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깃해지는 얘기들이 있다.

여우 이야기, 귀신 이야기, 밝혀지지 않은 미궁의 전말있는 이야기...

이런 얘기들은 책을 읽는 것 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어야 더 감칠맛이 난다.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어?'

'왜 그랬대?'

'설마...그랬을라구?'

이런 추임새가 이야기 대목 대목마다 들어가면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상상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 많은 경험과 오랜 시간을 걸어 온 윗 사람에게 듣는게 훨씬 재밌다.

그 분들이 지나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자라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주어야 잘 전달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분들 역시 궁금하게 여겼던 일인지라...듣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까닭일 것이다.



'나는 시인이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김규동 시인의 발자취를 담은 자서전 형식의 시에 대한 얘기다.

시인의 시를 향했던 열망의 시간들에 대한 보고서 처럼 읽히기도 하고, 시로 인해 변화된 삶과 시로 맺은 인연들,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격정의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 처럼 읽히기도 한다
.

시에 대해 워낙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시를 많이 읽지 않아서 이 책을 보기 이전엔 부끄럽게도... 김규동 시인을 알지 못했다.

'김규동'이라 읽으면서도 '김동규' 시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라...책을 받고 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며 이렇게 나이가 드셨었나?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인이 아닌것 같아...했었다. ㅠㅠ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인이 아닌 게 맞았으니 다행이랄까...^^;)



구어체로 풀어가는 시인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금방 솔깃했졌다.

어릴적 할아버지들이 손주를 앉혀 놓고 밤이나 고구마를 까 주면서..

"할애비가 어렸을 땐 말이다...."하며 조근조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이 그려졌다.

그 목소리가 정말로 들리는 듯했다.

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눈에 걸리지 않는 글은 귀로 바로 전달 되는구나를
느꼈다
.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부터 시인을 꿈꾸며 만난 기라성 같은 역대 시인들의 개인적인 친분,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애증어린
감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 들려주 듯 적었다.

적은 글들이 말이 되어들리니... 정말 그랬나요? 설마요? 이런 질문들을 혼자하게 되더라.^^

개구장이 어린시절의 낙재생에서 경성고보를 거쳐 김일성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는 분명,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임에도 경직된 훈화처럼 들리지 않아  따뜻한 격려의 메세지로 읽힘도 참 좋았다.

김기림, 천상병, 박인환, 김수영...이름만 들어도 앗!! 싶어지는 한국문단의 별로 반짝이는 대시인들과의 개인적 친분에서 생긴 에피소드들도
너무 재미있어 그 분들의 삶이 짐작되어 그 분들의 쓴 시가 더 끄덕여지며 다가왔다.

책 중간중간 김규동 시인의 시도 첨부했는데, 시 속에 나타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사무침이 절절해 느닷없이 통일에
대한 염원이 절실해졌다면 믿을런지?



내가 여태껏 김규동시인을 몰랐던 건 그의 시가 알려지지 않았기때문이 아니라 내가 시를 너무 읽지 않았다는 게 이 책을 통해 다시 반성하게
되었다.

시인의 고향 집 우물가 느릅나무의 안부를 묻는 대목에선 그만 짠...해져서 이 노시인이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통일이 될 때까지
살아서... 아름드리 그 나무에 기댈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솔깃한 옛날 얘기 듣는 마음으로 읽다 보니 이야기는 어느새 끝이다.

'정말 재밌었는데...또 해주세요!!'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겠지만,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참 좋다. 시에 대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이쯤되어야 시를 쓴다고 얘기를 할 수있겠구나..하는 예들을 듣고 배울 수 있어서다.
(이만한 열정없이는 시 쓸 생각 말아야한다는
질책도 들려 약간 움찔해 지기도 한다.ㅠㅠ)



아무튼,

또 한 분의 시인을(이제서야 ) 알고 봄은 깊어간다.

