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 2017년 1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강영숙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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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먼저 떠 오르는 이효석 문학상이 18회나 되었구나 생각하며 읽었다.

[어른의 맛]으로 대상을 수상한 강영숙 작가의 작품을 필두로 기수상작가 자선작 포함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작품으로 명성으로 들어 온 이름들이었지만 수록된 작품중 읽어 본 작품은 없었다.


9편의 작품들 모두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문체와 내용으로 새롭게 혹은 낯설게 다가왔다.

대상작인 [어른의 맛]은 무덤덤해진 남편과의 관계, 불륜일 수도 있는 대학동창과의 지지부진한 방어적 만남,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여고 동창생과의 해후가 섞인다. 무미건조하면서도 어떻게든 이어져 삶의 부분 부분들 흐트리고 정립시키는 어른들의 세계를 흙의 맛에 빗대어 표현했다.


기준영의 [조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졌다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 위해 다시 만난 자매가 상처를 보듬는 과정을,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처가의 도움으로 차린 출판사가 망해버린 즈음에 출판사의 책을 환불 받으러 온 교환학생 낸내에게 스웨덴 수업을 받으며 이전의 삶에서 떨어져 혼자만이 누울 수 있는 굴을 찾지만 녹록치 않음을,

박민영 [당신의 나라에서]는 구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지낸 유년시절 자신을 보살펴 준 보모와 보모의 딸이 밝히는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보모 딸이 그려졌다.

손홍규[ 눈동자 노동자]와 조해진[ 작은 사람들의 노래]는 노동현장에서의 갑작스레 당한 재해를 함께 겪었으나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조경란[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와이로'를 통해 인간관계를 지속해 온 아버지의 셈 방식과 가정부 경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갭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까마귀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싶은 주인공의 마음을, 표명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에서는 동남아 관광지에서 만난 물질만능주의자 어린 가이드와 사업이 내리막길에 선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동업자를 떠나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을 다 설명하다니...인상적인 두어 작품만 쓸려고 했는데 나머지 작가가 서운해할까 싶은 생각에..^^)


작품들의 배경이 한반도로 규정되지 않고 이전엔 잘 접하기 어려웠던 소련이나 중동지방, 스웨덴, 아시아의 변방으로 확대되어 연결고리를 이어간다는 특징을 이 책에서도 발견하게 됨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들의 경험치가 반영되었다는 가정하에 우리의 문학이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일탈의 장소에서 공급받은 생각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신선함을 불어 넣고 있음이 문학 전반에나타나 이제 이국의 지명이나 이름들이 등장해도 낯설지 않다.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음은 문학사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고 새로운 세대들이 쓰는 글이 그들이 느낀 세상을 표현함은 당연한 일이니까.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에도 나타나는 글로벌적인 감성은 시대를 풍미하고 이끌어 갈 감각을 지닌 작가들이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경계를 넘나드는 감성의 자유로움에 한 표를 주고 싶었다.


제18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크고 작은 관계와 연결된 개인의 상처와 기억을 다스리는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훼손된 상황과 기억에 대해 애써 손을 뻗지 않은 자책감으로 부터 물러나 앉지도 못하고 지워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

관계의 허상을 바라보면서도 허상이 지워져버린 후의 시간이 두려운, 관계유지 방식에 서툰 심령이 불리한 자들의 고백처럼 읽혔다.


당선 작가들의 작품들을 메모하면서 장편의 작품으로 그들을 더 깊이 만나보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고 이 상을 통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힘을 수혈 받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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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멍이가 들어왔어요 -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들이 들려주는 반려동물 이야기 서울대학교동물병원 Health+ 시리즈 1
신남식.김선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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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멍이가 들어 온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좌충우돌의 시간이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우리 집으로 온 멍이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어릴때 개를 키워 본 기억이 없고 개를 가까이 해 본 적이 없어 개를 키우게 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덜컥 딸아이가 개를 분양받아 온 게 작년 이맘때 였다. 강아지가 너무 키우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포메라니안을 분양 받아 온 것이었다.

그 이후,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 모든 뒷치닥거리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나날이 활동성이 늘어가고 호기심마저 충만한 포메라니안은 가족의 일상 패턴마저 바꾸어 놓았다. 침대에 올라올려고 낑낑대고 밤낮으로 짖고 아무거나(전기가 흐르는 전선) 물어 뜯어 위험하기도 하고 속상하게 했다.

귀여해 주는 아이들은 잠깐 귀여해 주고 모두 자기일에 바빠 눈뜨면 집을 빠져나가기 바쁘고 나도 일하느라 돌볼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집안의 일들을 해 나가야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멍이가 저질러 놓은 크고 작은 사고의 뒷처리를 하느라 아이와 신경전이 매일이었다.


