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현주 / 문학동네

 

 

가화만사성

내가 어렸을 땐 옆집을 가나 앞집을 가나 친구집을 가나 마을회관마다 시퍼렇게 살아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만큼 흔히 볼 수 있었던 글자가 있었다. 

家和萬事成!!

니집 내집 할 것없이 대동소이한 디자인의 글자에 수를 놓고 나무액자로 마감한.. 어떻게 보면 약간 조악해 보이는 작품들이었지만, 걸린 위치조차 안방 방문 위로 비슷하게 정해져 있던 그 시대 우리 모두의 슬로건처럼 느껴지던 문구였다.

가화만사성의 글자 아래 자라 온 우리는 어떠했는가 하면, 시키면 시키는대로 까라면 까야했던...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찌질했다' 할 수있겠다.

말의 표현에는 절제가 뛰어나고 행동의 표현에는 기민함을 갖춘 어른들로 부터 가화만사성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배운 탓이었다. 근엄하신 아버지 늘 고단한 어머니들이 포진해 있던 그때..우리는 가화만사성의 아름다운 이름 아래 조용히 수그리고 살았지만 여울과 마찬가지로 '출가'는 우리 모두의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소망이자 출구였다. 그 출구를 나서는 순간 뼈 속까지 스며드는 찬바람만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모든 악과 대면한 후 마지막 남은 희망 하나 건지면 본전이지 싶은 판도라 상자같은 질긴 유혹이었다.

 

도대체 할매는 내가 왜 그러는지에 대한 탐구가 없다. 마음을 살피려 하지 않고 행동의 결과만 볼 뿐이다.(p.18)

그러나, 이건 우리 입장에서 본 근엄한 어른들을 향한 평가이고 역지사지의 측면에서 볼 땐.. 상황의 탐구없이 행동부터 옮기는 그 순간이 가화만사성을 주먹만사성으로 탈바꿈 고!! 시킨다. 애벌레와 번데기 단계를 생략하고 알에서 바로 성충이 된 나 조차도 내가 낯선 불완전 변태 이후의 순간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가화만사성은 어쩌면 조그맣고 고만고만한 알들을 정상적인 단계를 거쳐 성충에 이르게 하고 픈 어른들의 적을 향해 부릅뜬 초병의 눈빛같은 말이 아니었었나..이제서야 퍼뜩 그런 생각이 든다.

 

불량가족, 낫 벧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채권추심 일에 동원하는 이혼경력 3번의 아빠,

송장칠 나이에 똥기저귀를 빨게 한 나, 여울

속썩히는 남편 이후, 능력없는 아들들 뒤치닥꺼리에 복장터지는 할매,

뚱뚱하면서도 성질마저 더러운 언니,

병약한 몸으로 인해 스무살이 되도록 지저귀를 차고 다녀야하는 오빠,

뇌경색을 앓고 수족이 불편한 삼촌..

 

얼핏보면 최악의 조합이다.

입도 험하고 성격마저 거칠다. 걸핏하면 주먹이 날아오고.

내 가족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따뜻한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장 쉽게 상처받고 많은 상처를 주는 상처위에 소금을 까지 뿌리는 사람들 또한 내 가족이었음을 금방 기억할 수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족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하고 방치해 두기도 한다. 

모범 답안은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고 시간조차도 해결하지 못하고 묵혀두는 감정들이 수두룩한 게 우리의 모습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너나 나나 그다지 다르지 않는 삶들이라는 말이다.

 

좋은 재료들로만 선별해 훌륭한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요리대로, 쓰고 남은 재료를 적당히 섞어 경험으로 익힌 손맛에 의지해 만든 요리는 요리대로 나름의 특색과 맛이 다른 법이다. 불량스런 조합이라고 해서 맛이 없을리 없다. 입맛이 없을 때 입 맛을 돋구어 주는 건 쓴맛이다. 쓴맛을 제대로 살려 내 입맛을 살릴 줄 아는 레시피야 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활기를 불어 넣게 하고 일어설 힘을 제공해 준다.

