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전건우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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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는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5’(황금가지)의 수록작 ‘해무’를 통해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소용돌이’와 ‘해무’ 모두 25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그 시절 특별했던 연인 혹은 친구의 부고를 들은 주인공이

불편한 심정으로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큰 위기를 겪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해무’가 제목 그대로 바다가 뿜어낸 안개의 공포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소용돌이’는 저수지, 태풍, 익사 등 물의 공포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의 힘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극단적인 공포와 죽음을 야기한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닮은꼴로 읽히는 작품들입니다.

 

줄거리를 정리하기 전에 혹시나 하고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연쇄살인범(?)의 정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아서

서평을 쓰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급하자니 스포일러 같고, 안 하자니 두루뭉술한 이야기 외엔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론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에둘러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를 연상시키는 호러물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25년의 간격을 두고 현실로 소환되는가 하면,

어떤 과학적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연쇄살인을 일으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광기에 휩싸인 연쇄살인을 초래했던 광선리의 다섯 소년소녀는

25년이 지나 불혹을 눈앞에 둔 시점에 또다시 비현실적인 연쇄살인사건과 마주합니다.

일명 독수리 오형제라 자칭하던 그들 가운데 한 명의 부고로 인해 광선리에 모인 나머지 넷은

마을 노인들마저 접근하기를 꺼려하는 귀기 어린 산속 저수지 ‘솥뚜껑’에서 시작됐던 악몽이

25년 만에 또다시 부활했음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헛소리라 치부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할 길 없기 때문에,

또, 애초 이 참극을 초래한 것이 치기어린 13살 시절의 자신들이란 죄책감 때문에

그들은 무력감만 남은 상태에서도 오로지 자신들의 힘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합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 희생자는 쉴 새 없이 발견되고,

역대급 태풍 예보 속에 인력으론 어쩔 수 없는 대규모 참극이 광선리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크게 보면 이야기 구조는 심플합니다.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겠다는 다섯 소년소녀의 순수한 염원이 야기한 통제불능의 참극,

봉인됐던 참극의 25년만의 부활과 그것을 재봉인하려는 네 명의 중년남녀의 목숨을 건 도전,

그리고 막판에 밝혀지는 참극의 정체와 연쇄살인의 진실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호러와 미스터리, 성장 스토리, 도로건설을 둘러싼 마을의 분란 등이 믹스된 서사는

심플한 구조를 무색하게 할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이런 작품일수록 비현실과 현실, 즉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이 얼마나 매끄럽냐가 핵심인데,

그 점에 관해서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러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려 한 작가의 의도 때문에

오히려 막판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샤이닝’이나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는 두 장르가 잘 결합된 작품이면서도

‘아무리 논리적인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결국 호러는 호러’라는 점을 견지한데 반해,

‘소용돌이’는 약간은 무리한 방식으로 현실적인 미스터리 해법을 제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시작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호러’인데,

엔딩은 ‘영문을 알 수 없던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클라이맥스에서 엔딩에 이르는 대목은 독자에 따라 평이 극단적일 수 있겠지만,

한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캐릭터의 매력이라든가 속도와 강약이 매끄럽게 조절된 문장들은

대부분의 독자에게 호평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적잖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공포와 참혹함 사이로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대목도 적절히 배치돼있어서

이쪽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불편하지 않은 책읽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편과 장편에 걸쳐 그만의 매력을 확인한데다,

“앞으로도 계속 어두운 이야기에 매진하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후기까지 보고나니

전건우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부터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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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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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치하라 교도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범인은 사라졌다.

시체의 얼굴은 강산성 용액으로 다 녹아내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으며

팔을 위로 뻗은 이상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수사본부장 다케다 경시는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는 것도 그렇고

곧 출소할 거면서 굳이 교도소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도로 뜻밖의 비극이 벌어진 뒤 기자를 그만두고 보험회사에서 일해 온 시게노는

이치하라 교도소 살인사건이 과거 자신의 보도와 관련 있음을 깨닫곤 진실 찾기에 나선다.

