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국어 성적에 반영되는  개인 문집을 만드는 숙제가 있었다. 모든 장르의 글을 다 올릴수 있었고 형식은 자유롭지만 어떤 내용을 올리든  장 수가 서른 장을 넘어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반 페이지 분량의 시를 쓴다면 육십 편 정도는 써야하고, 한 장 분량의 수필을 적는다면 서른 편을 적어야 했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기보다는 시, 수필, 동시, 동화, 희곡, 평론, 소설, 시나리오, 희곡....여기저기 고만고만한 옹달샘을 많이 팔 수록 점수가 유리했었다.  
애통하게도 나는 다방면의 장르에 적합한 문학적 감성을 갖추지 못했고,  인내와 끈기로 토끼 입맛에 맞는 고만고만한 옹달샘만 파고 있기엔 열 여덟의 여름은 확실히 찬란했고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최소의 시간을 지불하고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걸 택하되, 선생님도 인정 할 수밖에 없는 걸로 하자! 잔머리를 굴려 택한 게 소설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 서른 장 알밥 정도야 금방 채우고, 깊은 우물 하나 열 옹달샘 안 부럽게 팔 수있다는 자아도취도 한 몫 했었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은 뚜렷이 기억난다.
[낫을 들다] 
민중의식을 고취시키는 서사적 운동 소설이었냐? 그럴리가!!
향토색이 짙은 상록수적 농촌 계몽소설이었냐?  거..............참!!
뭐라고 꼬집어 적기가 어렵다. 오합지졸 장르가 다 달라붙은 중구난방 줄거리였기 때문에.

당시 우리동네 사소한 시비로 시작되어 살인까지 이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낫]이었다. 호형호제하던 이웃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는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낫]이라는 잔혹함이 생생해, 내용의 기억은 가뭇없이 사라져도 제목만은 잊히지 않는 이유이다.
내용도 기억 못하는 소설 제목 얘기를 하려고 미꾸라지 먹고 용트림하는 사설을 이리도 길게 썼느냐? 아니다!! 
책이 내 손에 들어 온 후, 비를 맞으며 우산을 치켜 든 사나이가 그려진 표지를 봤을 때... 이 아저씨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더라는 말씀.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은데..하는 기시감이 어이없이 이웃을 살해하게 된 그 아저씨와 매치되는 순간, 갑자기 기억에서 걸어나와 소설속 나오는 정원두가 되었다가 마사오로 변신했다가 재천의 모습까지도 커버하는는 기염을 토해 평면화면의 납작하던 인물이 3D 입체효과를 내는 인물들로 읽히더라. 이 아저씨 추억의 창고를 잠근 자물쇠를 떨어지게(P.96)하는 효과를 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각설하자...



 
인물을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사랑받을 만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 된다
 
페이지 : 39  

어느 한 시절 내가 바라보며 롤 모델로 삼을 누군가를 나이가 든 어느시점까지 좋은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기란 쉽지 않다. 그가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내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않은 이상.  원두에게 마사오는 가난과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고 영원한 우상으로 회고함으로 볼 때,  믿었던 권력의 중심이 없어짐으로  인한 아노미 상태에서 권력의 마지막 단맛을 아끼듯 음미하는 소시민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다가 과연 그들에게 왕은 어떤 존재였나로 궁금증은 증폭된다.


어린시절 영웅이었던 마사오의 부고를 받은 정원두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안의 회상에서 마사오는 서서히 구체화된다.  "지역의 평온과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 재판관, 시장, 의원, 언론인, 배우의 기능을 겸한 위대한 인물 마사오!" 이 다양한 역할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훌륭하게 소화해 낸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 마사오! 그 마사오가 어린날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변에 형성한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어떤 신화를 만들어 갔으며 그 신화가 역사로 기정 사실화 되기까지의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졸음 운전을 하는 불안한 버스 기사와 지지않고 들이대는 택시 기사의 간극만큼 아슬아슬하면서 무협스럽게 그려진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의 이야기 일 진데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은 성석제식 특유의 익살에서 비롯된 것일 수 도 있겠으나  가식의 겉치레를 홀라당 벗기고 감추고 있는 깊숙한 곳까지 내시경을 들이대어 면면이 보여주는 인간의 군상들의 모습에서 내가 투영되고 내 주변이 오버랩되는 데서 오는 부끄러운 자조일 수도 있다.  