오래오래 건필하시기를..꼭 고향의 느릅나무에게 안부를 전하시기를..책 표지의 사진을 보며 글 아닌 얘기로  들었던 것처럼, 나도 큰 소리로
전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도 올레 & 오름 걷기여행 - 올레 최신코스 업데이트 / 걷기 좋은 길 40코스 길따라 발길따라 6
길을찾는사람들 엮음 / 황금시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제주도가 신혼여행의 천국인 때가 있었다.

지금은 고등학생들이 주로 수학여행을 더 많이 가고 있지만 내가 자랄때만 해도 열에 아홉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유행가 가사에도
신혼부부 사진찍기 구경 재미있어요~ 하는 가사가 나올만큼 각광 받았던 곳이었다.

그후로, 차츰 동남아 등지로 신혼  여행지가 바뀌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만으로는 제주도 관광산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때 제주 올레길 걷기 열풍으로 제주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걸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동네가 되었다.



그동안 각종 매스컴을 통해서 지면으로 화면으로 만난 올레길은 제주도 특유의 풍경을 오롯이 드러내면서도 각각의 특색이 다 있어 어느곳이나
경이롭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바다를 끼고 도는 올레길은 바다빛과 어우러져 더 신비롭고, 언덕을 오르는 오름길은 모나지 않은 오름의 후덕함이 있어 좋았고, 관광지를
아울러 돌아가는 길은 이국적인 낭만을 느낄 수있어 좋아보였다.



언젠간 꼭 가봐야지..벼르다 지난 겨울 제주도 여행길에 오른 후, 걸어 본 올레길은 한 겨울 시린바람 속에서도 얼마나 멋지고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았는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걷고 싶은 길로 각인되었다.

걸어보고 나서 더 걷고 싶은 곳이 된 제주 올레길!!

나는 모르고 있지만 제주도 곳곳에 산재하고 있을 올레길에 대한 궁금증과 그 길들을 비교해 선택 할 수있는 가이드 북을 찾다가 만난 제주도
올레&오름 걷기 여행은 제주도에 오래동안 산 관광 가이드를 만난 것 만큼이나 든든한 안내서였다.

제주도에 평생 살았다해도 제주도의 모든 곳을 속속들이 다 알고 안내하기 힘든것일 텐데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제주도 어느지역을 가도 헤매지
않고 최상의 코스를 선택해 다녀올 수있게 구성되어 있다.



본 책 뒤에 서어비스로 얇게 구성된 코스 가이드 북은 본 책에 담긴 올레길을 다 담았으나 그 액기스만을 추려낸 알짜 정보로 가득한 그야말로
가이드 북이다. 얇아 휴대하기도 편하고  올레길 코스 걷는 거리, 시간, 난이도, 출발점에서 도착점 추천테마별로 도표와 지도를 같이 첨부 한
눈에 올레코스를 짐작하게 하는 책임을 느낄 수있다.

본 책의 주변 풍경과 여행에 대한 감상, 사진으로 보여주는 시각적인 덤이 있다면, 가이드 북은 실전에 꼭필요한 친구이자 좋은 가이드가 되줄
최상의 파트너 역할을 다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제주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멋진 풍광에 인공적인 테마별 구경거리가 인상적인 이국적 느낌이 있는 섬이었지만, 올레길로
보는 제주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있고 자연이 자연으로 남아있을 때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지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제주로
바꾸어 주었다.

곶자왈, 다랑쉬 오름, 바리메오름, 볼레낭길, 올랭이소,쇠소깍, 돔베낭길, 거슨새미, 말미오름, 엉또폭포...

제주의 황토색이 진하게 느껴지는 지명에서부터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다 사람이 사는 풍경사이로 이어진 올레길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길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올레길..

지난 겨울 동백꽃이 눈물처럼 떨어진 길을 걸으며 감탄하던 기억이 너무 좋아 꼭 다시와야지..다짐했었는데, 이렇게 봄은 빠르게 내 곁에 와
있고 봄의 올레길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당장 베낭을 챙기고 싶어진다. 









지난 겨울 올레길 7코스를 걸으며 찍었던 사진이다.