모두가 나가고 없는 집에 10시간씩 혼자 있게 하는 건 동물학대다, 자는 시간에 산책 시켜라, 오물처리를 왜 안하느냐? 물어뜯지 못하게 훈련을 시켜라, 너무 크게 짖어 이웃에게 싫은 소릴 들었다, 배변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무데나 일을 본다, 뭐든 끄집어 내서 물어뜯어 집이 아수라장이고 금전적 손실도 많다 등등...


그러면서 혼내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며 반려인과 반려견으로 길들이며 길들여가며 차츰 가족의 일원으로 적응해 지내고 있다.

여전히 말썽쟁이긴 하지만 이젠 집에 왔는데 조용히 있으면 아픈건 아닌가 걱정이 앞서 어딨어? 가장 먼저 찾는 가족이 되었다.

[우리 집에 멍이가 들어왔어요]는 서울대 수의학 교수가 쓴 반려견의 입양에서 장례까지 알아야 할 필수적인 상식과 지식을 얇은 책에 담아 놓았다.

궁합이 맞는 품종의 소개와 특징, 입양 전후 꼭 해야할 상식, 식습관과 예절, 성견을 지나 노견이 되었을 때의 관리법, 마지막 장례와 장례 후 반려인이 앓을 수 있는 펫로스 증후군 극복법까지 필요한 알찬 지식들이 많다.

후루룩 넘겨 보며 읽으면 한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반려견을 키우면서 해야할 예방접족이라든가, 먹지 말아야 할 음식, 매일, 매주, 매달, 매년 필요한 케어들은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아이도 나도 너무 준비없이 시작한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던지라 말 못하는 멍이가 우리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더구나 생명을 키우는 일인데 아이는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잘 키울 수 있는 접근방법을 모른 채 시작한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반성도하고 앞으로 좀 더 잘해야 겠다는 다짐도 했다.


아직도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지만 이왕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서로가 가족의 일원으로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요즘은 EBS에서 하는 '세상에 나쁜개는 없다'도 챙겨보고 반려견에 대한 책도 찾아보고 한다.


반려견에 관한 방대한 자료가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지식은 있으니 반려견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나 키우기 시작한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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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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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이 주는 공신력을 믿는편이다.
공모를 통한 수많은 응모작 중에 발탁의 영예를 안았으니 당연히 괜찮은 작품일 거라는 무조건적인 믿음 같은 게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이런 믿음에 부응해 왔고 이런 이유로 문학상을 탄 작품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선택도 높아졌다고 본다. 
가끔 기대에 못 미친 작품도 있었지만, 이건 취향의 문제지 작품의 수준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위로한다. 책을 읽는 흔한 독자인 내가 글로 뼈가 굵은 심사위원의 안목을 뛰어넘을 리가 없잖은가?
이번 세계문학상도 그렇다. 내겐 좀 아쉽지만 심사위원의 안목과 문학상의 공신력을 믿고 싶은.

조선 무녀들의 순수하고도 불길한 역모의 꿈.
하늘과의 접신을 통해 큰 비를 내리게 하고 큰 비가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을 쓸어버린 후,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내용이다.
미륵이 도래하는 세상, 양반도 없고 상놈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용녀 원향과 원향을 도와 큰 일을 이룩할 박수 여환을 앞세워 만들고자 한다. 원향과 여환이 꿈꾼 종착의 세상은 같았으나 접근하는 방법이 다름을 조금씩 알게 되고 새 세상의 서막인 큰 비에 대한 염원도 균열이 일기 시작하는데...

무녀들 삶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신비한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 기사와 이적, 굿의 종류와 굿마다의 특징, 무녀들의 신내림과 계보에 대한 이야기들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해 주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 먹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무녀들의 눈물나는 삶과 무녀가 되기 위한 노력과 무녀가 되고 나서도 신탁을 받기 위해 정신을 닦고 몸을 정갈히 해야하는 묵계들을 읽으면서 굿이 샤마니즘적 주술이 아니라 장인의 영역에 드는 퀼러티 높은 직업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새 세상을 향한 무녀들의 역모라고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역모보다는 무녀들 개개인의 사연과 삶에 더 가깝다.
큰 뜻이 하늘로 부터 온다는 건 알지만, 거슬려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알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에선 인간의 눈으로 보고 인간의 마음으로 판단하는 결국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라는 걸 넌지시 일러 주기도 했다.