 

● ● ●

 

2009년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꽤 많은 기성 작가들로부터 격찬을 들은 것으로 소개됐는데,

아무래도 교도소 내 밀실트릭이라는 설정 자체가 올드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매력적으로 그려진 덕분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초반의 지루한 ‘교도소 생활’에 대한 묘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꽤 빠른 속도로 전개됩니다.

밀실 미스터리에 의문을 갖는 교도관 노다,

성과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다케다 경시 및 지바 현경의 전방위적 수사,

과거 자신의 보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에 깊이 개입하는 시게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이 비춰지면서 단순해보였던 초반 설정이 점점 복잡하게 꼬여갑니다.

단순한 원한 살인으로 추정되던 교도소 내 밀실살인은

동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이는 연이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고,

결국 수사의 폭 역시 다른 현으로까지 확대됩니다.

 

4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라 빨리 읽히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상황들이 바뀌기 때문에 지루해질 틈 없이 읽히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점은 ‘너무 산만하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분량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등장인물들입니다.

피의자와 피살자, 그의 가족들, 그들이 수감되기 전 저지른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또, 적잖은 경찰들과 언론까지 등장하면서 인물간의 관계나 연결고리가 너무 방대해졌고,

그로 인해 사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작품에 담으려 했던 작가의 과욕 때문이었을까요?

교도소 내 밀실살인에서 출발한 미스터리지만,

그 안에는, 가해자와 그의 가족, 피해자와 그의 유족 간의 구원(舊怨)과 용서에 관한 문제,

사법제도가 외면한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적 복수, 한 개인의 삶을 파탄 낸 언론보도의 문제,

또, 미시적이긴 하지만, 성과와 보신에 집착하는 경찰 시스템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제일 의외였던 것은 이 작품의 원제가 ‘39조의 과실’이었다는 점인데,

일본 헌법 39조는 ‘동일 범죄에 대해 거듭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즉,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담고 있는 조항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원래 취지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의 과실’이었다는 뜻인데,

물론 그런 내용이 담겨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만한 비중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작가의 원래 의도는 제대로 안 보인 반면,

밀실 미스터리, 화해와 용서, 매스컴의 문제, 경찰 시스템의 문제 등

부차적인 주제와 소재들이 복잡하게 뒤엉켰고,

그런 점 때문에 몰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한 내용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대형 기성작가들의 호평 속에 에도가와 란포상까지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이후 8년이 되도록 국내에 더는 소개된 작품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매력적인 후속작이 없었다는 뜻 같기도 하지만,

한 권쯤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반가운 출간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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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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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홀로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서 파트타임 비서 일을 하는 루이즈는

어느 날 바에서 데이비드라는 남자를 만나 잠깐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 상사로 재회한 그는 유부남이었고 꿈꾸던 사랑은 시작되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우연히 조각처럼 아름다운 데이비드의 아내 아델을 만난다.

루이즈는 데이비드와 아델 모두와 점차 가까워지면서

이 멋진 부부 사이에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왜 데이비드는 그렇게 고압적일까? 그리고 아델은 무슨 비밀을 갖고 있는 걸까?

두 사람의 과거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본편이 시작되기 직전 책머리에 인용된 ‘의미심장한’ 문장입니다.

본편을 다 읽고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느 작품들의 머리글과 달리

곧바로 독자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명료한 ‘한 줄 카피’입니다.

 

독자는 당연히 ‘죽게 되는 둘이 누굴까?’라는 의문을 품고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동시에 그 아내의 절친이 되는 싱글맘 루이즈,

싱글맘 루이즈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자신의 아내와 그녀가 절친인지 모르는 데이비드,

싱글맘 루이즈와 절친이 되지만, 그녀가 남편의 불륜의 상대인지 모르는 아델 등

셋 가운데 죽는 둘은 누구이며, 죽이는 한 명은 누구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작가는 간혹 아델의 과거를 다룬 짧은 챕터들을 삽입합니다.

과거 10대 시절의 아델은 정신적 문제로 인해 시설에 수용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의지처이자 절친인 롭과의 특별한 인연이 꽤 비중 있게 그려집니다.