저 파도 어서 나를 오라고 부르는 듯 한데...

'제주도 올레&오름 걷기여행' 든든한 지원군이자 가이드를 만났으니 두려울 게 없지만, 시간은 없고 돈은 더 없는 지금...

다시 걸어 볼 그날을 기다리며 그저 책만 보고 또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다니기 싫어! 책이 좋아 1단계 3
김정희 지음, 김창희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한 단계를 올라가야 하는 일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힘든일이다.

새로운 단계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와 긴장은 실수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다들 그렇게 조금씩 힘들어 하면서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그런 과정이 또 다음  단계를 향한 준비라고 당연한 듯 말 할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그게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유치원을 졸업하고 갓 학교에 입학한 초등학생이 된 어린이에게 학교는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장소만은 아닐것이다. 

 

1학년이 된 환희!

숙제한 공책을 잊어 먹고 학교에가서 반성문을 열 번씩이나 쓰기도 하고 학교앞 문방구 앞에서 뽑기하는 걸 구경하다 지각 하는일이 다반사다.

유치원때처럼 선생님이 예쁘고 상냥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꼼짝하면 안되고 졸려도 자면 안되고 마음껏 놀 수도 없고 가장 싫은 건 벌을 받고도 반성문을 꼭 열번씩 써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숙제를 꼬박꼬박하는 것도 잊지 않고 준비물을 챙겨가는 것도 모두 힘들기만 한 환희에게 주변의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다그치고 그러려니 한다.

환희도 칭찬받고 자랑스러운 어린이가 되고 싶지만, 번번히 반성문 열 장의 벌은 환희를 말썽꾸러기 아이로 남게한다.

하지만, 그 반성문으로 인해 환희는 속마음을 털어 놓게 되고 환희의 속마음을 알게 된 선생님은 쪽지를 통해 환희를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선생님의 작은 쪽지는 환희의 새로운 희망이되고 지각대장 말썽꾸러기에서 뭐든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형님'으로 변해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잘안다.

충고보다 더 무서운게 칭찬이다.

나쁜점을 일러 주는 충고는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용기를 잃게 하지만, 잘한다는 칭찬은 더 잘해보고픈 긍정적인 에너지를 방출시키면서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 때문이다.

환희의 선생님도 이런 칭찬의 힘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얘기한 환희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심어주는 환희 선생님의 마음을 보는 것도 따뜻했지만, 작은 꼬마들이 자라서 서서히 학교라는 세계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 볼 수있는 책이었다.

 

아이들에게 반성문 열 장은 엄청난 양이다.

(내가 생각키론..)산을 옮기는 일 만큼이나 힘이드는 일이다.

똑같은 얘기를 계속 열 장씩 적어 가야 한다면 정작 그 반성문 때문에 반성이 더 안될 것이니...이런 벌을 내리는 선생님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억지로 반성시키기 보다는 칭찬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방법을 택하라고 우리 어른들에게 환희는 은근히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국어 성적에 반영되는  개인 문집을 만드는 숙제가 있었다. 모든 장르의 글을 다 올릴수 있었고 형식은 자유롭지만 어떤 내용을 올리든  장 수가 서른 장을 넘어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반 페이지 분량의 시를 쓴다면 육십 편 정도는 써야하고, 한 장 분량의 수필을 적는다면 서른 편을 적어야 했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기보다는 시, 수필, 동시, 동화, 희곡, 평론, 소설, 시나리오, 희곡....여기저기 고만고만한 옹달샘을 많이 팔 수록 점수가 유리했었다.  
애통하게도 나는 다방면의 장르에 적합한 문학적 감성을 갖추지 못했고,  인내와 끈기로 토끼 입맛에 맞는 고만고만한 옹달샘만 파고 있기엔 열 여덟의 여름은 확실히 찬란했고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최소의 시간을 지불하고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걸 택하되, 선생님도 인정 할 수밖에 없는 걸로 하자! 잔머리를 굴려 택한 게 소설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 서른 장 알밥 정도야 금방 채우고, 깊은 우물 하나 열 옹달샘 안 부럽게 팔 수있다는 자아도취도 한 몫 했었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은 뚜렷이 기억난다.
[낫을 들다] 
민중의식을 고취시키는 서사적 운동 소설이었냐? 그럴리가!!
향토색이 짙은 상록수적 농촌 계몽소설이었냐?  거..............참!!
뭐라고 꼬집어 적기가 어렵다. 오합지졸 장르가 다 달라붙은 중구난방 줄거리였기 때문에.

