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깃해지는 얘기들이 있다.

여우 이야기, 귀신 이야기, 밝혀지지 않은 미궁의 전말있는 이야기...

이런 얘기들은 책을 읽는 것 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어야 더 감칠맛이 난다.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어?'

'왜 그랬대?'

'설마...그랬을라구?'

이런 추임새가 이야기 대목 대목마다 들어가면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상상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 많은 경험과 오랜 시간을 걸어 온 윗 사람에게 듣는게 훨씬 재밌다.

그 분들이 지나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자라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주어야 잘 전달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분들 역시 궁금하게 여겼던 일인지라...듣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까닭일 것이다.



'나는 시인이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김규동 시인의 발자취를 담은 자서전 형식의 시에 대한 얘기다.

시인의 시를 향했던 열망의 시간들에 대한 보고서 처럼 읽히기도 하고, 시로 인해 변화된 삶과 시로 맺은 인연들,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격정의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 처럼 읽히기도 한다
.

시에 대해 워낙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시를 많이 읽지 않아서 이 책을 보기 이전엔 부끄럽게도... 김규동 시인을 알지 못했다.

'김규동'이라 읽으면서도 '김동규' 시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라...책을 받고 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며 이렇게 나이가 드셨었나?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인이 아닌것 같아...했었다. ㅠㅠ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인이 아닌 게 맞았으니 다행이랄까...^^;)



구어체로 풀어가는 시인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금방 솔깃했졌다.

어릴적 할아버지들이 손주를 앉혀 놓고 밤이나 고구마를 까 주면서..

"할애비가 어렸을 땐 말이다...."하며 조근조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이 그려졌다.

그 목소리가 정말로 들리는 듯했다.

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눈에 걸리지 않는 글은 귀로 바로 전달 되는구나를
느꼈다
.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부터 시인을 꿈꾸며 만난 기라성 같은 역대 시인들의 개인적인 친분,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애증어린
감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 들려주 듯 적었다.

적은 글들이 말이 되어들리니... 정말 그랬나요? 설마요? 이런 질문들을 혼자하게 되더라.^^

개구장이 어린시절의 낙재생에서 경성고보를 거쳐 김일성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는 분명,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임에도 경직된 훈화처럼 들리지 않아  따뜻한 격려의 메세지로 읽힘도 참 좋았다.

김기림, 천상병, 박인환, 김수영...이름만 들어도 앗!! 싶어지는 한국문단의 별로 반짝이는 대시인들과의 개인적 친분에서 생긴 에피소드들도
너무 재미있어 그 분들의 삶이 짐작되어 그 분들의 쓴 시가 더 끄덕여지며 다가왔다.

책 중간중간 김규동 시인의 시도 첨부했는데, 시 속에 나타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사무침이 절절해 느닷없이 통일에
대한 염원이 절실해졌다면 믿을런지?



내가 여태껏 김규동시인을 몰랐던 건 그의 시가 알려지지 않았기때문이 아니라 내가 시를 너무 읽지 않았다는 게 이 책을 통해 다시 반성하게
되었다.

시인의 고향 집 우물가 느릅나무의 안부를 묻는 대목에선 그만 짠...해져서 이 노시인이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통일이 될 때까지
살아서... 아름드리 그 나무에 기댈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솔깃한 옛날 얘기 듣는 마음으로 읽다 보니 이야기는 어느새 끝이다.

'정말 재밌었는데...또 해주세요!!'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겠지만,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참 좋다. 시에 대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이쯤되어야 시를 쓴다고 얘기를 할 수있겠구나..하는 예들을 듣고 배울 수 있어서다.
(이만한 열정없이는 시 쓸 생각 말아야한다는
질책도 들려 약간 움찔해 지기도 한다.ㅠㅠ)



아무튼,

또 한 분의 시인을(이제서야 ) 알고 봄은 깊어간다.

오래오래 건필하시기를..꼭 고향의 느릅나무에게 안부를 전하시기를..책 표지의 사진을 보며 글 아닌 얘기로  들었던 것처럼, 나도 큰 소리로
전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