의뭉스레 숨기는 일 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내놓고 정면승부로 왕이 된 마사오의 이야기와 여론을 움직일 줄 아는 입의 힘으로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는 재천이  왕의 자리로 한발씩 다가가는 과정을 보면서 권력의 속성으로 나타나는 배신과 음모는 권력과 권력 밖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쓰임을, 그 통로를 지나지 않고는 권력의 세계로 들어오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걸 씁쓸하게 읽게 된다
.
마사오를 구심점으로 펼쳐지는 작은 지방도시의 건달들 세계는 권력욕에 빠져있는 마초들의 패권 전쟁처럼 읽혀지기도 하나, 옆으로 조금만 비스듬히 기울여 읽어보면 간절히 원컨대 포착이 쉽지 않아 지금도 우리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수직상승에 대한 부끄러운 욕망들을 논두렁 밭두렁 깡패들의 입을 통해 조금 거칠지만  가슴으로 내려 앉는 묵직한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어 오르는 게 아니라 일단 오르기 시작했으니 멈출 수없고 설령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밟히지 않기 위해선 밟을 수 밖에 없는 인간사의 단면들을 원두와 재천의 대화를 통해 안타깝게 보게 된다. 나는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자 있을까?


왕이 된 다음에는 뭘 하지?
모르지
몰라?
몰라.
왜?
사람이 앞일을 어떻게 알겠나.
 
페이지 : 386  


정해진 의자는 하나 인데 의자를 둘러 싼 인원은 많고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 까지 게임을 멈출 수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보는 착시현상은 나만 느꼈었는지...

성석제의 소설을 읽는 것은 입담 좋은 아저씨의 무용담을 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한껏 부풀려 이야기 해도 설사 그 이야기 속에 피비린내가 진동해도 마지막에 ’아니면 말고..’의 뒤집을 수있는 익살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를 보지 않고도 이건 누구의 문체인데..를 독자가 눈치 챈다는 건 작가에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식상하고 새로울 게 없어 따분해 질 수도 있고 이런 맛에 이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
성석제의 작품은 언제나 후자다. 
쓸데없는 힘을 잔뜩 주어 독자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문체와 해학과 익살을 적절히 배치한 느슨하지만 쉼없는 흐름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통찰이 있는 문장들.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긋되 깊이 베이는 날카로운 풍자, 구어체의 맛깔스러움을 제대로 느끼게하는 대화들은 그의 책을 책장 맨 가운데 눈높이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자리잡게 한다. 누군가에게 책 추천을 부탁 받았을 때 실망의 소리도 실패의 확률도 없는 그의 책을 바로 꺼내 줄 수 있는 위치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여자 프레지던트(..가 되고 싶었던) 세희 얘기를 빼먹을 뻔 했구나.
마초들의 먹이사슬로  살벌한 정글 속 세파에 시달리면서 한송이 진홍빛 양귀비 꽃으로 핀 세희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은  양날의 검이다.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돋보이는 세희의 미모는 그녀에게서 평탄하고 평범한 여자의 인생을 뺏어 간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통령이 꼭 되고 싶었지만 대통령이 될 수없다면 대통령 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대통령을 만들고 말겠다는 (P.273) 세희의 의지는 너무나 세속적이어서 차라리 인간답다. 재천을 택한 그의 높은(?) 안목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세희가 살아가는 방법이 마사오나 재천, 대경과 창용이 살아 온 삶에 비해 덜 치열했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을까? 마초들이 득시글 거리는 링 위에 혼자 던져진 듯한 세희는 세희의 방법대로 싸워나가고 있는 중이니까. 나는 다만, 화이팅을 목이 터져라 외쳐 줄 수 밖에!!

다시,
내 소설 얘기를 잠시 하기로 하자.
[낫을 들다]의 모티브가 된 이웃 아저씨는 감방에 갔고 가족은 모두 야반도주하듯 동네를 떠났다. 낫을 들게 된 진짜 이유가 이웃에 사는 젊은 과부 아줌마 때문이라는 소문만 여름날 따신 똥에 파리 끓듯 남겨 놓은 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가해자는 감방을 간 이후 소식이 끊겼으니.
그리고, 내가 쓴 소설의 제목 만큼이나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의 한 줄 평도 덧 붙인다.

" 문장은 졸렬하고 구성의 일관성이 없으나 노력하면 발전이 있겠음."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에 공평하게 설치해 주는 (P.386)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망원경같은 말씀을 주셨더라면 나도 성석제의 반열에 오를 만한 글을 썼을지도 모르는데,,거, 참...!!
그 이후 소설 따위를 적는 일이 없었으니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선생님께 소심한 복수를 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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