당시 우리동네 사소한 시비로 시작되어 살인까지 이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낫]이었다. 호형호제하던 이웃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는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낫]이라는 잔혹함이 생생해, 내용의 기억은 가뭇없이 사라져도 제목만은 잊히지 않는 이유이다.
내용도 기억 못하는 소설 제목 얘기를 하려고 미꾸라지 먹고 용트림하는 사설을 이리도 길게 썼느냐? 아니다!! 
책이 내 손에 들어 온 후, 비를 맞으며 우산을 치켜 든 사나이가 그려진 표지를 봤을 때... 이 아저씨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더라는 말씀.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은데..하는 기시감이 어이없이 이웃을 살해하게 된 그 아저씨와 매치되는 순간, 갑자기 기억에서 걸어나와 소설속 나오는 정원두가 되었다가 마사오로 변신했다가 재천의 모습까지도 커버하는는 기염을 토해 평면화면의 납작하던 인물이 3D 입체효과를 내는 인물들로 읽히더라. 이 아저씨 추억의 창고를 잠근 자물쇠를 떨어지게(P.96)하는 효과를 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각설하자...



 
인물을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사랑받을 만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 된다
 
페이지 : 39  

어느 한 시절 내가 바라보며 롤 모델로 삼을 누군가를 나이가 든 어느시점까지 좋은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기란 쉽지 않다. 그가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내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않은 이상.  원두에게 마사오는 가난과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고 영원한 우상으로 회고함으로 볼 때,  믿었던 권력의 중심이 없어짐으로  인한 아노미 상태에서 권력의 마지막 단맛을 아끼듯 음미하는 소시민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다가 과연 그들에게 왕은 어떤 존재였나로 궁금증은 증폭된다.


어린시절 영웅이었던 마사오의 부고를 받은 정원두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안의 회상에서 마사오는 서서히 구체화된다.  "지역의 평온과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 재판관, 시장, 의원, 언론인, 배우의 기능을 겸한 위대한 인물 마사오!" 이 다양한 역할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훌륭하게 소화해 낸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 마사오! 그 마사오가 어린날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변에 형성한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어떤 신화를 만들어 갔으며 그 신화가 역사로 기정 사실화 되기까지의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졸음 운전을 하는 불안한 버스 기사와 지지않고 들이대는 택시 기사의 간극만큼 아슬아슬하면서 무협스럽게 그려진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의 이야기 일 진데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은 성석제식 특유의 익살에서 비롯된 것일 수 도 있겠으나  가식의 겉치레를 홀라당 벗기고 감추고 있는 깊숙한 곳까지 내시경을 들이대어 면면이 보여주는 인간의 군상들의 모습에서 내가 투영되고 내 주변이 오버랩되는 데서 오는 부끄러운 자조일 수도 있다.  

의뭉스레 숨기는 일 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내놓고 정면승부로 왕이 된 마사오의 이야기와 여론을 움직일 줄 아는 입의 힘으로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는 재천이  왕의 자리로 한발씩 다가가는 과정을 보면서 권력의 속성으로 나타나는 배신과 음모는 권력과 권력 밖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쓰임을, 그 통로를 지나지 않고는 권력의 세계로 들어오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걸 씁쓸하게 읽게 된다
.
마사오를 구심점으로 펼쳐지는 작은 지방도시의 건달들 세계는 권력욕에 빠져있는 마초들의 패권 전쟁처럼 읽혀지기도 하나, 옆으로 조금만 비스듬히 기울여 읽어보면 간절히 원컨대 포착이 쉽지 않아 지금도 우리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수직상승에 대한 부끄러운 욕망들을 논두렁 밭두렁 깡패들의 입을 통해 조금 거칠지만  가슴으로 내려 앉는 묵직한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어 오르는 게 아니라 일단 오르기 시작했으니 멈출 수없고 설령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밟히지 않기 위해선 밟을 수 밖에 없는 인간사의 단면들을 원두와 재천의 대화를 통해 안타깝게 보게 된다. 나는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자 있을까?