특히 과거 속 아델과 롭은 물론 현실의 루이즈까지 모두 야경증이라는 독특한 병을 앓는데

이쯤 되면 왠지 이 야경증이 평범한 설정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즉, 작가가 ‘아델의 과거’와 ‘야경증’에 꽤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이 단순히 불륜을 매개로 벌어지는 ‘셋 중 둘이 죽어야 하는’ 복수극만은 아니며,

뭔가 큰 비밀과 거짓말이 행간에 숨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막장 복수극’과 ‘심리스릴러’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독자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절친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루이즈는 독자의 혼란을 대변하는 인물인데,

한편으론 아내를 속박하고 억지로 독한 약을 먹이는 데이비드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남편과의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아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둘 사이에 뭔가 알 수 없는 비밀과 거짓말이 있는 게 분명한데,

액면대로면 데이비드가 ‘나쁜 놈’이지만, 아델의 행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

즉, 위화감을 내뿜는 아델의 현재의 행동과 과거의 행적들 때문에

루이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 사람 모두에게 끌려다는 꼴이 되고 맙니다.

 

독자 역시 루이즈처럼 “뭐지?” 하면서 혼란스러운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데,

그 행보가 너무 길어져서 인내심이 바닥 날 무렵쯤 이야기는 갑자기 급물살을 탑니다.

그리고 앞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단서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면서

머리글에서 선언한대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셋 중 둘이 죽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독자들은 전혀 예상 못한 충격적인 엔딩과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그제야 작가가 왜 ‘막장복수극’과 ‘심리스릴러’의 경계선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했는지,

왜 ‘아델의 과거’와 ‘야경증’에 적잖은 공을 들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서평 쓰기 전 출판사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뒤늦게 이 작품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우선 다수의 문학상에서 판타지 부문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의 이력이 눈에 들어왔고,

이어, 띠지에 실린 추천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스티븐 킹의 것이란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이 정보들을 알고 읽었더라도 클라이맥스와 엔딩의 충격은 여전했겠지만,

초반만 해도 길리언 플린의 작품들을 연상시켰던 스토리가

막판에 이르러 스티븐 킹의 폭주 스타일로 변신한 대목이 뒤늦게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이 작품을 길리언 플린과 스티븐 킹의 공동집필이라 해도 전 믿었을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한 가지만 고백하자면, 실은 중도포기를 여러 번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같은 이야기가 계속 동어반복되거나, 설명 부족 또는 모호한 대목들이 너무 많아서였는데,

솔직히, 이미 읽은 부분이 아깝기도 하고, 어떤 엔딩이 기다릴지 궁금한 나머지

조금은 고역이라 느끼면서 읽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100여 페이지부터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빨라지더니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전과 충격, 홍수 같은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앞에서 장황하게 펼쳐진 이야기들이 ‘과잉’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론, 3부(333페이지)가 시작되기 전의 분량을 슬림하게 정리했더라면

정말 알찬 작품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가 야박하게 별 3.5개에 그친 것은 순전히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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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할런 코벤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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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운 아내 커린과 두 아들과 함께 평범하지만 꿈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애덤은

어느 날 한 술집에서 그에게 접근한 낯선 자로부터 아내의 비밀을 전해 듣고 경악한다.

바로 몇 년 전 아내가 임신하고 유산했던 일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

충격적인 이야기에 애덤은 진실을 확인하려 하지만,

그의 추궁을 들은 아내 커린은 도리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커린의 행방을 추적하며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가는 애덤 앞에

낯선 자와 동행했던 여성의 시신이 나타나고 예상치 못한 사건과 폭로가 잇따르며

애덤은 그의 삶이 위태로운 거짓속에 감싸여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서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홀드 타이트’(구간 제목 ‘아들의 방’) 이후 거의 2년 반 만에 만난 할런 코벤의 작품입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코벤의 이야기는 ‘가족’에서 출발합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행복과 믿음이란 울타리 안에서 소박한 삶을 영위하던 몇몇 가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낯선 자’로 인해 위기를 겪거나 균열을 맛보거나 완벽히 붕괴됩니다.