책 속의 많은 인물들, 많은 자료들, 많은 이야기들은 작가가 이 작품을 세상에 내 놓기 위해 애쓴 땀과 노력이 진득하게 베여있고 미신으로 치부되고 독특한 문화의 일부로 지정되어 명맥만을 유지해 가는 굿과 무당을 재조명해 보인데 대한 노력이 상을 받게 한 원동력이 되었지 싶다. 
그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나 작가가 연구하고 수집한 방대한 자료로 인해 소설은 서사가 분산되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큰 비라는 임팩트는 소리없이 페이드 아웃되는 느낌이었다.
확- 쓸고 지나갈 듯 싶었던 비는 끝내 내리지 않고 여기 저기서 목소리를 내며 들어 보라는 개개인의 사연들에 촛점이 흔들리다 보니 원향이 접신하는 날을 기다리며 함께 한 여정 어디쯤에서 독자도 함께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수집한 자료가 아깝고 어느 것이라도 버리기엔 살을 깎는 고통이었겠지만 나같은 무매한 독자에겐 중구난방의 보따리 보따리 얘기보단 눈을 뗄 수없는 단순하고 헷갈리지 않는 얘기가 좋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작품의 수준하고 별개로 내 취향의 문제다.

숙종때 경기도 양주 무당 무리들이 도성에 큰 비를 내려 세상을 바꾸어 보려 했다는 대우 경탕설을 연구한 논문이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고 이 논문을 토대로 무당의 삶을 집대성한 소설을 써 낸 작가의 상상력과 노력도 대단하다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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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짓기
정재민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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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잘 읽히는 소설을 만났다.

새벽에 잠이 깨어 다시 잠들기를 바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동틀 때까지 읽고 말았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지만 욕망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심오해지지 말고 스토리만 따라가며 인물들의 상황을 즐기다 보면 책은 어느새 마지막장이다. 그런 다음 천천히 이 이야기는 무얼 얘기하려 하는거지? 생각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띠지에 적혀있지 않은가!

무얼 얘기하려 했는지 모르겠다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을 필요까진 없는 걸로.

사람의 욕망이라는 게 똑같은 형태로 나타나지도 않고 진실이라고 항상 진리처럼 빛나는 것도 아니니까.

상대방의 욕망 뒤에 교차되는 심리를 즐기고 교차되는 이야기 속에 재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 값을 한다고 - 나는 생각한다.


1963년생 희연과 2012년을 살아가는 소설가 이재영, 사회복지사 김정인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펼쳐진다.

화상을 심하게 입어 혐오감을 갖게 하는 김정인과 첫 작품 이후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쓰고 있는 이재영의 우연한 만남에서 기인된 이야기는 도계의 탄광촌에서 태어난 희연의 삶과 교차되어 펼쳐지다 접점을 만나는 순간, 급물살을 타게 되고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긴장의 최고조를 이룬다.


"소중한 것을 돌보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소중한 것들을 돌보기 위해 타인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이고 육제적인 고통이 정당화 될 수 없겠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뿐인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폭력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어도 힘든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주변의 부담스런 관심이 스스로의 인성을 훼손하고 현실을 더 분노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았다.

드러내고 싶지 않는 과거를 가진 사람들의 옹이 진 상처에 대해 우리는 관심이라는 미화된 폭력과 진실을 파헤친다는 합리성을 부여해 그들로하여 더 큰 폭력에 노출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책에서 교훈을 받는 편도 아니고 잘 찾아내는 사람도 아닌데 새벽의 형형한 욱기가 나로하여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찰을 갖게하는 교훈의 시간이었다.^^


책의 처음에 나오는 월리엄 그라써의 이론,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 다섯 가지와 TV 명화 극장에서 했다는 [심야의 미술관] 이야기는 흥미로운 얘기들이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각각의 욕구 충족이 다르고 행동하는 이유가 다르다는 것, 눈먼 귀부인이 눈을 이식 받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헌 비디오라도 구해 돌려보고 싶어졌다.


공학도 였고 신춘문예 당선자고 전업작가로 들어서면서 쓴 장편 데뷔작이라는데 데뷔작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구성과 재미를 지녔다. 공학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시적인 문장이 드러 보여 시 읽는 공학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의 반전을 자연스럽고도 흥미진진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 얼마나 숙고하고 다듬었을지 첨부된 참고 문헌만 봐도 가늠이 되었다.

다만, 문장 자체로는 괜찮았지만 미스터리 서사를 끌고가는데는 생뚱맞은 아름다움이라 눈에 걸렸다. 칼 가는 손에 보이는 매니큐어같아 이 매니큐어는 지우는 편이 나았겠는데..하는 생각? 그냥 내 생각이다.^^


스테디 셀러로 검증된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기는 쉽지만 신인의 신간을 들었는데 재미있기 조차 한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새벽 독서로 인한 아침 피곤이 견딜만 했다.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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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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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시간이었다.

이 한 권을 읽는데 3개월이 족히 걸렸으니!(화장실에 두고 깊은 시름에 잠길 때만 읽었다.)


100년 전 유럽 르네상스를 이끌던 문화계 주류의 사람들을 알아가고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사생활을 통해 지금은 전설이 된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지인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산 책이었다.