왕이 된 다음에는 뭘 하지?
모르지
몰라?
몰라.
왜?
사람이 앞일을 어떻게 알겠나.
 
페이지 : 386  


정해진 의자는 하나 인데 의자를 둘러 싼 인원은 많고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 까지 게임을 멈출 수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보는 착시현상은 나만 느꼈었는지...

성석제의 소설을 읽는 것은 입담 좋은 아저씨의 무용담을 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한껏 부풀려 이야기 해도 설사 그 이야기 속에 피비린내가 진동해도 마지막에 ’아니면 말고..’의 뒤집을 수있는 익살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를 보지 않고도 이건 누구의 문체인데..를 독자가 눈치 챈다는 건 작가에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식상하고 새로울 게 없어 따분해 질 수도 있고 이런 맛에 이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
성석제의 작품은 언제나 후자다. 
쓸데없는 힘을 잔뜩 주어 독자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문체와 해학과 익살을 적절히 배치한 느슨하지만 쉼없는 흐름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통찰이 있는 문장들.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긋되 깊이 베이는 날카로운 풍자, 구어체의 맛깔스러움을 제대로 느끼게하는 대화들은 그의 책을 책장 맨 가운데 눈높이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자리잡게 한다. 누군가에게 책 추천을 부탁 받았을 때 실망의 소리도 실패의 확률도 없는 그의 책을 바로 꺼내 줄 수 있는 위치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여자 프레지던트(..가 되고 싶었던) 세희 얘기를 빼먹을 뻔 했구나.
마초들의 먹이사슬로  살벌한 정글 속 세파에 시달리면서 한송이 진홍빛 양귀비 꽃으로 핀 세희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은  양날의 검이다.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돋보이는 세희의 미모는 그녀에게서 평탄하고 평범한 여자의 인생을 뺏어 간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통령이 꼭 되고 싶었지만 대통령이 될 수없다면 대통령 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대통령을 만들고 말겠다는 (P.273) 세희의 의지는 너무나 세속적이어서 차라리 인간답다. 재천을 택한 그의 높은(?) 안목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세희가 살아가는 방법이 마사오나 재천, 대경과 창용이 살아 온 삶에 비해 덜 치열했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을까? 마초들이 득시글 거리는 링 위에 혼자 던져진 듯한 세희는 세희의 방법대로 싸워나가고 있는 중이니까. 나는 다만, 화이팅을 목이 터져라 외쳐 줄 수 밖에!!

다시,
내 소설 얘기를 잠시 하기로 하자.
[낫을 들다]의 모티브가 된 이웃 아저씨는 감방에 갔고 가족은 모두 야반도주하듯 동네를 떠났다. 낫을 들게 된 진짜 이유가 이웃에 사는 젊은 과부 아줌마 때문이라는 소문만 여름날 따신 똥에 파리 끓듯 남겨 놓은 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가해자는 감방을 간 이후 소식이 끊겼으니.
그리고, 내가 쓴 소설의 제목 만큼이나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의 한 줄 평도 덧 붙인다.

" 문장은 졸렬하고 구성의 일관성이 없으나 노력하면 발전이 있겠음."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에 공평하게 설치해 주는 (P.386)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망원경같은 말씀을 주셨더라면 나도 성석제의 반열에 오를 만한 글을 썼을지도 모르는데,,거, 참...!!
그 이후 소설 따위를 적는 일이 없었으니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선생님께 소심한 복수를 했다고 보면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현주 / 문학동네

 

 

가화만사성

내가 어렸을 땐 옆집을 가나 앞집을 가나 친구집을 가나 마을회관마다 시퍼렇게 살아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만큼 흔히 볼 수 있었던 글자가 있었다. 