‘낯선 자’는 가족 누군가의 시한폭탄 같은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는 때론 돈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때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가족의 위기와 균열을 막기 위해 적잖은 돈을 들여 비밀을 봉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아무 대가도 요구받지 않은 경우, 시한폭탄 같은 가족의 비밀을 어떻게 다뤄야할지는

온전히 그 비밀을 전해들은 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려준다면,

그것도 아무 대가 없이 그냥 툭 던져놓고 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비밀을 캐묻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도박입니다.

그 비밀이 사실이면 사실인대로, 거짓이면 거짓인대로 엄청난 후유증이 남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애덤 역시 이런 고민들을 수없이 겪지만,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들을 본 나머지 후유증을 각오하고 아내 커린을 추궁합니다.

작품 속 또 다른 인물은 명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돈으로 가족의 비밀을 봉인하는데,

만일 애덤이 그런 선택을 했더라면 그와 커린 앞에 닥칠 비극은 미리 막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일 뿐, 애초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애덤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밀을 들은 죄’만으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내 커린이 왜 사라졌는지, 자신을 찾지 말라는 문자는 왜 보낸 것인지,

‘낯선 자’는 도대체 커린의 은밀한 개인적 비밀을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홀연히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애덤은 동료와 퇴직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이 수많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애덤이 아내 커린의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 이야기는 몇 번씩 요동을 칩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낯선 자’를 추격하는 위험해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고,

‘낯선 자’와 연관 있어 보이는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가 하면,

애덤은 다른 주에서 찾아온 경찰에게 용의자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덧붙여, 할런 코벤 특유의 막판 뒤집기가 수차례 널뛰기 하듯 독자를 뒤흔듭니다.

독자로서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데다

마지막까지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할런 코벤의 필력은 별 5개도 모자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5개에 그친 이유는 오직 하나,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낯선 자’의 정체와 비밀폭로의 목적 때문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못하지만,

작가가 ‘낯선 자’에게 부여한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동기는 다분히 억지스러워 보였고,

왠지 결과를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로만 읽혔습니다.

사건과 위기를 몰고 온 ‘낯선 자’의 정체가 낯설어 보인 탓에

결국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100%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굳이 별 0.5개를 뺀 이유만 제외하면 ‘스트레인저’는 잘 빠진 스릴러임에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분량인) 5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라

주말 한나절이면 충분히 마지막 장까지 완독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할런 코벤과 처음 만나는 독자라도 부담 없이 그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트레인저’가 할런 코벤과의 5번째 만남이었는데,

이 작품 덕분에 아직 못 읽은 그의 전작들이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쏟아지는 신작들의 유혹을 이겨내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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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 - 개정판 ㅣ 변호사 고진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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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한다미의 가출로 인해 삶의 의욕이 사라진 길영인은 자살을 꿈꾸며 그 방법을 찾던 도중

'정신을 파괴해서 육체의 생을 치유한다'는 정신자살연구소를 알게 된다.

호기심과 절박함으로 연구소에 찾아간 그는 이탁오 박사의 언변에 설득되어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정신자살을 시술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시술 후에도 그의 불안은 그칠 줄 모르고, 급기야 아내의 행방을 추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한다.

 

4년 전, 이탁오 박사와 짧지만 강렬했던 악연을 맺은 고진은

우연히 말려든 살인사건에 이탁오 박사의 정신자살연구소가 연관돼있음을 확인하곤

서초경찰서 이유현 팀장은 물론 미모의 마담 류경아까지 끌어들여 적극적인 조사에 나선다.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유희삼아’ 인간의 정신을 실험했던 이탁오 박사라면

길영인 주위에서 벌어진 참극들을 얼마든지 설계하고도 남았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고진의 모든 가설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인용, 편집했습니다)

 

● ● ●

 

(걸작선이나 단편선은 제외하고) 도진기 작가가 발표한 미스터리 작품이 모두 열 편인데,

그중 여덟 편을 읽었으니 어떻게 봐도 도진기 작가의 팬임에 분명한 1인입니다.

