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문학의 숲 13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강성욱 옮김 / 현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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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깔끔해서 전체적으로 술술 잘 읽혔지만 문학상이 된 작가들의 위상 치고는 이게 그들의 대표작이었나? 싶은 의구심이 생기게 하는 애매한 작품도 보인다.


하야시 후미코의 단편 <밀회>는 각자 배우자가 있는 남녀의 불륜 이야기인데, 여러가지로 대표작 <뜬구름>을 연상시킨다. 매너리즘이 느껴지고 원고 마감에 맞춰 본인 감성의 디폴트값을 틀에 우겨넣어 쓴 거 같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은 몇 번 읽었던 건데, 수식어가 많고 과장도 심한 게 이번 독서에서 특히 눈에 띄었지만, 옛날 이야기를 소재로 값비싼 장난감 세공을 의도했다면 일정 정도 참작이 된다. 위스망스나 릴아당, 바르베 도르비이 같은, 자연주의 문학의 한 지류이자 변종인 프랑스 세기말(19c)의 탐미-퇴폐-악마주의 소설과 선을 대어볼 수도 있겠다.


오다 사쿠노스케의 단편은 전후 밀주가의 메틸알콜을 마시다 급사한 선배작가의 기사를 만우절에 접하여, 낮도깨비 같던 그이와의 일화들을 회고하는 내용. 격자를 넘나 드는 게 재밌지만 meta라기 보다는 표류에 가깝다. 잿더미 의식과 밤하늘의 유성. 당대 일본 사소설의 자연주의적 평면성 보다는 피카레스크에 스탕달 취향에 가깝고 '무뢰파는 심술궃은 유머를 잘 해서 무뢰파인가?' 라는 생각을 읽으면서 했다.


나오키 산주고의 <로봇과 침대의 무게>는 SF소설이다. 바람피는 아내에게 죽은 남편 대신 로봇이 복수하는 이야기라서 1930년대의 소재로서는 파격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침대의 흔들림에 반응해 파멸의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이니까 대담한 에로 그로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 밑에 깔린 정서와 톤은 우키요조시(전근대 풍속소설)의 익살에 가깝다.


야마모토 슈고로의 <비 그치다>는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이 촤라락 그려질 정도로 그쪽 설정에 맞춤인 듯하다. 검 실력이 너무 좋아 외려 지방 번주들에게 사범으로 등용이 되지 못하고 빈민가 거리를 아내와 함께 유랑하듯 옮겨다니는 낭인 무사가 주인공이다. 이 무사는 어렸을 때 몸이 약해 절에 맡겨지는데, 주지스님에게 <돌 속에 꽃이 있으니, 때리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받은 후 그걸 화두처럼 품고서 수련을 하다가 검술에서 이를테면 득도를 한다. 모든 사물이나 인간의 무게중심이랄까, 그곳을 찌르면 균형이 무너져내리는 포인트를 간파하는 훈련을 자기도 모르게 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대결을 할 때 후까시가 없고 불필요한 살기를 내뿜거나 예비동작조차 없다. 이겨도 너무 맥없이 이겨 상대도 납득을 못하고 관중들 또한 힘 대결에서 흔히 기대하는 팽팽한 스펙타클이 연출되지 않으니까 시시해 하다 못해 눈앞의 현실을 용납하지 못한다. 게다가 주인공 자신도 비굴해 보일 만큼 겸손하다. 가장 낮은 데로 임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기고 포용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태도. 아내는, '진흙 속에 묻힌 진주'라는 자각이 부족하며 매사에 엄벙덤벙한 그런 남편을 이해한다. 빈민가 이야기가 나머지 반을 이루는데, 아웅다웅해도 같은 처지, 이해하고 어려울 때 나누고 살아야지 식의 일본 서민인정물 특유의 공기를 공유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래도 꽃보다 더>나 마츠모토 타이요의 <죽도 사무라이>와도 설정이 겹치는데, 가부키물 같은, 전통에서 유래해서 공유하는 밑그림 같은 게 깔려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백십일>은 1년 24절기 중 입춘에서 210일이 되는 음력 9월 초순을 말한다. (중의적인 걸 내포했겠지만) 작품의 완결 예정일을 타이틀에 박은 <피안彼岸(춘분 전후로 7일간) 무렵까지>처럼 제목을 대강 짓는 소세키 답다. 규슈 아소 산을 다녀온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각색한 듯하다. 만담 2인조처럼 한 개의 자아에서 분기한 두 캐릭터처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데, 인물들이 사실적이지 않고 따로 수필로 정리할 수도 있는 단상들을 뱉어내기 위해서 여행 풍경에 대한 기억을 필연성이 없는 스테이지로 빌려 왔다는 인상이 강하다. <피안..>이나, <갱부>, <행인> 후반부처럼, 전업 작가였던 소세키가 원고마감일에 닥쳐서 쥐어 짠 느낌이랄까 관념적인 형해가 앙상하게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은 무마취 절개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대중 독자들이 쉽사리 흡수할 법한 낭만적인 연애를 결합한 깔끔한 문체의 괴담이다. 그런 점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그림과 여행하는 남자>와도 하나로 묶을 수 있겠다. 란포 작품은 '기묘하다'는 표현을 서술자 본인이 몇 번이나 반복하던지 문체가 훨씬 B스럽고 조잡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의 작풍을 대표하기 어려울 것 같고, 다자이 식의 자조적인 퇴폐에 익숙하다면 오히려 웃음포인트가 될 수있는 초등학생용 동화다. 우정 의리만세! 기타노 다케시의 <모두 하고 있습니까?>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의사의 최면 암시에 "메로스" 한 마디로 쓰러지던 게 기억난다.


<삼인법사>는 아쿠타가와처럼 구슬픈 옛이야기 각색하기를 잘했던 다니자키 상의 작품인데, 고야산에 들어 앉은 수도승들이 한가한 밤에 모여 왜 세상을 버리고 머리를 깍게 되었나 각자 털어놓는 이야기다. 뜬 세상의 욕됨, 고통, 버림이라는 순환을 세 화자를 통해 세 번 반복하는 소품이다. 인생은 그림자 놀이라는 테마.


개인적으로 오다사쿠의 작품이 가장 좋았고, 나머지는 태작도 있고 쏘쏘도 있어보였지만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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