家和萬事成!!

니집 내집 할 것없이 대동소이한 디자인의 글자에 수를 놓고 나무액자로 마감한.. 어떻게 보면 약간 조악해 보이는 작품들이었지만, 걸린 위치조차 안방 방문 위로 비슷하게 정해져 있던 그 시대 우리 모두의 슬로건처럼 느껴지던 문구였다.

가화만사성의 글자 아래 자라 온 우리는 어떠했는가 하면, 시키면 시키는대로 까라면 까야했던...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찌질했다' 할 수있겠다.

말의 표현에는 절제가 뛰어나고 행동의 표현에는 기민함을 갖춘 어른들로 부터 가화만사성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배운 탓이었다. 근엄하신 아버지 늘 고단한 어머니들이 포진해 있던 그때..우리는 가화만사성의 아름다운 이름 아래 조용히 수그리고 살았지만 여울과 마찬가지로 '출가'는 우리 모두의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소망이자 출구였다. 그 출구를 나서는 순간 뼈 속까지 스며드는 찬바람만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모든 악과 대면한 후 마지막 남은 희망 하나 건지면 본전이지 싶은 판도라 상자같은 질긴 유혹이었다.

 

도대체 할매는 내가 왜 그러는지에 대한 탐구가 없다. 마음을 살피려 하지 않고 행동의 결과만 볼 뿐이다.(p.18)

그러나, 이건 우리 입장에서 본 근엄한 어른들을 향한 평가이고 역지사지의 측면에서 볼 땐.. 상황의 탐구없이 행동부터 옮기는 그 순간이 가화만사성을 주먹만사성으로 탈바꿈 고!! 시킨다. 애벌레와 번데기 단계를 생략하고 알에서 바로 성충이 된 나 조차도 내가 낯선 불완전 변태 이후의 순간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가화만사성은 어쩌면 조그맣고 고만고만한 알들을 정상적인 단계를 거쳐 성충에 이르게 하고 픈 어른들의 적을 향해 부릅뜬 초병의 눈빛같은 말이 아니었었나..이제서야 퍼뜩 그런 생각이 든다.

 

불량가족, 낫 벧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채권추심 일에 동원하는 이혼경력 3번의 아빠,

송장칠 나이에 똥기저귀를 빨게 한 나, 여울

속썩히는 남편 이후, 능력없는 아들들 뒤치닥꺼리에 복장터지는 할매,

뚱뚱하면서도 성질마저 더러운 언니,

병약한 몸으로 인해 스무살이 되도록 지저귀를 차고 다녀야하는 오빠,

뇌경색을 앓고 수족이 불편한 삼촌..

 

얼핏보면 최악의 조합이다.

입도 험하고 성격마저 거칠다. 걸핏하면 주먹이 날아오고.

내 가족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따뜻한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장 쉽게 상처받고 많은 상처를 주는 상처위에 소금을 까지 뿌리는 사람들 또한 내 가족이었음을 금방 기억할 수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족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하고 방치해 두기도 한다. 

모범 답안은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고 시간조차도 해결하지 못하고 묵혀두는 감정들이 수두룩한 게 우리의 모습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너나 나나 그다지 다르지 않는 삶들이라는 말이다.

 

좋은 재료들로만 선별해 훌륭한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요리대로, 쓰고 남은 재료를 적당히 섞어 경험으로 익힌 손맛에 의지해 만든 요리는 요리대로 나름의 특색과 맛이 다른 법이다. 불량스런 조합이라고 해서 맛이 없을리 없다. 입맛이 없을 때 입 맛을 돋구어 주는 건 쓴맛이다. 쓴맛을 제대로 살려 내 입맛을 살릴 줄 아는 레시피야 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활기를 불어 넣게 하고 일어설 힘을 제공해 준다.