못 읽은 두 편은 고진 시리즈 중 ‘정신자살’, 진구 시리즈 중 ‘나를 아는 남자’였는데,

최근 고진 시리즈의 개정판을 내고 있는 황금가지에서 ‘정신자살’을 보내준 덕분에

그동안 너무 궁금했던 변호사 고진과 악마적 인간 이탁오 박사의 대결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신자살’은 고진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작품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작품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본격 추리)이 무색할 정도로

파격적인 반전과 엔딩을 통해 거의 호러에 가까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올해(2017년) 출간된 단편집인 ‘악마의 증명’을 먼저 읽은 덕분에

도진기 작가의 숨겨진 진짜 취향(?)을 안 연후에 ‘정신자살’을 읽은 셈이 됐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꽤나 놀라고 당혹스러워했을 것이 분명한 작품입니다.

도진기 작가는 ‘악마의 증명’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추리와 오컬트 혹은 호러가 결합된 작품에 늘 매료되곤 했다.”

“내가 괴기 환상물을 쓰게 된 건 DNA 수준의 필연인지 모른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이 진술이 더욱 놀랍게 들릴 것입니다.

고진 시리즈나 진구 시리즈를 막론하고 도진기 작가가 보여준 서사의 핵심은

인간의 탐욕이 빚은 명백히 현실적인 사건과 매력적인 본격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고진 시리즈에서 도진기 작가의 이런 의외의 취향이 또다시 발휘된다면

그건 분명 악마적 인간 이탁오 박사와의 재대결 또는 마지막 대결을 다룬 작품이 되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그 전까진 고진 시리즈가 본격의 틀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정신자살’은 그만큼 도진기 작가의 팬인 저에게조차 충격적이고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자신이 세워놓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마지막 가설을 통해 진범을 밝히기 전까지는

고진은 여느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어둠의 변호사’ 역할을 선보입니다.

자신의 추리가 틀려도 슬퍼하긴커녕 오히려 시니컬한 웃음과 함께 새 출구를 찾아나섭니다.

가끔 지나친 비약도 등장하지만, 그의 선명하고 빈틈없는 추리는 매번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또, 투덜대면서도 늘 고진과 파트너처럼 움직이는 서초경찰서 이유현 팀장도 귀엽고(?),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에서 연을 맺은 미모의 마담 류경아는

특유의 매력과 언변을 무기 삼아 고진이 설계한 실제 수사에 투입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정신자살’에서 고진에 맞먹는 비중과 분량, 재미를 선보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좌지우지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진 악마적 인간 이탁오 박사입니다.

길영인 사건을 통해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벌이는 팽팽한 대결도 재미있지만,

4년 전, 고진과 이탁오 박사를 운명적으로 조우시켰던 미스터리한 살인사건 스토리나

그 영향으로 고진이 판사직을 버리고 어둠의 변호사를 택하는 과정도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특히 고진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이탁오 박사가 닮은꼴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지점은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꽤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인물들의 관계도 복잡한데다 예상치 못한 엔딩의 충격 때문에

스토리보다는 장르적 특징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서평이 돼버렸는데,

아무래도 그 이상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정신자살’은 직접 읽지 않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

 

사족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혹시 ‘정신자살’로 도진기 작가와 처음 만난 독자라면,

이 작품으로 고진 시리즈나 진구 시리즈를 예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서 구구절절 설명하긴 했지만, 도진기 작가의 성향은 (적어도 메이저는) 본격 추리입니다.

그 스스로 호러+오컬트+괴기 환상물의 취향을 갖고 있다고 고백했고

언젠가는 그에 걸맞는 주인공을 내세운 새 시리즈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 그의 주력상품(?)은 고진과 진구인 만큼 꼭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혹 ‘정신자살’에서 그다지 호감을 갖지 못한 독자가 도진기 작가의 진면목이 담긴 작품들을

통째로 외면하는 일이 있을까봐 괜한 오지랖까지 덧붙인 사족을 달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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