 상상만으로도 아픈 접촉 직전에 과장된 고함을 지르는 게 아닐까? 작가 개인사로 볼 때 약물 중독에 약간 제정신이 아닌 면도 있었을 듯 하고. 중2병 자극하는, 아저씨가 쓴 청춘 소설의 면모가 있으며 또 그에 합당한 가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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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 입문
가지야마 유이치 지음, 김성철 엮음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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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개념으로서 '공'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이 분기하기 이전에 파지하는, 세속적인 지혜 분별을 넘어선 자리에서 존재 일반의 '무자성 연기'(無自性=緣起)적 본질을 가르키는 초월의 개념이다. 이 '공'개념을 중심으로 형이상학적 논의들을 해체하는 학파가 중관이고, 교조는 나가르주나(용수). 


이 책은 '공' 개념이 중관 용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관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초기 니까야(특히 수타니파타)에서 무상-무아-연기론이 발전해서, 아我는 무상하므로 비어있지만, 무엇이든 간에 인식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한 실체로서의 오온의 존재를 긍정하는 아비달마 설일체유부의 존재有의 형이상학으로 나아갔다가, 이것을 또 다시 안티테제로서 깨고 나온 게 용수의 중관학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메인디쉬가 되는 <중론>의 주요 구절들을 뽑아 해설하고, 용수의 최짧은 저작인 <인연심론>을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분량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흔적을, 몇 페이지만 읽어도 선생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 단도직입하는 내공으로 보여준다. 카지야마 유이치의 저작들이 몇 권 국내에 번역이 되었는데 경서원에서 나온 한 권을 제외하고는 다 절판이 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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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 - 마음대로 풀어 쓴 『섭대승론』
무착 지음, 정화 옮김 / 북드라망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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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해설서다. 우선 아상가(무착)의 원저와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원저의 기본 구조라든가 핵심 문장들을 인용하고 풀어주는 부분이 전혀 없다. 원전 텍스트와 타이완의 인순 스님이 쓴 해설서 두 권을 끼고 - 사실상 한 권 - 원전 출처에 대한 링크 없이 내용의 핵심만, 정화스님이라는 필터가 느끼고 반응하는 대로 일종의 적극적 독서노트로서 산출물을 뽑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타이트하게 정수만 알기 쉽게 옮겨져 있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중언부언 반복하는 부분이 많고, 좋게 생각하면 난해한 내용을 복습해주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완결된 작품으로서의 경제성은 떨어져 보인다. 추측컨대 정화 스님의 다른 저작들 처럼 대중 상대 강의 녹취를 푼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자 특유의 '인지 네트워크'= '생명 인드라망'= '대승 보살' 이론이 깊숙이 관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아상가의 사상을 모사하고 정리하고 있는 물건이라기 보다는, <섭대승론>을 소재로 정화스님만의 기본 테마를 재확인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전체에서 3분의 1 이상 분량을 차지하는 후반부에서는, 유식에 근거한 수행론이 전개되는데, 이는 원저에서도 기본 프레임이 그렇다. (목차 중, 依'戒'學勝相, 依'心'學勝相, 依'慧'學勝相,學果'寂滅'勝相)  


한 가지 궁금한 게, "아비달마 대승경을 보면.." 이라고 출처를 밝힌 부분이 몇 번 나오는데 스님은 실존하는 책을 직접 참고하고 하신 말인가? 왜냐하면 <섭대승론>이 <아비달마 대승경>의 주석이라는 설이 있으나, 후자의 경전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고, 현장역에서 <아비달마대승경>이라고 씌어있는 부분이, 진제(파라마르타) 번역에서는 "섭대승론은 아비달마 '교'(가르침)이며 대승'수다라'(경전)이다"라고 되어 있어서. 현장의 오역에서 기인한 존재하지 않는 경전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라는데 학계의 의견이 뒤집힐 만한 문헌 발견이 있었나 싶어서 언급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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