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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맛 - 2017년 1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강영숙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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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먼저 떠 오르는 이효석 문학상이 18회나 되었구나 생각하며 읽었다.
[어른의 맛]으로 대상을 수상한 강영숙 작가의 작품을 필두로 기수상작가 자선작 포함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작품으로 명성으로 들어 온 이름들이었지만 수록된 작품중 읽어 본 작품은 없었다.
9편의 작품들 모두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문체와 내용으로 새롭게 혹은 낯설게 다가왔다.
대상작인 [어른의 맛]은 무덤덤해진 남편과의 관계, 불륜일 수도 있는 대학동창과의 지지부진한 방어적 만남,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여고 동창생과의 해후가 섞인다. 무미건조하면서도 어떻게든 이어져 삶의 부분 부분들 흐트리고 정립시키는 어른들의 세계를 흙의 맛에 빗대어 표현했다.
기준영의 [조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졌다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 위해 다시 만난 자매가 상처를 보듬는 과정을,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처가의 도움으로 차린 출판사가 망해버린 즈음에 출판사의 책을 환불 받으러 온 교환학생 낸내에게 스웨덴 수업을 받으며 이전의 삶에서 떨어져 혼자만이 누울 수 있는 굴을 찾지만 녹록치 않음을,
박민영 [당신의 나라에서]는 구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지낸 유년시절 자신을 보살펴 준 보모와 보모의 딸이 밝히는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보모 딸이 그려졌다.
손홍규[ 눈동자 노동자]와 조해진[ 작은 사람들의 노래]는 노동현장에서의 갑작스레 당한 재해를 함께 겪었으나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조경란[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와이로'를 통해 인간관계를 지속해 온 아버지의 셈 방식과 가정부 경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갭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까마귀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싶은 주인공의 마음을, 표명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에서는 동남아 관광지에서 만난 물질만능주의자 어린 가이드와 사업이 내리막길에 선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동업자를 떠나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을 다 설명하다니...인상적인 두어 작품만 쓸려고 했는데 나머지 작가가 서운해할까 싶은 생각에..^^)
작품들의 배경이 한반도로 규정되지 않고 이전엔 잘 접하기 어려웠던 소련이나 중동지방, 스웨덴, 아시아의 변방으로 확대되어 연결고리를 이어간다는 특징을 이 책에서도 발견하게 됨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들의 경험치가 반영되었다는 가정하에 우리의 문학이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일탈의 장소에서 공급받은 생각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신선함을 불어 넣고 있음이 문학 전반에나타나 이제 이국의 지명이나 이름들이 등장해도 낯설지 않다.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음은 문학사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고 새로운 세대들이 쓰는 글이 그들이 느낀 세상을 표현함은 당연한 일이니까.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에도 나타나는 글로벌적인 감성은 시대를 풍미하고 이끌어 갈 감각을 지닌 작가들이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경계를 넘나드는 감성의 자유로움에 한 표를 주고 싶었다.
제18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크고 작은 관계와 연결된 개인의 상처와 기억을 다스리는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훼손된 상황과 기억에 대해 애써 손을 뻗지 않은 자책감으로 부터 물러나 앉지도 못하고 지워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
관계의 허상을 바라보면서도 허상이 지워져버린 후의 시간이 두려운, 관계유지 방식에 서툰 심령이 불리한 자들의 고백처럼 읽혔다.
당선 작가들의 작품들을 메모하면서 장편의 작품으로 그들을 더 깊이 만나보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고 이 상을 통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힘을 수혈 받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