기라성 같은 유럽 당대 최고의 문화계 인사들이 줄줄이 소개되고 우리가 드러나 알고 있는 업적을 포함 숨은 비화와 일화들을 감정을 배제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쓴 짧은 단신들로 구성되었으나 두께감 있는 책.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의 서곡인 발칸전쟁이 한창인 불안의 시대에 예술을 통해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모더니즘 문화를 꽃피운 예술가들을 만나게 해줄 타임머신이라고 소개되어있다.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고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고 숨겨 놓은 일기장을 펼쳐보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 애정을 갖게 되겠구나 싶어지긴 했다. 


하지만, 나처럼 인문학적 지식도 100년 전 시대에 대한 이해도 깊지 못한 청맹과니 독자가 읽기엔 만만찮은 책이었다. 소개되는 인물들 중에는 이 양반이 작가인지 의사인지 화가인지 이름조차 생소한 사람들도 있었고 모르는 그 분들이 던진 얘기들이 그 당시에 왜 이슈가 되고 기록이 되어졌는지 배경지식이 없어 이해되지 않는 장면도 많았다.

책 띠지에 적힌 17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고 지난 몇년간 본 책 중 가장 흥미로운 문화사였다는 추천말은 사람을 주눅들게 하다 못해 내가 이렇듯 역사와 문화에 무지한 인간이었나?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그래도 화장실에 갈 때 마다 3개월에 걸쳐 마지막장 까지 읽어 낸 것은 개인적인 인문학적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애쓴 자그마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대견스럽기도 하다. 음화하화----^^

아는 사람 얘기가 재밌듯이 익히 들어와 귀에 익은 사람들 얘긴 제법 재밌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홋, 하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가령 아돌프 히틀러가 수채화가여서 그날 그날 그린 작품을 싸게 팔아 생활을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과 토마스 만이 커밍아웃을 할 뻔 하고, 사라진 모나리자 그림이 어떻게 도난 당했다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 쇤베르크가 연주회에서 따귀를 맞는 상황과 클림트가 자원해서 옷을 벗고 모델로 나서주는 여인들 사이에서 즐겁게 작업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 알마와의 불안한 사랑을 표현한 코코슈카의 대작 - 바람의 신부


그 중 제일 재밌게 읽은 것은 화가 코코슈카와 미망인 알마의 이야기였다.

코코슈카의 알마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기행, 그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게 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다 결국은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결혼했다 헤어지고 다시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한 알마의 팜므파탈적 일화. 한때 클림트와도 연분이 있어 이탈리아로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는 알마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여인인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팜므파탈이긴 하나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미인이었다.

알마의 화려한 남성편력과 반대로 스토커 수준의 집착과 편집증을 보인 코코슈카는 알마의 결혼으로 충격 받아 군에 입대 후, 1차 대전에 참전하고 뇌손상을 입는다. 알마와 똑같은 크기의 등신대 인형을 제작해 마차에 태우고 다니고 드레스도 주문해 입힌 것은 물론, 침대에 눕혀 함께 자고 증오심이 생기면 때리기도 해 이웃이 시체와 사는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 했다는 기행적 일화가 잊을만 하면 등장해 또 어떤 얘기가 나오나 궁금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코코슈카의 공이크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코코슈카는 여전히 남의 여인이 된 알마를 사랑했고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다고 한다. 불쌍한 코코슈카!)


업적이 뛰어나고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더 부각시키지도 않고 미미한 존재라고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은 깔끔하고 담담한 서술이 이 다소 지루한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힘으로 느껴졌다. 

1913년 유럽의 내로라 하는 예술계의 인사들을 헤쳐 모여! 시킨 뒤 방대한 자료들을 압축시켜 펴 낸 1년 치의 신문을 구독한 기분이다. 내 얕고 좁은 인문학 수준을 각성케 해 준 책이기도 하다.

깊고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위해 한 번 더 읽어보면 어때? 한다면 그냥 얕고 좁은 지식을 유지하며 차츰 배워가겠다는 핑계를 대며 정중히 거절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읽어야지.. 싶지만 읽어 지지않는 책은 화장실에 두면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다 읽게 되더라는 게 내 독서법 중 하나다.

다음은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인데 누굴 향해 던지면 흉기 수준의 두께이고 항해 동안의 건조한 기록물이라 다 읽기까지  한 1년 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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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9-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진 100일 걸려 꼼꼼히 읽으신 책.^^

저 역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원서 선물받은지 7년차입니다. 못 읽고 전시해두고 있어요^^;;

아카시아 2017-10-07 22:05   좋아요 0 | URL
100일이 걸렸지만 꼼꼼하게 읽진 못했어요.ㅎㅎ
비글호 항해기 다 읽고 종의 기원 읽을려고 했는데..몇 년이 걸릴지 휴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