여울이네 가족, 느글거려서 쉽게 질리는 그런 맛을 가진 가족이 아니라 쓰면서 입맛을 돋우는 중독성 있는 가족이다. 단면만을 보여주는 강한 캐릭터들이지만, 우리도 언제든 그런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고 내 안위를 위해 가족에에 피해를 주는 조금씩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오질 않았던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P.103)

영원하지도 않고 욕심으로 가득 한 삶, 그러나 결국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는 여울이의 깨달음 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겐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재료들이 험하다고  남의 재료들로 내 레시피의 음식을 완성 할 수 없 듯 내게 주어진 레시피대로 죽자고 삶을 이어가는 여울이네 불량스런 가족들... 나쁘지 않다. 이건희 회장 말을 빌리자면 낙제는 아니다!!^^

 

코스튬플레이와 톨스토이

내가 아닌 나로 살아보기.

가족에게서 박탈감을 느낀 여울이가 애착을 가진 만화 캐릭터로 변신을 시도하는동호회다. 여울이가 택한 건 피오나 공주!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이상속의 나를 만들어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코스튬플레이.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켜 현실에선 갖기 힘든 자신감을 얻는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받는 이 소설의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어서 고맙기조차 하다.  

코스튬플레이는 어디에도 발 붙일 공간이 없는 여울이로 하여금 현실을 껑충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넘겨주는 구름판 역할을 한다. 식권위조로 굴욕을 당하기도 하고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아빠에게 주먹다짐을 받은 우울한 현실들을 잊게 해 주는 장소다. 비록 차이기는 하지만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친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도 대화가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곳도 코스튬플레이다. 앙금이 고여 있는 가슴을 열어 보일 수있는 공간이 있었던 게 여울이가 '출가'를 미룰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가 아니었나 싶기도하고. 

코스튬플레이에서 만난 40대 아줌마 마리아를 통해 알게 된 톨스토이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여울에게  화두를 남기고 여울은 정신적으로도 한 계단 더 높이 올라 서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여울이가 톨스토이를 통해 인생의 모법답안을 들쳐보게 되는 게 못마땅했지만..) 여울이 가면은 가면일 뿐 내 얼굴이 될 수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한 번 코스튬플레이는 영원한 코스튬플레이다로 밀어부치는 해병대같은 조직이 아님이 감사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인간은 진화한다'는 꼴통 도덕 선생님의 말에 한 표 던진다.

행인 1이 아닌 가족의 주인공으로 일어선 여울이에게 하이파이브!!

 

쉘 위 댄스

불량 가족들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사실 여울이보다 입담이 걸쭉하고 대장부의 기개가 넘치는 위풍당당 여울의 할매였다. 불량가족 구성원들의 구심점이자 원심력을 발휘하는 할매의 갱상도 사투리에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독설의 입담속에 느껴지는 삶의 진리와  깨우침들!! 삼 년 묵은 체증을 싹 씻어내리는 이 후련함이라뉘!!^^

빨간 파티복을 입힐 사람을 찾으라면 나는 스스럼없이 이 한 많고 질긴삶을 이어가고 있는 여울이 할매한테 손을 내밀며 춤을 신청하겠다.

할매, 욕이 많치요? 우리 땐스나 한 번 땡깁시더..하면 여울이 할매, 이 나이에 먼  시뻘건 드레스여!! 욕을 퍼 부으며서도 살아 온 세월처럼 퀵,퀵, 슬로, 슬로..허리를 펴고 당당히 스텝을 밟을 거 같다. 

어쨌거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의 삶의 저승의 삶보다 낫다는 걸 여울의 할매는 큰 목소리로 일러 주었으니 빨간 드레스의 자격은 충분하다.

개똥 밭에 구르는 불량 가족들을 치마폭에 쓸어 담고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보여 준 여울 할매..남이 해 주는 밥 드시면서 사실 날 있을거라고 부디 평안하시라고 입에 발린 안부로 불량 가족과의 유쾌했던 시간을 접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