여울이네 가족, 느글거려서 쉽게 질리는 그런 맛을 가진 가족이 아니라 쓰면서 입맛을 돋우는 중독성 있는 가족이다. 단면만을 보여주는 강한 캐릭터들이지만, 우리도 언제든 그런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고 내 안위를 위해 가족에에 피해를 주는 조금씩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오질 않았던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P.103)

영원하지도 않고 욕심으로 가득 한 삶, 그러나 결국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는 여울이의 깨달음 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겐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재료들이 험하다고  남의 재료들로 내 레시피의 음식을 완성 할 수 없 듯 내게 주어진 레시피대로 죽자고 삶을 이어가는 여울이네 불량스런 가족들... 나쁘지 않다. 이건희 회장 말을 빌리자면 낙제는 아니다!!^^

 

코스튬플레이와 톨스토이

내가 아닌 나로 살아보기.

가족에게서 박탈감을 느낀 여울이가 애착을 가진 만화 캐릭터로 변신을 시도하는동호회다. 여울이가 택한 건 피오나 공주!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이상속의 나를 만들어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코스튬플레이.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켜 현실에선 갖기 힘든 자신감을 얻는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받는 이 소설의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어서 고맙기조차 하다.  

코스튬플레이는 어디에도 발 붙일 공간이 없는 여울이로 하여금 현실을 껑충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넘겨주는 구름판 역할을 한다. 식권위조로 굴욕을 당하기도 하고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아빠에게 주먹다짐을 받은 우울한 현실들을 잊게 해 주는 장소다. 비록 차이기는 하지만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친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도 대화가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곳도 코스튬플레이다. 앙금이 고여 있는 가슴을 열어 보일 수있는 공간이 있었던 게 여울이가 '출가'를 미룰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가 아니었나 싶기도하고. 

코스튬플레이에서 만난 40대 아줌마 마리아를 통해 알게 된 톨스토이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여울에게  화두를 남기고 여울은 정신적으로도 한 계단 더 높이 올라 서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여울이가 톨스토이를 통해 인생의 모법답안을 들쳐보게 되는 게 못마땅했지만..) 여울이 가면은 가면일 뿐 내 얼굴이 될 수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한 번 코스튬플레이는 영원한 코스튬플레이다로 밀어부치는 해병대같은 조직이 아님이 감사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인간은 진화한다'는 꼴통 도덕 선생님의 말에 한 표 던진다.

행인 1이 아닌 가족의 주인공으로 일어선 여울이에게 하이파이브!!

 

쉘 위 댄스

불량 가족들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사실 여울이보다 입담이 걸쭉하고 대장부의 기개가 넘치는 위풍당당 여울의 할매였다. 불량가족 구성원들의 구심점이자 원심력을 발휘하는 할매의 갱상도 사투리에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독설의 입담속에 느껴지는 삶의 진리와  깨우침들!! 삼 년 묵은 체증을 싹 씻어내리는 이 후련함이라뉘!!^^

빨간 파티복을 입힐 사람을 찾으라면 나는 스스럼없이 이 한 많고 질긴삶을 이어가고 있는 여울이 할매한테 손을 내밀며 춤을 신청하겠다.

할매, 욕이 많치요? 우리 땐스나 한 번 땡깁시더..하면 여울이 할매, 이 나이에 먼  시뻘건 드레스여!! 욕을 퍼 부으며서도 살아 온 세월처럼 퀵,퀵, 슬로, 슬로..허리를 펴고 당당히 스텝을 밟을 거 같다. 

어쨌거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의 삶의 저승의 삶보다 낫다는 걸 여울의 할매는 큰 목소리로 일러 주었으니 빨간 드레스의 자격은 충분하다.

개똥 밭에 구르는 불량 가족들을 치마폭에 쓸어 담고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보여 준 여울 할매..남이 해 주는 밥 드시면서 사실 날 있을거라고 부디 평안하시라고 입에 발린 안부로 불량 가족과의 유쾌했던 시간을 접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